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pgr21여러분. 방송에 관한 개인 블로그를 시작했는데 오랫동안 눈팅하면서 배우고 즐겨온 pgr21에서도 글을 나누고 싶어서 글을 올립니다. 제 글을 통해서 함께 추억과 의견을 공유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개인 블로그에도 함께 쓰는 글이다 보니 일일이 수정할 수가 없어 경어체로 쓰지 못한 점은 양해 바랍니다. 많은 지적과 격려 바랍니다.
아래의 연표를 통해 지난 10년간 각 방송국에서 어떤 예능 프로그램들이 방송되었는지 살펴보고 최고의 시절을 함께 꼽아보자. 최고의 시절은 글을 보는 사람마다 각자 다르게 꼽을 수 있겠지만, 이어지는 글은 시청률과 기사들 그리고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많은 사람에게 전성기라고 여겨질 만한 시절을 선정했고, 그 기간에 방영된 프로그램에 대한 글을 풀어놓았다.
구할 수 있는 참고자료가 적고, 시청 경험이 부족해서 2004년 이전은 선정하지 않았고, 주말 황금시간대 예능(18-20시)과 평일 심야시간대(23-00시)의 예능을 위주로 비교하였으며, 그 해에 활약이 대단했다고 생각하는 경우는 위의 시간대에 방영되지 않았다고 해도 따로 다루었다.1)
오늘은 그 첫 번째 글로 KBS의 지난 10년간 최고의 시절을 꼽아보자. 물론, 예능 프로그램이 다수 방영되는 KBS 2TV를 기준으로 한다.
(사진 - KBS 예능 연표) 클릭하면 자동으로 다운됩니다. 퍼가셔도 됩니다. 막 퍼가세요.2)
[내가 뽑은 KBS의 최고의 시절 : 2006년]
이 시기에 KBS 평일에는 상상플러스(화), 해피투게더 프렌즈(목)가 방영되고 있었고 주말에는 스펀지(토), 스타골든벨(토), 해피선데이(일), 개그콘서트(일) 등이 방영되고 있었다. 이때 KBS는 공익성과 재미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기 위한 프로그램을 기획, 방영하여 흥행에 성공했다.
물론 해피선데이가 일요일 최강자로 자리 잡기 시작한 뒤인 2007년 이후의 시기를 전성기를 꼽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굳이 2006년을 꼽은 이후는 2005년에 시작해서 2006년에 안정세에 들어선 프로그램들이 2007년 이후 하락세를 겪었기 때문인데 상상플러스와 스펀지가 대표적인 예이다.
또한, 프로그램의 질은 고려하지 않고 생각했을 때, 최근 3년간 중요한 시간대에서 시청률이 저조했던 프로그램들이 너무 많은 점도 있다. 토요일에서 백점만점, 명받았습니다, 천하무적토요일 등이 있었고, 심야에서는 승승장구, 해피버스데이, 야행성 등이 그랬다.
이런 이유로 KBS의 전성기를 꼽는 데 시간은 자꾸 뒤로만 흘러갔고, 결국, 2005년과 2006년을 놓고 고민하게 되었는데 2005년 KBS에서 올드미스다이어리라는 시트콤의 성공이 있긴 했지만, 2006년에 전성기를 이끌었던 프로그램들이 아직은 태동기에 있어서 경쟁프로와의 경쟁에서 뒤처지고 있었다는 점이 2006년을 KBS의 전성기로 선정하게 된 이유였다.
그럼 이제부터 2006년 KBS의 화려했던 예능 전성기를 이끈 프로그램들을 살펴보자.
화 - 상상플러스(2004.11.02.~2010.01.26)
2006년 20위권 집계 횟수 // 일간 평균 순위 // 최고시청률 // 평균시청률 (AGB닐슨 기준)
50/52회 // 3.54위 // 25.1% // 19.4%3)
상상플러스는 2007년 탁재훈에게 연예대상을 안겨주었다.
2007년 이후 상상플러스가 전성기가 지나 완만한 하락세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그 해에 탁재훈이 연예대상을 받을 만한 사람이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었지만, 아마 상상플러스의 전성기였던 06년이었다면 논란이 적었을 것이다.
상상플러스는 2004년 시청자 참여를 통해 진행되는 리플하우스라는 코너와 시작했다. 초기에 시청률이 6%가 나올 정도로 시청률이 저조했던 상상플러스의 전성기는 2005년 5월부터 세대공감 OLD&NEW 라는 코너를 진행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세대공감 OLD&NEW는 신세대들의 신조어나 기성세대의 옛말을 출연자들이 맞춰보는 코너였다. 언어를 통해 신세대와 구세대 간의 교감을 이끌어내고 지금도 많이 쓰이는 설레발, 복불복 같은 묻혀있었던 좋은 우리말들을 발굴하는 공익성을 지님과 동시에 그 단어를 맞추는 과정에서 MC들의 실수나 토크를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탁재훈의 '아~ 왜~?', 노현정의 '공부하세요' 등의 유행어를 만들어 내며 05년 하반기 한자릿수 시청률을 벗어났다. 상승세 속에서 10% 중반대에 진입한 상상플러스는 05년 연말이 돼서는 드디어 20%대에 진입했다. 그리고 06년 1월 김수로 편에서 꼭짓점 댄스를 만들며 30%(TNS 기준)를 찍고 한동안 20%대의 시청률을 기록함으로써 KBS 예능 전성기의 시대를 이끌었다.
(사진 - 상상플러스 진행자들) 함께 있을 땐 우린 아무것도 두려울 것이 없었다.
상상플러스에서 노현정의 역할은 굉장히 중요했는데 메인 진행자로서의 역할도 중요했지만, 4MC의 짓궂은 장난이나 말들을 받아주지 않는 차가운 이미지의 그녀가 4MC와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다가 본인의 실수나 4MC의 재치로 빈틈을 보이는 모습이 재미를 주는 중요한 포인트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06년 가을 결혼을 이유로 얼음공주로 사랑받던 노현정 아나운서가 상상플러스를 떠난 이후 2대 안방마님부터 프로그램에 대한 열기도 서서히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2대 안방마님이었던 백승주 아나운서는 06년 한글날 특집과 100회 특집을 거치며 프로그램에 잘 안착했지만 상상플러스의 포맷이 오래됐기 때문에 이전과 같은 상승세는 만들어 낼 수 없었다. 07년 같은 시간에 경쟁 예능 프로그램이 없었기 때문에 안정적인 시청률을 기록하기는 했지만, 3대 안방마님 최송현 아나운서가 들어선 상상플러스의 시청률은 여전히 10%대 전반에서 지지부진하였다.
식상함을 해소하기 위해 OLD&NEW를 폐지하며 새 코너들을 새롭게 선보였지만, 박수칠 때 내려오지 못한 괴롭고도 긴 내리막의 시작이었다. 08년 4월 시즌2로 개편, 상상더하기로 이름을 바꾸고 이효리를 기용했으나 실패. 이지애 아나운서를 기용해서 시즌1의 포맷으로 돌아갔으나 실패. 시즌3에 김신영을 기용하며 이전과 같은 부흥을 노렸지만 실패했다. 결국, 화려하고 또 처절했던 상플의 7년 역사는 2010년 한 자릿수 시청률로 마무리 되고 만다.
목 - 해피투게더 시즌2 프렌즈(2005.05.05.~2007.06.21)
2006년 20위권 집계 횟수 // 일간 평균 순위 // 최고시청률 // 평균시청률 (AGB닐슨 기준)
51/52회 // 5.76위 // 20.9% // 15.5%
(사진 - 해피투게더 시즌2 프렌즈) 10년간 KBS 목요일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는 해피투게더
해피투게더는 오랜 시간 동안 KBS 목요일을 지켜주고 프로그램이다. 시즌1은 동요를 1소절씩 불러가면서 전곡을 완성하는 쟁반노래방이라는 코너와 함께 진행되었는데 박세리, 서장훈 선수 등이 출연할 정도로 대단한 인기를 누렸다.
그러나 2004년 SBS가 가을 개편을 맞아 그런거야?, 생~뚱맞죠? 등의 유행어를 만들면서 무서운 기세로 치고 올라오던 웃음을 찾는 사람들(이하 웃찾사)을 자신만만하게 목요일 심야에 해피투게더와 맞대결을 시켰고, 의도대로 12월경 웃찾사는 해피투게더를 앞지르는 데 성공하게 된다. 2005년 봄 아직 웃찾사와 경쟁은 할 만하지만 다소 식상하다는 의견을 받아들여 해피투게더 시즌2 프렌즈로 개편을 하게 된다.
(사진 - 해피투게더 프렌즈 中) 반갑다 친구야
해피투게더 프렌즈는 진짜와 가짜 친구들이 섞여 있는 가운데에서 스타가 진짜 친구를 찾아내고, 또 그 친구를 통해서 스타의 옛 모습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는 프로그램이었다. 다양한 사연을 가진 친구와의 만남을 통해서 묻어나는 감정은 시청자들의 감성을 자극했고, 그런 친구들이 밝히는 스타의 옛 모습을 통해 웃음을 이끌어 냈었다.
방송이 끝난 뒤 스타의 옛 친구를 통해 밝혀진 과거의 모습이 꾸준히 기사화될 정도로 인기를 끌어가던 프렌즈는 결국, 05년 7월 노예계약 파문으로 휘청거리던 웃찾사의 시청률을 앞지르며 7개월 만에 시즌1의 복수를 해내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웃찾사가 파문의 여파를 수습하고 다시 해피투게더와 경쟁해볼 여력이 생기는 데 까지는 꼬박 1년이 걸렸기 때문에 2006년 여름까지 해피투게더는 10% 후반의 시청률을 유지하며 웃찾사와의 동 시간대 1위 경쟁에서 우위를 보였다.
2007년 유재석이 오랜 시간 진행하며 애착을 가져온 이 프로그램은 유재석의 측근이 참여한 프로그램으로 타격을 받게 된다. 그 프로그램은 당시 소속사 사장이었던 신동엽과 놀러와의 안방마님 김원희가 내놓은 헤이헤이헤이 시즌2였다. 해피투게더는 헤이헤이헤이가 저 연령층을 흡수하면서 시청률에 큰 타격을 받게 되었다. 거기에 웃찾사도 05년 웃찾사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이전의 개그맨들을 불러들여 웃찾사의 재부흥을 일으키려는 시도가 성공하였다. 오래된 포맷으로 삼파전에서 경쟁을 계속 이어가기는 힘들었고, 결국, 해피투게더는 2007년에 시즌 2를 마무리했다.
토 – 스펀지(2003.11.08~2007.11.17), 스펀지2.0(2007.11.24.~2010.05.07.), 스펀지0(2010.05.14~)
2006년 20위권 집계 횟수 // 일간 평균 순위 // 최고시청률 // 평균시청률 (AGB닐슨 기준)
52/52회 // 5.36위 // 16.8% // 14.0%
(사진 - 스펀지) 빛나라 KBS 예능의 별!
호기심천국이 종영(02.10.22)한 지 딱 1년 만인 2003년 말에 시작된 스펀지는 호기심 천국이 남긴 인포테이먼트의 빈자리를 잘 파고든 프로그램이라고 볼 수 있겠다.
스펀지는 진행자와 패널이 새로운 지식이 담긴 문장의 빈칸을 맞추고, 그 지식이 과연 얼마만큼의 가치가 있는지 지식평가단과 함께 별점으로 나타내는 프로그램이었다. 이러한 포맷 때문에 초기에 일본방송의 트라비아의 샘이라는 프로그램을 표절한 것이 아니냐는 논란에 휘말린 적도 있었다. 이에 KBS는 스펀지의 진행방식은 예능프로그램에서 보편적으로 쓰이는 방식이라고 답변하며 논란을 잠재우려 애썼다.
이런 논란 속에서 여기저기서 제보된 신선한 지식으로 무장했던 스펀지는 동시에 방영되고 있던 SBS 솔로몬의 선택과 맥을 못 추고 있던 MBC 토요일 예능을 차근차근 밟아 올라가면서 04년 2월 15%, 그 해 8월에 20%의 시청률을 달성했다. 그 이후 20% 안팎의 시청률을 유지하는 인기에 힘입어 05년 2월에는 그간 프로그램의 성과를 책으로 펴내기도 했다.
(사진 - 무서운 스펀지) 사실은 (무한도전이) 무서운 스펀지
06년 초까지 토요일 원탑을 유지하며 마르지 않는 시청률의 샘으로 남으리라 생각했던 스펀지는 06년 5월 무한도전의 독립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독립편성 된 지 두 달 만에 스펀지를 앞지른 무한도전의 상승세는 무한했고, 06년 가을부터 주도권을 내주며 식상해진 스펀지는 처참하게 무너지고 만다. 07년 무한도전과 경쟁하기 위해 스펀지 2.0으로 개편을 하고 무서운 스펀지, 러브 스펀지 등의 새로운 코너를 준비했지만 댄스스포츠 특집으로 정점을 향해 달리던 무한도전에는 역부족이었다. 다만 MBC의 영화제 방영관계로 무한도전과 정면승부를 피한 한주에 기록한 15%의 시청률에 만족해야 했다.
계속되는 무한도전과의 경쟁에서 한자릿수의 저조한 시청률을 보이던 스펀지2.0은 09년 천하무적 토요일에 자리를 내주고 금요일 저녁 시간대로 옮겨지게 된다. 비록 지금은 막장에 가까운 지식과 실험들로 욕먹고 있는 프로그램이긴 하지만 왕좌도 내주는 왕도 왕이었다는 생각을 하며 2006년 스펀지도 KBS 예능 전성기에 한몫을 했다고 본다.
토 - 스타골든벨(2004.11.07.~2010.05.08), 스타골든벨 1학년 1반(2010.05.15~2010.11.20)
2006년 20위권 집계 횟수 // 일간 평균 순위 // 최고시청률 // 평균시청률 (AGB닐슨 기준)
52/52회 // 9.36위 // 14.4% // 11.8%
(사진 - 도전골든벨, 스타골든벨) 우리 프로그램이 달라졌어요?
사실 스타골든벨을 많이 보지는 않았고 방영되는 동안 같은 시간에 방영되는 프로그램에 뒤지지 않는 시청률과 인기가 의문이었다. 그러나 오랜 시간 동안 동시간대 예능 1위 자리를 놓고 많은 프로그램과 엎치락뒤치락 한 것은 사실이다. 이런 경쟁력을 가지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익숙하고 이미 검증된 자사의 도전골든벨의 포맷을 가져다 쓸 수 있었다는 점이 있었다. 덕분에 시청자는 골든벨이라는 이름을 통해서 스타골든벨의 형식을 빠르게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고 이것은 달리 말해 프로그램에 대한 진입 장벽을 낮췄다는 얘기가 된다. 더해서 초기에는 출연자들이 골든벨의 형식으로 기본 상식에 관한 문제를 풀어보고, 우승자의 이름으로 모교에 장학금이 기부되는 형식의 공익성도 갖추고 있었는데 이런 성격을 알리는 데에도 골든벨이라는 제목이 효과적이었을 것이다.
(사진 - 스타골든벨) 이 많은 사람들을 잡으려면 계단식은 필수
05년 봄에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계단식으로 출연자들이 앉아있는 형태로 개편하면서 점점 오락적인 요소에 치우친 방향으로 프로그램이 변해가기 시작했다.
이런 흐름에서 브레인서바이버와 유사한 다수의 출연자 구성의 장점이 도드라지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브레인서바이버의 낙엽줄처럼 안정적인 재미를 끌어낼 수 있는 반고정 출연자들을 벨라인에 출연시킬 수 있었는데, 벨라인이 프로그램의 안정적인 재미를 책임지고 있었기 때문에 나머지 자리에 방송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신인이나 시청자들을 TV앞에 앉힐 수 있는 다양한 분야의 스타들을 과감하게 배치해서 시청률을 끌어낼 수 있었다. 또한, 이렇게 많고 다양한 출연자들을 통해 진행자는 다양한 구도로 얽히며 재미와 흥밋거리를 만들어 낼 수 있었을 것이다.
(사진 - 스타골든벨 정답소녀 김수정) 정답입니당~
스타골든벨의 코너는 참신함 보다는 익숙함을 선택했다. 예를 들어 아동출연자가 어른에게 문제를 내는 게임은 MBC의 전파견문록과 유사한 점이 있고, 어떤 말에 강세를 바꿔서 말해야 하는 게임은 가족오락관의 게임과 유사하다. 그러나 이렇게 비교한다고 해서 스타골든벨 제작진이 여기저기서 흥했던 코너들을 따와서 덕지덕지 붙인 모자이크 같은 프로그램을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런 면은 방송 능력이 검증되지 못한 출연자들을 가지고 안정적인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한 고민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여겨야 할 것이다.
(사진 - 스타골든벨 코너 현명한 선택) 사진 한 장으로 이해되는 코너
처음에 일요일 오전에 방영되던 스타골든벨은 05년 가을개편 때 토요일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한편 MBC는 별순검을 동시간대에 배치했다가 한 달 만에 종영시켰고, 이후 배치한 강력추천토요일은 단 4개월 만에 3개의 코너를 말아먹고 맥을 못 추던 상황이었다. SBS는 토요일 7시대를 지켜주던 솔로몬의 선택을 평일로 빼고 늘어난 1시간을 채우기 위해 우리아이가 달라졌어요를 신설했다. 실제상황토요일의 두 코너의 시청률이 하나로 합쳐져 나와서 정확한 비교는 어렵지만, 스타골든벨은 동시간대 시청률 경쟁에서 우세를 보였다.
(사진 - 38대 스타골든벨 우승자) 강한 게 살아남는 게 아이고, 살아남는 게 강한 거 아니겠습니꺼?
스타골든벨의 06년 얘기는 여기까지지만, 압도적으로 다른 경쟁자들을 압살했던 무한도전과는 달리 무너질 듯 무너지지 않는 스타골든벨의 질긴 생명력을 언급하기 위해 조금 더 살펴보자.
스타골든벨은 프로그램이 궤도에 오른 뒤 07년 파일럿 편성에서 좋은 반응을 얻은 SBS의 스타킹과 경쟁하게 된다. 1위 자리를 놓고 1년 반 동안 경쟁을 한 뒤 스타킹은 무한도전과의 경쟁을 위해서 1시간 뒤로 가게 되고 스타골든벨은 다시 1위를 굳힌다.
그러고 나서 등장한 다음 위기는 스타의 친구를 소개합니다(이하 스친소)였다. 첫 주부터 1% 차이로 압박하며 스타골든벨을 이길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스친소는 이후 20위권에 근근이 이름을 올렸다. 스타골든벨과 경쟁하던 스친소는 09년 초 MBC의 파업 탓에 하게 된 결방과 방영시간을 늘리는 확대편성 등의 외적인 이유와 이미 수년간 질리도록 봐온 짝짓기 프로그램에 대한 식상함이라는 내적인 이유로 물러나게 된다. 이후 SBS에서 스타골든벨 대항마로 내놓은 붕어빵 역시 초반 몇 주 동안에는 스타골든벨을 누르지만 다시 1위 자리를 내놓고 경쟁하게 된다.
(사진 - 스타골든벨 1학년 1반) 1학년부터 다시 시작해볼까?
결국, 근 5년간 12개의(목표달성 토요일 내의 코너까지 합치면 20개)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피해가며 버텨오던 스타골든벨은 우리 결혼했어요가 토요일로 독립 편성하자 여성 시청자층을 빼앗기게 되고, 김제동이 정치적인 외압으로 진행자자리에서 물러나게 되었다는 논란까지 휩싸이면서 시청률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치게 된다. 10년 스타골든벨 1학년 1반으로 개편하게 되지만 스타골든벨에게 더 이상의 패자부활전은 없었다. 시청률은 요지부동이었고 개편된 지 6개월 만에 종영되게 된다.
일 - 개그콘서트(1999.09.04~)
2006년 20위권 집계 횟수 // 일간 평균 순위 // 최고시청률 // 평균시청률 (AGB닐슨 기준)
53/53회 // 4.3위 // 22.0% // 17.1%
99년부터 시작된 개그콘서트(이하 개콘)는 KBS의 든든한 시청률 효자였다. 그러나 05년은 개콘에게 조금 힘든 한해였다. 동시간대에 경쟁해서 나온 시청률은 아니었지만 새해부터 공개코미디 시청률 부동의 1위를 웃찾사에게 빼앗기며 자존심을 꺾였기 때문이다.
아래에 코너목록을 적기 위해서 개그콘서트 홈페이지에서 05년부터 06년까지 넘겨보면서 코너이름들을 훑어보는데 05년에는 주로 '어, 이건 뭐였더라?'하는 코너들이 많았던 반면, 06년에는 '아~ 이게 이때 했던 거였나?' 하는 코너들이 많았다. 이것은 매우 주관적인 판단이지만 코너의 인지도를 고려했을 때 05년 개콘 코너의 상태가 그다지 훌륭하지는 않았던 것도 05년 위기를 불러들인 듯하다.
(사진 - 개콘 05-06코너 목록) 마지막 문장에 대한 판단은 여러분도 함께해봅시다.
웃찾사와의 경쟁도 경쟁이었지만, 일단 개콘은 동시간대의 드라마와도 치열한 경쟁을 펼쳐야 했다. 개그콘서트는 당시 SBS의 주말드라마였던 하늘이시여와 이후에는 연개소문과 경쟁을 해야 했다.
타 시간대와 동시간대에서 압박을 받는 이런 상황에서 팀 내에서 좋은 코너를 만드는 일에 심혈을 기울여도 모자를 상황에서 구설수까지 휘말리고 만다. 05년 5월 개그콘서트 팀에서 후배의 군기를 잡겠다며 한 개그맨이 후배를 폭행하는 사건이 벌어지게 된다. 동시에 웃찾사 팀에서도 노예계약 파문이 벌어지며 공개코미디 프로그램에 대한 시청자들의 실망감이 형성되었고 그러한 실망감이 시청률에 반영된 듯한 성적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연기자 노조 등이 개입하면서 사태가 다소 길어진 웃찾사 팀과는 달리 개콘은 해당 연기자를 하차시키고 대타 투입시킴으로써 빠르게 사태를 마무리 짓는다.
(사진 - 당시 활동중이던 개콘 18-20기) 얘들아 우야노 여까지 왔는데...
개그콘서트는 06년에 05년의 구설수를 수습하고 마빡이, 고음불가와 같은 선배들이 꾸리는 코너들과 19기 20기를 중심으로 하는 많은 코너를 만들게 된다. 대표적으로 두 코너만 살펴보면 우선 마빡이는 코너가 끝날 때까지 계속 이마를 때리면서 애드립처럼 보이는 리얼한 대사들을 소화해 내면서 웃음을 주었다. 첫 회에 엄청난 파괴력을 보여준 마빡이는 이전의 허무개그와 마찬가지로 왜 이 개그가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는지에 대한 수많은 분석을 쏟아내게 했다. 일회성으로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예측도 있었지만 마빡을 치는 방법에 대한 UCC참여를 이끌어 내면서 코너의 수명과 인기를 연장하기도 했다.
(사진 - 마빡이, 고음불가 팀) 알았심더, 함 해보입시더.
한편 고음불가는 구설수로 몸살을 앓은 뒤 복귀한 이수근을 일약 스타로 만들어준 코너이다. 보통 공개코미디의 개그맨들이 예능프로그램에 진입할 때 본인의 개인기나 유행어가 굉장히 도움이 된다. 그러나 축구할 때 개인기 말고는 특별히 개인기가 없을 것 같은 이수근은 고음불가로 인해서 여기저기 예능프로그램에 발을 붙일 기반을 마련하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그 밖에도 유세윤과 강유미라는 환상의 커플이 함께 했던 사랑의 카운슬러, 황현희식 코너의 연장이라고 볼 수 있는 범죄의 재구성 등 후배들의 코너들도 흥행에 성공하면서 한때 10%까지 떨어졌던 시청률을 회복하고 예전의 명성을 되찾게 된다.
월요일(폭소클럽 & 그랑프리쇼 여러분)
폭소클럽(2002.11.01~2006.03.06)
2006년 20위권 집계 횟수 // 일간 평균 순위 // 최고시청률 // 평균시청률 (AGB닐슨 기준)
0/52회 // - 위 // - % // - %
앞으로 다룰 세 프로그램은 전성기를 이끌었다고 하기보다는 전성기에 묻어갔다고 해야 할 것 같은 조금 아쉬운 프로그램들이다.
우선 폭소클럽은 김구라의 입으로 자주 언급되는 블랑카(정철규)의 고향이기도 하고, 김제동이 한때 출연해 코너를 꾸미기도 했으며, 사물개그(서남용), 마른 인간에 대한 연구(현재 개콘의 유민상) 등의 코너를 흥행시키기도 했으며, 장애인이 코너를 꾸미기도 했다. 이렇듯 심야라는 배경 아래에서 참신한 시도를 했고,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는 코너들을 만들어 냈다.
(폭소클럽 블랑카(정철규)) 야심만만 자꾸 보면 싸장님 나빠여..
그러나 이 모든 게 월요일 밤의 최강자였던 SBS 야심만만의 아래에서 일어났다는 게 아쉬운 점이었다. 폭소클럽은 야심만만에 밀려 매번 2위만 하다가 06년 초에는 안녕프란체스카가 방영되면서 동시간대 2위 자리도 위험해지게 된다. 결국, 이런 상황 속에서 폭소클럽 시즌1 종영을 결정하게 된다.
그랑프리쇼 여러분(2006.03.13.~2007.04.23)
2006년 20위권 집계 횟수 // 일간 평균 순위 // 최고시청률 // 평균시청률 (AGB닐슨 기준)
15/52회 // 14.5위 // 13.6% // 9.97%
(사진 - 그랑프리쇼 여러분 중 불량아빠 클럽 코너) 이경규의 남자를 향한 집착. 여기서부터 라인업, 남자의 자격으로 이어지는 게 아닐까?
폭소클럽 종영 이후 이경규가 본인에 대한 위기론이 고개를 들 즈음 맡은 프로그램이 그랑프리쇼 여러분이었다. 그랑프리쇼 여러분은 불량아빠 클럽 같은 코너를 진행하면서 호평을 받기도 했지만 역시나 야심만만의 그늘은 컸고, 소울메이트 이후에 들어선 개그야가 탄력을 받기 시작하면서 한자릿수 시청률을 기록하게 된다. 비록 07년에 야심만만이 식상해져가고, 개그야가 사모님과 함께 추락하면서 동시간대 1위를 해보기도 하지만, 미녀들의 수다에게 자리를 내주고 종영하게 된다.
일 - 해피선데이(2004.11.07.~)
(06 코너 : 여걸식스, 지금만나러갑니다, 날아라슛돌이, 품행제로, 최홍만과 강한친구들)
2006년 20위권 집계 횟수 // 일간 평균 순위 // 최고시청률 // 평균시청률 (AGB닐슨 기준)
0/53회 // - 위 // - % // - %
해피선데이는 04년 말 프로그램 진행 중 성우 고 장정진 씨의 사망으로 폐지된 일요일은 101% 이후 전 프로그램에서 인기 있었던 여걸 파이브를 주축으로 재편성된 프로그램이었다.
그러나 한 방송사의 전성기 일요일 예능간판프로그램이라고 하기에는 06년 좀 부끄러운 성적을 기록했었다. 초창기부터 많은 코너를 말아먹다가 05년 하반기 들어서 여걸식스, 지금만나러갑니다, 자유선언으로 정착했지만, 당시 SBS의 일요일이 좋다에서 방영 중이던 X맨과 반전드라마의 성적이 대단했기 때문에 해피선데이는 시청률 고전을 면치 못했다. 거기에 일밤도 오랜 침체기를 끊고 돌아온 몰래카메라, 차승원의 헬스클럽, 동안클럽, 경제야놀자 등으로 코너가 안정되면서 06년 4월 일요일이 좋다를 누르고 1년 만에 1위를 되찾을 만큼 덩치가 커져 있었다.
(사진 - 여걸식스) 그나마 선방했던 여걸들
2006년 해피선데이의 코너 중 몇 가지 코너를 살펴보자.
우선 여걸 식스는 전 프로그램에서 흥행하던 여걸파이브를 그대로 가져와서 진행하다가 2005년 5월 멤버를 6명으로 늘려 여걸식스로 이름을 바꾸고 진행되었다. 여걸식스는 남자 게스트들과 함께 게임을 진행해 내용이 주였는데 묵찌빠와 유사한 디비디비딥 게임이나 쥐잡기 게임은 이후 여러 프로그램에서 재활용되기도 했던 게임이다. 여성 진행자들 다수가 출연해 프로그램을 진행한다는 점은 신선함으로 다가오기도 했지만, 짝을 정하기 위한 매력발산 시간이나 진행되는 게임을 고려했을 때는 그냥 여자가 많은 천생연분이나 X맨 정도의 신선함만이 느껴졌던 프로그램이었다.
(사진 - 날아라 슛돌이) 맨날 지기만 하던 이 아이들과 이 프로그램의 미래는?
그 밖에도 유소년 축구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던 날아라 슛돌이, 엄마의 양수라는 희대의 애드립을 얼음물에서 낳은 품행제로, 출연자들 보다는 팬들을 열받은 강한 친구로 만들어준 최홍만의 강한 친구들과 같은 코너들도 진행되었었다. 비록 해피선데이는 06년에 자유선언, 지금만나러갑니다, 날아라슛돌이처럼 공익성 면에서 썩 괜찮았던 프로그램들이 있긴 했지만, 막강한 상대 프로그램에 밀려 시청률은 나와 주지 않았다. 결국, 여걸식스와 함께한 해피선데이의 긴긴 침체기는 07년 여걸식스를 청산하고 나서 불후의 명곡, 1박2일 같은 프로그램이 등장하면서 끝이 나게 된다.
지금까지 살펴본 KBS의 2006년에는 2005년 몇 년을 끌고 갈 수 있는 포맷을 가진 프로그램들이 상승세에 접어들면서 전성기가 찾아왔다. 이때야 말로 20세기와 21세기를 관통하며 활약했던 인포테이먼트의 저력이 빛났던 때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무한도전을 앞세운 리얼버라이어티의 등장과 흥행했던 프로그램의 노후화로 전성기는 끝이 났다. 잘 나갔던 프로그램이 하락세에 들어섰을 때 시즌제로 연장되거나 프로그램명을 바꾸면서 수명을 이어갔는데, 전성기를 이끌었던 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