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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17/05/13 01:18:12 |
Name |
깐딩 |
Subject |
[일반] 동물의 고백(14) |
"이모, 여기 순대 두 그릇요"
모임장과 식사를 하며 두런두런 잡담을 했다.
적당히 잡담을 나누다 본론으로 들어갔다.
"얼마 전에 신입 분 들어오셨을 때 모임 탈퇴하셨더라고요."
"아, 네. 사실 그분 나이도 너무 많고 사진도 너무 무섭게 생겨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탈퇴했어요."
무섭게... 생겼었나?
머리 스타일이 그냥 좀 독특했던 거 같은데 뭐 어쨌든.
"그래서 이제 OO씨가 점심 친구 없어도 되는 줄 알았어요."
"아니에요 점심 친구는 필요해요. 그래서 오늘도 XX 씨랑 점심 먹으려고 왔잖아요."
"아 그럼 이제 나이나 성별 같은 거 구체적으로 해서 다시 모임 만드실 거예요?"
그건 또 아니라고 한다.
그래 뭐 본인 먹고사는 건 본인이 알아서 잘 하시겠지.
또 시시콜콜한 잡담을 이어나갔다.
잡담이 너무 길어져서 점심시간이 약간 지나버렸다.
사거리까지 마중을 나갔다.
"오늘 점심 너무 맛있었어요. 닭 가슴살 질리실 때쯤 또 같이 먹어요."
"그래요. 드시고 싶은 거 생기시면 연락하세요."
아무 생각 없이 대답했다.
그리고 또 자연스럽게 연락이 끊겼다.
2017년 2월 12일.
그 이후로 3일이 지났다.
설에 있었던 결심대로 나는 운동에 내 모든 영혼을 불사르며 보내고 있었다.
하루하루 복근이 생기기는 하는 것일까 의문을 품으며 지내고 있었다.
일요일에 날씨도 너무 좋다.
오늘은 헬스장에서 근력운동만 하고 러닝은 밖에서 해야지.
그렇게 러닝을 하러 밖으로 나왔다.
1시간가량을 달려야 하기 때문에 몸을 충분히 풀고 있었다.
[카톡]
친구들, 동호회 사람들이 있는 단체 채팅방은 무음 처리돼있는데?
날 찾을 사람이 없는데 누구지?
원래 운동 중엔 휴대폰을 들여다보지 않는데 그날따라 기분이 좋아서 였는지
잠가뒀던 주머니를 열어 휴대폰을 켰다.
-오늘날이 너무 좋네요. 운동하시기 딱 좋으시겠어요!
모임장이다. 그 여자다.
너무 뜬금없이 연락이 왔다.
뭐지? 뭐지?
-날씨가 너무 좋아서 오늘은 밖에서 운동 중이에요.
-아~ 거기 산책로에 가셨어요?
-네, 주말이고 날씨도 좋아서 사람 엄청 많네요.
-저는 지금 강남에 놀러 왔어요.
-친구들이랑 놀러 오셨나 봐요?
-네! 밥도 먹고 영화도 보고 그러려고요.
뭔지 모르겠다.
그렇게 카톡을 주고받다 보니 러닝도 못하고 그냥 걷기만 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밤 10시가 훌쩍 넘어 있었다.
-저는 이제 내일도 출근해야 돼서 집으로 돌아가요!
여자가 마지막 카톡을 보냈다.
나도 조심해서 들어가시라고 했다.
이불 속에 누워서 생각에 잠겼다.
이게 도대체 뭐였을까?
이틀 후 점심시간에 여자에게서 연락이 왔다.
-식사 잘하고 계세요? 저는 회사 근처 돈가스집 왔어요~
그렇게 시작된 잡담이 또 퇴근할 때까지 계속 이어졌다.
-벌써 퇴근시간이네요. 저는 퇴근합니다! XX 씨는요?
-저도 퇴근하고 운동하러 갑니다.
-네 즐퇴하시고 운동 열심히 하세요!
카톡은 자기가 먼저 보내놓고 끊는 것도 자기가 먼저 한다.
참나.
다음날 점심시간이었다.
문득 이번엔 내가 먼저 연락해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어
내 도시락을 찍어 카톡을 보냈다.
-제 점심입니다. 고통스럽네요. 맛 점하세요!
-빵이 그냥 빵이 아니라 토종 천연 효모빵이라고 돼있네요. 크크 뭔가 웃기네요 크크.
-원래는 통밀빵을 먹어야 하는데 옆에 파리바게뜨에는 안 파네요.
-아 그렇군요ㅜㅜ 여기는 가보셨어요?
라면서 회사에서 좀 멀리 있는 통밀빵 전문점 위치를 찾아 보내줬다.
아니? 이럴 수가! 신난다!
여기 집 근처였잖아? 왜 몰랐지?
-와 집 근처에 이런 곳이 있었네요? 여기로 다니질 않아서 전혀 몰랐어요.
-집 근처에요? 대박.
-운동 끝나고 한번 가봐야겠어요.
-네~크크 운동 잘하시고요~ 빵집도 잘 다녀오세요 크크
그날 당장 빵집으로 달려갔다.
빵집에 들어서자마자 통밀 냄새가 오감을 자극한다.
이걸로 난 복근에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며칠 후 여자에게서 카톡이 왔다.
-아 빵집 가봤어요?
-네 덕분에 운동도 더 잘 돼가는 중입니다! 빵도 엄청 맛있던데요?
-오~ 저도 담에 먹어봐야겠어요. 빵순이라서 흐흐
-다음 주에 점심 한번같이 드실래요?
-네~ 좋아요~ 목금중에
-드시고 싶은 메뉴 있으세요?
-음, 스파게티가 먹고프긴 한데 주위에서 못 봤어요.
나도 여기 3년 동안 다녔는데 본 적이 없다.
그래도 여기 직장인이 얼마나 많이 다니는 곳인데 찾으려고 하면 한 군데가 없을까?
바로 구글신에게 여쭤보니 멀지 않은 곳에 파스타집이 있었다.
가격은 생각보다 세다.
파스타 한 접시에 일BBQ 가격이라니 부들부들하구만.
-여기 파스타집이 있네요. OO씨 회사 근처인 거 같은데.
-아 맞다! 거기 있긴 한데 좀 비싼 거 같더라고요... 그냥 느린 마을 가요.
내가 생각해도 점심으로 먹기엔 가격이 너무 부담스러웠다.
둘이서 파스타 한 접시씩에 샐러드라도 하나 시키면 4만 원이 깨진다.
먹고 싶은데 비싸서 못 먹겠고 다른 가게 가자고 하는 그 카톡이 너무 귀여워 보였다.
-괜찮아요. 가서 한번 먹죠 뭐.
-음~ 그냥 느린 마을로?
-파스타집가시죠.
-아 네~ 그럽시다ㅜ
-크크크 다음 주 목요일 어떠세요?
-넵 그날 봐요~
-네 즐퇴하세요!
어때 이건 가격이 부담되지? 이제야 내가 밥 한번 사줄 수 있겠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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