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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7/05/14 03:19:25
Name
깐딩
Subject
[일반] 동물의 고백(15)
약속 전날 여자에게서 연락이 왔다.
-XX 씨 맛 점하고 계세요?
아, 죄송한데ㅜ 다음 주 쯤에나 봐도 되나 해서요.
-네. 그래요.
-고마워요~
딱히 이유도 묻지 않았고 약속 날짜를 구체적으로 다시 잡지 않았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그냥 그러고 싶었다.
그리고 그 주 주말에 다시 연락이 왔다.
-주말 잘 보내고 있어요?
-네 강남에 옷 구경 좀 하러 왔어요.
-봄옷들 괜찮은 거 많더라고요. 간 김에 몇 벌 사세요~
그렇게 점심부터 이어진 잡담이 또 자기 전까지 이어졌다.
그런데 점심 약속은 말이 없네?
그리고 귀신같이 다음 날 저녁 다시 연락이 왔다.
-내일 점심 같이 하실래요?
-그럴까요? 저번에 말했던 파스타집?
-네~ 잘 찾아오세요.
-네, 그럼 내일 12시에 파스타집에서 보는 걸로.
-크크 낼 봐요. 굿밤 되세요!
-좋은 꿈 꾸세요!
"엄청 일찍 오셨네요?"
정시에 가게로 들어온 여자가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혹시나 사람 많으면 다른데 가게 될까 봐 미리 와서 자리 맡아두고 있었죠."
"일찍 나오면 회사에서 뭐라고 안 해요?"
"OO 씨 맛있는 거 대접하고 싶어서 일찍 왔죠. 뭐라 그러면 까짓 거 한번 혼나고 말죠 뭐."
또 말이 뇌를 거치치 않고 나가기 시작한다.
"오랜만에 만나서...는 아닌 것 같은데 더 예뻐지셨네요."
여자가 웃으며 고맙다고 하며 말한다.
"사실은 제가 저번 주에 점을 빼서 만나기가 좀 그렇더라고요."
아싸 얻어걸렸네.
"OO 씨 같이 예쁜 사람은 점 같은 포인트 하나쯤은 있어도 괜찮은데 그래도 지금이 더 예쁘긴 하네요."
메뉴판을 건넸다.
여자가 메뉴판을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뭔가 하나를 선택했다.
뭔가 해서 봤더니 작은 샐러드 하나에 기본 파스타(소)라고 적혀진 점심 특선 세트였다.
가격이 9000원. 전혀 맛있어 보이지 않는다.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여자에게 물었다.
"그러고 보니 저번에 크림 파스타 좋아한다고 하시지 않으셨어요?"
고개를 끄덕인다.
종업원을 불러 크림 파스타, 토마토 파스타 종류를 하나씩 시키고 치즈 샐러드를 하나 시켰다.
"아니 저는 점심 세트인데..."
"이거 드세요. 이게 맛있어요."
"샐러드도 필요 없는데..."
"파스타 먹는데 샐러드 없으면 무슨 맛이에요. 기왕 왔는데 맛있게 먹고 가요."
여자가 체념한 듯 작은 탄성을 내뱉는다.
그러고는 이내 밝은 표정으로 "그래요"라고 대답하고
그동안 서로 못했던 잡담을 또 주고받는다.
잡담으로 길어진 식사시간이 금세 끝나고 계산대로 향했다.
여자가 나에게 카드를 내민다.
종업원이 내가 가게로 들어오면서 미리 줬던 카드를 돌려준다.
"잘 먹었습니다. 여기 맛있네요. 또 올게요."
인사를 하고 아무 말 없이 가게 밖을 나섰다.
여자가 어리둥절하며 카운터에 자기 카드를 내미는데 종업원이 여차여차 설명을 한다.
여자가 당황해하며 가게 밖으로 따라 나왔다.
"여기 제가 오자고 했었잖아요. 그래서 제가 사는 거예요. 대신 다음 점심은 OO씨가 쏘는 걸로"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내가 먹고 싶은 메뉴를 먹자고 한다.
사실 뭘 먹든 이젠 별로 상관이 없다.
이 여자랑 한 번이라도 더 점심을 같이 먹고 싶고 마주 앉아 이야기를 하고 싶다.
언제부터였을까? 이렇게 된 게?
3월 13일이 되었다.
다음날이 남자가 여자에게 사탕을 주는 날이라나 뭐라나.
궁시렁대며 직원들용 선물을 사러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사탕 주는 날이라고 사탕 주는 건 정말 안 좋은 선택인 것 같다.
작은 곰인형이 부착된 젤리 과자 통을 샀다.
'그 여자 것도 살까...'
하다가 받기 쉽고 부담도 안되는 것으로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가 있을까... 생각을 하다 기프티콘을 뒤적거렸다.
그러다 문득 파리바게뜨 미니 롤케이크 세트가 보였다.
녹차 맛 딸기맛 세트로 묶인 먹음직스러운 빵이었다.
'이거다!'
다음날 능청스레 점심 맛있게 드셨냐고 카톡을 보냈다.
이런저런 잡담을 주고받다가 본론으로 넘어갔다.
-크크 아 맞다, 좋아하실지 모르겠는데
라고 말하며 기프티콘을 쏴 줬다.
-먹다가 남아서요.
-오와!^^ 감사합니다. 롤케이크네요.
-요 앞에 파리바게뜨에서 찾아가심 딱이네요.
-저 근데 받아도 되는 건가요?
여자가 조심스레 물어본다.
여기서부터가 중요한 것 같다.
그렇다고 돌려 말할 필요도 없고 장난으로 넘어갈 필요도 없다.
-음... 부담스러우신가요?
-아뇨~ 고마워서요.
-그러면 그냥 맛있게 드셔주시면 됩니다.
-네, 잘 먹을게요! 아, 이번 주 금요일에 점심 가능하시면 같이 먹어요. 제가 살게요~
XX 씨 드시고 싶으신 걸로!
-메뉴 생각해 보겠습니다.
회덮밥을 먹으러 갔다.
먹고 나오면서 여자가 사실은 자기가 회덮밥을 너무 맛없게 먹은 기억이 있어 맛이 없을 줄 알았다고 한다.
그런데 의외로 너무 맛있어서 놀랐다고 한다.
메뉴 선택은 성공한 모양이다.
사실 그 집은 근처에서 알아주는 일식집이었는데
이번에 새로 점심영업을 시작하면서 저렴하게 나온 점심특선 메뉴였다.
실패할리가 없었다.
오늘은 점심을 먹으려고 온게 아니다. 더 중요한게 있다.
"어제 미녀와 야수영화 개봉했는데 아세요?"
"아 그래요? 디즈니 미녀와 야수 그거에요?"
"네 맞아요. 해리포터에 나왔던 여자애 있잖아요. 엠마 왓슨, 걔가 주인공인 뮤지컬형식 영화래요.
친구들이 보고왔는데 엄청 재밌다고 하더라구요. 언제 시간 괜찮으시면 저랑 같이 영화 보러 가실래요?"
말을 내뱉는 순간 아무렇지도 않던 심박수가 오르기 시작했다.
내 심장소리가 여자에게까지 들릴 것만 같았다.
여자가 잠시 고민을 하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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