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게시판
:: 이전 게시판
|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12/01/12 13:30
망구다이.... 근데 참 이상한 것이, 원래 페르시아 기병들은 다 궁기병이었는데, 페르시아와 2천년 가까이 싸워왔던 유럽 군대가 망구다이한테는 전혀 힘을 못 썼단 말입니다.
12/01/12 13:55
몽골기병이 궁기병이여서 유럽군대가 힘 못쓴게 아닙니다.
그냥 몽골군대라서 힘 못쓴 겁니다. 몽골군은 병종상관없이 다 박살내고 다녔거든요. 아니, 상대전적 따져보면 유럽군대는 몽골군에게 '선전한 축' 에 속하는 군대에요. 사요강 전투에서 헝가리군은 몽골군보다 숫적 열세이면서도 바투군 사령부까지 공격해서 참모진들을 다수 전사시키기까지 했으니까요. 사실 바투가 그냥 삽질한거지만.(바투 이양반이 군사적 능력은 은근히(어쩌면, 상당히...) 부족합니다. 수부타이 아니었으면 사요강 전투는 몽골군의 첫 대패로 기록될 수도 있었지요.) 몽골 상대로 이정도 전과를 올린 군대도 별로 없습니다.
12/01/12 14:08
사요강 전투에 대한 김호동 교수님의 서술 가져옵니다.
------------------------------------------------------------------------- (상략) 바투는 헝가리인들과 싸울때도 큰 실수를 저질렀다. 1241년 봄, 몽골의 분견대는 리그니츠에서 유명한 전투를 치뤘다. 그 무렵 본대는 바투, 오르다, 쉬반, 카단, 수베에테이가 이끄는 다섯 개의 부대로 나뉘어42 카르파티아 산맥을 지나 사요 강으로 향했다. 두 군세는 강을 앞두고 서로와 마주했다. 《원사》(元史)에 따르면, 바투와 다른 왕공들은 ‘적의 군세가 너무 강하기 때문에’ 그 이상 진격하기를 꺼렸다. 그러자 수베에테이는 5개의 부대가 나누어져 각각 강의 다른 지점에서 도하한다는 ‘기발한 술책’을 제안했다. 왕공들의 지휘를 받는 4개의 부대는 상류나 중류에서 도보로 또는 다리를 이용해 강을 건넌다. 수베에테이가 이끄는 마지막 부대는 강의 하류를 건넌다. 헝가리인들은 그 곳의 수심이 몽골인들이 말을 타고 강을 건너기에는 너무 깊다고 생각해 그 곳에 병력을 배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몽골인들이 동물 가죽이나 나무를 이용해 뗏목을 만드는데 아주 능숙하다는 사실을 몰랐음이 틀림없다. 수베에테이의 생각은 뗏목을 통해 강을 건너 적의 후방을 급습하는 것이었다. 그의 ‘술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적에 대한 공격이 세심하게 조작될 필요가 있었고, 그중 시기 선택이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그러나 바투는 그의 군대에게 예상했던 것보다 빨리 진군을 명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수베에테이의 군대가 강을 건너기에는 이른 시점이었다. 심지어 몽골군이 강의 반대편에 모였을때도 바투는 “적의 수가 너무 많다”고 불평하며 후퇴하려했다. 그러자 수베에테이는 “만약 그렇다면 홀로 후퇴하시오! 나는 투나(= 도나우)강과 마차(= 마자르)성에 가보기 전까지 후퇴할 생각이 없으니 말이오”라 말하며 돌격했다. 《원사》에 따르면 이에 낙담한 바투는 공격에 가담했다.43 라쉬드 알·딘에 따르면, 몽골 장군들은 헝가리인들을 격파한 후인 그해 겨울, 티사강과 다뉴브강에서 휴식을 취했다.44 또, 《원사》는 그 해에 몽골군이 후닝(사요)강을 건너 큰 연회(dahui)를 열어 마유주와 포도주를 마셨다는 사실을 알려준다.45 이 사료들은 헝가리인들에게서 승리한 뒤인 1241년 여름에 사요강, 티사강 또는 다뉴브강, 셋 중 한 곳에서 대규모 집회가 있었음을 알려준다. 이 모임에서 바투는 후닝강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불평하고 수베에테이가 늦어 자신의 병사들이 많이 죽었다며 수베에테이를 비난했다. 수베에테이는 바투의 성급한 움직임 때문에 그가 늦었다고 설명했다. “그러자 바투는 그것이 그의 실수였노라고 인정했다.”46 ─ 42 《元史》에는 이 전역에 참가한 몽골 왕공들의 이름이 적혀있다. ‘Badu’, ‘Wuliwu’, ‘Xiban’, ‘Hadan’. 펠리옷에 의하면, ‘Wuliwu’는 오르다와 같은 사람이다(Notes sur l’Histoire de la Horde d’Or, pp. 30–32). 구육과 뭉케의 이름은 언급되지 않는데, 나는 그들이 그 시점에 어딘가에서 다른 작전을 행하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43 《元史》, 121/2978(수베에테이傳). 44 Rashīd al-Dīn, Successors, p. 70. 45 《元史》, 121/2978(수베에테이傳). cf. Vernadsky, The Mongols and Russia, pp. 55–56. 46 《元史》, 121/2977-8(수베에테이傳). Hodong Kim. (2005). A Reappraisal of Güyüg Khan. In Reuven Amitai & Michal Biran (eds.), Mongols, Turks, and Others (pp. 309-28). Leiden, The Netherlands: Brill.의 318 ~ 19쪽에서 인용. --------------------------------------------------------------------------- 이걸 보고 제가 생각하던 바투에 대한 평가를 좀 깎았죠.
12/01/12 14:28
하아.. 오늘도 그냥 눈팅만 하다 갑니다. 댓글 참여는 엄두도 못내겠네요. 비비님도, 댓글 참여하시는 분들도 대단해 보입니다.
언젠가 써주실 6.25을 위해 프란체스카 비망록부터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땐 한두 마디 참여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감사합니다!
12/01/12 18:40
몽고는 중국측에서 몽골을 비하하기 위해서 쓰는 표현이라고 배웠는데...아닌가요?? 맞다면 몽골이라고 해주셨으면 합니다. 인류역사상 가장 광대한 영토를 가진 제국을 비하해 부를 수는 없잖아요...
12/01/12 18:44
그 시대에는 자타칭 다 몽고였는데요 뭐. 비하야 지금 몽골인들이 듣기 싫으니까 그런 말 하는 거구요
예고편에서 방침 밝혔습니다. 몽골 전체를 말할 땐 몽골로 할 거고 저 때의 역사를 말할 땐 몽고로 할 예정입니다. 동이고 왜고 그냥 명칭인데 오랑캐니까 안 좋은 뜻으로 한 것일 뿐이고, 그런데도 다 부르잖아요. 영토가 넓다고 굳이 불러줄 생각도 없구요. 우리나라 괴롭히고 먹어줘서 고맙다 존경한다 이럴 것도 아니잖아요. 대일본제국도 그냥 일본 내지 일제라 하는데요 뭐. 대영제국도 마찬가지구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