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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0/08 01:04
닉넴 변경 안하시면 안되나요?
친근해서 너무 좋은데요 >_< 스타와 함께 학구열은 한국인의 종특이지요 누가 넘볼수 있을까요
11/10/08 01:05
닉네임의 비밀을 풀었네요 하하
저도 요새 느끼는건데, 공부만큼 사람을 키우는게 없다고 새삼 느꼈어요. 특히 인문학(모호한가요 하하) 공부는 정말 사람 크게 하는 것 같고. 공부 열나게 해야겠습니다 [m]
11/10/08 01:07
학구열이라는게 보면 볼수록 정말 뼈대 있는 전통(?)이군요,
적어도 내 아이들은 자유롭게 키우고 싶지만 역시 무리수인것 같습니다, 생각할수록 말이죠
11/10/08 01:11
학구열이... 그렇게 오래된 종특이었다니...
요즘 학생들... 특히 초등학생들 보면 안쓰럽습니다. 밤 늦게까지 학원다니느라 제대로 끼니도 못 챙기더군요. 편의점에서 파는 인스턴트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고... 밤 늦게까지 학원에 가야하는 일상. 이러니 학교가서는 수업에 집중을 못하고 졸게되고, 컴퓨터(온라인 게임)을 하고 싶은 아이들은 밤 12시 넘어서까지 컴퓨터를 붙잡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12시 다되서 컴퓨터 앞에 앉으니... 당연히 밤 12시 넘어서까지 게임을 할 수 밖에 없죠. 대학입시 때문에... 고등학생들이 밤 늦게까지 학원에 다니던 시데에서... 중학생부터로 넘어가더니.. 이젠 초등학생때부터 시작되는 것을 보면 그냥 너무 안쓰러울 뿐입니다.
11/10/08 01:17
학구열은 시험때문인 것 같아요.
항상 어느정도의 자격요건을 요구하기 때문에 시험을 보게 되는데요. 그게 또 경쟁이다보니 학구열이 높아지는거 아닐까요. 시험도 종류가 여러 가지가 있겠습니다만, 현재의 시험제도로는 학구열을 식힐 수가 없겠죠. 눈시BB 님 글 읽기만 하고 댓글은 없었는데요. BB 떼지 말아주세요. 눈시만 있으면 이상하잖아요..;;크크.
11/10/08 01:25
우리나라의 학구열을 전 좋은 쪽으로 봐요. 아무리 생각해도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교육밖에 없었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물론 최근엔 안 좋은 방향의 문제가 꽤 많아졌지만 말이죠.
11/10/08 01:27
이 학구열이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것이었군요. 조선시대에도 혈서 쓰고 자살하고 (...) 진짜 한국인 종특인가요 크크...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겠지만 저 역시 자식 낳으면 학구열 쩌는 학부모가 될 것 같습니다. 자유롭게 크게 냅둔 고3 동생의 모의고사 등급 4/5/9/7을 보니 꼭 그래야겠다는 생각이..
11/10/08 01:37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랬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국가주도의 정책 때문에 생겨난 전통인지, 아니면 뭐 다른 게 있었는지...
11/10/08 01:40
대학생들도 요즘 죽어납니다
1학년들 진짜 공부만 하더군요 ㅡ.ㅡ 주점이모님들과 이야기해봐도 해가 갈수록 신입생들 출입이 줄어든다고 합니다;; 이건 등록금이 오르는 문제와도 관계가 있겠지만서도.. 뭔가 씁쓸하더군요
11/10/08 01:55
예전에 학부생때 구한말 외국인에 눈에 비친 조선 이라는 내용에 과목을 들은적이 있습니다.
그때 병인양요 기록에 보면 프랑스군이 보물을 기대하고 큰집들을 약탈 했답니다. 그런데 기대했던 보물은 없고 책만 잔뜩 있었답니다. 그 다음에 일반 평범한 민가에도 약탈을 했는데 거기서도 책들이 다량 나왔답니다. 강화도 어느곳을 뒤져도 책은 꼭 나왔다고 하더군요 실망했는지 감탄 했는지는 모르지만 기대했던 보물은 못가지고 가고 책만 잔뜩 가져 가 버립니다. 백년이 지난 후에 그 책들은 진짜 보물이 되었고 한국이 프랑스 고속철도 선택하는데 있어서 큰 역활을 하게되죠
11/10/08 02:05
강대국 사이에 끼인 이 조그만 나라에서 나름 살아남기위해 열공 유전자가 주입됬나봅니다.
조선시대 학구열은..... 뭐 기록을 보면 지금보다 10배는 더 했던것 같단 느낌마저 들어요 덜덜 비록 이나라가 주입식 교육으로 인해 창조적이고 혁신적으로 가긴 힘들것같으나... 그래도 그 미친 교육열로 다른나라 발전하는것 만큼은 다 따라가지않나 싶기도 하고... 케이블 방송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인해 슈스케 대비반, 슈스케 대비 개인 레슨 과외 막 이런게 생기는 교육열의 나라입니다 덜덜
11/10/08 03:57
<a href=http://www.hani.co.kr/section-021075000/2002/01/021075000200201020391048.html
target=_blank><a href=http://www.hani.co.kr/section-021075000/2002/01/021075000200201020391048.html target=_blank>http://www.hani.co.kr/section-021075000/2002/01/021075000200201020391048.html </a> </a> 한홍구 교수의 칼럼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만들어진 전통'에 대해서 회의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데요. 이 교육열의 근원을 너무 오래 전으로 소급해 가는 것도 지역주의의 근원을 두고 신라/백제로 거슬러 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 일례 아닐까 싶어요. 이 칼럼을 제가 이해한 바로는 조선조에도 관 주도의 대민 교육 시스템인 향교가 있긴 했지만, 해방 이후 교육열은 그것과는 이질적인 것으로 봐야할 듯 싶어요. 더구나 오늘날 한국의 교육열은 해방 이후 근대화 과정에서 한국사회의 구조라는 측면에서 들여다 보아야지, 조선/고려/신라로 거슬러 가는 건 "우리는 원래 그랬다, 그게 끝"이라는 얘기처럼 들리거든요.
11/10/08 05:18
신분상승에 대한 기대였을까요? 그렇다면 지금이나 그 때나 다를 바가 없네요. 사실 한국은 학문에 관심이 많다기 보다, 지위와 명성을 얻을 자격을 위해 공부한다고 생각합니다. 교육열에 비해, 학문적 성과가 너무 뒤쳐지죠.
11/10/08 12:31
책 제목만 보고 '혹시 전봉관 교수님?' 했는데, 찾아보니 역시 전봉관 교수님 책이었네요. 크크 그 분 수업 두 번 들었는데, 자칭 '경성시대 전문가'라고 하시더라구요. 이 부분이 나름 블루오션이었는데 자기가 이것만 파서 나름의 전문성을 확보하셨다고...
암튼, 제가 들었던 수업이 하나는 글쓰기, 하나는 토론 수업이었는데, 정말 글도 잘 쓰시고 통찰력도 좋으시고 말도 잘 하시는 '매력적인 사람'이라는 느낌이었습니다. 경성자살클럽도 사서 읽어봐야겠네요.^^ 그나저나 경성기담도 읽어보신 것 같은데, 눈시BB님 보시기에 전교수님 책들이 고증이나 정확성의 측면에서 괜찮은 것 같으신가요? (의심이 되거나 미심쩍은 부분이 있어서 여쭤보는 건 아닙니다. 제 주변에 전교수님 아는 사람들은 죄다 공대생이라서요. 끄끄) [S2]
11/10/08 13:36
제가 아는부분하곤 약간 다른거 같아서 한말씀 드리자면...
조선시대때 평민들이 글을 배울수 있었던때는 영조집권 후반기나 정조집권때 서당을 도나 면에까지 확대하면서 생겨난걸로 압니다. 그것도 지배계층이 극심하게 반대했던걸 왕이 밀어부친거라고... 그리고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했지만 양반을 제외한 평민들은 그걸 제대로 배울수도 없었고(지배계층들이 손가락빨고 있진 않았겠죠... 여러원인들도 있겠지만...) 그 훈민정음도 언문이란 단어로 격하시켜버렸습니다. 다른시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조선시대때 평민이하 계층에게 글이란 뭔가요 먹는건가요? 이런취급을 받을수밖에 없었을껍니다.
11/10/08 17:23
글 제목을 대충 훑고는 교육열에 관한 글이길래 근래의 과열된 교육열, 과한 사교육 열풍, 학력 인플레이션 등등을 비판하는 글인 줄 알고 있었는데 이게 웬걸! 눈시BB님의 글이었군요.
일제강점기의 에피소드는 처음 듣는데 무척 흥미롭네요. 뭐 일제야 통감부 시대부터 소학교를 보통학교로 개칭하지를 않나 수업연한 단축에 조선인 학교에 일본인 교원 배치 등등 우민화 정책을 하겠다며 눈에 불을 켜고 교육제도를 뒤엎었더랬죠. 교육사의 큰 줄기만 살짝 훑은 저의 지식으로는 우민화를 위해 보통학교만은 넉넉히 증설했다고 알고 있었는데 그래도 정원이 한참 부족했던 모양이죠? 아, 다시 읽어보니 20년대 이후에 일어난 일이었네요;;;; 1919년 3.1운동 이후로 일제의 식민지정책의 기치가 유화적으로 바뀌었는데 2차 조선교육령은 1922년에야 발표한것을 보고 시간상 차이가 있어 의아했었는데 해주 사건과 전후관계가 있는건지 궁금해지기도 하구요. 그저 달달 외우는 것보다 확실히 좀 더 깊게 들어가니 내가 아는 그 얘기가 이 얘기와 관련된 것인가 비교하는 재미도 있고 흥미롭습니다. 후후.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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