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PGR21유저 여러분.
내가 뽑은 방송사별 예능 최고의 시절 KBS편을 올렸던 파랑하늘입니다.
지난번 KBS편에서 보여주신 관심이 이번 글을 작성하는데 많은 격려와 도움이 되었습니다.
저번 글을 올리고 나서 보니, 제 글의 스크롤의 압박이 엄청난 것 같더군요.
게다가 이번 MBC편의 글은 KBS편보다 분량도 많아서 전편과 후편으로 나누는 것으로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블로그에 올릴 때는 글과 사진이 괜찮은 비율로 올라간다고 생각했는데, pgr에 올리니 글이 옆으로 늘어지면서 블로그에 비해서 글이 상대적으로 빈약해 보이더군요. 그래서 pgr에 올리는 글에서는 일부 사진을 삭제하고 올리는 방향으로 조정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지난번 글과 동일한 도입부의 전제 부분과 각주는 앞으로 생략할 예정입니다.
자, 그럼 이번시간에는 MBC의 지난 10년간 최고의 시절을 꼽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사진 - MBC예능연표) 시트콤 바라기 MBC. 클릭하면 자동 다운됩니다.
[내가 뽑은 MBC의 최고의 시절 : 07년도]
MBC의 최고의 시절을 07년도로 꼽느냐 08년도로 꼽느냐를 두고 2개의 글을 각각 쓸 정도로 많은 고민을 했었다.
우선 07년에는 개그야 같은 공개코미디와 거침없이 하이킥이라는 가족시트콤의 부활이 함께했던 해였다. 동시에 일밤에서는 돌아온 몰래카메라와 정보와 예능을 잘 버무린 경제야 놀자와 동안클럽으로 동시간대 1위를 유지하고 있었다. 금요일 저녁 놀러와가 드라마, 영화 홍보의 장이라는 비판에 시달렸지만 준수한 시청률은 유지하고 있었고, 이런 비판에 대한 대응으로 내놓은듯한 황금어장의 무릎팍도사가 흥행하게 된다. 다만 토요일에 방영되었던 느낌표와 쇼바이벌이 좋은 내용에도 시청률이 저조했던 점, 목요일 심야에서 여러 프로그램이 실패하고 백분토론이 그 자리를 다시 맡게 되었던 점은 아쉬운 점이라 할 수 있다.
한편, 08년도는 무한도전의 시청률 정점의 해였고, 일밤에서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우리결혼했어요와 세바퀴가 탄생한 한해였다. 금요일에서 월요일로 옮긴 놀러와의 월요일 경쟁이 시작된 해이기도 했고, 황금어장의 자투리코너로 시작한 라디오스타가 점점 인기를 끌면서 명랑히어로와 라라라 같은 라디오스타의 4MC를 주축으로 한 프로그램이 탄생하기도 했다.
그러나 일밤의 시청률은 1박2일과 불후의 명곡을 앞세우던 해피선데이와 체인지, 패밀리가 떴다를 방영하던 SBS에 비해서는 부진했고, 07년에 짭짤한 이익을 봤던 거침없이 하이킥의 후속으로 준비했던 시트콤들은 신통치 않은 성적들을 냈으며, 무한도전은 08년 12월에 동시간대 1위를 스타킹에 빼앗기는 굴욕을 겪고, 무릎팍도사는 면죄부 도사라는 조롱을 받던 시기이기도 했다.
결국, 두 해를 비교해보면 무한도전의 최고 시청률은 08년에 나왔지만 전반기 내내 위기설에 시달렸고, 막판에는 스타킹에게 1위 자리를 내준 점을 고려했을 때 07년 무한도전의 우세라고 봐야할 것이다. 일밤의 경우는 우리결혼했어요, 세바퀴가 이후 몇 년간 MBC를 먹여 살리긴 하지만 당시 일밤의 시청률 자체는 경쟁프로그램에 밀려 형편없었다는 점에서 역시 07년 우세라고 봐야 할 것이다. 황금어장을 살펴보면 08년에 무릎팍도사가 연예인이 아닌 명사로 섭외의 방향을 돌림으로써 면죄부 도사라는 비판을 극복한 점 등을 고려했을 때는 근소하게 08년의 우세로 여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른 요일 프로그램의 성적은 모두 두 해 동안 고만고만했다.
따라서 일밤과 무한도전의 안정적인 동시간대 1위의 기록과 거침없이 하이킥으로 시트콤의 부활을 가져왔다는 점에서 07년도를 MBC 예능의 전성기로 꼽게 되었다.
시트콤 - 거침없이 하이킥(2006.11.06.~2007.07.13.)
2007년 20위권 집계 횟수 // 일간 평균 순위 // 최고시청률 // 평균시청률 (Agb닐슨 기준)
131/131회 // 6.5위 // 20.4% // 16.1%
김병욱 감독은 SBS에서 순풍산부인과,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 등의 시트콤을 연출하면서 SBS 대박 시트콤의 역사를 써온 사람이다. 그러던 그가 2005년 SBS에서 귀엽거나 미치거나라는 시트콤을 연출하게 되는데 6개월로 예상하고 있던 시트콤이 4개월 만에 종영되어 버리고 만다. 당시 SBS에서는 시청률 저조를 이유로 들었지만 제작비 긴축의 희생양이 아니냐는 섭섭함을 본인은 물론 네티즌, 동료PD들이 나타냈었다. 조기종영의 이유가 SBS측의 이유와 일치하든 안하든 이 사건은 시트콤 장인 김병욱에게 섭섭함을 일으켰던 것 같다. 그리고 2006년 그런 장인의 섭섭함이 거침없이 하이킥이라는 유쾌한 복수극을 빚어내게 된다.
MBC가 욕하면서도 본다는 강력한 고정시청자층을 가지고 있는 KBS의 일일드라마와 정면 대결을 해야 하는 8시 20분대에 거침없이 하이킥을 배치한 것으로 미루어 보아 하이킥에 건 기대가 대단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역시 KBS의 일일드라마는 강했다. 하이킥의 첫 방송 시청률은 7.1%였고, 그 이후 계속 한자리수 시청률을 기록하였다.
또다시 조기종영을 맞이하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생길 무렵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바로 거침없이 하이킥의 재방송 시청률이 당시 MBC 드라마 주몽과 SBS드라마의 재방송 시청률보다 높게 나온 것이다. 이 재방송 성적을 보고 MBC는 현재 중장년층의 채널이 MBC로 돌아오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판단과 동시에 종영이 임박한 경쟁 드라마가 끝나기만 한다면 차기 드라마와 경쟁에서는 승산이 있다는 계산이 섰을 것이다.
(사진 – 거침없이 하이킥, 야동순재 에피소드 中) 야한동영상, 야동 나와라, 야~동
이 예상은 적중했다. KBS 일일드라마 종영 후 하이킥은 자체최고 시청률 기록을 계속 갈아 치워가며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다. 이순재가 야동을 보다가 들킨 야동순재 에피소드나, 주도권이 역전된 독특한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관계였던 나문희와 박해미의 호박고구마 에피소드처럼 이전 시트콤에서 다루어지지 않았던 신선하거나 공감대를 이룰 수 있는 에피소드들이 이슈를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방영되기 전, 방영되는 중에도 큰 관심을 몰고 다녔던 거침없이 하이킥은 종영 이후에도 작품에 출연했던 신인 연기자들의 행보에 관심이 쏠렸다. 이전의 논스톱이 톱스타를 향한 멈추지 않는 신인들의 등용문이 되었던 것처럼 거침없이 하이킥에 출연했던 신인들도 톱스타를 향한 경쟁 대열에 들어섰다. 유미역을 맡았던 박민영은 아이앰샘과 성균관 스캔들, 김범은 에덴의 동쪽과 꽃보다 남자 등을 거치며 톱 배우를 향한 경쟁 대열에 들어섰다. 그리고 정일우는 현재 인기를 끌고 있는 해를 품은 달에 출연중이다.
그러나 글쓴이의 욕심에 가까운 아쉬운 점이 하나있다면 하이킥이 KBS 일일드라마의 시청률을 넘지 못한 것이었다. 수없이 자체 최고시청률을 갱신하며 24.2(TNS 기준)까지 상승했지만, 동시간대 1위의 자리에는 오르지 못했다. 이 점이 아쉽긴 하지만 제작비와 저조한 시청률 등의 이유로 몰락해가던 시트콤의 부활, 스타의 발굴, 차기작에 대한 기대, 재미와 감동까지 줬던 거침없이 하이킥이 MBC예능의 전성기를 이끌었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월요일(개그야 & 지피지기)
개그야(2006.02.09~2009.09.27)
2007년 20위권 집계 횟수 // 일간 평균 순위 // 최고시청률 // 평균시청률 (Agb닐슨 기준)
16/33회 // 11.9위 // 16.9% // 12.8% (월요일 방영 기록만 계산)
(사진 - 개그야의 사모님 코너) 어리숙한 사모님이 먹여 살린 개그야...
2006년에 방영되기 시작한 개그야는 개콘과 웃찾사에 뒤이어 공개코미디 붐의 대열에 합류한 프로그램이었다. 개그야의 대표코너였던 사모님은 품위와 기품이 있어 보이는 사모님이 실상은 품위에 맞지 않는 경박한 언행이나 행동을 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이 드러나면서 웃음을 이끌어 냈는데, 수년간 침체기에 있었던 MBC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으로 동시간대 1위로 올라서게 하는 데 큰 역할을 하게 된다.
사모님 코너에서 사모님 역을 했던 김미려는 이 코너를 계기로 예능, CF, 연기, 가수와 같은 다방면에 도전하게 될 기반을 얻게 될 정도로 크게 흥행했던 코너였다. 2006년 12월에 동시간대 1위에 올라선 개그야의 인기는 2007년까지 이어지게 되고 별을 쏘다(조원석, 최국), 주연아(정성호, 김주연), 크레이지(정성호, 양헌, 신동수, 오정태) 등의 코너도 흥하게 된다. 이런 성과에 대한 보답으로 MBC측에서는 출연진과 작가들에게 4박 5일 태국휴가를 보내주기까지도 했다.
(사진 - 좌 프로게이머 김택용, 우 개그야 팀) 한쪽은 태국 갔다 와서 혁명을, 다른 한쪽은 태국 갔다 와서 떡실신...
그러나 반짝인기에 취해 들었던 축배는 너무나도 독했다. 2007년 3월 사모님 코너의 종영 이후 시청률이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사모님의 빈자리를 채우고 시청률을 유지할 만한 후속 코너를 만들지 못한 탓이었다. 이래저래 노력해봤지만 사모님의 빈자리는 끝내 채워지지 못했고, 4월에는 20위권에 들지도 못하며 동시간대 최하위의 굴욕을 맛봐야 했다. 결국, 5월부터 월요일에 투입된 미녀들의 수다와 야심만만의 경쟁을 그저 바라만 보던 개그야는 시청률 동시간대 최하위의 굴욕을 견디지 못하고 다른 시간대로 옮겨가게 된다.
지피지기(2007.05.24~2008.03.24)
2007년 20위권 집계 횟수 // 일간 평균 순위 // 최고시청률 // 평균시청률 (Agb닐슨 기준)
4/20회 // 16.25위 // 12.2% // 10.5% (월요일 방영 기록만 계산)
(사진 - 개편 전 후 지피지기 진행자들) 개편 후 메인 진행자는 아무리 봐도 현영 같은데...
2007년 굴욕적으로 물러난 개그야의 후속으로 월요일 심야를 책임지게 된 지피지기는 사실 많은 사람이 박명수의 1인자 도전 실패작으로 기억하고 있지만, 박명수가 투입된 것은 2007년 11월의 얘기로 그 이전에는 이영자와 박수홍이 진행을 맡고 있었다. 지피지기는 처음에 목요일 심야에 방영되면서 해피투게더 프렌즈, 헤이헤이헤이 시즌2 사이에서 경쟁하다가 07년 8월 월요일 심야로 시간대를 옮긴다. 월요일로 시간대를 옮기기 전 목요일에서 동시간대 1위를 기록하기도 하는 괜찮은 경쟁력을 보여줬었다. 이런 성적의 원동력은 이영자의 복귀작에 쏟아진 관심과 게스트가 서로에 대한 퀴즈를 풀어가면서 알아가는 신선한 컨셉, 그리고 섭외에 MC였던 이영자와 박수홍이 직접 나섰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월요일로 옮겨온 지피지기는 경쟁프로그램에 밀리기 시작했고, 결국 프로그램 존폐를 놓고 결단을 내려야하는 상황까지 오게 된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 박명수와 정형돈, 현영이 진행자를 맡게 된다. 진행자의 교체와 함께 코너도 MBC아나운서들과 함께 좋은말팀 나쁜말팀으로 나눠 금지어를 말하면 벌칙을 수행하면서 토크를 진행하는 코너도 새롭게 만들었다. 하지만 시청률은 크게 변동이 없었다.
이후 수년간 SBS의 월요일 심야를 책임지면서 동시간대 1위의 자리를 지키던 야심만만이 종영됐음에도 시청률 변동이 없었기 때문에 MBC에서 과감하게 폐지 결정을 내린 듯 하다. 박명수와 이영자 두 사람에게 너 자신을 알아야 시청률도 나온다는 지피지기의 아픈 교훈을 남긴 이 프로그램은 2008년 놀러와에게 자리를 넘겨주고 폐지를 맞이하게 된다.
수 – 황금어장(2006.07.07.~)
2007년 20위권 집계 횟수 // 일간 평균 순위 // 최고시청률 // 평균시청률 (Agb닐슨 기준)
49/52회 // 8.1위 // 17.8% // 13.8%
황금어장은 06년 7월에 시청자들의 사연을 콩트로 재구성하는 실화극장을 중심으로 시작된 프로그램이었다. 초기에 일본에서 방영되었던 smapxsmap의 일부 코너를 표절했다는 의심을 받았으나 시청자들의 사연으로 콩트가 구성된다는 점에서 차별성이 있다는 답변과 함께 의심받는 세부사항들은 바꾸는 식으로 대응했다. 이런 의혹 속에서 금요일 저녁에 방영되던 황금어장은 06년 가을 개편으로 현재 방영되는 수요일 심야로 옮겨오게 된다.
수요일 심야로 옮겨오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은 2007년에 무릎팍도사라는 코너를 만들게 된다. 당시에 대부분의 예능프로그램 중 특히 토크쇼는 영화나 드라마 홍보의 장으로 변질된 상황에서 그간 시청자를 향해 잰체하고 있던 게스트들의 약점을 건드리는 무릎팍도사의 질문들은 시청자들에게 통쾌함을 가져다주며 흥미를 사로잡았다. 07년 황금어장은 무릎팍 도사와 함께 교양프로그램밖에 없던 수요일 저녁을 손쉽게 제압하고 동시간대 1위를 기록하게 된다. 그러나 07년 후반 무렵부터 무릎팍도사의 날이 무뎌지기 시작하면서 사건사고가 있던 연예인들을 불러서 면죄부나 주는 면죄부 도사라고 조롱당하기도 했다.
(사진 – 무릎팍도사) 강호동의 다른 프로그램은 몰라도 이때의 무릎팍도사는 보고 싶습니다.
한편, 2007년 6월에 첫선을 보인 라디오스타는 게스트를 초대해서 음악에 관한 고품격 토크를 나눠본다는 컨셉의 토크쇼였는데 사실 이것은 표면적인 컨셉일 뿐 대화의 주제는 사실상 무릎팍도사의 마이너버전으로 봐야 할 것이다. 게스트를 불러놓고 게스트는 물론 4MC끼리 물고 뜯는 경우가 태반이고, 고품격 음악토크라고는 하지만 음악 얘기는 커녕 대부분의 주제는 게스트가 꺼리는 주제거나 전혀 뜬금없는 얘기들이 주를 이루는 경우도 많았다. 적나라한 대화주제 탓에 무릎팍의 무뎌진 날을 보완해 보려는 노력인 것으로 보이기도 했다.
다른 토크쇼와는 달리 진행자들 간의 말소리가 물리는 일이 빈번한 라디오스타는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는 산만한 토크쇼라는 평을 받았었다. 그러나 김국진 투입 이후 4MC간의 호흡이 맞아 들어가기 시작하면서 무릎팍도사와는 다른 직설적인 방식에 조금씩 매니아층이 늘어가는 상황속에서 2007년을 마무리하게 된다.
(사진 – 라디오스타) 이때의 라디오스타도 보고 싶은데 신정환은 오래 걸리겠죠?
2008년 무릎팍도사는 2007년으로부터 넘겨받은 면죄팍이라는 숙제를 게스트 섭외 대상을 박세리와 같은 연예계 외의 명사들로 눈을 돌림으로써 극복하게 된다. 07년 08년 두 해 동안 황금어장의 시청률이 경쟁프로그램과 비교했을 때 압도적이진 않았지만, 꾸준히 10%대를 기록하면서 동시간대 1위는 잘 유지했으며, 2008년 라디오스타의 경우 4MC를 중심으로 명랑히어로나 음악여행 라라라 같은 프로그램이 만들어질 정도로 MBC의 신뢰를 받기도 하였다.
2007년과 2008년의 황금어장을 비교했을 때 2008년이 더 낫다는 생각이 들지만 2007년의 황금어장도 동시간대 1위를 유지하고 많은 이슈을 만들어 냈다는 점에서 2007년의 MBC예능의 전성기를 함께 이끌어 나갔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목요일(에너지 &아이스크림)
에너지(2006.11.09.~2007.03.01.)
(목요일에 방영된 두 프로그램 모두 순위에 올라간 적이 없어서 시청률 기록은 생략합니다.)
오래전부터 MBC의 목요일 심야는 100분 토론의 자리였다. 그러나 2005년 가을 개편 때 목요일 심야에 섹션TV연예통신을 잠시 배치했다가 뺀 것을 시작으로 MBC목요일 심야의 징크스라고 불릴만한 예능 패배사가 시작된다.
먼저, 2005년에는 가을개편부터 2006년 5월까지 단 6개월 만에 섹션TV, 웃는day, 개그야와 같은 3개의 예능 프로그램이 목요일 심야를 거쳤다가 떠난다. 그 이후에 폭풍 개편의 후유증을 잠시 추스르고 나서 다시 2006년 가을개편 때 목요일 심야에 예능을 배치하는데 그 프로그램이 바로 에너지이다.
(사진 – 에너지) 이 프로그램 이름이 에너지가 되어도 되는지 토론해 보죠.
에너지는 연예인 출연자들이 한 가지 주제에 대해서 찬성과 반대로 나누어서 토론을 펼치는 프로그램이었다. 이런 포맷에 대해서 조금만 보완하면 괜찮을 것 같다는 호평을 보내는 시청자들도 있었지만, 당시 목요일 심야에는 해피투게더와 헤이헤이헤이 시즌2가 시청률을 놓고 촘촘한 대립을 벌이고 때문에 에너지가 비집고 들어갈 만한 틈은 생기지 않았다.
경쟁에 밀려 한자릿수 시청률을 계속 기록하던 에너지는 한차례 개편을 하게 되는데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라는 구전민요에 대해서 알아보는 형태로 개편했다. 그러나 시청자들은 개편에 대해서 혼란스러워하고 올드앤뉴와 쟁반노래방을 섞은 것 같다는 신통치 않은 반응을 보였다. 에너지라는 제목이 이 프로그램과 도대체 무슨 연관이 있는지 쉽게 파악되지 않는 것처럼 프로그램도 시청자에게 별다른 에너지를 전달하지 못하고 종영되고 만다.
아이스크림(2007.03.15.~2007.05.10.)
(사진 - 아이스크림) 여름이 오기전에 다 녹아버린 아이스크림.
에너지가 처참하게 종영된 이후 심기일전해서 다시 내놓은 아이스크림은 인간의 본성에 대해서 탐구해본다는 기획의도를 가진 프로그램이었다. 그러나 아이스크림도 MBC 목요일 심야의 징크스를 피하지 못하고 7회 만에 종영을 맞이하게 된다. 차라리 파일럿이라 불렸으면 덜 비참했을 이 프로그램은 볼 새도 없이 종영되어 버렸고, 그 짧은 역사를 증명하듯 프로그램에 대한 뉴스기사도 얼마 존재하지 않는다. 맛볼 새도 없이 봄날 아이스크림 녹듯이 아이스크림의 짧은 역사는 끝이 나고, 그 자리를 앞서 월요일에서 이야기했던 지피지기가 채우게 된다.
목요일에 방영했던 지피지기는 위에서 설명한 대로 괜찮은 성적을 내며 동시간대 1위를 두고 다툼을 벌이지만 월요일 시간대를 구원하기 위해 목요일 심야의 자리를 내주고 월요일 심야로 가서 비참하게 마무리된다. 그리고 그 자리를 다시 100분 토론이 자리 잡음으로써 2007년 목요일 심야의 씁쓸한 예능 외도는 일단락되게 된다.
그러나 여기서 MBC의 도전은 끝나지 않고 2010년 가을 개편에는 여우의 집사와 추억이 빛나는 밤에를 투입했다. 여우의 집사는 9주 만에 시청률 저조로 종영되고, 추억이 빛나는 밤에는 호평 속에 동시간대 1위 해피투게더를 계속 위협하긴 했으나 결국 단 한 번도 꺾지 못하고 종영하게 된다. 다시 2011년 가을개편에는 k팝 로드쇼와 현재 방영되고 있는 주병진쇼를 통해서 예능 재도전을 했는데 주병진쇼의 성적이 신통치 않은 점을 미루어 봤을 때 MBC 목요일 심야 예능의 부진은 계속되지 않을까 싶다.
원래 글이 긴데 특히, MBC편은 글이 길어서 전편과 후편으로 나눠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후편에서는 금요일에서 일요일까지 방영되었던 예능과 간략한 총평이 다뤄집니다. 긴글 봐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