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우리 세종 대왕께서 하늘이 낸 예지로 혼자서 신기를 운용하여 창조하신 훈민정음은 화인들에게 물어 보더라도 곡진하고 미묘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무릇 사방의 언어와 갖가지 구멍에 나오는 소리들을 모두 붓끝으로 그려 낼 수 있게 되는데, 비록 길거리의 아이들이나 항간의 아낙네들이라 하더라도 또한 능히 통하여 알게 될 수 있는 것이니, 개물 성무한 공로는 전대의 성인들도 밝혀 내지 못한 것을 밝혀 낸 것으로써 천지의 조화와 서로 가지런하게 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를 가지고 한음을 번해해 나가면 칼을 만난 올이 풀이듯 하여, 이로써 자음을 맞추게 되고 이로써 성률도 맞추게 되었기 때문에 당시의 사대부들은 대부분 화어를 통달하게 되어, 봉사하러 나가거나 영조하게 될 적에 역관의 혀를 빌리지 않고도 메아리치듯 주고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역사에 대해 얘기할 때 일단 인정하고 넘어갈 수밖에 없는 것은 중국은 강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중국의 문화가 동아시아를 지배했다는 것이죠. 굳이 과도한 민족주의로 가지 않는다 하더라도 일단 역사를 얘기함에 있어 중국과의 연계보다는 중국과는 다른 자주적인 면을 강조할 수밖에 없는 현실입니다. 이전에 썼듯 그 이유를 중국은 대대로 강력한 현실적인 힘을 가지고 있었던 것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때문에 뿌나에도 그렇고 현재 한글 창제의 목적을 얘기함에 있어서 중국에 대한 얘기가 완전히 빠져 있습니다.
훈민정음의 또 다른 목표, 백성들 교화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네. 세종도 결국 윗사람이었어요. 가장 먼저 나온 언문으로 된 책이 용비어천가, 왕실의 권위와 정당성을 강조하는 책이었죠. 그 다음에 나온 것들은 불경이지만 뭐 이건 그렇다 치고 -_-; 그 다음에 우르르 나온 것들이 유교 이념이 담긴 책이었죠.
통치를 쉽게 하기 위해 만든 글자. 네 틀린 말 아니예요. 유교 이념은 조선을 지배하던 사대부들의 이념이었죠. 임금은 임금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부모는 부모답게 자식은 자식답게. 남자는 남자답게 여자는 여자답게. 세계 여러 나라, 여러 시대에서 신분을 고착화시키기 위해 종교를 이용했듯, 조선이라는 나라의 이념을 확고히 하기 위해 쓴 거죠. 조선의 사대부들이 언문을 비하했다 하지만, 애초에 세종 역시 한문을 대체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맨 첫 편에 말 한 언문의 기능. 언문이 공용 문자로 광범위하게 퍼졌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결국 따져 보면 한문을 아는 양반들은 비하할 만할 정도의 용도였습니다. 마치 계란의 흰자와 노른자처럼, 애초에 목적이 정해져 있던 언문은 한문을 위협하지 못 했습니다.
네. 세종 역시 그 한계를 벗어나지 못 했습니다. 중화 질서와 성리학적인 질서. 그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못 한 왕이죠.
처음에 세 가지 이유를 말 하려 했지만, 사실 다른 이유들은 이전 편에서 말한 두 가지 이유에 포함됩니다. 그리고 그 중심 이념은 바로 위에서 말한 두 가지죠. 이 부분은 인정해야 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것 뿐이라고 생각하면 안 되죠.
지금도 남아 있는 사투리들, 그 때는 더 심했을 사투리들이 이 시기 이후로 최소한 문어체에서만큼은 통일돼 갔을 겁니다. 옛날에는 제대로 많이 배운 학자들이 했다면, 반포 이후에는 언문으로 제작된 책들이 그 뒤를 이었겠죠. 정말 어려운 순서와 많은 학자들이 동원됐어야 가능했을 일이 정말 쉬워진 겁니다. 마치 현대의 방송 같은 역할을 한 거죠. 서울에서도 부산에서도 제주도에서도 똑같은 표준말을 쓰듯이요. 중구난방이었을 서로 다른 발음들과 문법들은 국가에서 주도로 낸 책들에 맞춰서 서서히 바뀌어 갔겠죠. 그래봐야 사투리는 계속 남았겠지만, 그건 현재도 마찬가지죠. 그런 중요한 기준이 훈민정음을 통해 만들어졌습니다. 언문의 반포는, 한국어의 형성과 발전에 크나큰 기여를 한 겁니다.
물론 당시 가장 대표적이었던 것은 한자의 발음이었겠죠. 그렇다고 나머지를 모두 무시하고 한자의 발음만 맞추려 했다고 할 수 없습니다.
"하여 과인은 언론을 넓혀 백성의 소리를 들으려면 백성들에게 글자가 필요하다고 여긴 것이오." (뿌리깊은 나무)
성리학에 따르면, 왕은 아래의 소리를 잘 들어야 된다 했습니다. 그 아래는 사대부들만이 아니죠. 온 백성들의 소리이죠. 사대부들이 자기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그걸 따르지 않았을 뿐입니다. 아래위를 똑바로 하고 아래는 위를 섬겨야 된다 했지만, 위 역시 아래에 대해 지켜야 할 예절이 있는 것이 성리학입니다.
이걸 마냥 틀렸다고 할 수 있을까요? 이렇게 본다면 현대의 어떤 교육이든 기득권의 체계를 보호하기 위한 주입이 될 뿐이죠. 평등의 시작을 닦았던 천부인권 역시 시작은 귀족을 무너뜨리기 위한 부르주아의 수단일 뿐이었는데요 뭐.
백성은 어리석을 뿐이다, 어린 백성이라 생각하는 건 세종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역시 그 시대의 한 인물일 뿐이었으니까요. 하지만 그 어리석은 백성들 역시 성리학 질서를 알아야 되고, 알 수 있다는 것은 큰 차이이죠. 마찬가지로 조광조 역시 모두 군자가 될 수 있고, 돼야 한다고 주장했죠. 백성을 더 알게 하고, 더 말하게 하고, 백성들에게 더 쉽게 말 해 주며 그들의 말을 들을 수 있는 장치로서 언문은 충분한 기능을 가졌습니다. 그렇게 말 해 봐야 위에서 안 들어줬을 뿐이죠 -_-;
중화 질서 내에 있었다 하지만, 그걸 조선의 실정에 최대한 맞추려 한 것이 세종이었습니다. 조선식 역법, 조선의 음악, 그리고 조선의 문자. 그는 중화 질서 내에 매몰되지 않고 그걸 조선에 응용했습니다. 그냥 받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한자의 발음을 시작으로 중국보다 더 성리학의 중심에 다가가려 했으며, 이건 후에도 이어져서 유교가 가장 발전한 나라가 조선이 되었죠. 중화의 안에 있었다 하나 언제나 그가 중시한 것은 "조선의" 였죠. 이건 현대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서양 중심의 세계관에서 "한국식 xx"들이 계속 나오고 있죠. 거대한 세계관이라는 건 어느 지역 어느 시대에나 있어 왔고, 자주적이라는 건 그 세계관 자체를 거부하는 게 아닙니다. 그 점에서 그는 자주적이었습니다. 그에게 있어 성리학은 받들고 모시며 권력 유지를 위해 지켜야 할 일개 학문이 아니라 조선을 발전시키고 조선 백성들을 교화시키며 조선을 위해 연구하고 응용해야 될 수단이었으니까요.
근대에 들어 한글은 백성도 알기 쉬운 글자로 동학 등 백성 내에서 근대적인 움직임이 일어나게 하는 주요한 수단이 되었고, 중국에 대한 한국의 자주성을 뜻 하는 가장 큰 상징이 되었죠. 이 때문에 현대에서는 이 부분을 크게 강조하고 있지만, 이것이 우연히 생긴 것이 아닙니다. 세계관이 깨지고 바뀌어 가면서 크게 드러났을 뿐, 기존의 세계관에서 이미 그것을 내포하고 있었던 것이죠.
세종대왕이 만들었던 그렇게 조선인 전체가 쓰는 공용 문자가 되었으며, 그건 조선 대대로 이어졌고 중화 질서가 깨지면서 한국의 유일한 문자가 되었습니다.
목적 얘기는 안 하고 세종대왕 얘기만 했네요. -_-a 그래도 한 김에 다시 정리.
중국에 맞서서, 한자에 대항해 훈민정음을 만들었다거나 백성들을 교육시켜 위에 대항한다는 민주주의의 의미까지 심는 경우가 있습니다만... 그 역시 그 시대의 인물 중 하나에 불과했습니다. 언문은 한문에 대한 대항이 아닌 한문을 제대로 연구하고 한문과 조화된 조선의 문자였으며, 성리학의 질서를 깨뜨리는 게 아닌 그 성리학을 퍼뜨리는 수단이었습니다. 다음 대에 그걸 위해 쓰일 정도의 씨앗은 있었겠지만 당대에는 어디까지나 중화 질서와 성리학 질서의 테두리 내에서였죠.
그 역시 그런 질서와 조선이라는 나라의 한계에 갇힌 인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 질서 내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했죠. 아니, 그랬기에 그는 곧 조선이라는 나라의 한계가 되었습니다.
--------------------------------------------------------
뿌나 16화 얘기
- 흥미로워지는군요. 집현전까지 포기하면서 밀어붙이려는 세종. 그 말빨, 그 정치력. 과연 밀본과 신하들은 이대로 밀리고 말 것인가?
- 근데 집현전이 세종 친위대라는 설정은 참 -_-; 밀본이 사대부에 그렇게 영향력이 높으면 그냥 집현전을 점령하면 될 거 아님
- 에 그러니까 언문이 아무리 쉬워도 양반들이 두려워 할 정도는 아니란 말씀 (...) 오늘 나온 말대로 쉽다고 한문 안 하는 놈이 바보인 거죠. 표음 문자가 좋다 좋다 하지만, 사실 중화라는 세계관에서 한문의 역할과 힘은 커요. 한자만 알면 세계 어디서든 발음은 못 해도 뜻은 알 수 있거든요. 중국 내에서도 방언이 크게 다르지만 뜻은 다 통하고 한자 문화권에서는 필담으로 대화가 가능하죠. 한자가 퍼지는 것은 필수였을 겁니다.
- 글고보니 한글 다 뗀 게 몇 살 때인지 기억 안 나는군요 -_-a
- 강채윤은 정기준을 언제 알게 될 것이며 세종은 언제 알 것인가!
- .... 다음주까지 어케 기다리지 ㅠㅠ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참 아쉬운 것은, 아무리 성리학을 중국 이상으로 열심히 연구해 보았자. 성리학은 중국의 학문이지 우리것이 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패권국과 위성국의 차이랄까요. 물론 조선은 주어진 조건에서 정말 선방했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중국 이웃중에 아직까지 살아남은 나라부터가 거의없.....) 그래도 아쉽긴 합니다.
왕에게 민주주의 이념이 있길 바라는건 얼토당토않는거죠 :)
민주주의가 고전적 민주주의 말고 현재 형태의 민주주의가 어떤 과정을 통해 파생됐는지를 생각해보면
아무리 왕이 개혁군주였어도 불가능하죠 '^'
(더불어 글의 위쪽에 눈시BB님이 쓴 내용을 앵무새처럼 읊어가며 '세종도 결국 윗사람' , '세종 역시 그 한계를 벗어나지 못함. 중화 질서와 성리학적인 질서. 그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못 한 왕' 이라면서 까는 사람을 보면 멍하죠)
민주주의가 아닌 민본주의에 극히 충실했고 그래서 성군, 명군, 마지막 방점으로 언어창제까지!
속된말로, 돋아요ㅠ
이런 천재가 그 능력을 잘 발휘할 수 있는 근간을 만들어 주었던 이방원도(그 방법이야 일단 제외하고;)그렇고 이런 좋은 토대를 삼아 자신이 가진 역량을 남김없이 쏟아내었던 이도도 그렇고.....주변을 둘러보아도 그 아버지가 아무리 집안을 잘 닦아놓아도 물려받는 자식이 그것을 이어받을 만한 그릇이 못 되면 말아먹는 거는 순식간인 상황을 몇 번 보았던 지라...참 여러 가지가 잘 맞아 떨어졌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가 이도를 좋아하는 다른 이유 중 하나는 이 분이 들어가 있는 종이를 많이 소유하고 있으면 주변사람들이 일단 좋게 본다는 거........-_-;
방금 뿌리 깊은 나무 봤는데 재밌네요 크크 소이의 깨알같은 눈물연기와 마지막에 한글의 정체를 알고 난 정기준의 멘붕이 인상 깊었습니다.
뿌리깊은 나무가 재밌는 이유가 각자 자신만의 신념과 이유를 가지고 있어서 캐릭터가 더 힘이 있게 느껴지는 거 같아요.
세종, 강채윤, 정기준, 주인공들은 물론이고, 조말생, 이신적 같은 조연들도 큰 캐릭터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만의 신념이나 이유를 가지고 행동하죠. 심종수, 황희, 꺽쇠, 행수, 해담선생 등 조연급 중에서도 비중이 낮은 조연들도 각자 자기 신념에 따라 행동을 해요. 그래서 각 캐릭터가 엮여서 사건이 벌어지는 과정 자체가 더 몰입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거 같습니다. 보통 이런 거 없는 드라마는 큰 보스가 이렇게 하자! 라고 하면 아무 이유없이 밑에 사람들은 그냥 따르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