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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1/14 03:30
답사르 몇 번 가 본적이 있지만, 갈 때마다 자신이 굉장히 작은 존재라고 느껴지더군요. 어떤 장소 안에 무수히 많은 일들이 생겼지만 그것을 자료료만 알고 있는 것이 아쉬웠습니다. [m]
12/01/14 04:26
성곽 답사라.. 멋집니다. 풍경을 사진으로나마 즐길 수 있었으면 했는데 아쉽네요 흐흐;
개인적으로 나중에 여유가 되고 기회가 닿는다면 답사수준은 아니어도 국내의 이름난 성, 성터를 찾아보고 싶단 생각을 많이 해봤습니다. 살리타이에 대해서는 저도 국사 배울때 살리타이가 기병 소수를 거느리고 정탐을 나갔다가 이 첩보를 입수하고 기다리고 있던 고려군에 의해 매복에 걸려 죽었다고 들은 것 같네요..
12/01/14 14:24
임용한 교수님이라니 부럽네요 ㅠㅠ;; 아우 직접 가면 질문할 거 엄청 많을 건데 떠오르지 않네요.
잘 다녀오세요 ㅠㅠ ...그러고보니 처인성 전투에 대해 어떤 드립을 칠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 ..)
12/01/15 02:08
눈시BBver.2 님// 직접 본 입장에서 말씀드리자면 지금의 처인성에서는 장기적인 방어전이 거의 불가능합니다. 성벽이 불과 몇 백미터 정도에 불과하고, 평지에 도로 옆이거든요. 당시 광주성 전투가 한참 진행중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몽고군이 주변 지형 정찰이나 소규모 약탈부대가 출동한 것을 처인성에서 나온 소규모 고려군이 기습하지 않았을까 추측합니다. 문제는 여기에 당한 몽고군이 바로 살리타이라는 점, 그리고 최고 사령관이 죽음을 당했는데 보복을 하지 않고 바로 퇴각한 점입니다. 이 당시가 몽고군의 공세 한계점이 아니었을까 추측하고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너무 허무하게 퇴각한 것은 전혀 설명되지 않다는 문제가 있죠. 이 부분을 어찌 풀어내실지 기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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