안녕하세요, 올 해 홍대 모임을 주최하던 인세인토스입니다.
홍대 모임을 했던 게 언제인지 생각도 안나네요. 많은 분들 관심 가져 주셨었는데 죄송합니다.
약간 자랑입니다만 그 사이 저에겐 좋은 소식이 있었습니다!
모 중소 지방 문예지에 신인 작가 수필부문에 당선되어 올해 말 정식 수필가로 등단합니다.
그래서 그간 다소 바빠 모임을 만들지 못했는데, 분위기에 힙입어 다시 만들어 보려 합니다.
요즘 날도 이렇고 하니 단편 소설 비스므리 한 콘티가 떠올라 글을 써보고 있었는데,
혼자 쓰고 혼자 보고 있으려니 전혀 감이 안오네요.
그래서 늘 능력자 집단이라 생각했던 PGR여러분께 보여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많은 질타 부탁으립니다. 내용은 픽션임을 밝힙니다.
((수정) 고칠 게 많은데 일단 한꺼번에 올립니다.)
옛사랑 <1/5 부> - 아직도 여기엔
은행나무 잎이 비처럼 쏟아져 거리를 덮는 모습을 보니 내 기자 생활 2년 차도 어느 덧 끝나가고 있음이 분명했다. 숨이 턱턱 막혀오던 수습 시절을 지나 문화부를 배정받고 정식 기자가 된 올해는 내 인생의 어느 때보다 마음 따뜻한 시절이었다. 하필 처음 배정받은 부서가 그토록 가고 싶던 문화부라니, 내년이면 서른이 된다는 안타까움도 떠오르지 않을 만큼 설레던 한 해였다.
가을을 맞아 기획 취재를 고심하던 중 내 10대와 20대를 지배했던 홍대 인디 밴드들을 만나 그들의 문화에 대해 알려봐야겠다는 아이디어를 냈고, 이는 온전히 내 몫의 연재로 맡겨졌다. 주말까지 이어지는 취재였음에도 일이란 생각이 들지 않았던 지난 2주였다. 사실 내가 좋아하던 장소와 시간들로 돌아가 음악을 듣고, 그 시절 그토록 동경하던 밴드들의 멤버들과 맥주 한 잔하며 이야기 하는 모습이 어찌 일의 연장 이겠는가. 어쩌면 일을 핑계삼아 진정으로 하고 싶던 일을 하는 이 순간은 잠시나마 꿈꾸는 일탈의 순간들이었다.
11월 세 번째 주말, 이젠 낙엽도 거의 져버린 지금, 세 번째 뮤지션을 만나러 가는 길이다. 처음 취재를 시작하던 설레임도 이젠 조금은 잦아들고 약간의 무료함마저 멤돌았다. 게다가 오늘은 조금은 낯선 보사노바 음악을 하는 팀이라 그런지 기대감도 그리 높지 않았다. 그저 새로운 음악이나 들어보다 와야겠다는 생각으로 별 준비도 하지 않은 채 홍대의 작은 공연장으로 향했다. 갑자기 추워진 탓으로 두꺼운 코트를 처음 꺼내 입어서 그런지 몸도 마음도 조금은 무거워져 있었다. 약속시간보다 약간 전에 도착하는 습관이 배어있어 정해진 시간보다 30분쯤 전 찾아간 공연장은 아직 정규 공연 시간까진 한참의 시간이 남아있어서 한산하기 그지 없었다.
주인에게 커피를 부탁하고 자리에 앉자 작은 공연장에는 금새 짙은 커피 향이 맴돌았다. 하얀 커피잔에서 배어나오는 향과 온기에 손을 녹이며 불꺼진 무대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15분쯤 지났을까 무대에 작은 주변 조명이 켜지고 한 여자가 기타를 메고 자리를 잡는다. 당연히 내가 먼저 왔는 줄 알았는데 한참 전부터 준비하고 있었나 하는 생각에 미안함이 밀려왔다. 하지만 곧 미안한 마음 사그러지고 내가 온 줄 알면서도 모른척 했다는 원망의 마음으로 바뀌어 갔다.
메인 마이크 앞에 자리를 잡고 가운데 조명이 그녀를 비추기 시작하자, 갑자기 내 모든 생각이 멈추고 빠르게 어떤 형상이 머리 속을 맴돌기 시작한다. 발목까지 덮는 베이지색 어그 부츠에 중세 집시들이 즐겨 입던 붉은 체크 무늬의 늘어진 치마, 그리고 어딘가 익숙하게 다리가 꼬아진 모습까지 모든 게 내 과거의 한 부분에 있었던 모습이다. 재빨리 무대위 그녀의 얼굴을 살폈지만, 지하에 있는 공연장인데다가 아직 정식 오픈시간이 아니어서 다 켜지못한 흐릿한 조명까지 더해져 자세히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첫 곡이 시작되기 전 잠깐 미소짓는 입꼬리 모양에서 마음이 덜커덕 내려앉았다. 그래 너가 아직도 여기에 있었구나.
옛사랑 <2/5 부> - 그땐 그랬지
중학생 때였는지 고등학생 때였는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어째뜬 그 즈음부터 학원을 마치고 가끔씩 찾아가는 홍대 놀이터 주변은 혼자 즐기던 작은 탈선이었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편의점에서 산 차가운 맥주 하나를 들고 벤치에 앉으면 기타 하나만을 든 채 마이크도 없이 생목으로 노래를 부르던 사람들이 주변에 가득했다. 내 나이에 어울리진 않았지만 세월이 증명한 명곡들이 하나 둘 들려올 때면 작은 가슴 속 영혼의 존재를 느낄 수 있었다.
10년 전 이맘 때처럼 갑작스런 추위가 찾아오던 날, 수능시험은 참 작은 동산이었지만 당시 어린 나에겐 참으로 큰 산처럼 보였다. 시험을 마친 다음날, 대단한 모험을 뚫고 나온 거대한 마음을 가지고 거리로 향했다. 몇 년째 해오던 일이기도 했고 2달도 안되 이젠 성인이 된다는 합리화를 해 가며 자연스레 편의점에서 맥주를 사서 나와 늘 앉던 자리에 자리잡았다. 대한민국 고 3이란 늪에서 1년 만에 나온 거리에선 예전에 알던 음악가들을 찾아 볼 수 없었다. 잠깐 사이에 변해버린 아쉬움을 달래며 통기타를 들고 혼자 노래하는 여자 앞쪽에 자리를 잡았다. 내가 잘 모르는 노래가 흘러나오기 시작했고 그 앞에서 한 시간 정도의 시간이 멈춰버렸다.
그 해들어 처음 찾아온 갑작스런 영하의 추위에 세상이 모두 얼어붙은 듯 했으나, 한 사람에 의해 모두 녹아 내렸다. 약간은 낯설지만 어딘지 모르게 따뜻했던 기타의 반주, 힘은 뺐지만 마음이 담긴 목소리였다. 특히 노래를 하는 내내 조근조근 맴도는 그녀의 미소가 따뜻했다. 그녀가 준비한 듯한 곡들이 모두 끝나서야 나는 맨 정신으로 돌아와 숨을 골랐다. 주변의 관객들은 이미 모두 사라진 뒤였고 그제서야 약간 무안해진 마음이 일었다. 늘 그래왔듯 음악가 앞에 펼쳐진 기타 가방에 지폐 몇 장을 넣고 김광석의 노래 한 곡을 청했다.
"제 목소리랑 어울리지 않을텐데, 괜찮으시겠어요?"
"네."
그녀의 얼굴에 난처함이 잠깐 스쳤지만 더 이상의 대화는 없었고, 약간 목소리와 반주를 맞추더니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를 부르기 시작했다. 결국 그 날 그녀는 나 때문에 김광석의 노래를 몇 곡 더 불러야만 했다.
틈만 나면 그 곳, 그 벤치로 향했다. 매일은 아니었지만 일주일에 두 번 정도는 얼굴을 마주하게 되었다. 너무도 추웠던 어느 날, 날씨 탓인지 관객은 처음부터 나 밖에 없었고 세 곡을 부른 그녀는 손이 얼어서 더 이상 기타를 치지 못하겠다며 자리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어린 날의 용기 때문이었을 지, 나는 대답하게 술자리를 제안했고 작은 술집에서 어색하게 마주앉아 소주잔만 멍하니 바라보고 한참을 있었다.
"몇 살이에요?"
"열아홉이요."
"어머, 그럼 이런데 오면 안 되잖아요?"
"이미 와버렸으니 괜찮아요."
"술 마셔도 괜찮은 거에요?"
"꼭 20살 넘어서 술 마시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요?"
"그렇게 말하니 더 할 말은 없네요, 이름은요?
"박영욱입니다, 그 쪽은...?"
"이은서에요, 은서..."
"나이가 저보다 많으신가봐요?"
"네 좀 그렇죠 뭐..."
"몇 살이신데요?"
"차이가 많이 나서 그런지 대답하기가 싫어지네요."
"그럼 할 수 없구요, 공연 말고는 보통 뭐하세요?"
"그냥 낮에는 아르바이트 하다가 저녁엔 여기에 나오죠, 이젠 너무 추워져서 더 나오긴 힘들겠어요."
"그럼 내일 저랑 영화보러 가실래요?"
"네?"
"영화보러 가자구요, 만나보고 싶어요, 그 쪽이."
"왜 저랑?"
"보고 있으면 늘 마음이 따뜻해지거든요."
옛사랑 <3/5 부> - 마주하기
무슨 용기였을지 모른다. 어쩌면 소심한 내 성격에 처음이자 마지막일지 모르는 용기였을지도. 하지만 내 기대와 달리 다음 날 그녀에게선 연락이 오지 않았다. 속은 타들어갔고 손에서 핸드폰은 떨어질 줄을 몰랐지만, 그래도 말은 해봤다는 안도감도 있었다. 그런데 이틀 뒤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박영욱씨 핸드폰 맞나요?”
“네, 누구?”
“저 이은서에요.”
“네, 무슨일로...?”
“무슨 일이라니요, 영화보러 가자면서요.”
“아, 네, 그랬죠, 언제 시간되세요?”
“내일 저녁 6시쯤 괜찮은데...”
“그럼 내일 6시에 신촌에서 만나죠.”
“네, 내일 봐요.”
이보다 더 떨리는 순간이 있으랴. 우리는 남녀가 같이 볼만 한 그저 그런 영화를 보았고, 따뜻한 차 한 잔 놓고 앉아 서로에 대해 조금 더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나보다 나이가 7살이 더 많아 26살이었다. 대학은 점수를 맞추어 가다 보니 음악과 전혀 관련이 없었는데, 결국 졸업 후 아버지의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하고 싶은 음악을 하는 중이라 했다. 부모님께 많이 죄송하긴 했지만, 일부러 졸업을 빨리 한 뒤 27살 까지만 음악을 하겠다고 양해를 구해놓아서 내년까지만 더 음악을 해 보고 뚜렷한 성과가 없으면 바로 취직을 해야 한단다.
조금은 거리가 느껴졌다. 아직 수능 성적표도 받지 못한 나에게 그녀의 이야기들은 다른 세상의 이야기였다. 당시의 그녀보다 조금 더 나이가 들어버린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그냥 그렇게 있는 그대로 이해할 수 있는 모습이었지만. 어쩌면 그 때 끊어버렸어야 할 그녀와의 인연은 나의 무모한 용기로 인해 근 한 달간이나 이어져 갔다. 그녀 역시 나이 차이에 부담스러워 하면서도, 애늙은이 같은 내 정신연령 덕분에 생각보다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고 정신적인 교감을 형성할 수 있었다. 그런 점에 놀랐는지 그녀도 나에게 호기심을 넘어 조금은 마음의 문을 연듯했다.
옛사랑 <4/5 부> - 꿈과 현실
그 해 크리스마스 이브, 우리는 여느 연인들처럼 내리지 않는 눈에 아쉬워하며 인파로 넘쳐나는 거리를 걷고 있었다. 맞잡고 있는 두 손에는 마음만큼이나 따뜻함이 가득했고, 서로만을 마주했다. 하지만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신촌은 말 그대로 입추의 여지가 없었고, 유난히 추위를 많이 타는 그녀에겐 곤욕이 아닐 수 없었다. 자주 가던 커피숍 앞에서 발길을 돌리다 마주한 숙박업소 앞에서 그녀를 쳐다보았고, 그녀는 말없이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다 이내 고개를 떨구었다.
호기심 많던 그 나이, 난생 처음인 경험에 쿵쾅거리는 가슴을 진정할 수 없었다. 꼴에 남자라고 비웃을 듯한 그녀의 모습이 겹쳐지며 어떤 수치심도 들었다. 두근거림을 숨기려고 쓸데없는 말을 하며 방안 탁자에 마주해 앉아 있다가 어색함을 달래려 커피를 한 잔 타고 있으려니, 그녀가 기타 가방을 열어 묵묵히 기타를 조율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서서히 울려 퍼지는 음악은 옛사랑이었다. 기타를 치는 그녀의 모습에서 처음으로 따뜻함이 아닌 다른 감정이 읽혀졌다. 노래가 끝나자 방안의 공기마저 멈춰버렸고, 처음 보는 그녀의 표정에 당황해 나는 아무 말 없이 그녀를 안았다. 내가 알지 못했던 그녀의 어두움을 이해한 순간, 처음으로 나이의 의미는 사라졌다.
그렇게 한 동안 내 현실에서 멀어져갈 때 즈음 날아든 수능 성적표는 이내 나를 꿈에서 깨워주었다. 원하던 대학에 안타깝게 모자란 점수에 괴로웠고, 결국 막 스무 살이 된 1월 재수를 결심했다. 무언가 슬픈 마음으로 그녀에게 소식을 전했고, 마치 내가 그랬던 것처럼 그녀도 말없이 나를 안아주었다. 그렇게 마지막으로 본 그녀를 뒤로한 채, 스무 살의 봄, 여름을 보내고 가을이 되어 난 결국 원하던 대학에 합격했지만, 다시 그녀 앞에 나타날 용기를 잃고 말았다. 대학과 군대, 취직 따위로 그저 그렇게 이십대를 보내고 많이 차가워져버린 지금, 나는 취재 기자로 그녀는 어엿한 뮤지션으로 마주하고 있다.
옛사랑 <5/5 부> - 옛사랑
30분 가량의 짤막한 공연이 끝나고, 서로 마주했을 때 우리는 서로를 알아 봤음이 분명했으나 누구도 아는 척 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없었다.
“안녕하세요? 모모일보 문화부 박영욱입니다.”
“네, 안녕하세요, 보사노바 음악하는 이희경입니다.”
“일단 음악 너무 잘 들었습니다. 조금은 생소한 장르였는데 거부감이 전혀 없네요.”
“네, 보사노바는 따뜻한 음악이에요. 생소하다는 선입견만 버리면 누구나 쉽게 들을 수 있는 음악이죠.”
“그래도 아직 우리나라엔 생소한 음악인데, 처음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을 텐데요?”
“너무 뻔하지만 저도 처음 보사노바 음악을 접한 건 아스트루드 질베르토의 음악이었죠.”
“아, 걸 프롬 이바네마로 유명한 뮤지션이지요?”
“네, 대부분 그 곡을 알고 계시죠. 아무튼 저는 처음 듣자마자 빠져 버렸구요.”
“그게 언제였나요?”
“딱 스무 살 때였어요, 막 대학에 갈 무렵이었죠.”
약간은 딱딱하게 진행된 한 시간 가량 진행된 인터뷰였다. 무언가 다른 이야기를 꺼내기에 부담스러웠던 내가 의도적으로 유도한 면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내내 그녀는 미소를 잃지 않았다. 마치 내가 혼자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닐까 의심이 들 만큼 태연하다. 보통 뮤지션들이 앨범을 낼 때 가명을 쓴다는 사실 때문에 처음 소개에 이희경이라는 생소한 나왔어도 그녀라는 확신이 있었지만, 이제는 정말 내가 딴 사람을 착각하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도 계속 음악을 하실 계획인가요?”
“네, 힘닿는 데 까지만 해야지, 해야지 하다가 결국 여기까지 와버렸네요. 지금도 그런 마음이구요.”
“아까 공연 때는 조금 당황스러웠어요, 보통은 인터뷰를 먼저 하고 음악을 들려주시거든요.”
“보통 그렇게들 하는데, 저는 일부러 아무 소개 없이 음악부터 들려드려요. 그래야 저와 제 음악에 대한 편견이나 왜곡 없이 받아들일 수 있 거든요.”
“그런 점이 있겠네요. 아까 들려주신 7곡은 전부 본인이 작사, 작곡하신 건가요?”
“네, 별로였나 봐요?”
“아니요, 보통 보사노바처럼 생소한 장르의 음악을 하시는 분들은 그 분야에서 유명한 곡 몇 개 정도는 카피곡으로 많이 해주시거든요, 앨범도 그렇구요.”
“네, 대중들이 생소해 하니까요. 저는 그래서 원래 보사노바 음악보다 우리 대중가요를 보사노바로 편곡해서 카피곡으로 많이 쓰는 편이에요. 그게 더 생소함을 없애는데 많은 역할을 하죠.”
“아, 그럼 카피곡도 좀 하나 부탁드려도 될까요?”
“네, 잠시만요.”
그녀가 다시 무대로 향한다. 익숙한 느낌으로 기타를 쥐고 음을 맞추기 시작한다. 그리고 내 눈에선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이 왈칵 차오른다.
“오늘은 10년 만에 이은서로 돌아갈 수 있어서 좋네요, 오늘은 이 노래까지만 할게요, 옛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