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17/05/07 06:22:13
Name 깐딩
Subject [일반] 동물의 고백(10)
후쿠오카로 갔다.

거기 사는 친구가 날 마중 나왔다.

나는 친구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나보다 어린 친구라 그 친구는 나를 깍듯이 형이라 부른다.

친구와 여기저기를 놀러 다니며 맛있는 것을 먹고 많은 것들을 구경하고

그동안 있었던 얘기들을 하며 즐겁게 지냈다.

"형, 애들한테 얘기 들었어. 요즘 소개팅에서 만난 사람이랑 잘 돼 간다며?"

"어... 그런 거 같긴 해."

"그런 거 같은 건 뭐야 잘되면 되는 거지."

쑥스러워서 이마를 긁으며 웃었다.

"형 예전에 뜬금없이 부산에서 서울 올라오고 여자친구랑 군대 간다고 깨졌으니까 빨리 놀러 나오라고 했었는데 기억나?"

"그래 기억난다. 어떻게 잊냐 그때 진짜 재밌었는데."

"애들 불러서 에버랜드가서 신나게 놀았던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이렇게 시간이 갔네."

"그러게 벌써 7년전이다 야"

"이제 곧 8년되네. 군대이후 첫여자 아니야?"

"맞아."

"진짜 프사에서 매일 살빠지는거 볼때마다 이 형이 드디어 작정을 했구나, 싶었는데 진짜 대단하다."

"그러게 내 인생패턴이 이렇게 바뀌냐."

서로 쳐다보며 웃었다. 캔맥주로 건배를 한다.

"형 일본 여행간다고 소개팅녀한테 말하고 온거지?"

"어. 여행 끝나면 또 만나서 놀기로 했지."

"온 김에 선물 좀 챙겨가. 너무 비싼 거 말고 적당한 선에서 괜찮은 거로."

"그럴까 생각 중인데 뭐가 좋겠냐?"

"그건 형이 알아서 해야지."

그래 맞는 말이다. 이런 건 내가 알아서 챙겨가야지.

무슨 선물이 적당할까 고민하면서 기분 좋게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신년행사를 하는 신사 근처 키티샾에서 작은 인형을 사고 곤약 젤리를 몇 개 챙겼다.

키티샾에서 산 키티인형은 여자의 이름 영어 이니셜 자수가 박힌 귀여운 인형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가격도 적당하고 크기도 작고 귀여운 것이 선물용으로 정말 잘 샀다고 생각한다.

귀국날짜가 돌아왔다. 공항까지 마중 나온 친구와 마지막으로 같이 사진을 찍었다.

"형 다음에 내가 한국 갈 일 생기면 그때 소개팅녀를 형수라고 부를 수 있게 되는 거야?"

친구가 게슴츠레 웃으며 농담을 던진다.

"임마 형수는 무슨 아직 사귀지도 않는데 니가 벌써 김칫국이냐."

"에이 사람일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지. 형 덕에 나도 4박 5일 재밌었어. 연락할게."

"그래 잘 놀다 간다. 신세만 지고 가네. 서울 올 때 연락해!"

귀국 비행기 안에서 4박 5일간 찍었던 사진들을 정리하며 제일 마음에 드는 사진을 골랐다.

후쿠오카 타워에서 찍은 피스 포즈 사진이 정말 잘 나왔다.

프사로 등록해야지.




-잘 지내셨어요? 저 지금 막 귀국하는 길이에요!

-재밌게 놀다 오셨어요? 어디 구경 갔다 오셨어요?

그렇게 한참을 카톡으로 여행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선물 얘기는 꺼내지 않았다. 다음에 만났을 때 말없이 건네주고 싶어서.

그리고 다음 만나기로 한 약속을 자연스럽게 상기시켰다.

-네 그럼 이번 주 토요일에 XX CGV 앞에서 봐요!

-맞다, 저 그날 지방에서 친한 동생이 올라온다고 하는데 어떻게 하죠?

약속을 미루자는 거다. 그래 뭐 그럴 수 있지.

-아 그래요? 그럼 뭐 어쩔 수 없죠. 지방에서 서울 올라오는 거 쉽지 않은데 그럼 일요일에 볼까요?

-2박 3일로 오는 거라 이번 주는 안될 거 같고 다음 주 토요일에 보면 안 될까요? 얘가 저 보러 오는거라ㅠㅠ

아니 내가 선약일 텐데...라고 말하기엔 너무 속 좁은 남자로 보일까 봐 쿨하게 다음 주로 약속을 미뤄버렸다.

덕분에 영화 예매도 다시 했다.

다행이네 취소 수수료는 안 나가서.




다음 주 수요일쯤 또다시 약속을 미루자는 연락이 왔다.

-저 그날 대학 선후배들끼리 모여 교수님이랑 식사하는 자리가 생겨서요 약속 다음 주로 미루면 안 될까요?

...

그러자고 했다.

그리고 이틀 후 금요일 늦은시간에 장문의 카톡이 날라왔다.

=================
XX 씨, 제가 많이 생각해 봤
는데 XX 씨 정말 재밌고 좋은
사람이이에요. 더 이상 시간을
끌면 안 될 거 같아서 이렇게
늦은 시간에 연락드렸어요. 죄
송해요. 저 다음 주 약속 못 나
갈 거 같아요. XX씨는 좋으신
분이니까 저보다 더 좋은 분
만나실 수 있을 거예요.ㅠㅠㅠ
=================

꽤 긴 내용이었고 단숨에 읽어내리는데 10초도 채 걸리지 않았다.

카톡을 받고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즉시 답장을 했다.

-그래요, 그동안 재밌었어요. 저보다 더 좋은분 만나세요!

헛웃음이 아니라 진짜 순수한 웃음이 나왔다.

지금 생각해도 왜 그런 웃음이 나왔는지 모르겠다.

아무 생각이 없었다. 아무 감정도 없었다.

이유를 묻지도 않았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냥 다음날이 되어도 평소와 다름없는 날이 이어졌다.

다만 소개팅 주선자가 있는 모임에 세 번 정도 불참한 거 정도.

그러다 내 얼굴 잊어먹겠다며 모임에 한번 나오라는 연락이와 술자리에 참석하게 되었다.

당연하게도 소개팅 주선자를 만나게 되었다.

나는 그 형을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평소와 다름없이 농담을 주고받으며 잡담을 했다.

술자리가 늦게까지 이어지자 그 형이 말을 꺼냈다.

"미안하다."

"네? 뭐가요?"

소개팅에 대한 거겠지.

"나도 얼마 전에 알았는데 걔가 소개팅 양다리였나 봐."

......

"그래서 다른 남자한테 올인하려고 너랑 연락 끊은 건데 다른 남자가 걔를 찼다고 하더라고"

"아 그래요?"

"그래서 걔가 요즘 나 만나면 너 얘길 계속하더라."

와 내 인생 정말 별것도 아니지만 누군가와 저울질 당할 만큼 많이 발전했구나 싶었다.

아마도 '걔가 너랑 다시 만나고 싶어 하는데 너는 어떻냐' 라는 걸 묻는 거겠지.

그래서 웃으면서 대답했다.



"형, 제가 돈이 없고 여자가 없지, 자존심이 없진 않아요."



형이 말없이 소주잔을 내민다.

쓰지만 달다.

그렇게 첫 소개팅이 끝났다.




다른 여자를 찾아봐야 하나?

그런데 벌써 여자친구 한번 만들어 보겠다고 살 빼기 시작한 게 1년이 다 돼가네...

하... 나도 지친다.

이제 그만하자.

그게 정확하게 2017년 1월 19일의 일이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17/05/07 07:01
수정 아이콘
ㅠㅠ
나른한오후
17/05/07 08:12
수정 아이콘
ㅠㅠ (2)
MiguelCabrera
17/05/07 08:14
수정 아이콘
ㅠㅠ (3)
네가있던풍경
17/05/07 08:21
수정 아이콘
ㅠㅠ (4)
전광렬
17/05/07 08:29
수정 아이콘
크크크 8편에서한 예상적중! 인간(소개팅녀)은 너무 뻔해요. 설명 듣고 각나오죠 크크크. ㅠㅠ
금사빠 하면 안돼죠. 인간(여자)는 말과 웃음으로 호감도를 평가하는게 아니라 나를 대하는 행동으로 평가하는거죠.
여자를 쫒지 말고 자기 인생을 살다보면 여자가 따라올 날이 오겠죠 뭐.
개인적 희망은 모임에서 한 여자분이 이 계기를 통해서 호감을 보이고 접근 했으면 좋겠네요.
그럴듯한 미녀는 아니겠지만 글쓴분과 어울리는 분으로. 인연은 가까이 있는 법이죠.
17/05/07 13:00
수정 아이콘
덧글보고 깜짝놀랐었습니다
심리학박사시거나 제 뇌속 스포일러세포가 아닌가 했었습니다
아마 전광렬님은 저랑 다르게 여자분들 여럿 울리셨을꺼 같습니다
전광렬
17/05/07 13:24
수정 아이콘
다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데이타가 쌓일 정도로 까인 경험이....
이시하라사토미
17/05/07 08:44
수정 아이콘
ㅠㅠ(5)
태엽감는새
17/05/07 08:49
수정 아이콘
저울질에도 기뻐하시다니 ..
이제 무게추만 늘리시죠.
그리고...ㅠㅠ(6)
백순겸
17/05/07 09:24
수정 아이콘
괘씸하네요 ㅠ

매번 재미있게 보고 있어요!
17/05/07 12:58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제 인생 발버둥을 함께해주시다니 영광입니다
자유형다람쥐
17/05/07 10:26
수정 아이콘
아... 죽창 괜히 깎았네...
하카세
17/05/07 10:59
수정 아이콘
ㅠㅠ... 다음에는 좋은 소식 기다리겠습니다
17/05/07 11:27
수정 아이콘
ㅠㅠ 깎아놓은 죽창이 아까운데, 결말 바꿔주심 안되나요?
17/05/07 12:47
수정 아이콘
아직 끝이 아니라서요
SoulCrush
17/05/07 17:08
수정 아이콘
아이구 참 못됐다
좋은 사람 만나실겁니다
17/05/07 23:04
수정 아이콘
ㅠㅠ
-안군-
17/05/08 00:28
수정 아이콘
(조용히 죽창을 내려놓으며...) ㅠㅠ
저런 문자를 자주(?) 받아봐서 익숙하네요... 아아...
야야 D.뚜레
17/05/08 09:49
수정 아이콘
유유 ㅠㅠ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71945 [일반] 한국당 김진태 의원 선거법 1심 판결 벌금 200만원…의원직 상실 위기 [84] VKRKO13531 17/05/19 13531 30
71944 [일반] 공교육의 목적은 무엇인가? [66] moqq9597 17/05/19 9597 1
71943 [일반] 그냥 보통 인생이야기 [20] 카오루7958 17/05/19 7958 36
71942 [일반] 文 정부, 중학교 '중간·기말고사' 내년부터 단계적 폐지 [199] 채연13081 17/05/19 13081 0
71941 [일반] 불판 화력으로 돌아보는 19,20대 총선 [32] 열역학제2법칙8653 17/05/19 8653 8
71940 [일반] 젊은 문과생의 퇴사 [29] 방주9722 17/05/19 9722 21
71939 [일반] 동물의 고백(22) 完 + 후기 [90] 깐딩6101 17/05/19 6101 27
71938 [일반] 세월호서 수습 치아 감정 결과 단원고 허다윤양 확인 [38] 로즈마리8911 17/05/19 8911 28
71937 [일반] 「제로의 사역마」가 완결되었었군요. [16] 카페알파8002 17/05/19 8002 1
71936 [일반] 요새 수시가 얼마나 난장판인지 아세요...? [324] 헨헨18495 17/05/19 18495 54
71934 [일반] 교육정책의 얼개가 얼추 드러난 듯 싶습니다. [96] 파스칼12823 17/05/19 12823 5
71933 [일반] 문재인 정부 출범 후 마냥 즐겁지만은 않은 분들 [105] 익금불산입16301 17/05/19 16301 14
71932 [일반] (수정 꼭 다시 읽어주세요) 스타를 좋아한다는 여자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95] 그아탱10021 17/05/19 10021 0
71931 [일반] 문재인 정부 열흘...생계가 어려워진 계층 [63] 삭제됨15323 17/05/19 15323 14
71930 [일반] 핑순이들이 쏘아올린 작은 공. [38] 진산월(陳山月)10122 17/05/19 10122 11
71928 [일반] 서울중앙지검장 윤석열 임명 [212] 트와이스 나연26603 17/05/19 26603 52
71927 [일반] 어제 희한한 꿈을 꿨습니다. [37] 파츠7151 17/05/19 7151 2
71926 [일반] 한경오 대 노무현/문재인? [238] 텅트18825 17/05/19 18825 7
71924 [일반] 임을 위한 행진곡? 님을 위한 행진곡!!! [49] 소주꼬뿌7576 17/05/19 7576 4
71922 [일반] 518 전라도 그리고 경상도 [110] Neo11224 17/05/19 11224 9
71921 [일반] 동물의 고백(21) [26] 깐딩4997 17/05/19 4997 8
71920 [일반] 박근혜와 5.18 기념식 [13] 어리버리10855 17/05/18 10855 1
71918 [일반] 주원장 "뭐? 사직 하고 싶다고" [6] 신불해12070 17/05/18 12070 9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