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찮은 계기와 작은 인연을 통해서 양키스라는 팀을 알게 되고 응원하게 된 것이 생각해보면 퍽 오래 되었습니다. 미국 멀리 떨어진
팀이니 내 고장 팀도 아니고, 어린 시절에는 중계도 제대로 볼 수 없었던 지라, 이 팀에 대한 애정이 깊어지게 된 것은 고등학교때부터입니다.
당시는 로열 코어 4인방의 전성기이기도 했고, 제가 지금까지도 가장 사랑한 끈끈한 팀워크의 라인업이 완성되어 있을 때였죠. 한때 가장
사랑했던 LG트윈스가 제 마음의 지평선 저 너머로 사라진 이후에 제게 있어서 베이스볼은 곧 양키스, 메이저리그가 되었습니다.
뉴욕 양키스는 단언컨데, 세계 최고의 베이스볼팀입니다. 가장 오래된 오리지널 16 메이저리그 팀 중 하나이기도 하고, 100년의 메이저리그
역사에서 27회 우승을 달성한 최강의 팀이기도 합니다. 경제적으로도 현재 메이저리그 구단 중 18.5억달러로 최고의 구단 가치로 평가받고
있으며(2위 LA다저스 14억 달러), 연간 수익은 2011년 기준 1000만 달러 입니다. 축구팀 중 최고의 가치는 18.6억 달러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라고 하죠? 빚이 엄청나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만 제가 잘 모르는 분야라... 양키스가 구단 자체보다도 더 가치가 높은 YES
케이블 네트워크의 지분 상당수를 보유하고 있는 걸 감안하면, 전 세계 프로 스포츠 구단 중 최고의 가치를 지녔다고 봐도 될 듯 합니다.
단순히 오래되고 강한 것을 떠나서, 양키스의 역사와 그 역사를 만든 사람들은 현대의 베이스볼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농구에는
마이클 조던이 있고, 다행히도 우리는 그의 플레이를 직접 볼 수 있었습니다. 아쉽게도 베이스볼의 상징은 우리가 직접 보지 못한 선수, 바로
베이브 루스 입니다. 인류의 역사에 Before Christ와 Anno Domini가 있다면, 베이스볼에는 Before Ruth와 Anno Bambino가 있다고 합니다.
그만큼 그의 상징적인 의미는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메이저리그 역사에 손꼽히는 강팀, 이른바 '살인타선(Murderer's Row)'의 1927년
양키스는 루스와 철마 루 게릭을 비롯하여 4명의 명예의 전당 타자가 포진한 라인업이었지요. 양키스는 이들을 포함해서 총 23명의 명예의
전당 헌액자를 배출하였습니다. 그 가운데는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에도 출연(?)하는 마릴린 먼로의 남자, 미국의 연인 조 디마지오와
역사상 최고의 스위치타자인 미키 맨틀, 최고의 포수이자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것이 아니다.(It ain't over till it's over.)'라는 명언을 남긴
요기 베라 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승반지의 수로 명문팀을 따지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2위권 팀들이 아직 10회 우승도 못한 마당에 30회를 향해 질주 중인
양키스의 우승행진은 독보적이지요. 우승에 목마른 다른 팀들 중에는 아직 프랜차이즈 역사상 우승 반지가 하나도 없는 레인저스나,
순종 재위 2년 이후 우승을 못하고 있는 컵스 등도 있습니다. 양키스의 레전드 요기 베라는 열 손가락 모두에 우승 반지를 끼울 수 있다고
하니, 부익부 빈익빈입니다.
양키스가 최고 명문이자 인기구단으로 자리매김한 것에는 강력한 라이벌 팀의 존재가 큰 이유가 되고 있습니다. 우선 가장 먼저 꼽아야
할 것은 보스턴 레드삭스와의 뿌리 깊은 라이벌리입니다. 밤비노의 저주가 개시된 이래로 두 팀은 앙숙 중의 앙숙, 맞수 중의 맞수였습니다.
양키스와 레드삭스전은 아메리칸 리그 동부지구 최고의 흥행카드이자, 메이저리그 전체의 최고 흥행카드입니다. 양팀 간에는 서로의 선수
영입을 방해하고, 상대팀 구단 중심타자에 맞춰 투수를 영입하는 등 치열한 신경전이 벌어집니다. 얼마전 폐장하고 철거된 올드 양키
스타디움은 보스턴 팬들에 의해 'The House Of Pain'이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또 LA다저스가 있습니다. 브루클린 다저스가 이주한 팀이니만큼 한 때 지역 라이벌이었던 두 팀은 현재 각각 동부와 서부를 대표하는
명문 구단으로서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 둘이 맞붙는 Classic Series는 성사만 된다면 최고의 흥행을 보장할 월드 시리즈가 될 것입니다.
같은 도시를 연고로 하는 내셔널리그의 강팀 뉴욕 메츠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한지붕 두 가족인 이 두 팀의 홈구장은 지하철로 연결되어
있다고 해서, 이 두 팀이 맞붙는 시리즈는 지하철 시리즈(Subway Series)라고 불립니다. 다만 최근 들어 메츠가 이른바 '어메이징 메츠'
로 불릴 정도로 선수들의 몰락이 심각하여 예전과 같은 강팀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지 못한 점이 조금 아쉽습니다.
최근에는 보스턴을 제치고 동부지구의 새로운 강자로 떠오른 템파베이 레이스, 그리고 같은 아메리칸 리그로서 리그 챔피언을 다투는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와 텍사스 레인저스, LA 에인절스가 뉴욕 양키스의 새로운 라이벌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강팀들과 더불어
펼치는 162게임의 드라마는 매년 팬들을 흥분시키고 있습니다.
이런 양키스기에 세간에서는 적지 않은 비난을 듣기도 합니다. 특히 레드삭스의 래리 루치노 회장이 호세 콘트레라스 영입건에 즈음해
양키스를 '악의 제국'이라고 표현한 것은 유명한 일화입니다. 이 일로 'The Boss' 조지 스타인브레너 구단주가 격노하였고, 이후 양키스의
또 하나의 별칭이 되었습니다. 이는 특히 조지 스타인브레너가 양키스를 인수한 이래 끊임없이 이어졌던 공격적인 투자와 이를 통한
거물급 선수의 독점 등을 비난하는 풍조를 일으켰습니다. 하지만, 프로 스포츠 구단으로서 승리를 추구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고,
그를 위해서 공격적인 투자를 하는 것 역시 프로 구단 + 사업체로서 훌륭한 모습이라 보입니다. 명문 구단의 팬으로서 승리를 갈망하는
팬들에게 보스의 양키스가 보여준 모습은 좋은 인상으로 남아있습니다. 비록 무분별한 선수 영입이 전부 좋은 결과를 내지는 못했지만,
매 스토브리그에서도 큰 손으로서의 자리를 지키며 또 다른 흥미를 팬들에게 안겨주었죠. 특히 악의 제국과 같은 투자에 대한 비난이
레이스나 머니볼 영화로 유명해진 에이스같은 팀이 아닌 연봉총액 Top 5안에 늘 함께해온 동지 레드삭스에게서 오는 것은 어찌 보면
유머러스한 일입니다.
양키스가 팬에게 주는 또 하나의 만족은 바로 프랜차이즈 스타입니다. 양키스에는 늘 팀을 상징하는 선수가 있었습니다. 이르게는
팜부터 은퇴까지 양키스와 함께한 선수들이 여럿 있습니다. 현역으로 뛰고 있는 선수로서는 누가 뭐래도 금세기 최고의 투수인 메이저의
조자룡, 철벽의 수호신 마리아노 리베라와 잘생긴 외모와 늘 최선을 다하는 열정, 신사적인 매너를 겸비한 미스터 양키스 데릭 지터가
있습니다. 아쉽게도 이들과 함께 양키스를 지켜온 버니 윌리엄스, 앤디 페팃, 호르헤 포사다 등은 은퇴하였습니다. (올 초 포사다의 은퇴
후에 앤디 페팃은 마이너 계약을 맺으며 다시 양키 로테이션에 합류할 가능성을 비추었습니다.) 이들은 모두 양키 팜 출신으로서, 95년을
전후로 함께 데뷔, 자그마치 17시즌을 양키스에서만 뛴 선수들입니다. 모두들 자신의 자리에서 손에 꼽힐 만큼 훌륭한 활약을 해준 선수들
이며 최소 2명 이상이 명예의 전당에 입성할 것으로 보입니다. 대대로 프랜차이즈 스타 관리를 철저히 해온 팀답게, 수많은 HOFer를
배출했고, 이들은 아직도 양키스에 무한한 애정을 보내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요기 베라 옹은 매년 스프링캠프를 찾아 선수들에게
조언과 격려를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팬들 또한 그들에 대한 존경과 애정을 계속 가지고 있지요.
양키 프레셔라는 말이 있습니다. 양키스의 핀 스트라이프 유니폼은 내로라하는 선수들에게도 큰 압박감으로 작용합니다. 극성인 팬들과
늘 승리를 기대하는 구단에게서 오는 압박, 타 팀보다 후하게 쳐주는 연봉에 대한 부담은 퍽 대단한 모양입니다. 케빈 브라운, 랜디 존슨,
로저 클레멘스 등의 대투수들도 이 부담감에서 자유롭지 못했으며, 최고의 타자였던 A로드도 포스트시즌에서 죽을 쑤며 스스로의 플레이를
'개같았다'라고 자평하는 사태까지 벌어졌습니다. 하지만 그 압박을 이겨내고 핀 스트라이프를 빛낸 선수들에게는 정말 큰 명예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뉴 양키 스타디움의 외야 가운데 펜스 너머에는 양키스의 박물관이라 할 수 있는 모뉴먼트가 있습니다. 그 곳에는 고 조지
스타인브레너 구단주를 비롯한 양키스의 전설들의 모습과 자료가 전시되어 있지요. 양키스에는 총 16(+1)명의 영구결번자가 있습니다.
최초의 흑인 선수로서 전 구단 영구결번인 42번의 재키 로빈슨을 제외하면 그 리스트는 다음과 같습니다.
1. 빌리 마틴 : 감독. 통산 1253승 1013패.
3. 베이브 루스 : 외야수. 통산 .342, 714홈런, 2174안타, 2213타점.
4. 루 게릭 : 1루수. 통산 .340, 493홈런, 2721안타, 1995타점.
5. 조 디마지오 : 외야수. 통산 .325, 361홈런, 2214안타. 56게임 연속안타 기록 보유중.
7. 미키 맨틀 : 외야수. 통산 .298, 536홈런, 2415안타, 1509타점.
8. 요기 베라 : 포수. 통산 .295, 358홈런, 2150안타, 1430타점.
8. 빌 딕키 : 포수. 통산 .313, 202홈런, 2969안타, 1209타점.
9. 로저 매리스 : 외야수. 통산 .260, 275홈런, 851타점. 61호 홈런으로 베이브루스의 기록 경신(영화화됨.).
10. 필 리주토 : 유격수. 통산 .278, 1588안타.
15. 서먼 먼스 : 포수. 통산 .292, 113홈런, 1558안타.
16. 화이티 포드 : 투수. 통산 236승 106패. ERA 2.75, 1956K.
23. 돈 매팅리 : 1루수. 통산 .307, 222홈런. 현 LA다저스 감독.
32. 엘스턴 하워드 : 포수 통산 .274, 168홈런
37. 케이시 스탠젤 : 감독. 통산 1905승 1842패.
44. 레지 잭슨 : 통산 .262, 563홈런, 2584안타, 1702타점.
49. 론 기드리 : 통산 170승 91패, ERA 3.28.
영구결번이 확실시되는 데릭 지터와 리베라가 있고, 포사다와 조 토레 전 감독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양키스 영구결번
라인업이 2-지터, 3-루스, 4-게릭, 5-디마지오, 7-맨틀, 8-베라/딕키, 9-매리스, 10-리주토... 후덜덜합니다.) 이렇듯이 양키스는 과거와
현재를 통해 많은 스타를 배출, 이들을 아직까지 심장에 품고 있으며, 팬들에게 큰 기쁨과 자부심을 선사하고 있습니다.
서론이 길었습니다만, 쌩뚱맞게 양키스 홍보(?)글 비슷한 글을 적게 된 이유가 있습니다. 저는 정말 베이스볼이라는 스포츠를 사랑하고,
즐기는 사람입니다. 어릴적부터 서른 줄 넘은 유부남이 된 지금까지 한결같았죠. 그 시간 속에는 큰 위기들도 있었습니다. 2002년
엄청난 명승부를 펼쳐준 김성근 감독을 경질하며 내리막길을 자초한 트윈스가 이상훈, 김재현, 유지현의 프랜차이즈 스타들을 차례로
잃고 정체성을 내던졌을 때, 메이저에서 약물파동이 일어나 가장 좋아하던 투수인 로켓의 명예가 걸레짝이 되었을 때 등입니다. 하지만
그런 더러운 모습을 열심히 떨쳐내려는 듯이, 핀 스트라이프를 입은 선수들은 늘 브롱스의 그라운드에 글러브를 들고 달려나와 주었습니다.
5회가 되면 우리나라는 아니지만, 나라 사랑을 되새기는 노래를 함께 부르고, 9회가 되면 등번호 42번의 그가 든든한 뒷모습을 보여주며
마운드에 오릅니다. 데릭 지터가 95년에 데뷔한 이후 수많은 세기의 미녀들이 그와 사귀고 헤어짐을 반복했습니다만, 핀 스트라이프
유니폼과 어떤 공에도 1루까지 전력질주하는 그의 모습만은 한치도 변한 것이 없습니다. 이제 로빈슨 카노가 그들의 뒤를 이어서 최고의
세컨베이스맨으로서 프랜차이즈 대열에 합류하고 있습니다. 팬은 구단과 스타를 사랑하고자 합니다. 스타들은 성실한 플레이로, 구단은
아낌없는 투자와 관리로 팬들에게 보답합니다. 이것이 베이스볼, 나아가 모든 스포츠의 본질이 아닐까 합니다.
아까운 선수 하나가 또 떠나갔습니다. 비록 그가 속한 팀을 응원한 적은 한 번도 없지만, 그가 보여준 모습들은 한국의 '야구'가 이정도로
일어서기까지 큰 시금석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선수들이 대다수라고 해도 좋을만큼 언제나 쓸쓸하게 떠나가는 것을 보면, 제가
한국 야구 포기하고 안 보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구단에서 감독한테 져주라고 언질했다는 동네에 스포츠라는 신성한 단어가
가당키나 한 지도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양키스를 응원하듯이, 묵묵히 뛰는 선수들을 응원해주시는 팬분들이 많음을 늘
알고 있습니다. 비록 저는 마음 아픈 것을 견디기 싫어 등을 돌렸지만, 지금 남아 계시는 분들을 위해서 한국의 야구와 스포츠가 더욱
노력하고 발전했으면 합니다. 한국에도 양키스처럼 팬들이 자랑할 수 있는 그런 구단이 꼭 생겼으면 합니다. 너무 강해서, 너무 잘해서,
팬들에게 하도 잘해줘서 타 팀의 비난을 들을 지언정, 스스로의 팬들에게 등을 돌리는 구단들이 더 이상은 없었으면 합니다.
개막을 앞두고 2번 저지 다림질하다 두서없이 적어봅니다. 한국 야구 팬 분들 올해도 힘내십시오. 메이저리그 팬 분들, 올해도 지난
시즌만큼 재미있는 드라마가 펼쳐질 겁니다. 양키스 팬 분들... 모 옹의 마지막 시즌입니다. 부르짖다 죽을 각오로 응원 해줍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