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법은 불완전하다. 인간이 만든 제도이니 어쩔 수 없는 구멍이 있고 구제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법의 넓이와 크기가 닿지 못하는 것을 표현하려면 "법은 미완이다" 라고 해야 더 적절하지 않을까. 전혀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다. 법이 불완전하다고 할 때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은 "不불"에 있다. 불완에는 완전해져야 하고 완전해지려는 법을 온 힘을 다해 아니 그렇게 하는 주체, 사람이 있다. 법을 집행하는 데는 불의한 인간의 의지가 반영된다. 불완전한 법은 불의와 불행 사이에 놓여있다. 눈을 돌려야 할 것은 결과로서의 불행인가, 시작으로서의 불의인가.
1. 검사가 2년 징역을 구형했을 때 그는 흐느꼈다. 징역 6개월, 집행유예 1년을 판결받았을 때 그는 쇼크를 받고 쓰러졌다. 무너지는 인간을 일으킬 수가 없어서 나는 무엇이 인간을 무너트렸는지 묻는다. 쭉 거슬러올라가면 인류의 비겁한 역사와 모진 수난이 펼쳐지겠지만, 그것은 내 행동반경 밖의 일이다. 지금 당장, 나와 같은 시대 같은 국가의 인간을 법으로 흔드는 것은 누구인가. 가장 위쪽에는 장준규가 있고 가장 가까이에는 군형법 92조 6의 집행을 믿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와 우리의 목적은 사유가 아닌 행위에 있다. 어떻게 멈출 것인가. 이것은 힘과 운동의 이야기다. 국가와 개인, 법과 인간, 제도와 권리의 역학관계에서 어떤 위치에 놓여 어떤 방향으로 힘을 줄 것인가. 우리끼리의 한숨을 메아리로 완성시킬 때이다.
2. 그는 4월 25일에 전역 예정이었다. 며칠 후면 노심초사하던 시절도, 각을 잡고 비밀을 유지하던 긴장도 다 잊은 채 집에 갈 수 있었다. 데이팅 앱이건 뭐건 군대에 있을 때보다는 조금 더 넓고 이성애자보다는 한참 좁았을 비밀의 테두리에서 자유를 누릴 수 있어야 했다. 그는 그러지 못했다. 그는 항소 절차를 밟지 않겠다고 했다. 군인이 기소가 되면 자동으로 휴직상태에 들어가면서 복무일수가 계속 늘어나게 된다고 했다. 그는 싸움을 원한 적도 없는데 갑자기 싸워야 하는 처지가 되었고 수사 도중 키스나 체위에 관한 질문을 들으며 프라이버시를 다 뜯겼다. 그는 모든 군인이 그렇게 바라던 전역도 하지 못한 채로 붙들려 있었다.
3. 이번 사건을 보면서 나는 여러모로 <어퓨굿맨>을 떠올리게 된다. 영화 속에서의 군대 역시 기강을 지키기 위해 개인을 희생시킨다. 정의는 승리하지만 코드레드의 실질적 주동자였던 도슨과 다우니는 불명예전역을 피하지 못한다. 도슨은 자신이 군대 내 규칙에 따랐을 뿐이라는 다우니를 말리며 판결을 받아들인다. 자신들이 약자를 지키지 못했음을, 원칙을 좇다가 불의했음을 깨닫기 때문이다. 현실 속의 그는 승리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판결을 받아들인다. 더 이상 싸울 힘이 없었기 때문이다. 현실은 영화처럼 아름답지 못하다. 영화에서는 목숨을 걸고서 명예를 지키고자 싸웠지만 현실에서는 명예도 불이익도 감수한채로 판결을 받아들여야 했다. 영화에서는 불명예전역조차도 명예롭게 받아들였지만 현실에서는 모든 명예를 박탈하고 범죄자로서의 낙인만이 찍혔다. 징역 6개월, 집행유예 1년의 판결이 떨어졌을 때 그는 무엇을 배웠고 무슨 명예를 달리 찾았을까. 영화 속에서 늘 타협만 하다가 기어이 싸움을 시작했던 대니얼 캐피는 우리에게 무엇을 이야기하는가.
4. 국방부 앞에서 A대위 석방을 촉구하는 시위에 참가했을 때 성소수자들의 공포를 느낀 적이 있다. 레즈비언으로 추정되는 여자 두명이 내 앞에서 열심히 공연을 보고 호응도 하고 있었다. 행진이 시작되었고 다들 일어나서 걷기 시작했다. 내 앞의 두 여자는 피켓으로 얼굴을 가리고 쩔쩔매며 걸었다. 나도 얼굴이 드러나는 건 부담스러워서 마스크를 썼지만, 그 정도로 부담을 느낀 건 아니었다. 누군가는 자신의 권리를 위한 싸움에서 너무나 많은 것들을 걸어야 한다. 단 한번의 싸움에 항복할 수 밖에 없는 사람도 있다. 그렇게 주저앉은 사람들과 누워버린 사람들에게서, 서있는 사람은 자동으로 바통을 이어받는다. 아마 그런 것이 입장 따위는 무색하게 하는 연대일 것이다.
5. 단 한명의 패배가 더 많은 인권침해를 예고하고 있다. A 대위와 달리 아직 군생활이 많이 남은 이들은 어떻게 재판을 받고 싸울 수 있을까? 아직 "들통나지" 않은 성소수자들은? 영내에서 의심받고 있을 성소수자들은? 이 판결은 성적지향에 대한 가치관을 이성애자들에게 어떻게 심어줄까? 그들은 범죄자니까 행여라도 의심스러우면 바로 헌병대에 꼰질르거나 이것저것 캐물어도 된다는 믿음을 주진 않을까? 제도의 차별에 익숙해진 이성애자들이 전역 후에는 성소수자들을 어떻게 바라볼까? 범죄자들이라며 흘겨보진 않을까? 커밍아웃을 했던 성공회대의 백승목 학생회장은 국방부 앞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 "나는 커밍아웃을 했고, 국방부는 나를 게이로 인식한 채 관리할 것이다. 나는 과연 정상적으로 군생활을 할 수 있을까?" 성소수자는 단지 일상에서의 차별이 아니라 언제든지 감시받고 구속할 수 있는 공적인 폭력앞에 무방비로 놓여있다. 군입대 전에 커밍아웃을 한, 아웃팅을 당한 게이는 무조건 잠재적 범죄자로 찍히게 되어있다. 그야말로 인간사냥이다.
6. 염려와 위로가 사치스러울만큼 지금의 상황은 급박하다. 사실 이미 늦었다. 늘 늦었고 곧 있으면 또 늦은 채로 누군가의 평등은 깨진다. 비밀로나마 체면치레를 하던 이 상황에서 인권은 현재진행형으로 계속 박살나고 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갑론을박을 펼칠 여유가 없다. 사실관계를 추적하면 한사코 중립의 환상을 유지할 여유가 없다. 지금이야말로 홍준표를 향해 분노할 때의, 다른 정치적 단체들의 급진성과 인권훼손을 꾸짖을 때의 분노가 확실한 목표를 향해 날아가야 한다. 장준규와 국방부, 그리고 잘못된 제도를 향해 행동으로 연대할 때다. 움직이지 않으면, 멀리서 보고만 있으면 거대한 힘은 한명의 개인들을 차례차례 으깨고 지나간다. 분노를 실천할 때다. 조금 귀찮고 아주 쉬운 방법으로 허공에 흩어질 감정들을 분명한 의지로 다질 수 있다. 세상을 불완해하는 사람들에게 미완해라고만 할 것인지. 움직일 수 있고, 움직여야 한다.
국방부 민원 링크
http://www.mnd.go.kr/mbshome/mbs/mnd/subview.jsp?id=mnd_030200000000
병무청 민원 링크
http://mwpt.mma.go.kr/caisBMHS/index_mwps.jsp?menuNo=22253
@ 우리는 진보정당의 용기와 실천을 너무 익숙하게 여긴다. A 대위 재판 전 탄원을 모으고 군형법 92조 6의 폐지에 힘쓴 정의당 의원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김종대 의원은 호모포비아들에게 전화테러를 당했다고 하던데 그만큼의 긍정적 관심과 피드백도 얻을 수 있길 바란다. (당이 침묵을 지키는 와중에도 용기를 내서 참여한 진선미와 박주민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