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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1/11/26 03:31:26
Name 구밀복검
Subject [일반] 그러려니
누구나 그러하듯이, 스스로 기대하는 것만큼 자신이 대단하다면야 세상 무엇이 근심거리가 될 것이며
남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든지 말든지 상관하지 않는 광오한 소수라면야 마이웨이를 걸어가면 그 뿐이겠지마는
누구나 그러하듯이, 사람은 스스로가 대단치 않다는 것을 압니다.
적어도 만인이 단결하여 자신을 적대시할 때, 자신은 당당히 버텨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지요.
그리고 스스로가 대단치 않다는 것을 알기에, 타인의 인정과 칭찬, 애정을 갈구하게 되며
이 때문에 사람들은 너나할 것 없이 가면을 써 허장성세를 띠곤 합니다.
일상에서 이는 허세, 과장, 오만, 아양, 애교, 응석, 귀척, 광대노릇, 신의 성실함 등으로 표현되곤 하지요. (저는 주로 귀척을! 으음..)

물론 간혹 재능 있는 이들은 이런 가면을 정교하게 세공하여 마치 만독불침과 같은, 흔들림 없는 경지에 이르기도 합니다만
세상 사람 모두가 그리 재능 있을 수는 없는 법이라
때때로 누군가에 의해 이런 가면의 얄팍함이 읽히곤 합니다.

보통의 상식과 감수성을 가진 이라면, 이런 얄팍함에서 우스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법이라
이를 조소하고 비틀고 깨뜨려버리고자 하는 마음이 들기 마련입니다.
혹은 이런 식의 삐뚤어진 미의식을 가지지 않을 정도로 바람직하고, 공정한 가치관과 자아를 가진 이라고 하더라도
남의 치부가 보인 이상, 지적하기를 멈추지는 않겠지요.
상대방이 가면을 쓰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면, 그리고 그 가면 안에 지극히 추한 얼굴을 감추고 있다는 것을 읽었다면
가면을 벗겨보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요 자연이 정한 심리의 법칙일 테니까요.

그러나 이는 무척이나 위험한 도발 - 조악한 비유가 용서된다면, 아마 남조선에 대해 북조선이 하는 것을 능가하는 - 이 될 수 있을 것인데
가면이란 얼굴의 옷이므로, 타인의 가면을 벗기는 것은 타인의 옷을 벗기는 행위와 진배 없기 때문입니다.
다들 아시겠습니다만, 옷을 벗기는 행위는 법률적으로는 강제추행일 뿐 아니라, 보통의 경우에는 제아무리 관대하고 자상한 이라 하더라도 견디기 어려운 모욕으로 받아들여지며, 축생 취급 받는 이에게조차 용납되기 어려운 절대적인 금기입니다.
그저 화폐를 주고 구입하면 그 뿐인 옷을 벗기는 일에 대해서조차 그러하니, 타인이 평생을 걸쳐 궁핍한 가운데에서도 나름의 최선을 다해 애써 마련한 가면을 벗기는 금기를 범할 시엔, 어떠한 원한과 광기 - 아마 춘추전국 시대의 오자서 정도의 복수심은 되어야 비교할만한 - 를 마주쳐야 할 지 자명합니다.
물론 자신의 과오를 넉넉한 마음으로 감내해줄만한 사람으로 세상이 가득하다면야 살아가기가 얼마나 편하겠습니까마는
세상 일이 그렇게 마음대로 풀릴 리가 없기에, 보통은 복수에 대한 위협에 노출되어 두 다리 뻗고 잠 잘 수 없는 나날을 지내게 됩니다.
자신에 의해 가면이 벗겨진 상대가, 복수를 위해 자신의 가면을 벗기려 절치부심하리란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하는 불안감에 떨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물론 가면 속에 가려진 민낯이 절세가인의 용모를 취하고 있다면야 세상에 두려울 것이 있겠습니까마는
만약 그러했다면, 처음부터 가면을 쓰고 있지도 않았겠지요.

결국, 남이나 자신이나 왜소하긴 매한가지라고 한다면
우연히 남의 치부를 보았든지 아니든지
타인의 진면목이 얼마나 초라하고 한심스러운지 알아챘든지 말든지  
그러려니...의 자세를 취하는 것이,
그리하여 설령 속으로야 칼을 품었더라도
입으로는 꿀을 말하는 것이
오래오래, 오손도손, 걱정없이, 행복하게 사는 길일 것입니다.

* 정치적인 의도를 가지고 쓴 글은 아닙니다. 시민의 정치권력을 위임 받은 정치인들에 대해 그러려니..해도 된다는 주장은, 원한을 살 것에 몸 사릴 것 없이 마음 놓고 싸워도 될 성질의 억견이겠지요.
* 본문이 여.러. 모.로. 자승자박이 될까 하여 써놓고도 불안합니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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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ermit
11/11/26 10:47
수정 아이콘
좋은 글 잘읽었습니다
댓글이 많이 없는게 아쉽네요
말씀하신대로 사람은 누구나 가면을 쓰고(제 표현에 따르면 포장된 모습으로)살아가는것 같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어쩔 수 없는 방법이지만 때로는 그것이 너무 답답하게 느껴져서 벗어버리고 진솔해지고 싶은 충동이 들기도하지요
그래서 인간은 모순적인 존재 같습니다
가면을 쓰고 살아가면서 가면을 벗고 만날 수 있는 다른 사람을 끊임없이 갈구하지요
어쩌면 내 가면이 다른 사람에게 들킨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괜찮은 일이 아닐까요? 한 번 웃고 넘어갈만 한.. [m]
11/11/26 12:00
수정 아이콘
글이 좋아서 정말 재밌게 읽었습니다.
저도 가끔 내가 쓰고있는 이 가면을 다른사람이 지적하거나 알아줬으면 하는 바람이 들곤 하더군요.
제 주위 사람들은 이런 것에 관심조차 없다는 게 불행한 것이겠지만...
가면을 벗은 채로 이게 힘들다면 벗으려고 노력이라도 하는 상태에서 사람이 서로를 마주하도록 하는 것이
가까운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지향해야 할 방향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별명없는데
11/11/26 12:34
수정 아이콘
저도 이전부터 이런 생각을 해왔던 적이 있습니다.
어린 시절을 반추해 보면 유난히 적응도 못하고, 제 솔직한 속내를 보이며 좋지 못한 모습들을 친구들에게 자주 보여 쉽게 소외 당하곤 했었던것 같습니다. 당시를 생각해 보며 가끔 술자리에서 얘기 할 일이 있으면 스스로를 바꾸려 한 노력의 비유로 '가면을 썻다'라고 이야기하곤 하죠.
저는 가면을 오래 쓰고 살다보니 어느 것이 내 얼굴인지 헷갈릴때가 많더군요. 스스로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한 시기에 특히 그랬어요.
하지만 요즈음은 그 가면도 내 얼굴이다. 라는 생각으로 삽니다. 워낙 오래 쓰다보니 이 가면이라는 녀석이 제 얼굴로 스며들어 또 다른 얼굴을 만들어 낸거 같더라구요.
서른하나
11/11/26 21:06
수정 아이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반성하게되네요. [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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