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고단한 후퇴
이탈리아군의 2군이 카포레토에서 일격에 박살나고, 작전 당일 이탈리아군은 북부에서 알프스에서 오스트리아군과
싸우고 있던 1,4군 그리고 이손초 강 하류에 위치하며 2군의 남쪽에 있었던 3군 모두 독일군에게 배후를 노출했습니다.
특히 가장 심각한 위험한 건 가장 가까운 3군이었는데 독일 군이 약간 남부로 공세를 틀기만 하면 3군 전체가 오스트리아와
독일 군 사이에 갖혀 포위 섬멸 될 위기에 있었습니다.
-이탈리아 3군 사령관 아오스타 공작 필리포, 국왕 비톨리오 임마누엘 3세의 조카였습니다.-
3군 사령관 아오스타 공작은 독일군의 공세를 비교적 잘 막고 있었지만 첫날 공세로 측면이 노출되자
전면 철수라는 명령을 내놓게 됩니다.
문제는 퇴각로가 질서를 잃고 퇴각하는 2군과 같이 써야 한다는 점이 문제였습니다.
- 우디네 주변 도로에서 포로 잡힌 이탈리아군-
여기에 독일군이 진격해 올게 겁난 이탈리아 공병은 후퇴 행렬이 오기 전에 교량들을 모두 폭파 시켜 버려서
퇴각 못한 병력들은 고스라니 독일군의 포로가 되기까지 했습니다.
그나마 3군은 2군과 같이 완전히 붕괴되지 않았지만 2군의 경우 상태가 더욱 심각해 졌습니다.
2군 사령관 카펠로는 병석에서 일어나 와병중에도 돌아왔으나 그가 할일은 없었습니다.
병사들은 군복과 무기를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한 필사의 노력까지 보이고 있었고
이런 행태는 훗날 헤밍웨이의 명작
[무기여 잘있거라]를 통해 전세계인에게 잘알려 졌습니다.
이작품은 반전 문학의 상징이 되었지만 급부로 이탈리아군은 두고 두고 당나라 군대로 까이는 단초를 재공하죠.
2) 방어선을 만들어라.
3군 마저 겨우 명맥만 붙어 있는 상황에서 1군이나 4군마저 붕괴되면 베네치아나 심지어 밀라노 같은 북부 대도시로
가는데 막을 이탈리아 병력은 거의 없었습니다.
이 때문에 이탈리아군 총참모장 카르도나 대장은 어떻게든 이손초 다음강인 탈리아멘토 강에 방어진을 구축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이탈리아 군 총 참모장 카르도나 대장, 전형적인 1차대전 사령관 답게 병사들에게 가혹한 장군이었지만 무능한 편은 아니었습니다.
단지 상대가 그가 생각하던 거 이상일 뿐이었죠.-
영국군 참모총장 로버트슨과 프랑스군 참모총장 포슈를 카르도나는 불러 조언을 청합니다.
이때 포슈는 참 자기 스러운 말을 하죠.
[겨우 1개 군만 잃은 거잖슈.]
-1914년 프랑스 전선에서 프랑스 군을 피바다로 만든 공격 제일 주의자 포슈.... 문제는 그는 그 다음해 화려하고 부활합니다. 연합군
총사령관으로...-
이 조언은 사실상 도움이 되지 않았지만 그 둘은 각각 영국군 5개 사단 프랑스군 6개 사단을 이탈리아에 보내주게 됩니다.
아무튼 탈리아멘토 강 방어선은 결론적으로 실패 했습니다. 이미 이탈리아 군은 공포에 사로 잡혀 독일군이 공세를 취하려는
기미만 보여도 참호를 버리고 도망가거나
[무기여 잘있거라]를 외치며 자진 전역 중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탈리아멘토 방어선마저 붕괴(있지도 않았지만)하자 결국 참모총장 카르도나는 해임당합니다.
하지만 이와 별개로 독일군의 보급로도 이미 한계에 달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북부 오스트리아 제2 이손초 군
코사크 집단의 진격이 너무 늦어 북부의 이탈리아군은 고스라니 후방으로 퇴각하고 있었습니다.
두개 야전군은 포위 섬멸했지만 나머지 두개 야전군은 유유히 전선에서 빠져나가 포위 섬멸할 기회를 점차
놓치고 있었습니다.
이젠 여력이 다하가는 독일군은 약체 이탈리아군이 지키고 있는 피아베 강 방어선 만을 남기고 있었습니다.
여기만 무너뜨리면 베네치아가 코앞이고 더 나아가면 밀라노까지 노려 볼 수 있었습니다.
이러면 이탈리아도 러시아처럼 연합군에서 탈락할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