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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2/10/17 15:43:10
Name snoopy
File #1 카이스트_서_총장_간담회.jpg (0 Byte), Download : 56
Subject [일반] 서남표 총장을 보내며


(서남표 총장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 사진. 제가 나왔습니다.)

안녕하세요? 학교 게시판에 써야 적절한 이야기일 것 같지만, pgr에 쓰는 이유는 학교 게시판에 쓰고 싶지 않기 때문이고, 학교 게시판 말고 제가 글을 올릴 수 있는 곳이 여기뿐이기 때문입니다. 이공계에 몸담고 계신 분도 많고 학교 사람들도 적지 않은 걸로 알고 또 총장에 관한 이야기니 대학생이라면 공감할 만한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논쟁적인 어조로 쓰려는 건 아니고 제 추억을 풀어놓으면서 적적한 마음을 달래보렵니다.

시대의 흐름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며칠 전에 제가 안철수 후보에 대해서 썼던 글이 있는데 안철수 후보가 시대의 흐름에 딱 맞는 대통령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과연 지금 우리나라 사회는 어떻게 흘러가고 있을까요?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따라 각자 다르게 판단할 텐데, 제 생각에는 서남표 총장이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서남표 총장은 2006년도 9월에 KAIST 총장으로 부임했습니다. 저는 06학번으로 입학했고 학보사 기자를 한 덕분에 서남표 총장의 처음부터 최근까지 가장 가깝게 지켜본 사람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아, 일단 지금 이런 글을 쓰는 이유는 오늘(17일) 오전에 서남표 총장이 내년 3월 말에 사퇴한다는 의사를 기자회견을 통해 밝혔기 때문입니다. 여태까지 완강하게 사퇴를 거부했던 정황으로 보았을 때, 서남표 총장이 그 때 반드시 그만두리라는 보장은 없으나 이제야 완전하게 그의 시대가 끝났다는 것을 보인 것 같습니다. KAIST 총학생회가 앞으로 있을 이사회에서 서남표 총장을 해임시키지 않으면 총장실을 점거하겠다고 예고에 나섰는데 특별한 언급은 없었지만 여론이 또다시 악화되기 전에 미리 공세적 입장을 취한 것으로 보입니다.

다시 2006년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故노무현 대통령은 대전 지역과 과학기술계에 대해 임기 말까지 짝사랑을 보여준 사람입니다. KAIST 졸업식에 대통령이 참석하는 문화를 만들었고 과학기술부 장관을 부총리로 지정한 것뿐만 아니라 많은 면에서 과학기술계에 신경 쓰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대전 지역과 과학기술계의 민심을 사는 데는 결국 실패했고 황우석 사건으로 참여정부의 과학기술 관련 정책은 모래성 허물어지듯이 무너졌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KAIST를 발전시키겠다는 구상으로 故노무현 대통령의 특별한 관심 속에서 새롭게 영입된 사람이 로버트 러플린 총장입니다. 스탠포드대학교 물리학과 교수로 있던 로버트 러플린 총장은 홀 효과에 대한 논문으로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석학이었고, 당시 언론에서는 ‘과학계의 히딩크’라는 다소 유치한 헤드라인으로 그를 주목했습니다.

로버트 러플린 총장에 대해서 특별한 기억은 없지만, 지금 일부러 그에 대한 추억을 몇 가지 돌이켜보자면 그는 꽤 달변가였습니다. 벤자민 프랭클린이 상징하는 미국적 도전 정신이라는 것이 있죠? 어떻게 보면 지금 미국이 주도하는 IT 혁명의 근간이 되는 사상이 그러한 미국적 도전 정신일지도 모릅니다. 로버트 러플린 총장에게도 그러한 정신이 바탕이 되어있었고, 몇 번 들었던 연설에서 그의 폭넓은 학식과 미국적 도전 정신을 느꼈던 적이 있습니다. 그가 주장했던 KAIST의 방향 역시 상당히 미국적인 것이었는데, 학부생을 전부 중국에 한 학기 이상 교환학생을 보낸다거나 의과대학과 경영대학 등을 설립하고 정부 관리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내용들이 기억납니다. 재미있는 점은, 당시에는 로버트 러플린 총장과 서남표 총장이 주장했던 방향이 상당히 비슷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그 근본정신에서 하나는 매우 미국적이고 다른 하나는 매우 한국적이었다는 차이가 분명하게 느껴집니다.

로버트 러플린 총장은 그닥 성공적이지 못했습니다. 아니, 완전히 실패했습니다. 2년 만에 교수협의회의 주도로, 교수들이 집단적으로 반발하면서 임기조차 채우지 못하고 쫓겨났습니다. 로버트 러플린 총장을 특별히 미화시키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서남표 총장과 다르게 그는 그닥 권위적인 사람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밤 시간에 학생들과 학생식당에서 포커를 치거나 여름이면 캘리포니아로 돌아가서 돌아오지 않는 등의 모습을 생각하면, “내가 KAIST를 좋게 만들려고 하는데 너희가 싫다니 난 미련 없이 돌아간다”는 태도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쫓겨난 것이 아니라, 그냥 간 것이죠. 그런데 청와대 입장에서는 큰 맘 먹고 불러온 사람이 이런 식으로 물러나니 엄청난 고심에 휩싸였을 겁니다. 당시 김우식 과학기술부 부총리가 책임지고 후임을 물색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아무리 그래도 전임이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였던 만큼 그 정도 수준에 다다르는 인물을 데려와야 했습니다. 그리하여 모셔온 사람이 바로 서남표 총장이었습니다.

서남표 총장은 부임 전에 한국의 위대한 과학자로 손꼽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MIT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카네기멜론대학교에서 기계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이후 MIT 기계공학 학과장에 올라, 교수의 60%를 해임하고 생물학을 비롯한 다른 전공자들을 대거 발탁하여 잠시 주춤했던 MIT 기계공학과를 다시 최고 자리에 올려놓고, NSF의 공학 분야 부총재까지 올랐습니다. (National Science Foundation, 미국은 과학기술부가 없기 때문에 NSF에서 정부의 과학기술정책을 주관합니다.) 행정뿐만 아니라 본인이 정리한 이론으로 매년 학회가 열리고 있으며 각종 특허 또한 셀 수 없었으니 일단 공학자로서 더 이상 성공하는 것은 어려울 정도로 대단했습니다. 이렇게 쓰고 나니, 차라리 우리나라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좋았을 뻔했네요. 어쨌든 결론적으로는 서남표 총장이 보여주었던 수많은 정책과 행보에 대해서 저는 반대하는 입장입니다.

기록으로는 남아있지 않지만, 총장으로 올 당시에 “나는 연봉은 필요 없고, 임기만 종신으로 보장해 달라”라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2006년 당시에 70세였는데, 요즘 기준으로 새로운 일을 맡기에 아주 늦었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실로 엄청난 의욕이었습니다. 그리고 정말 엄청난 속도로 모든 것들을 바꿔나갔고, “서남표식 대학 개혁”이라는 신조어를 탄생시켰습니다. 지금은 많은 언론에서 경쟁 위주의 교육이라며 부정적으로 이야기하지만, 당시에는 그야말로 새로운 영웅이었습니다. 가장 먼저 학부 교육제도를 고쳤는데, 바로 2007년도 신입생부터 적용시켰습니다. 가장 큰 변화는 등록금 정책으로 정부가 주관하는 재단을 통해, 등록금을 전액 지원 받던 제도를 바꿔서 수업료를 신설해 1년에 1,500만 원으로 책정하고 4.3 만점에 0.0인 학생은 1,500만 원을 모두 내도록 하고, 3.0 미만을 구간으로 0.01당 등록금을 다르게 매겼습니다. 얼마 전 징벌적 등록금이라는 명칭으로 사용되었지만, 원래 차등 등록금이라는 훨씬 순화된 표현으로 언론으로부터, 특히 보수언론으로부터 칭송을 받았습니다. 명분은 이랬습니다. “KAIST는 세금으로 운영되는 학교다. KAIST에 입학하는 학생들은 한국 국민들에게 책임을 위임 받은 학생들이다. 공부를 소홀히 하는 학생들은 그에 따른 책임을 느껴야 하며, 1인당 얼마나 많은 교육비가 사용되는지 알아야 한다.” 결론이야 어쨌든 한 사람의 생각이 그렇게 빠르게 수백 명, 수천 명에게 영향을 주도록 일사천리로 상명하달 되는 것이 KAIST의 문제였고, 한국 사회의 문제점인 것 같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실로 비인간적이고 상식에 어긋나는 제도일수도 있지만, 명분이 완벽했기 때문에 여론은 압도적으로 서남표 총장을 지지했습니다. “한국이 앞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장기적으로 과학기술계에서 리더가 나와야 하고, 그만큼 국민적으로 과학기술계를 지원해야 하며, 따라서 과학기술계 학생들은 책임감을 가져야 하며 힘들고 고된 교육과정을 견뎌내야 한다.” 시대의 흐름이라는 것에 대해 글의 앞부분에서 언급했습니다. 이 물 샐 틈 없는 클리셰가 그 당시에는 모든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던 내용이었습니다. 특히, KAIST 학생들도 인정했던 것 같습니다. B학점이라는 것은 어떻게 보면, KAIST에 다니는 학생들에게 상당히 자존심에 상처를 입히는 점수입니다. 실제로 대학교에서 B학점을 받았을 때의 느낌과 별개로 KAIST에 입학하기까지의 성장과정에서 “그것도 못 받으면 학교 다닐 자격 없다”라는 마음이 대다수의 학생들에게 이미 자리 잡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등록금 제도 이외에, 모든 강의를 영어로 진행한다는 파격적인 정책을 동시에 진행하면서, 5학년을 다니는 학생에게 패널티를 주고, 재수강 제도를 비롯한 많은 것들을 바꿨습니다. 이후 테뉴어 제도를 강화하여, 동아일보 1면에 서남표 총장이 개혁을 통해 교수들의 철밥통을 깼다는 기사가 실리게 되었고 KAIST가 각종 대학평가에서 상위권을 차지하면서 서남표 총장은 대학 개혁의 아이콘으로 명실공히 자리매김합니다. 서남표 총장이 떠나더라도 아마 많은 부분에서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이 남아있으리라 봅니다. 영어강의나 5학년 기피 같은 것들은 계속 KAIST의 문화로 자리 잡을 것이고, 테뉴어 제도도 다시 원상복귀될 일이 없을 겁니다.

불과 1, 2년 만에 사실상 여론을 지배하면서, 서남표 총장은 본격적으로 여러 사업을 시작합니다. 기부금을 모으는데 크게 주력했는데, 몇 가지 사안에서 부풀려지거나 문제가 있는 것들이 있었지만, 서남표 총장이 많은 기부금을 모았고 자선가들이 KAIST에 기부하도록 분위기를 조성한 것은 사실입니다. KAIST의 기부금에 자극 받은 서울대학교 이장무 총장이 비슷한 프로젝트를 했는데, 크게 보도된 적은 없지만 단숨에 KAIST를 넘는 액수를 모았습니다. 서울대학교나, 연세대학교 등 전통적으로 강한 동문회가 있는 학교들에 비해, 동문회가 약한 KAIST는 기부금이 턱없이 모자랐습니다. 과학기술계의 리더를 성장시키는데 투자한다는 생각을 갖도록 유도하여 KAIST와 특별한 인연이 없는 사람들로 하여금 기부할 동기를 준 것은 맞습니다.

그런데 서남표 총장의 가장 핵심적인 사업은 사실 대학 개혁이 아니었습니다. 동력선으로 에너지를 공급하는 온라인 전기자동차와 항구가 움직여서 배를 맞이한다는 개념인 모바일하버가 그의 주력 사업이었습니다. 정확히 확인할 수는 없지만, 이미 어느 정도 기정사실화된 내용으로 서남표 총장에게 전기자동차와 모바일하버는 예전부터 꿈꿔왔던 숙원 사업이었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한국으로 들어오기 위해 기회를 알아봤다고 합니다. 이 사업들에게 대해 알아가면서, 사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하지만, 대학생인 저에게는 새로운 내용이었던 것들을 배웠습니다. 대학교에서 최고경영자 과정이라는 것이 어떤 곳이며, 법인을 설립하면 어떤 일들이 발생하는지, 회계와 감사가 어떻게 활동하는지 등을 알게 되었는데, 주로 겉으로 내세우는 명분과 실제로 하는 일들이 얼마나 다른지 깨닫는, 매우 실망하게 되는 과정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언론 장악이 단순하게 서남표 총장의 생각과 보수 언론이 추구하는 가치가 우연하게 맞아떨어진 결과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추구하던 사업을 생각하면, 여론장악은 이미 한국의 언론을 꿰뚫어 보고 이뤄낸 정치적 능력에 의한 의도적인 성과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겁니다. 이명박 정부는 취임과 동시에 “코드 인사”와 “고소영”이라는 신조어를 동시에 만들며 정부 기관에 대대적인 숙청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대전 지역의 수많은 정부출연 연구기관에도 피바람이 불었습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참여 정부가 임명한 사람 중에 유일하게 살아남은 것이 서남표 총장입니다. “고소영”에 대한 부담 때문에, 어윤대 전 고려대학교 총장이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에서 낙마한 사건이 있었는데 어윤대 전 총장은 평소에도 KAIST에 왜 그렇게 과도한 정부 예산을 주어야 하느냐며 KAIST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한편, 이명박 정부는 각종 국책 사업을 위해 KAIST 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과학기술 R&D 예산을 대폭 감면했고, 서남표 총장은 여론의 힘을 입어 KAIST에 더 많은 예산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렇듯, 서남표 총장과 이명박 정부의 관계는 태생적인 몇 가지 이유로 시작부터 좋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이명박 정부 출범 당시에 차관으로 시작해, 5년 임기 내내 교육과학기술부를 움직였던 이주호 장관과 서남표 총장과의 관계는 악화되기 시작합니다. 교육과학기술부 주도로 대학 개혁을 이뤄내려고 했던 이주호 장관은 서남표 총장이 여론을 선점하는 것이 못마땅했고 크고 작은 신경전이 계속 오고 갔습니다. 그런 관계 속에서도 서남표 총장은 이명박 대통령을 전기자동차에 시승하도록 하는데 성공하는데, 이주호 장관의 오랜 숙원이었던 입학사정관제를 도입하는 일종의 정치적 거래로 가능했던 일이었습니다.

취임 몇 개월 뒤, 이런 상황을 급격히 반전시키는 소위 “신의 한수”라 불릴만한 일을 서남표 총장이 해냅니다. 박근혜 후보에게 명예박사 학위를 준 것이죠. 일단 박근혜 후보 입장에서 생각해봤을 때, 대전 지역과 과학기술계 민심을 잡을 수 있다는 점과 아버지인 박정희 대통령이 국가의 미래를 위해 세웠다고 볼 수 있는 KAIST와의 인연을 강조하는 것은 전혀 손해날 것이 없는 일입니다. 이득으로만 본다면 과연 누가 먼저 제안했을까 싶지만, 명예박사 학위를 활용하는 것을 보면 서남표 총장이 주도적으로 한 일이 틀림없습니다. “박근혜의 정책 기조는 스탠포드 연설에 다 나와있다”라는 말 들어보셨나요? 그 스탠포드 연설이 박정희 대통령이 실리콘 밸리 출신의 프레드릭 터만 박사와 함께 KAIST를 세웠다는 이야기로 됩니다. 물론 그곳까지 가서 과학기술계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이 이상하지만, 그만큼 KAIST와 박근혜 후보와의 관계는 강조해도 어색함이 없어지게 됩니다.

4년 임기가 만료되고, 2010년 9월에 서남표 총장이 연임 의지를 밝히자 이주호 장관과 갈등이 본격적으로 불거져 나왔습니다. 이주호 장관이 언론을 통해 직접적으로 사퇴하라는 말을 전했고, 서남표 총장은 정부가 대학 개혁을 방해한다고 비난했습니다. 그런데 이 싸움은 서남표 총장의 완승으로 끝납니다. 동아일보에 특종으로 나오던 수준의 서남표 총장의 언론플레이가, 이때를 계기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것입니다. 조선일보가 이사회를 앞두고 1면과 사설에 서남표 총장이 연임해야 한다고 지원사격에 나섰고, 이주호 장관이 항복합니다. 그렇지만, 교육과학기술부에서 새롭게 오명 씨를 이사장으로 임명했고 그 갈등이 최근까지 이어진 상황입니다.

그렇게 연임에 성공한 서남표 총장은 다시 한 번 탄탄대로를 가는가 싶더니 2011년 2월, 실업계 고등학교 출신의 신입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을 시작으로 2011년 4월에 학생 3명과 교수 1명이 추가로 자살하는 초유의 사태를 맞이하면서 엄청난 위기에 몰립니다. 이때부터 KAIST에서 무슨 일을 하던지 관심 없던 한겨레와 경향신문에서도 보도가 시작되었고, 보수언론들은 지원사격하다가 비판하다가 오락가락 행보를 보입니다. 사실 여기가 본론입니다만, 이 부분에 대한 이야기로만 여태까지 쓴 것 이상으로 쓸 수도 있을 것 같고, 많은 분들이 아실 테니 여기까지만 쓰겠습니다.

다시 시대의 흐름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 싶습니다. 서남표 총장은 끝까지 자살사태에 대해서 본인의 책임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물론 어떤 일이 생기면 여론이 몰아붙여서 누군가 옷을 벗겨야만 직성이 풀리는 우리나라 언론들과 정치인들의 하이에나 근성에 편들어 주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그런 하이에나 근성보다 서남표 총장의 옹고집이 결론적으로는 더 강했습니다. 서남표 총장은 본인이 주장했던 개혁의 방향은 옳았고 그 과정에서 발생한 비극을 신경 쓰지 못한 것은 안타깝다는 입장이었습니다. 앞으로 그런 일은 없어야 하지만, 본인이 잘못한 것은 아니라는 말이죠. 어떻게 보면 맞는 말입니다. 서남표 총장 때문에 죽은 것은 아니겠죠. 누군가에게 간접적인 책임을 묻는다면, 서남표 총장에게만 물을 일은 아닐 겁니다. 그 사건 이후로, 우리나라 미디어들이 자살 사건과 관련되어 얼마나 무책임하고 기본적인 원칙도 지키지 않는지 새삼 깨달았습니다. 마치 흐름상 몇 명 더 죽어야 할 것처럼 베르테르 효과를 부추기던 미디어들이, 세상을 비춰주는 창문이 아니라 고층 빌딩의 창문으로 죽음의 관문처럼 작용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서남표 총장이 보여주고 말하던 그런 식의 방향과 개혁은 많은 사람들이 원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누군가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을 원하고, 과정 중에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 진심을 사죄하고 슬퍼해주고, 뛰어난 아이디어를 일사천리로 퍼뜨려서 바꾸는 것이 아니라 수평적으로 많은 사람들의 생각을 듣고 난 뒤에 일해주길 원합니다. 강준만 교수가 말한 “증오의 종언”으로, 제가 가진 이러한 생각이 박근혜 후보가 상징하는 것과 안철수 후보가 상징하는 것에 대비되어 안철수 후보가 제가 생각하는 새로운 시대의 흐름과 맞지 않나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쓰고 나니 기승전安 같은데요, 안철수 후보는 앞으로 지켜봐야 할 것 같고 주인공은 서남표 총장입니다. 사실 안철수 후보가 KAIST 총장을 하면 어떨까 그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여러 가지 면에서 참 잘 할 것 같은데 말이죠. 어쨌든 안철수 후보는 좀 더 큰일을 하시려는 것 같고, 저도 서남표 총장과 KAIST, 정말 많이 생각하고 많이 사랑하고 많이 미워했는데, 이래저래 떠나게 됐습니다. A4로 5장 정도 썼는데 쓰다보면, 앞으로 10장도 더 쓸 수 있을 것 같으니 일단 여기서 그쳐야 겠네요. 혹시 더 궁금하시거나 할 이야기가 있으면 댓글로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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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메
12/10/17 15:47
수정 아이콘
모바일 하버의 에너지/비용 낭비보단 지구를 자전시켜 배를 갖다가 놓는 연구가 더 효율적일 겁니다.
그리고 논외로 이휘소 박사가 살아있었고 카이스트 총장을 했다면 같은 취급을 받았을까 라는 생각도 진지하게 하는 글이군요. 잘 봤습니다.
jjohny=Kuma
12/10/17 15:58
수정 아이콘
snoopy님 아이디의 의미가 이해되는 시점이네요. 크_크

+ 어제 KAIST 총학에서 총장퇴진을 주장하며 총장실을 점거하기로 결의했다고 알고 있는데, 오늘 서남표 총장님이 퇴진 의사를 밝힌지라 어떻게 흘러갈지 궁금해집니다. [S2]
12/10/17 16:07
수정 아이콘
아이디가 무슨 뜻일까요? 저는 잘 모르겠네요..
다이애나
12/10/17 16:03
수정 아이콘
밖에서 보는것과 내부에서 보는 관점의 차이인가요? 취지는 이해하지만 이분때문에 정작 힘들었던 사람은 학생들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아니었나요?
Backdraft
12/10/17 16:07
수정 아이콘
언론에서 이름만 슬쩍 들어본 분인데 이번기회에 좀 알게 되네요

저도 학생때 운동좀 해봐서 아는데(?) 흐흐 학생의 입장에서 이해할 수 없는 학교 정책이나 운영등이 어쩔수없이 있는것 같았습니다.
그것을 꼬집어내고 밝히고 바꿔야 많은이들이 행복해 질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그런면에서 보다보니 총장이란 자리가
참.. 뭐같아 보이던데,
음.. 교협의회나 총학생회가 총장의 즉각퇴진을 요구하는 근거가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간단하게나마 알 수 있을까요?
현재 학생으로서의 시각을 좀 더 들을 수있을지요?
12/10/17 16:17
수정 아이콘
아이디가 범상치 않네요.
Granularity
12/10/17 16:18
수정 아이콘
음... 학내에서 보는것과 너무나도 다른 시각으로 외부에서 보기때문에
PGR에서 학내얘기는 잘 안하는 편인데.. 글을 잘 써주셔서 감사하네요.
서남표를 보면 참 많은생각들이 교차합니다. 댓글을 썼다가 지웠다가 반복만 하네요.
12/10/17 16:23
수정 아이콘
테뉴어 보장이 안되는 것은 교수에게, 학점으로 등록금을 부과하는 것은 학생에게 너무나 가혹하죠. 미국 유학하고 한국 대학으로 들어가는 신임교수들은 안정적인 테뉴어를 절대적으로 원합니다. 한국에 들어가는 것보다 미국 20~30위권 대학이나 기업이 훨씬 많은 돈을 주거든요. 모든 조교수들을 적으로 만들고 외로운 싸움을 하신 것 같네요... 너무 급진적이었지만 만약 성공했다면 카이스트가 세계 10위권 진입했을거라고 확신합니다.
그리메
12/10/17 16:32
수정 아이콘
스누피라는 아이디는 서울대에서 은어로 많이 씁니다. 저도 정확한 뜻은 잘 모르나 스누피랑 SNU와의 상관관계가 몬가 있었다고 알고 있는데...카이스트 졸업생이셨군요.
OvertheTop
12/10/17 16:33
수정 아이콘
좋은 글 잘 봤습니다. 저도 안철수후보가 대학총장을 역임하여 새로운 대학문화를 가져오길 바랬었습니다. 이제는 안되겠지만요.

서남표총장에 대한 소견으로는 KAIST학생들과 얘기를 좀 해보면 너무 하드코어한 코스웍 때문에 힘들다고 하는 소리를 많이 하더군요. 제가 겪은건 아니지만 언론매체를 통해서 그들이 매우 힘들게 공부를 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다만, 그러한 하드코어한 코스웍이 질 좋은 연구와 연결되느냐? 라는 것에는 전 매우 큰 의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수능 잘치는 것과 답안지에 답 잘 적어낸다는 것이 그 사람이 '연구'를 잘한다는 것과 연결되느냐면 아니 전혀 그렇지 않아 라고 말할 수 있다고 보거든요.

적어도 KAIST처럼 연구중심대학이라면, 좀 더 자율적인 면을 강조해도 되지 않나 싶었습니다. 자율적인 사고에서 오는 창의성이야 말고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 생각하니까요. 하지만 제가 느낀 서남표총장은 그런것보다는 코스웍 성적에 대해 압박하면서 '전체 평균'을 올리는데 주력하는 것 같았습니다.
12/10/17 16:47
수정 아이콘
사실 카이스트 학생들의 마음, 전체적 여론의 분위기 등을 잘 읽을수가 없네요. 워낙 각자 일에 파묻혀 바쁘고 분주하니 그런지 몰라도...
그런데 그러한 상황 속에서 구태여 읽어 내자면, 제가 받은 느낌은 '굳이 서남표 총장이 물러나야 하나' 는 것,
더 정확히 말하면 '어떻게 되든 나와는 별로 상관이 없음' 이라는 분위기인 듯 합니다. 그냥 나는 내 할 일이나 열심히 하자...?

물론 적지않은 학생들이 서남표식 개혁과 소통방식에 대해서 (Anyway good night 으로 대표되는) 비판의 목소리를 내었지만,
또한 많은 학생들은 서남표식 개혁으로 이루어진 학내 분위기와 환경, 여건, 방식에 순응하면서 지냈거든요.
개인적인 느낌은 카이스트 학생들은 좀더 체제순응적이고, 보수적이며, 개인주의적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특징들이 서남표식 학교 운영과 크게 상충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실제로 많은 성과를 내었습니다.
그래서 개인적인 느낌은 서남표 총장에 대한 불만의 근원은 학생들보다는 교수들이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저는 기존의 기득권 세력에 대한 개혁으로 인해 빚어지는 교내 정치적 마찰이라고 어림짐작했고요.
(저는 글쓴님처럼 깊게 학내의 일에 대해 알지 못하고, 위에 언급했듯이 내 할일이나 하자는 무리중의 하나이므로 모두가 어림짐작일 뿐입니다. 하지만 어쩌면 그게 많은 수의 카이스트 학생들이 가지고 있는 느낌과 비슷할 수도 있고요.)

좌우지간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글쓴님께서도 서남표식 대학개혁, 정치권과의 줄다리기, 국책사업 진행 등에 대해 긍정적 논조로 말씀하신 것이 아닐까 합니다. 안타까운 카이스트 학생들의 자살사건이 발생하기 전까지 말이지요.
학우들의 죽음은 학생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고, 순응적으로 받아들이던 체제에 대해 비판적으로 바라보게 되는 계기를 만들어 줍니다. 그러나 학생들 사이에서도 이것이 '서남표식 개혁의 결과물이다' 라는 주장에는 찬반이 있었던 것으로 압니다. 누군가는 이 일에 대해 책임을 지고 사과를 하며, 이러한 일이 발생하지 않을 장치들을 요구하나, 또한 누군가는 지금 만들어져 나가고 있는 개혁과 발전의 끈을 계속해서 놓치지 않고 리드하고 이끌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으니까요.

저도 이래저래 말이 길어지는데, 결론적으로 말해서 제 생각은 글쓴님의 마지막 문단과는 약간은 다른 것 같아요. 카이스트 학생들이 수평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듣고 공감해주고 이끌어주를 리더십을 원한다는 것에, 저는 약간 고개가 갸우뚱해집니다. 비록 서남표 총장은 물러나지만, 저는 그가 만들어가려고 했던 모델과 그가 보여주었던 리더십이 좀더 카이스트에 맞는 형태였다고 생각되네요.
좋아요
12/10/17 17:26
수정 아이콘
글만 봤을 때의 개인적인 인상으로는 '저런걸 개혁이라고 부르는게 맞나'싶네요.
굉장히 한국적인 발상을 기반으로한 정책들이라는 생각은 들긴 하지만.
시네라스
12/10/17 17:37
수정 아이콘
Anyway, good night을 말하던 그 날은 참 어안이 벙벙했는데...
Anyway, good bye입니다
소인배
12/10/17 17:49
수정 아이콘
돌이켜 보면 홍 총장님 때가 제일 여러 모로 마찰이 적었던 것 같군요.
jjohny=Kuma
12/10/17 17:51
수정 아이콘
소인배님// 러플린 전 총장도 말년이 좀 순탄치 못했죠.^^; [S2]
뿌지직
12/10/17 17:52
수정 아이콘
전 카이스트 학생도 아니고 내부 상황은 잘 모릅니다만, 서남표 총장의 개혁은 별로 맘에 들지 않습니다. 징벌적 등록금이라... 이 언제적 시대착오적인 발상입니까.. 대학의 목표는 학문의 추구이지, 이런식의 징벌적 등록금은 주객전도 현상이 일어나죠.. 못하면 벌을 주겠다고 겁을 주는데 제대로 된 공부를 할 수 있을까요?? 낮은 학점을 받아도 좌절감이 클텐데, 거기에 등록금까지 내라고 하니 오기보단 객기를 부리고 싶겠네요..
12/10/17 17:57
수정 아이콘
어찌 되었든 이번에는 약속대로 하시길...
잭스 온 더 비치
12/10/17 19:36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전 00학번인데... 병특하고 돌아왔더니 남표형의 "(사실상) 대학원생은 내시선에서 OUT" 정책 때문에 대학원생은 뭔가 서러웠...ㅜ_ㅜ
가라한
12/10/17 22:04
수정 아이콘
오래전 일이긴 하지만 제 선배가 서남표 교수가 MIT 학장일 때 그 랩으로 유학을 갔더랬죠.
나중에 미국서 만났을 때 랩 옮긴다고 하길래 왜 유명한 교수를 떠나나 했었는데 이유를 좀 더 자세히 물어 볼걸 그랬나 봐요.
그 선배가 절대 일 못해서 쫓겨날 스타일은 아니어서 뭐가 불만일까 궁금해서 자세히 물어볼까 하다 말았던 기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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