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17/05/14 03:19:25
Name 깐딩
Subject [일반] 동물의 고백(15)
약속 전날 여자에게서 연락이 왔다.

-XX 씨 맛 점하고 계세요?
아, 죄송한데ㅜ 다음 주 쯤에나 봐도 되나 해서요.

-네. 그래요.

-고마워요~

딱히 이유도 묻지 않았고 약속 날짜를 구체적으로 다시 잡지 않았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그냥 그러고 싶었다.

그리고 그 주 주말에 다시 연락이 왔다.

-주말 잘 보내고 있어요?

-네 강남에 옷 구경 좀 하러 왔어요.

-봄옷들 괜찮은 거 많더라고요. 간 김에 몇 벌 사세요~

그렇게 점심부터 이어진 잡담이 또 자기 전까지 이어졌다.

그런데 점심 약속은 말이 없네?

그리고 귀신같이 다음 날 저녁 다시 연락이 왔다.

-내일 점심 같이 하실래요?

-그럴까요? 저번에 말했던 파스타집?

-네~ 잘 찾아오세요.

-네, 그럼 내일 12시에 파스타집에서 보는 걸로.

-크크 낼 봐요. 굿밤 되세요!

-좋은 꿈 꾸세요!




"엄청 일찍 오셨네요?"

정시에 가게로 들어온 여자가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혹시나 사람 많으면 다른데 가게 될까 봐 미리 와서 자리 맡아두고 있었죠."

"일찍 나오면 회사에서 뭐라고 안 해요?"

"OO 씨 맛있는 거 대접하고 싶어서 일찍 왔죠. 뭐라 그러면 까짓 거 한번 혼나고 말죠 뭐."

또 말이 뇌를 거치치 않고 나가기 시작한다.

"오랜만에 만나서...는 아닌 것 같은데 더 예뻐지셨네요."

여자가 웃으며 고맙다고 하며 말한다.

"사실은 제가 저번 주에 점을 빼서 만나기가 좀 그렇더라고요."

아싸 얻어걸렸네.

"OO 씨 같이 예쁜 사람은 점 같은 포인트 하나쯤은 있어도 괜찮은데 그래도 지금이 더 예쁘긴 하네요."

메뉴판을 건넸다.

여자가 메뉴판을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뭔가 하나를 선택했다.

뭔가 해서 봤더니 작은 샐러드 하나에 기본 파스타(소)라고 적혀진 점심 특선 세트였다.

가격이 9000원. 전혀 맛있어 보이지 않는다.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여자에게 물었다.

"그러고 보니 저번에 크림 파스타 좋아한다고 하시지 않으셨어요?"

고개를 끄덕인다.

종업원을 불러 크림 파스타, 토마토 파스타 종류를 하나씩 시키고 치즈 샐러드를 하나 시켰다.

"아니 저는 점심 세트인데..."

"이거 드세요. 이게 맛있어요."

"샐러드도 필요 없는데..."

"파스타 먹는데 샐러드 없으면 무슨 맛이에요. 기왕 왔는데 맛있게 먹고 가요."

여자가 체념한 듯 작은 탄성을 내뱉는다.

그러고는 이내 밝은 표정으로 "그래요"라고 대답하고

그동안 서로 못했던 잡담을 또 주고받는다.




잡담으로 길어진 식사시간이 금세 끝나고 계산대로 향했다.

여자가 나에게 카드를 내민다.

종업원이 내가 가게로 들어오면서 미리 줬던 카드를 돌려준다.

"잘 먹었습니다. 여기 맛있네요. 또 올게요."

인사를 하고 아무 말 없이 가게 밖을 나섰다.

여자가 어리둥절하며 카운터에 자기 카드를 내미는데 종업원이 여차여차 설명을 한다.

여자가 당황해하며 가게 밖으로 따라 나왔다.

"여기 제가 오자고 했었잖아요. 그래서 제가 사는 거예요. 대신 다음 점심은 OO씨가 쏘는 걸로"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내가 먹고 싶은 메뉴를 먹자고 한다.

사실 뭘 먹든 이젠 별로 상관이 없다.

이 여자랑 한 번이라도 더 점심을 같이 먹고 싶고 마주 앉아 이야기를 하고 싶다.

언제부터였을까? 이렇게 된 게?




3월 13일이 되었다.

다음날이 남자가 여자에게 사탕을 주는 날이라나 뭐라나.

궁시렁대며 직원들용 선물을 사러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사탕 주는 날이라고 사탕 주는 건 정말 안 좋은 선택인 것 같다.

작은 곰인형이 부착된 젤리 과자 통을 샀다.

'그 여자 것도 살까...'

하다가 받기 쉽고 부담도 안되는 것으로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가 있을까... 생각을 하다 기프티콘을 뒤적거렸다.

그러다 문득 파리바게뜨 미니 롤케이크 세트가 보였다.

녹차 맛 딸기맛 세트로 묶인 먹음직스러운 빵이었다.

'이거다!'




다음날 능청스레 점심 맛있게 드셨냐고 카톡을 보냈다.

이런저런 잡담을 주고받다가 본론으로 넘어갔다.

-크크 아 맞다, 좋아하실지 모르겠는데

라고 말하며 기프티콘을 쏴 줬다.

-먹다가 남아서요.

-오와!^^ 감사합니다. 롤케이크네요.

-요 앞에 파리바게뜨에서 찾아가심 딱이네요.

-저 근데 받아도 되는 건가요?

여자가 조심스레 물어본다.

여기서부터가 중요한 것 같다.

그렇다고 돌려 말할 필요도 없고 장난으로 넘어갈 필요도 없다.

-음... 부담스러우신가요?

-아뇨~ 고마워서요.

-그러면 그냥 맛있게 드셔주시면 됩니다.

-네, 잘 먹을게요! 아, 이번 주 금요일에 점심 가능하시면 같이 먹어요. 제가 살게요~
  XX 씨 드시고 싶으신 걸로!

-메뉴 생각해 보겠습니다.




회덮밥을 먹으러 갔다.

먹고 나오면서 여자가 사실은 자기가 회덮밥을 너무 맛없게 먹은 기억이 있어 맛이 없을 줄 알았다고 한다.

그런데 의외로 너무 맛있어서 놀랐다고 한다.

메뉴 선택은 성공한 모양이다.

사실 그 집은 근처에서 알아주는 일식집이었는데

이번에 새로 점심영업을 시작하면서 저렴하게 나온 점심특선 메뉴였다.

실패할리가 없었다.

오늘은 점심을 먹으려고 온게 아니다. 더 중요한게 있다.

"어제 미녀와 야수영화 개봉했는데 아세요?"

"아 그래요? 디즈니 미녀와 야수 그거에요?"

"네 맞아요. 해리포터에 나왔던 여자애 있잖아요. 엠마 왓슨, 걔가 주인공인 뮤지컬형식 영화래요.
친구들이 보고왔는데 엄청 재밌다고 하더라구요. 언제 시간 괜찮으시면 저랑 같이 영화 보러 가실래요?"

말을 내뱉는 순간 아무렇지도 않던 심박수가 오르기 시작했다.

내 심장소리가 여자에게까지 들릴 것만 같았다.

여자가 잠시 고민을 하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Openedge
17/05/14 03:25
수정 아이콘
늘 그렇듯이 끊기가..
17/05/14 03:45
수정 아이콘
와.... 진짜 이분 선수야 선수
끊는거나 여자분한테 하는거나....
라이펀
17/05/14 03:47
수정 아이콘
처음 읽어보는데 술술읽히네요 끊는 타이밍이 드라마 끝나는것마냥 다음이야기가 벌써 기다려집니다.
라이펀
17/05/14 04:14
수정 아이콘
정주행하고왔네요 출간하셔도 될 정도로 재밌네요
17/05/14 06:33
수정 아이콘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절단신공은 정말로 날이 갈수록 늘어만 가는 느낌이군요 크크
우리엘
17/05/14 07:33
수정 아이콘
항상 재밌게 읽고있습니다.
전광렬
17/05/14 08:55
수정 아이콘
흠... 저는 왠지 위태위태 해보이는데...
제 기우이기를 바랍니다.
MiguelCabrera
17/05/14 09:27
수정 아이콘
명의의 눈은 뭔가 다른가 보네요.
이시하라사토미
17/05/14 08:56
수정 아이콘
와.... 끊는거나 말하는거나.. 선수시네요..

입을 열고 그다음은!?!?
와.. 주말드라마 끊는 느낌..
Alcohol bear
17/05/14 11:45
수정 아이콘
안되 헤어져.. 돌아가..
마도사의 길
17/05/14 12:37
수정 아이콘
음...저도 불안하네요.. . 뭔가 정신적 교감은 안나오고 물질적인 공세라....
MiguelCabrera
17/05/14 13:46
수정 아이콘
저런 만남에서 정신적 교감은 어떤 대화를 해야 하는지 여쭤 봐도 될까요? 연애하수 가르쳐준다 생각하고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흐흐흐
마도사의 길
17/05/14 17:34
수정 아이콘
저도 언랭이라서....근데 그런 부분은 뭔가 하고 싶어서하는게 아니라 그냥 되더라구요. 보통 서로가 서로에게 호감을 느낄 떄? 그런 느낌적인 느낌... 뭘로 말로 하기 힘든 상대방의 반응 같은 거라 해야 할까요. 상황 마다 달라서... 뭐라 말하기 어렵네요. 유머라든가, 취미라든가, 관심사라든가... 처리해야될 중요한 일이라든가... 이런 부분에서요. 지금 사건 같은 경우는 아마도 모임장이 탈퇴한 이유.... 에서 먼가 공감대를 찾을 수 있다면 가능성이 보이지 않을까요. 애초에 모임을 만든 이유와 서로 만남을 가지게 된 인연 등등 해서 그쪽으로 풀어나가면 좋지 않을까 싶네요. 저의 뇌피셜이라 뭐라 말씀듣리기 어려워요.
17/05/14 16:36
수정 아이콘
불안한 마음은 언제나 틀린적이 없죠.

벌써 3월이야기까지 왔는데 좀더.. 자세히 천천히 빠짐없이 써주세요..
이러다가 5월분까지 금방따라잡겠어요!(장기휴재는 안됩니다)
17/05/14 19:03
수정 아이콘
제가 주위 동생들에게 당부하는 이야기입니다.
'절대(?) 사귀는 그 순간까지는 선물 및 데이트비용 전액부담 따위의 행동은 하지마라.'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72027 [일반] Active X 문제. [19] 삭제됨4528 17/05/24 4528 1
72026 [일반] 친구에게 암호화폐를 설명한 이야기 [28] 삭제됨7278 17/05/24 7278 0
72025 [일반] 비트코인 오피니언 리더,선동가였나 선지자였나. [111] 고통은없나12634 17/05/24 12634 3
72023 [일반] 금연 성공! [63] 산타의선물꾸러미6724 17/05/24 6724 20
72022 [일반] 동생을 떠나보내며 [19] salyu7330 17/05/24 7330 39
72021 [일반] 위풍당당한 우리 킹의 입국장면이 화제입니다.gif [160] 아이오아이24567 17/05/24 24567 62
72020 [일반] 우당탕탕 연애 정복기 (5) [25] 껀후이5512 17/05/24 5512 2
72019 [일반] 파워블로거의 꿈(?) [32] Timeless7920 17/05/23 7920 15
72018 [일반] 참치회를 집에서 저렴하게 먹어보자. [71] aRashi17401 17/05/23 17401 67
72017 [일반] 알파고는 왜 가끔 이상한 수를 두는가 [46] 아케이드12936 17/05/23 12936 15
72016 [일반] 울리 슈틸리케 축구 대표팀 감독에 대한 독일/해외 축구팬들의 반응 [19] 삭제됨8200 17/05/23 8200 5
72015 [일반]  "경기도, 남북으로 나누자"…자유당 '경기북도' 설치법 발의 [101] 군디츠마라13446 17/05/23 13446 1
72012 [일반] 클라우드 펀딩/크라우드 펀딩, 정보격자/정보격차, 不동층/浮동층 [31] the3j5750 17/05/23 5750 2
72011 [일반] 조선왕조의 왕이 한 말 중 가장 멋졌던 말 [10] 바스테트9777 17/05/23 9777 1
72010 [일반] [전자담배] 아이코스가 국내에 들어온다고 합니다; [34] 황약사13461 17/05/23 13461 1
72009 [일반] 인공지능이 다시 한 번 사람을 이겼습니다... [154] Neanderthal17048 17/05/23 17048 4
72008 [일반] 문재인 대통령 "대통령으로서 노무현 추도식에 참석하는 건 오늘이 마지막" [36] 삭제됨15451 17/05/23 15451 56
72007 [일반] 리서치뷰, 문재인 대통령 잘한다 87.0%, 조원씨앤아이 추가(국민의당 꼴지 추락) [83] 로빈15114 17/05/23 15114 15
72006 [일반] 고려말 홍건적난 이후 [13] 로사7044 17/05/23 7044 13
72004 [일반] 영국 맨체스터 공연장에서 폭발로 최소 20명 사망(내용추가) [37] 군디츠마라11715 17/05/23 11715 0
72003 [일반] (일상, 사진) 동물 보호소에서 일하다 보면 [38] OrBef11091 17/05/23 11091 16
72002 [일반] 정몽주 "피눈물을 흘리며, 신이 하늘에 묻겠습니다." [36] 신불해15428 17/05/23 15428 89
72000 [일반] 윤석열 지검장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요? [43] 카카롯뜨13922 17/05/23 13922 1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