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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3/02/25 01:05:43
Name 해피아이
Subject [일반] 운수 좋은 날
편의상 반말로 적겠습니다. 죄송합니다 ㅜㅜ




여친이 생각할 시간을 달라며 사실상 이별을 통보한지 6일째
33살 나에게 첫키스를 안겨준 그녀와의 이별은 너무 마음이 아팠다.
친구들은 이미 끝난 거라며 술이나 마시자고 했고
미친듯이 술을 마시며 그녀가 돌아올지 모른다는 일말의 희망을 가진체 그녀의 페북접속시간을 보며 찌질하게 하루하루를 보냈다-_-;;;;




정신차리고 보니 일요일 낮1시 핸드폰이 울렸다.
혹시나 하는 희망에 핸드폰을 보니 평소 친하게 지내던 A였다.
"오빠 헤어졌다메? 밥사줄테니까 나와!"
"그걸 어떻게 알았어? 난 프라이버시도 없는 놈이냐ㅠㅠ 아직 헤어진 건 아니고 그게 말이지.. 정확히는"
"알았으니 닥치고 나와"
희망을 갖고 있던 나에게 A의 말은 야속하게만 들렸으나 공짜밥은 좋아하기에 옷을 주섬주섬입고 나갔다 -_-;;;
"헤어졌다메? 많이 속상하지?"
"그게 말이야 여자친구가 생각할 시간을 달래ㅠㅠ 정확하게 말하면 아직 헤어진게 아니야!"
"그게 헤어진 거지모 오빠 근데 우리 사귈래?"
"장난치지 말고ㅠㅠ 오빠 진짜 그런 장난 받아줄 기분아니다. 진짜 오빠 힘들다ㅠㅠ"
"장난아니고 진심이야 오빠 많이 좋아해"
"..............??????"
그녀는 엉엉 울면서 말했고 나 역시 요즘 엉엉울고 싶은 마음이었으나 잘 달래주고 택시태워 집에 보냈다.




집에 돌아오니 오후 3시 카톡왔숑~
두근거리는 마음에 핸드폰을 확인하니 친구가 사진을 보냈다
남자는 죽을 때가 되어도 미인이 지나가면 눈이 돌아간다더만
그렇게 힘든 와중에서도 이쁘다는게 느껴졌다 -_-;;;;;;
"예쁘지않냐? 크크크"
"그렇네 흐흐"
"소개팅할래?"
"내가 말이지 아직 여친이랑 헤어진게 아니거든 정확히는 여자친구가 생각할 시간을 달라는 거라고 말하자면 보류중이야 보류중"
"넌 이미 차였어"
"심각한 차이가 있다! 여튼 진짜 고마운데 지금은 무리야"
계속 차였다고 놀리는 친구의 비웃음을 뒤로하며 조용히 카톡차단을 눌렀다 -_-;;;




오후 4시 친한 동생 결혼식이 6시에 있기에 오랜만에 꽃단장을 했다.
매일 면도한다는 것이 얼마나 인간적인 삶인가!
헤어젤이란 것은 얼마나 위대한 문명의 이기인가!
7일만에 하는 면도와 헤어젤에 진한 감동을 느끼며 정장을 입고 결혼식장에 갔다.




도착하니 오후 5시반
"오빠 오랜만이야 와줘서 고마워"
"그렇게 입으니.. 흠.. 네가 이뻐보이는 것은 6년만에 처음이야"
"헤어졌다더니 입은 살아있구나?"
"마음은 찢어질듯 아파도 입이 찢어진건 아니거든? 그리고 난 헤어진게 아니라 정확히는 생각할 시간을 갖는중이야!
그런데 6시 결혼식인데 별로 사람이 없네?"
"7시 결혼식이거든!"
그렇다. 결혼식 시간을 착각한 나머지 너무 일찍 와버렸다 -_-;;;
그러나 결혼식장에서 만난 신부는 눈이 돌아가게 아름다웠다.
여친과 3주전만 하더라도 결혼얘기하며 막 웃고 떠들었는데..
친한 동생의 결혼식은 질투가 날 정도로 행복해보였다.




어느덧 5시반
"학생~ 신부측 짐을 옮겨야 하는데 좀 도와주지 않을래"
"예 그러죠. 어디로 옮길까요?"
"일단 신부대기실로 옮기고 6시 30분에 폐백실 앞으로 옮기면 돼"
"예 알겠습니다"
결혼을 해보면 알겠지만 대부분의 신랑신부들은 결혼식 절차에 대해서 잘 모른다.
이것을 돕고자 결혼플래너 주선으로 신부측 도우미로 중년의 아주머니가 이것저것 가르쳐주고 절차를 밟는 것을 도와주는데
재수없이 일찍 가는 바람에 붙잡힌 것이다.
물론 딱히 할 것도 없고 심심할 때 연락을 주고 받을 여친도 없기에 열심히 도와주었다. -_-;;;;
"학생 참 착하네. 나이가 몇이누?"
"33살입니다"
"참 착실하네."
"원래 그런 것은 아니고 할 것도 없어서요"
"이름은 머야?"
"해피아이입니다"
"직업은 먼데?"
"XXX입니다"
"그래 아줌마가 마음에 들어서 그러는데 소개팅안할래?"
"말씀은 감사한데요. 저 아직 여자친구있어요. 정확히는 생각할 시간을 갖는건데요. 여하튼 여자친구가 아직까지는 있어요!"
"그래 그럼 할 수 없지"




아주머니를 도와드리니 어느덧 6시..
할 것도 없고 심심하고 혹시 여자친구 연락은 없나 핸드폰만 만지작 거리며 담배 한 대를 피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해피아이오빠죠?"
"예 안녕하세요 저번에 뵈었던 B죠?"
"예 혼자서 모하고 계세요?"
"딱히 할 것도 없고 심심해서요"
"그럼 저랑 놀아요 따라오세요"
B는 신부의 오랜 친구로서 신랑신부가 결혼발표를 하며 친구들을 초대했을 때 한번 본 적이 있었다.
B를 따라 신부대기실에 들어가니 신부의 친구들로 붐볐다.
나는 여자들사이에 떨어진 소심남답게 구석에 찌그러졌다. -_-;;;
별안간 B가 신부친구들에게 나를 소개하기 시작했다.
"이 분이 해피아이오빠야~ 저번에 말했던 그 사람알지? 그 사람이 이 오빠야~"
"안녕하세요~ 말씀 많이 들었어요"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도대체 무슨 말을 들었다는 건지 왜 B가 신부친구들한테 나를 소개하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얼떨결에 인사했다.
"B가 칭찬을 하도 많이 해서요. 굉장히 좋은 사람이라고 하던데요?"
"흠... 그 말은...... 흠....사실입니다!!!"
자기자랑을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말하면 왠지 웃길꺼 같아서 그렇게 말했다.
그들은 꺄르르 웃었고 아직 개그센스가 죽은게 아니라는데 자부심을 가지며 다시 구석으로 돌아갔다. -_-;;;
"오빠 오늘 결혼식 끝나고 모하세요?"
"잘 모르겠는데요?"
"끝나고 술한잔 할래요?"
"예 결혼식 끝나고 다같이 뒤풀이하면 좋죠!"
왠지 모를 적극적인 그녀의 모습에 부담감을 느끼며 화장실을 핑계로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어느덧 저녁 7시 드디어 결혼식이 시작되었다.
나는 예의바른 한국인답게 축의금을 내고 C와 밥을 먹으러 갔다. -_-;;
"오빠 지금 밥먹어도 될까?"
"결혼식장에 오면 축의금내고 밥먹고 축하사진찍는게 기본매너야 사람도 많이 왔구만
오빤 주례선생님 말씀 들을면 졸리더라 조는 것보다 낫잖어"
양심에 살짝 찔리기도 했으나 자기합리화에 왠지 모를 뿌듯함을 느끼며 밥을 먹었다. -_-;;;
1분 1초를 아끼며 바쁘게 사는 한국인답게 틈틈이 핸드폰으로 그녀의 페북 최근 접속시간을 찌질하게 확인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_-;;
"오빠 여친이랑 헤어졌다며? 괜찮아?"
"아직 헤어진 것은 아니고 생각할 시간을 갖는 중이야. 정말이라고!"
"암튼 저번에 말한 부산에 있는 XX랑 소개팅하지 않을래?"
"다시 한번 말하지만 아직 헤어진 거 아니야. 진짜야. 일단 헤어지고 나서 생각해보자"
"그게 헤어진거라니까"
C의 이죽거림을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리며 부처와 같은 마음으로 밥을 먹었다.-_-;;;




밥을 먹으니 7시반 슬슬 올라가야 할 듯해서 결혼식장에 갔다.
결혼식장에 가니 지난 신랑신부친구모임에서 처음 알게 된 신랑친구형을 만났다.
"형님 안녕하세요?"
"그래 안녕~ 해피아이야 잘 지냈니? 여친이랑은 잘 사귀고 있고?"
"지금 생각할 시간을 갖는 중이에요 보통 2보전진을 위한 1보후퇴라고 하죠."
"그게 헤어진거야 난 너와 C가 사귀는 줄 알았다"
"형님 저도 이제 결혼할 때가 된 것같아요. 그런 무서운 말은 삼가주세요ㅠㅠ"
'찰칵'
별안간 형이 사진을 찍었다.
"형님 갑자기 사진은 왜 찍으세요?"
"소개팅 시켜줄게. 너보다 두살어린데 직장은 XX고 얼굴은 귀엽게 생겼어. 일단 네 사진 보냈으니 기다려봐"
"형님 그건 초상권침해구요. 정말 말씀은 진짜 진짜 감사한데 아직 헤어진게 아니에요"
"그래 알았어 너 헤어진거 아니다 됐지?"
형님의 수긍을 수긍으로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개탄할 만한 인간불신에 빠진 스스로를 위로하며 결혼식장에 들어갔다.




결혼식장에서 본 신부의 모습은 지나치게 아름다웠다.
아름다운 신부의 모습에 정비례하여 신랑의 입가엔 웃음이 떠날 줄 몰랐다.
그들의 순탄치 못했던 결혼준비과정을 알기에 더더욱 그들의 행복을 빌어주었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이 너무 아팠다.
아직도 그녀가 곁에 있는 것 같은데..
내곁에서 재잘거리던 그녀의 모습이 눈에 선한데...




기념사진을 찍고 도망치듯 결혼식장에서 나와 차를 탔다.
별안간 핸드폰에서 카톡왔숑~
택배왔다는 소릴 들은 소년의 마음으로 미친듯이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오빠아ㅠㅠㅠㅠ 왜 갔어요ㅠㅠㅠㅠ"
B의 카톡이었다.
딱히 할 말이 없던 맥이 풀린 나는 어설픈 변명을 했고 다음에 꼭 보자는 B의 카톡을 뒤로 핸드폰을 집어넣었다.




집근처에 도착하니 어느 덧 9시..
답답한 마음에 근처 공원을 여기저기 쏘다녔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스테이크를 사줘도 안해주던 소개팅이 3개 들어왔고
드라마에서나 보며 과연 현실에 있는 건가 내내 의심스러웠던 고백이란 것을 접했으며
우사인볼트와 같은 속도로 나가오는 여자의 호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정신차리니 어느 덧 밤 12시
마음이 돌아서면 이번주말까지 연락을 주겠다는 그녀의 시간이 마침내 지났다.




그렇게 우린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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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2/25 01:31
수정 아이콘
그동안 답답하셔서 올리신 글들을 질게에서 봤었는데 예상한대로 헤어지셨네요.
이별이란게 아무리 예상하고 해도 마음이 좋을 순 없겠죠..
그때 보니 직업도 괜찮으시고, 이렇게 소개팅이나 주변 여성분들이 관심가진다는건 외모도 괜찮으시다는건데
본문의 글 처럼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
즉, 지금보다 더 좋은 여성분을 만나기 위해 헤어지셨다고 생각하세요~
힘내세요!
doberman
13/02/25 01:37
수정 아이콘
헤어짐을 위트있게 쓰셨지만.. 현진건의 소설처럼 맨 마지막 문장에서 아픔이 느껴지네요.
내일도 운수 좋은 날이 되길 빌며..
13/02/25 01:39
수정 아이콘
감정적인 측면에서는 대단히 저기압이실것같은데
그럼에도 상황이 매우 좋게 흘러가네요.
이왕 이렇게 된 것 새출발하셔야죠
13/02/25 02:49
수정 아이콘
찌질과 쿨함의 정반합이네요.
해피데이가 올 거에요.
김재경
13/02/25 05:59
수정 아이콘
기왕 이렇게 된거 골라잡아보세요 ^^

힘내시공
좋은 인연있을실겁니다!
해피아이
13/02/25 10:08
수정 아이콘
사실 이 친구를 사귀기전 망설일 때 사귀고 나서 위기일 때 여러번 피지알에 질문글을 올려서 마지막까지 적는게 예의일 것 같아서 적어봤습니다.
답변달아주신분 추천해주신분 읽어주신분 모두 감사드립니다 ^^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라는 말처럼 차분히 할꺼하면서 새로운 사람을 찾아야죠ㅠㅠ
멋진벼리~
13/02/25 10:27
수정 아이콘
ASKY
...... 죄송합니다.
저글링아빠
13/02/25 14:18
수정 아이콘
이거슨 자랑글.txt

힘 내세요~ 이 정도 자세시면 잘 되실 겁니다..
켈로그김
13/02/25 14:48
수정 아이콘
남자의 인생에는 몇 번의 기회가 있다고 하던데..
그게 하루에 몰아서 올 수도 있다더군요...;;;
유니꽃
13/02/26 03:15
수정 아이콘
이제 곧 봄이오니 살랑이는 봄바람처럼 기분좋게 다가오는 어여쁜 처자분 만나실 수 있을거라 믿습니다.
기운내시고 그때를 대비해서 너무 살찌우지마시고, 개그포인트 차곡차곡 쌓아서 스팩업하세요! 크크..
화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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