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 예전에 뜬금없이 부산에서 서울 올라오고 여자친구랑 군대 간다고 깨졌으니까 빨리 놀러 나오라고 했었는데 기억나?"
"그래 기억난다. 어떻게 잊냐 그때 진짜 재밌었는데."
"애들 불러서 에버랜드가서 신나게 놀았던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이렇게 시간이 갔네."
"그러게 벌써 7년전이다 야"
"이제 곧 8년되네. 군대이후 첫여자 아니야?"
"맞아."
"진짜 프사에서 매일 살빠지는거 볼때마다 이 형이 드디어 작정을 했구나, 싶었는데 진짜 대단하다."
"그러게 내 인생패턴이 이렇게 바뀌냐."
서로 쳐다보며 웃었다. 캔맥주로 건배를 한다.
"형 일본 여행간다고 소개팅녀한테 말하고 온거지?"
"어. 여행 끝나면 또 만나서 놀기로 했지."
"온 김에 선물 좀 챙겨가. 너무 비싼 거 말고 적당한 선에서 괜찮은 거로."
"그럴까 생각 중인데 뭐가 좋겠냐?"
"그건 형이 알아서 해야지."
그래 맞는 말이다. 이런 건 내가 알아서 챙겨가야지.
무슨 선물이 적당할까 고민하면서 기분 좋게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신년행사를 하는 신사 근처 키티샾에서 작은 인형을 사고 곤약 젤리를 몇 개 챙겼다.
키티샾에서 산 키티인형은 여자의 이름 영어 이니셜 자수가 박힌 귀여운 인형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가격도 적당하고 크기도 작고 귀여운 것이 선물용으로 정말 잘 샀다고 생각한다.
귀국날짜가 돌아왔다. 공항까지 마중 나온 친구와 마지막으로 같이 사진을 찍었다.
"형 다음에 내가 한국 갈 일 생기면 그때 소개팅녀를 형수라고 부를 수 있게 되는 거야?"
친구가 게슴츠레 웃으며 농담을 던진다.
"임마 형수는 무슨 아직 사귀지도 않는데 니가 벌써 김칫국이냐."
"에이 사람일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지. 형 덕에 나도 4박 5일 재밌었어. 연락할게."
"그래 잘 놀다 간다. 신세만 지고 가네. 서울 올 때 연락해!"
귀국 비행기 안에서 4박 5일간 찍었던 사진들을 정리하며 제일 마음에 드는 사진을 골랐다.
후쿠오카 타워에서 찍은 피스 포즈 사진이 정말 잘 나왔다.
프사로 등록해야지.
-잘 지내셨어요? 저 지금 막 귀국하는 길이에요!
-재밌게 놀다 오셨어요? 어디 구경 갔다 오셨어요?
그렇게 한참을 카톡으로 여행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선물 얘기는 꺼내지 않았다. 다음에 만났을 때 말없이 건네주고 싶어서.
그리고 다음 만나기로 한 약속을 자연스럽게 상기시켰다.
-네 그럼 이번 주 토요일에 XX CGV 앞에서 봐요!
-맞다, 저 그날 지방에서 친한 동생이 올라온다고 하는데 어떻게 하죠?
약속을 미루자는 거다. 그래 뭐 그럴 수 있지.
-아 그래요? 그럼 뭐 어쩔 수 없죠. 지방에서 서울 올라오는 거 쉽지 않은데 그럼 일요일에 볼까요?
-2박 3일로 오는 거라 이번 주는 안될 거 같고 다음 주 토요일에 보면 안 될까요? 얘가 저 보러 오는거라ㅠㅠ
아니 내가 선약일 텐데...라고 말하기엔 너무 속 좁은 남자로 보일까 봐 쿨하게 다음 주로 약속을 미뤄버렸다.
덕분에 영화 예매도 다시 했다.
다행이네 취소 수수료는 안 나가서.
다음 주 수요일쯤 또다시 약속을 미루자는 연락이 왔다.
-저 그날 대학 선후배들끼리 모여 교수님이랑 식사하는 자리가 생겨서요 약속 다음 주로 미루면 안 될까요?
...
그러자고 했다.
그리고 이틀 후 금요일 늦은시간에 장문의 카톡이 날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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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X 씨, 제가 많이 생각해 봤
는데 XX 씨 정말 재밌고 좋은
사람이이에요. 더 이상 시간을
끌면 안 될 거 같아서 이렇게
늦은 시간에 연락드렸어요. 죄
송해요. 저 다음 주 약속 못 나
갈 거 같아요. XX씨는 좋으신
분이니까 저보다 더 좋은 분
만나실 수 있을 거예요.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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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긴 내용이었고 단숨에 읽어내리는데 10초도 채 걸리지 않았다.
카톡을 받고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즉시 답장을 했다.
-그래요, 그동안 재밌었어요. 저보다 더 좋은분 만나세요!
헛웃음이 아니라 진짜 순수한 웃음이 나왔다.
지금 생각해도 왜 그런 웃음이 나왔는지 모르겠다.
아무 생각이 없었다. 아무 감정도 없었다.
이유를 묻지도 않았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냥 다음날이 되어도 평소와 다름없는 날이 이어졌다.
다만 소개팅 주선자가 있는 모임에 세 번 정도 불참한 거 정도.
그러다 내 얼굴 잊어먹겠다며 모임에 한번 나오라는 연락이와 술자리에 참석하게 되었다.
당연하게도 소개팅 주선자를 만나게 되었다.
나는 그 형을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평소와 다름없이 농담을 주고받으며 잡담을 했다.
술자리가 늦게까지 이어지자 그 형이 말을 꺼냈다.
"미안하다."
"네? 뭐가요?"
소개팅에 대한 거겠지.
"나도 얼마 전에 알았는데 걔가 소개팅 양다리였나 봐."
......
"그래서 다른 남자한테 올인하려고 너랑 연락 끊은 건데 다른 남자가 걔를 찼다고 하더라고"
"아 그래요?"
"그래서 걔가 요즘 나 만나면 너 얘길 계속하더라."
와 내 인생 정말 별것도 아니지만 누군가와 저울질 당할 만큼 많이 발전했구나 싶었다.
아마도 '걔가 너랑 다시 만나고 싶어 하는데 너는 어떻냐' 라는 걸 묻는 거겠지.
그래서 웃으면서 대답했다.
"형, 제가 돈이 없고 여자가 없지, 자존심이 없진 않아요."
형이 말없이 소주잔을 내민다.
쓰지만 달다.
그렇게 첫 소개팅이 끝났다.
다른 여자를 찾아봐야 하나?
그런데 벌써 여자친구 한번 만들어 보겠다고 살 빼기 시작한 게 1년이 다 돼가네...
하... 나도 지친다.
이제 그만하자.
그게 정확하게 2017년 1월 19일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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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크크 8편에서한 예상적중! 인간(소개팅녀)은 너무 뻔해요. 설명 듣고 각나오죠 크크크. ㅠㅠ
금사빠 하면 안돼죠. 인간(여자)는 말과 웃음으로 호감도를 평가하는게 아니라 나를 대하는 행동으로 평가하는거죠.
여자를 쫒지 말고 자기 인생을 살다보면 여자가 따라올 날이 오겠죠 뭐.
개인적 희망은 모임에서 한 여자분이 이 계기를 통해서 호감을 보이고 접근 했으면 좋겠네요.
그럴듯한 미녀는 아니겠지만 글쓴분과 어울리는 분으로. 인연은 가까이 있는 법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