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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3/02/24 17:53:06
Name oculus
Subject [일반] 우리 부대에 대통령 각하께서 오신다.
안녕하세요~

나우누리 서비스 종료한다는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정리했던 글들 보다가

문득 아쉬운 느낌이 들어서 한번 끄적여 봅니다.


자유게시판 성격에 안맞으려나요?

조심스레 올려봅니다 ^^;




----------------------------------------------------------
편의상 반말로 하겠습니다.. (꾸벅)



우리 아버지는..

박정희 시절에 군대를 다니셨다.

무슨 부대인지는... 까먹었으나.

아무튼 전방이었던 모양이다.





때는 70년대..

지엄하던 군사 독재의 시절 아닌가?




기간만도 3년...

요즘 후배 애들 이야기 들어보면..

고참이 욕만 해도 영창 간다고들 하지만..

그 때는 선임이 기합 넣다가 애 하나 병신 만들어도 아무 소리 할 수 없었던 시절이었다

(라고 하신다. 나도 잘 모른다)




아무튼 지금과는 비교할 수도 없이 빡셌다.

그야 말로 까라면 까는 시절...




어느날...

아버지의 부대에..

대통령이 시찰을 나오기로 되어 있다고 한다.




그 분이 누구신가..

헌법에도 명시된 국군 최고 통수권자.

게다가 그냥 대통령도 아닌...

박정희 대통령 각하 아니신가..




학교에 장학사만 와도 평소 쓰레기통 같던 교실을

광나게 닦고 난리 치는 것이 한국적 정서이다.




하물며 대통령 각하께서 시찰을 오신다는데...

부대 전체가 발칵 뒤집혔음은 물론이다.

보이는 곳은 물론, 보이지 않는 관물대 구석구석 까지 번쩍번쩍..

단군 이래 남자들만 모인 장소가 이렇게 까지 깔끔해진 적은 없었다고 한다.




아버지가 계셨던 부대 앞에는..

가로수가 늘어서있는 진입로가 있었다.




아마 계절은 늦가을이나 초겨울이었던 모양이다.

관물대 구석까지 티하나 없이 닦는 마당에..

대통령 각하께서 들어오시는 길에...

어지러히 낙엽이 널려 있는 것이 용납 될 리가 없다.



아버지가 속해 있던 소대는...

그 진입로를 낙엽 하나 없는 정결한 상태로 만들라는 명령을 받았다.




물론 시키는대로 했다.

그런데 상급부대였는지 어땠는지...

진입로가 꽤 넓고도 길어서 생각보다 큰 일이었다고 한다.



게다가 낙엽이란게..

쓸어 놓은 길이라고 해서 안 떨어지는게 아니다.

대통령 각하께서 그 길을 지나 실 때 까지...

계속 그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교대까지 해가며... 빗자루를 들고 낙엽이 하나 떨어질 때마다 쓸어 담았다고 한다.




이런 난리를 치고 있을 것을 예상하셨는지..

자애로우신 영부인 육여사께서..(이 분이 자애로운 성격이었다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대통령 내외가 간다고 해서 사병들 고생 시켜가면서 청소 시키고 그러지 마세요"

라고 하신 모양이다.




그런 이유로..

새로운 훈령이 떨어졌다.




소대장..

소대원을 모두 집결시켜 놓고..

훈령을 전달했다.




"산에 가서 낙엽을 모아온다."




그리고...




"뿌려라.."




당시 짬이 좀 되셨던 아버지는

어이가 없기도 하고, 귀찮기도 하여..

자신에게 할당된 한뭉덩이 낙엽을 그냥 내던져버렸는데...

결국 뺑뺑이를 도셨다고 한다.

그리고 명령은 약간 수정 되었다.




"자연스럽게 뿌려라."




고참들이 막 뿌린 낙엽...

신병들이 자연스럽게 재배열하는 작업을 했음은 물론이다.




아무튼...

그런 노고 끝에..

자연스러운 가을길이 완성되었고..

대통령 각하는 사뿐히 낙엽을 즈려 밟고 오셨다가 가셨다고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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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2/24 17:56
수정 아이콘
우와... 과연 군대...
13/02/24 18:01
수정 아이콘
30년이 지난 지금도 별 차이가....
13/02/24 18:06
수정 아이콘
이 글 원작자가 피지알러셨군요. 허허..
제가 본 건 조금 다른 버전이었는데 등장인물이 박정희, 육영수 대신 사단장과 사모님이었고 '자연스럽게 뿌려라'가 아니라 '멀쩡하게 생긴 낙엽만 골라 뿌려라'였더랬습니다.
13/02/24 18:07
수정 아이콘
군대는 아니지만 초등학교 때 비슷한걸 해봤죠...

교육감 온다고 학교에서 1주 전부터 낙엽을 다 쓸라고 했는데, 문제는 학교내 길이 은행나무와 단풍나무 사이의 가로수길로 만들어져 있었다는 것이죠. 주번들 아침 저녁으로 그 100m가까운 길의 낙엽을 다 쓸었는데 교육감이 낙엽 밟는걸 좋아한다면서 바로 전날 쓸어놓은 낙엽을 다시 흩뿌린 어이없는 짓거리를 시키더군요.
13/02/24 18:22
수정 아이콘
허 저는 이거 하이텔유머에서 봤네요 누가퍼왔나 봅니다
oculus님이 원작자 셧다니 새롭네요 크크
레지엔
13/02/24 18:36
수정 아이콘
헐 이 전설의 글이 여기에 다시...
키스도사
13/02/24 18:42
수정 아이콘
군대는 예나 지금이나 크크크크크
DavidVilla
13/02/24 18:45
수정 아이콘
글 재밌네요. 잘 읽었습니다.

죽어라 낙엽 쓸던 추억 아닌 추억도 떠오르고, 몇 달간 미칠 듯이 야간작업해서 사령관님 순시를 맞이했더니 정작 우리 담당 지역엔 스쳐 지나가지도 않았던 허탈했던 순간도 생각납니다.
13/02/24 18:54
수정 아이콘
궁금한게 모든 군대가 다 저러나요?
미군이라던지 다른 나라들이요
13/02/24 21:29
수정 아이콘
.....그럴리가;; 군소국가의 마이너한 군대들을 제외하면 2차세계대전 직전의 구 일본제국군 정도뿐일 겁니다.
13/02/24 19:03
수정 아이콘
제가 있던 부대도 청와대 근처였는데..
전설같은 이런 이야기가 전해옵니다.

어느 날, 여사님이 산책을 나오셨습니다. 등산을 하시고는 부대를 통해서 청와대로 가시는데
청와대와 부대 사이를 맡고 있던 초병에게 물어보셨다더군요

"저 꽃이 이쁘네요. 저거 xxx꽃이죠? 다른 꽃은 모르겠는데 왜 저렇게 활짝폈을까요?"

바짝 긴장했던 초병의 대답은

"여사님이 오신 것을 환영하며 활짝 핀 것 같습니다"라고 했다더군요.

그리고 그 다음날 휴가를 나갔다고 합니다.
사실인진 모르겠어요..


제가 군대생활할 땐 원래 낙엽 청소가 엄청 빡셌습니다만, 대대장님이 바뀌시고는 '자연스럽게 뿌리는 게 좋다'며 자연스레 두게되면서 엄청 좋아졌었죠. 사실 가을인데 낙엽 하나 없는게 말이 안되긴 했어요.
13/02/24 19:13
수정 아이콘
55 ?
R.Oswalt
13/02/24 19:56
수정 아이콘
봄에는 각종 사열, 여름엔 제초, 가을엔 낙엽, 겨울에는 눈
참 군대란 곳은 아리송한 곳입니다... 으으...
13/02/24 20:20
수정 아이콘
전 양구에서 군생활했지만 생활관 앞만 아니라면 크게 낙엽때문에 스트레스 받지는 않았던 것 같네요.
하지만 제초+제설작업은 정말이지...... 제설이야 그렇다쳐도 제초는 따로 제초병이 있어서 안했는데 군수계였던지라 매번 창고에 넣고빼고 날갈고 날 새로 수령하고 할때마다 혈압이 올랐던 기억이...
헥스밤
13/02/24 20:20
수정 아이콘
시설공병대에서 근무했는데

초봄에 부대 기무대장이 교체되고 새로 부임한 기무대장이 '기무대 입구가 너무 허한데, 나무라도 좀 있어야 되지 않겠소' 하자
이에 우리 공병대장이 장교막사 뒷산(이라고 하긴 좀 애매하고 한 4,5층 건물 높이의 가파른 흙언덕?)
에서 나무들을 뽑아다 기무대 앞에 옮겨 심었습니다.

와, 초봄의 꽝꽝 얼어붙은 흙을 파내려고 (경사가 좀 있어서 굴착기도 못들어가고 그냥 토목반+대대인원으로 삽질)
흙에 곡괭이질을 하는데 진짜 돌에 맞은 것도 아니고 '얼어붙은 흙'에 곡괭이가 들어가는데 불꽃이 펑펑 튀더라구요.

아무튼 그렇게 초봄에 나무를 옮겨 심어 기무대 앞 조경작업에 성공했는데

그해 여름에 엄청난 장마가 왔습니다.
그리고 조경작업으로 나무를 벌목한 덕에 민둥산이 된 토산 한쪽 면이 비 맞아서 우르르...산이 무너져서 장교막사를 덮쳤습니다.

무너져서 건물을 집어삼킨 산의 흙을 한 땀 한땀 삽질로 옮겨서 다시 원래 산의 모양을 복원하는 신묘한 작업을 하는게
기분이 아주 그냥 아주..
13/02/24 21:37
수정 아이콘
GOP에 있을때 쓰리스타 헬기타고 온다고 해서 그양반이 오기로 한 길목에 박혀있던 돌덩이들 곡괭이로 다 파서 평탄화 작업한거 생각나네요. 크크
Tychus Findlay
13/02/24 22:39
수정 아이콘
이게 진리 아닌가요

사단장 曰 : 병사들 힘드니깐 낙엽치우지 마세요
행보관 曰 : 주말에 치워라 .크크크크
다이애나
13/02/24 22:40
수정 아이콘
ASP 파견 갔을때 군단장 시찰 온다고 일주일동안 2교대로 경계 돌리고 나머지 병력들은 다 작업으로 빼서 다들 미치기 직전이었는데 막상 오자마자 지통실에서 대대장 브리핑만 듣고 가버린 허탈한 기억이 나네요.
13/02/25 02:50
수정 아이콘
07년에 그분이 대통령 후보이던 시절 새벽에 부대방문해서 방송 3사 카메라 다 오고 난리 부르스를 췄던 기억이 나네요. 부대원들끼리 "이걸로 그분은 300표를 잃었다"고 뒷다마깠던거 생각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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