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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2/04/23 10:48:06
Name 구밀복검
Subject [일반]  매직 마자르에서 바르셀로나까지 - (3) 1958년 스웨덴 월드컵 上
매직 마자르에서 바르셀로나까지 - (0) 서론
https://pgr21.co.kr/?b=8&n=36149

매직 마자르에서 바르셀로나까지 - (1) 1953년 11월 25일
https://pgr21.co.kr/?b=8&n=36181

매직 마자르에서 바르셀로나까지 - (2) 1954년 스위스 월드컵
https://pgr21.co.kr/?b=8&n=36321


0.
헝가리 혁명으로 인해 매직 마자르가 공중분해 된 이후, 로마제국 멸망 후에 그랬던 것처럼 여러 지역 강호가 난립하는 상황이 초래되었고, 이로 인해 세력 균형에 의해 평형이 이루어졌다. 58년 월드컵은 바로 이 시기에 펼쳐져, 헝가리가 비워둔 세계 축구의 맹주 자리에 누가 오르게 될 지를 결정하는 장이 되었으며, 이후의 세계 축구 질서를 재편하는 시금석으로서 역사에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물론 그 당시로서는 58월드컵의 결과가 향후의 세계 축구의 방향을 결정짓게 될 것임을 알 수는 없었다는 점에서, 이 모든 일이 필연적인 결과였다는 식으로 설명해서는 곤란할 것이다. 다만 모든 일이 그러하듯이 사건의 의미란 당시로서는 온전히 파악하기 어려운, 시간이 지난 후에야 분명해지는것이며, 어느 지점이 Point of no return이 되었는지가 명료해지기 마련이므로, 지금의 관점에서 당시의 사건과 사건, 그리고 그 사건들이 만들어낸 흐름이 어떤 그림을 그려냈는지를 감상하는 것은 유의미한 일일 것이다. 이는 당대성에 의해 매몰되지 않고 객관성이라는 산 위에 등정한 우리에게 어떤 축복이 있는지를 알려줄 것이며, 그리하여 이 지점에서 후대에 태어났다는 것은 그저 저주와 비극이 아님을 깨닫게 될 것이다.



1.
브라질은 오늘날의 우리에게는 세계 최강의 국가대표로 - 비록 최근에는 스페인이 그 지위를 위협하고 있으나 - 여겨지곤 하지만, 야훼가 히브리 민족에게 그러했듯 처음부터 그러했던 것은 아니다. 비록 38년과 50년에 월드컵 결승에 진출하긴 했지만, 준우승에 그치며 전력에 비해 우승복이 없는 팀으로 평가받고 했다. 특히 1950년 월드컵 결승에서 우루과이에게 2:1로 패한 것은, 일본의 히로시마 원폭에 비견될 만큼 처참한 패배로 인식되었으며, 그만큼 브라질은 승리자의 영예와는 거리가 먼 상태였다. 이에 대해 파울루 페르디강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역사상 브라질이 겪은 국가 위기 중 1950년 월드컵이야말로 가장 아름답고 찬란한 위기였다. 그것은 열대지대에서 일어난 워털루 대참사이고, 그 역사는 이제 우리에게 ‘라그나로크’이다. 그 패배로 평범한 하나의 사실이 놀라운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이 놀라운 신화는 이제 대중의 상상력 속에 보존되고 커져갔다.”


그 뿐만 아니라, 최근의 월드컵이었던 54년에는 <베른 전투>라고 불리우는 8강전에서 헝가리에게 경기 내내 압도당하며 2:4로 패배하여 탈락함으로써, 아직 세계 레벨과는 거리가 있음을 드러냈다. 그리고 이 패배를 계기로, 지나친 자율주의와 낭만주의, 예술성에 대한 집착이 승부의 실리를 저해한다는 비판이 대대적으로 일어났고, 보다 엄격한 규율과 절제된 전술이 승리를 가져올 것이라는 여론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역사적 맥락으로부터 독립적인 대상이란 없는 이상, 혁신이란 항상 변화가 일어나기 전의 역사적 맥락을 고려해서 가해져야 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브라질은 그들이 변화의 의의를 이해했는지 여부와 무관하게, 이에 부합하는 혁신을 시도했다. 월드컵 개막을 불과 4개월 앞둔 시점에서 감독은 비센치 페올라로 교체되었는데, 그는 기존의 시스템이자 당대 세계 축구의 기본 포메이션이였던 WM을 버렸다. 헝가리가 히데쿠티와 자카리아스를 조금씩 내리는 포메이션을 운용하면서 변화를 주었듯, 페올라도 4-2-4로 포메이션을 변경함으로써 전술 자체에 수술을 가했다. 그리함으로써 브라질의 전통적인 자유와 방종, 창의성에 대한 갈망을 억누르지 않은 채 결과에 있어서의 실리와 동시에 추구할 수 있게 되었다. 늘어난 한 명의 수비수는 브라질이 공격적인 움직임을 보이면서도 수비를 위험에 빠뜨리지 않도록 하는 데에 기여했으며, 4명의 포워드를 기용함으로써 그들이 각기 다른 자신들의 장점을 뽐낼 수 있게끔 환경을 조성해주었다. 또한, 수비 시에는 공격수 한 명이 미드필더로 내려와 4-3-3으로 대처했으며, 공격 시에는 수비수 한 명이 전진하여 3-3-4으로 전환하여 대처하는 식으로, 유연성과 중원 숫자 증원이라는 장점까지 겸비하였다. 또한, 이외에도 중앙 공격수 중 한 명을 다른 한 명에 비해 약간 뒤에 처진 형태로 배치시켰는데, 이는 현대의 세컨드 톱과 위치에 있어서나 역할에 있어서 거의 유사했다.
가장 특징적인 것은 WM 특유의 대인방어가 아닌, 지역방어 시스템을 도입했다는 것에 있다. WM을 쓰는 팀끼리는 모든 포지션이 서로 대칭이 되었고, 따라서 수비는 철저하게 대인마크로 이루어졌다. 자신의 포지션에 위치해 있는 선수를 전담마크하는 것이 그 시절에 지역방어가 의미하는 바였다. 그러나 4-2-4를 쓰게 되면서 이런 대인마크는 쓸모가 없어지게 되었고, 이 자리를 지역방어가 대체하게 되면서 때로 몇몇 선수를 자신의 포지션에서 이탈시키고 나머지 선수들이 수비 지역을 영역을 분담하여 방어하는 식의 대처가 가능하게 되었다. 자유도와 안정성은 모순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페올라는 실리성을 무너뜨리지 않은 자유의 시스템에 적합한 인재들을 발탁시켰다. 바로 가린샤와 펠레였다. 비록 버스운전사 지원자들을 대상으로 심리 적응도를 평가하던 아마추어 심리 테스터였던 카르발랑이스는, 검증되지 않은 자신만의 자의적인 테스트에서 가린샤가 38점, 펠레가 68점으로 둘 다 버스 운전사로서의 적합 기준에 미달된다는 것을 근거로 하여, 그들이 압박이 심하고 책임감을 요하는 국가대표 경기를 소화하기에는 심리적으로 적합지 않다면서 그들의 승선을 반대했지만, 페올라는 이에 현혹되지 않고 자신의 판단을 믿었다.

페올라가 이런 판단을 내린 근거는 명확하게 파악하기 어렵다. 다만, 그가 상파울루 코치로 재직하던 당시의 구트만에게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가정해볼 수는 있다. 매직 마자르의 수장 세베시와 더불어 헝가리 축구계의 중심축이었던 구트만은, 세베시나 다른 다뉴비안 클럽의 전통을 가진 지도자들이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로, 공격적이고 자유로운 스타일을 선호했으며, 공을 빠르게 돌리며 경기장 전체를 점유하기를 원했고, WM과 4-2-4의 과도기적 특성을 드러내는 포메이션을 선호하는 이였다. 그는 그런 방식으로 상파울루를 상파울루 주(州) 리그에서 우승시켰다. 이 가정에 따르면, 매직 마자르가 시도한 혁신은 단선적이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불연속적이지도 않은 형태로 브라질 국가 대표에 이식되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전술적인 계통이 어떻든 간에, 페올라가 취임한 이후 4개월 동안 브라질은 전 국가 차원에서 <총력전>을 펼쳤다. 관료들은 개최국인 스웨덴의 25개 지역을 직접 조사하여 훈련 캠프를 선정했고, 혹시 선수들이 방종한 성생활을 즐길까 우려하여 훈련 캠프에 있던 호텔 여직원 25명을 전원 교체했으며, 해당 지역의 누드촌과 윤락촌을 폐쇄해 달라는 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비록 자신들이 향후 10여 년을 세계 축구의 패자로 군림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하지는 못했지만, 그들은 그렇게 신화의 시작을 예비하고 있었다.



2.


6월 8일 우데발라에서 페올라 호는 월드컵 첫 경기를 가졌다. 상대는 전통적인 다뉴비안의 강자인 오스트리아였다. 팽팽한 경기가 되리라는 예상과는 달리, 의외로 브라질은 싱겁게 경기를 끝냈다. 마졸라는 디디의 어시스트를 받은 첫 골을 포함하여 두 골을 넣었고, 니우톤 산토스는 윙백으로서 공격에 가담하여 두 번째 골을 득점하였다. 당시로서는 강호라고 할 수 있는 오스트리아를 3-0으로 꺾으면서 브라질은 순조롭게 첫 발을 디뎠다.

2차전은 3일 뒤인 6월 11일 고텐부르크에서 열렸다. 브라질의 첫 경기를 보고 그들의 기술적인 능력을 경계한 잉글랜드는 정면 승부는 어려우며 수비적인 운용만이 활로라고 판단했다. 축구 종가로서의 자존심을 내세우기엔, 이미 그/녀들은 세계 축구의 흐름으로부터 뒤떨어져 있었다. 잉글랜드는 에이스인 디디를 집중적으로 봉쇄했으며, 경기 내내 수세적인 자세로 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졸라와 바바는 골대를 두 번 맞췄고, 마졸라의 결정적인 헤딩 두 번을 골키퍼였던 콜린 맥도날드가 간신히 선방해내는 등, 브라질은 잉글랜드 인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하지만 잉글랜드의 비기기 작전이 맞아 들어갔고, 결국 경기는 0-0으로 끝났다. 그리고 그것이 월드컵 역사상 최초의 무득점 경기였다.

3차전은 6월 15일, 2차전 장소와 동일한 고텐부르크에서 행해졌다. 조별리그의 마지막 상대는 소련이었고, 브라질은 최소한 비겨야 토너먼트에 진출할 수 있었다. 그리고 페올라는 출전 기회를 잡지 못하고 있던 가린샤와 펠레 카드를 꺼내들었다. 비록 카르발랑이스는 펠레와 가린샤가 경기에 출전하기에 부적합하다고 말했지만, 페올라는 “당신 말이 맞을 수도 있겠지만, 당신은 축구를 모르지 않느냐.”라며 그의 주장을 간단히 일축하였다. 그리고 그는 상대에게 기선을 제압할 의도로 주장이자 에이스인 디디에게 일단 시작하자마자 가린샤에게 볼을 보낼 것을 지시했다.  



시작하자마자 가린샤는 볼을 잡았다. 그리고 그는 마치 2008년 4월에 메시가 스콜스를 가지고 놀듯, 오른쪽 터치라인 근방에서 쿠즈네초프를 돌파하며 기회를 맞이했다. 수비수가 이를 걷어내며 스로인을 만들었고, 다시 볼이 가린샤에게 갔다. 그리고 가린샤는 그리 위력적이어보이지도 않지만 기괴한 돌파를 통해 쿠즈네초프와 보이노프라는 2명의 수비수를 동시에 따돌리며 슈팅을 시도했다. 아쉽게도 이는 골대를 맞고 나왔지만, 이미 페올라의 의도대로 기선은 제압할 수 있었다. 그리고 브라질 선수들은 이런 흐름을 놓치지 않았다. 디디는 문전으로 쇄도하던 바바에게 정교한 스루패스를 날렸고, 바바는 이를 매끄럽게 마무리하였다. 브라질이 3분만에 리드를 잡게 되었다. 발롱도르를 창시한 인물인 가브리엘 아노는 이를 두고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3분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77분, 바바가 재차 한 골을 밀어 넣으며 경기는 2:0으로 마무리 되었다.

페올라의 전술적 조치는 성공이었다. 가린샤는 말할 나위없이 자신의 존재감을 만인에게 펼쳐보았다. 그리고 펠레는 비록 몇몇 좋은 찬스를 놓쳤지만, 신인 치고는 기대감을 가져다주게 하는 움직임을 보여줬다.

고텐부르크에서 열린 8강전, 브라질이 맞닥뜨린 상대는 웨일즈였다. 웨일즈는 조별예선 결과 헝가리와 동률이었던 관계로 17일에 플레이오프를 거쳐 8강에 진출했고, 8강전은 19일에 치러졌다. 더군다나 웨일즈는 주전 스트라이커인 존 찰스가 조별 예선에서 부상을 입은 관계로, 교체 멤버인 웹스터를 대신 출장 시킬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는 클리프 존스가 만들어준 골 찬스 상황에서 옆그물을 때리면서 왜 그가 후보인지를 증명해냈다. 비록 골키퍼인 켈시가 엄청난 활약을 하며 브라질의 공격수들을 여러 차례 잠재웠지만, 73분 윌리엄을 맞고 굴절된 볼이 펠레에게 떨어졌고, 켈시가 이것까지 막을 순 없었다. 그 후, 마졸라가 놀라운 오버헤드 킥에 의해 득점을 뽑아냈지만, 심판은 불명확한 이유로 이를 골로 인정하지 않았다. 비록 1-0의 경기긴 했지만, 브라질은 지쳐있던 웨일즈를 간단히 압도하며 비교적 쉬운 경기를 펼쳤다.



3.


* 풀경기 동영상의 일부입니다. 나머지는 해당 링크로 가셔서 관련 동영상을 찾아보시면 나옵니다. 전반 38분~45분이 누락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하여 브라질은 4강까지 순조롭게 올라가는 데에 성공했다. 그러나 조별 예선은 브라질의 전력을 감안할 때 당연하다면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었으며, 웨일즈는 당시로서는 특별히 강자라고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상대해 온 팀들과 프랑스는 달랐다. 그들에게는 레이몽 코파와 쥐스텐 퐁텐이라는 스타 플레이어들이 있었으며, 잘 조직된 WM 시스템으로 이미 예전부터 유럽에서 메인 스트림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었다. 5일 간의 휴식을 거친 6월 29일, 솔나의 라순다 스타디움에서 4강전이 열렸다.

7자갈로---10펠레--20바바---11가린샤
---------19지토---6디디---------
12N.산토스-15올랜도-2벨리니--14조르디
------------3지우마르------------

21빈센트------17퐁텐느--22비즈니스키
-------20피앙토니--18코파--------
--------12마르셀--13펭베른-------
----5레론드---10용크----4캐벨-----
--------------1아베-------------

포문을 열어제친 것은 브라질이었다. 2분, 용크가 걷어낸 볼이 가린샤를 맞고 나왔고, 용크는 태클로 이를 저지해 돌파를 막았으나, 세컨볼은 디디에게 떨어졌다. 디디는 정확하게 크로스를 페널티 에어리어 안쪽으로 보냈고, 바바는 가슴으로 볼을 트래핑 하여 원바운드 시킨 뒤 깔끔한 발리슛 선보이며 선취골을 넣었다.

9분 경 퐁텐느와 코파가 하프라인 부근에서부터 2대1 패스를 교환하며 전진했고, 코파의 라스트 패스가 브라질 수비의 뒷공간을 가르며 퐁텐느와 골키퍼 사이로 굴러갔다. 퐁텐느는 발을 먼저 갖다대어 골키퍼를 따돌린 뒤 이를 득점으로 마무리 지었고, 스코어는 동률이 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흔들릴 브라질은 아니었다. 킥오프를 하자마자, 디디는 두 명을 앞에 세워둔 채 키핑을 한 뒤, 상대가 조여올 때 쯤 산토스와 2대1패스를 하며 마크를 빠져나갔고, 다시 볼을 받으면서 상대를 등진 채 트래핑 하여 볼을 지킨 뒤, 재차 바바에게 2대1 패스를 시도했다. 그리고 바바에게 볼을 받은 직후 지체 없이 다시 바바에게 2대1 패스를 시도했다. 15초 동안 터치를 14번, 키핑을 두 번, 2대1 패스를 3번 시도하며 디디는 40M 가량을 우아하게 전진했다. 비록 바바가 컨트롤 미스를 범해 볼을 헌납하긴 했지만, 당시 디디의 기량이 당대 선수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지점에 놓여 있었음을 잘 보여준 장면이었다.

물론 디디 이전에도 보직처럼 경기장 전체를 조망하면서 팀의 밸런스를 유지하고 공격 방향을 결정지으며 경기에 대한 통제를 주 업무로 하는 플레이메이커 유형의 선수가 존재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짧은 패스와 정확한 볼터치, 안정적인 키핑, 영리한 무브먼트와 포지셔닝을 토대로 점진적인 빌드업을 행해나갈 수 있는 선수는 디디 외엔 유례가 없었다. 이에 반해 코파의 경우에는 날렵한 드리블과 정확한 롱패스에 장기가 있는, 그 당시 기준으로 전통적인 유형의 선수였다. 양자의 차이는, WM이라는 시스템과 이를 발전적으로 개선하여 개개인의 자유를 발휘할 영역을 확보한 4-2-4의 차이에 대응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당대성에 국한된 시스템, 그리고 그와 결부된 재능을 갖춘 개인이, 새로운 시스템과 그에 의해 합리성이 재고된 존재에 의해 어떤 식으로 도태될 수밖에 없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 당시에는 이길 수단이 없는 것처럼 보였던 마재윤이, 현실 그 자체를 극복하고 혁신적인 방법론을 들고 나온 김택용에게 얼마나 초라하게 패배했는지를 생각해보면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지금에서야 할 수 있는 이야기이고, 아직 경기가 시작한지는 10여 분 밖에 경과하지 않았으며, 표면적으로는 팽팽해보이는 상황이었다. 양팀은 서로 수비보다는 공격에 주력하는 경기를 했다. 비즈니스키가 프리였던 퐁텐느를 향해 땅볼로 크로스를 날렸고, 그는 아슬아슬하게 찬스를 날려먹었다. 그 직후, 바바는 골킥으로 넘어온 볼을 받아 두 명을 제쳐내며 볼을 지켜낸 뒤 왼쪽에서 돌진해오는 자갈루의 앞으로 패스를 보냈다. 패스를 보낸 자갈루는 중거리슛을 시도했고, 이것은 골대를 맞고 안에 들어갔다가 다시 골대를 맞고 밖으로 나왔다. 응당 득점으로 선언이 되었어야 하지만, 심판의 착각으로 인해 스코어에는 변동이 없었다. 프랑스 역시 지지 않고 응수하여, 비즈니스키의 측면돌파가 디 조르디를 괴롭혔고, 퐁텐느와 코파는 훌륭한 컨트롤을 바탕으로 볼을 운반하곤 했다. 다만 가린샤와 펠레는 상대적으로 잠잠했다. 가린샤를 경계해서인지 프랑스의 왼쪽은 공간이 잘 비지 않았고, 브라질도 오른쪽 위주의 공격을 잘 시도하지 않았다. 그래도 18분 경에 컷 인사이드를 하면서 2대1패스를 통해 문전 1M 지점까지 전진하여 슈팅을 날린 장면은 위협적이었고, 가린샤가 단순히 치고 달리기만 있는 선수는 아님을 보여주었다. 펠레는 볼을 받기에 적절한 포지션을 선정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는 듯 했고, 그 때문에 브라질이 전반을 우세하게 이끌었음에도 볼을 잡을 기회를 많이 얻지 못했다.

여러 차례 공방이 계속 되었다. 브라질은 디디가 볼을 공급해주어 바바에게 볼을 몰아주고, 간간히 자갈루가 왼쪽을 공략하는 식의 공격을 했고, 프랑스는 코파가 퐁텐느에게 패스를 주면 퐁텐느가 이를 키핑해내면서 직접 슈팅을 하든지 피앙토니, 빈센트, 비즈니스키 등에게 연결을 해주든지 하는 식으로 대항했다. 전반 양팀의 핵심 축은 디디-코파, 바바-퐁텐느였다.

비록 브라질의 공세에 대해 열세에 몰리긴 했지만, 프랑스는 그럭저럭 버텨나갈 수 있었다. 가장 핵심적인 요인은, 맞불을 놓고 있었음에도 용크를 중심으로 한 3백이 비교적 견고하게 브라질의 공격을 저지해냈기 때문이다. 펠레가 특별한 전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던 것에도 이들 때문이었다. 그러나 후반 36분, 바바와 용크가 볼을 경합하는 과정에서 용크가 치명적인 다리 부상을 당했고, 그것으로 균형은 깨뜨려진 것이었다. 당시에는 선수 교체라는 규정이 없었기 때문에, 프랑스는 사실상 10명이서 11명의 브라질을 상대해야 했고, 그에 따라 난항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39분, 디디의 강력한 중거리에 의해 브라질이 재차 리드를 잡았다. 2-1로 전반은 마무리가 되었다.

후반전이 시작되자마자 브라질은 볼을 가린샤에게 보냈다. 그는 레론드와 마르셀을 차례로 따돌린 뒤 크로스를 센터로 보냈다. 비록 슈팅으로 이어지진 못했지만, 소련전과 마찬가지로 기선제압의 효과는 있었다. 펠레 역시 이에 발맞춰 유효적절한 2대1 패스에 이은 슈팅을 보여주었다. 브라질은 그에 그치지 않고 전방에서 압박을 가하며 프랑스를 몰아붙였다. 거의 5분 동안 프랑스는 정신없이 몰매를 맞았다. 용크가 제대로 뛰기 힘들다는 것 역시 영향을 주었다.

그래도 한 차례 프랑스는 반격을 가했다. 코파와 퐁텐이 왼쪽에서 서로 패스를 주고 받으며 수비벽을 교란하다가, 코파가 중앙에 위치해있던 피앙토니에게 슈팅하기 좋게 패스를 주었고, 피앙토니는 강한 슛을 날렸다. 골문 구석을 정확히 노린 슈팅은 아쉽게도 지우마르의 놀라운 선방에 가로막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경기장을 넓게 쓰면서 느리더라도 확실하게 상대를 제압하는 브라질만의 특질이 52분 3번째 골 장면에서 잘 드러났다. 후방으로부터 중원에 있는 펠레에게 패스가 왔고, 펠레는 이를 자신보다 전진해 있던 바바에게 넘겨주었다. 바바는 왼쪽 풀백인 산토스에게 패스를 준 뒤 측면으로 침투하면서 2대1 플레이를 시도했고, 상대 수비는 측면 지역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는 다시 안쪽에 있는 펠레에게 패스를 했는데, 펠레는 볼처리 미숙으로 마르셀에 의해 커트를 당했다. 수비수를 맞고 흐른 볼은 후방에 있던 디디에게 갔고, 디디는 마르셀을 가볍게 따돌린 뒤 슈팅을 시도했지만, 이는 수비수를 맞고 굴절 되어 측면에 머무르고 있던 바바에게 연결되었다. 바바는 크로스를 시도했는데, 프랑스의 골키퍼 아베가 잡기에 좋은 방향으로 날아갔다. 그러나 아베는 이를 실수로 놓쳤고, 아베의 바로 앞에 있던 펠레가 자유롭게 골을 넣었다. 그리고 그것이 결승골이 되었다. 3-1이면 프랑스에게 있어 절망적이라고 할 것까지는 아니었지만, 숫적인 열세에 놓여있는 와중에 2점차로 벌어진 것이기에 의기소침해질 수밖에 없었다.

위기는 계속되었다. 가린샤가 굴려준 크로스를 펠레가 바바에게 주었고, 바바가 자신있게 찬 슈팅을 아베가 간신히 막아내면서 결승골을 내줬을 때의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만회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브라질은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볼을 돌려나갔으며, 프랑스의 전진은 번번히 차단당했다. 그나마 비즈니스키나 퐁텐이 가끔씩 개인 능력에 의해 볼을 직접 운반할 때에 그럴 듯한 공격이 이루어지긴 했지만, 큰 위협이 될 순 없었다.

64분 경, 항상 그랬듯이, 또다시 프랑스의 롱패스가 하프라인도 넘지 못하고 브라질에 의해 차단이 되었다. 볼을 차단한 조르디는 앞에 있던 가린샤에게 패스를 주었고, 가린샤는 마르셀을 제친 뒤 정확하게 펠레를 향하여 크로스를 주었다. 문전 5M 지점에서 볼을 받은 펠레는 골문에서 완전히 벗어난 슈팅을 날렸는데, 이것이 바바와 케벨을 차례로 맞고 다시 펠레의 앞에 떨어졌다. 펠레의 첫 골과 마찬가지로 이 것 역시 도마 위에 놓인 고기와 다름없었고, 스코어는 4-1로 벌어졌다.

경기 양상에 변화는 없었다. 프랑스의 롱패스는 모두 하프라인에 언저리에서 커트 당했고, 브라질은 여유를 가지면서 느슨하면서도 자유롭게 경기를 풀어나갔다. 결국 75분에 중원에서 지토와 더불어 볼을 돌리던 디디가 타이밍을 잡고 전진 패스를 시도했고, 펠레는 이것을 허벅지로 트래핑 한 뒤 떨어지는 볼을 향해 발리슛을 시도하였다. 볼은 골키퍼의 오른쪽으로 들어가서 네트를 흔들며 5-1을 만들었다.

경기가 마무리 되기 7분 전, 피안토니는 중앙에서 한 명의 수비수를 따돌리며 20M 가량을 전진한 뒤 아크 서클 부근에서 중거리슛을 시도하여 득점을 올리면서 늦은 시간에 위안거리를 만들었다. 그것으로 더 이상 서술할만한 가치가 있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으며, 브라질은 50년 이후 8년 만에 월드컵 타이틀에 도전할 자격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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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zard_Slayer
12/04/23 10:49
수정 아이콘
우왕~ 잘볼고 있습니다. 그런데 완전 옛날 얘기군요..90년대 얘기만 되도 흥미진진 할텐데
아직은 지켜볼때! 흐흐
사티레브
12/04/23 10:50
수정 아이콘
추천 후 정독 '-'

개인적으론 펠레보다 가린샤를 더 좋아해 뿌듯한 챕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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