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기갑사단의 진정한 주역 4호전차
개발과정
3호전차가 중대 지휘 차량라는 이름으로 한창 개발 중이던 시기에, 4호전차도 대대 지휘 차량이라는 이름으로 개발을 진행중이었습니다.
1934/35년에 히틀러는 크루프, 라인메탈, MAN사에 이 대대 지휘차량의 시제차량 제작을 주문합니다. 시제차량의 조건은 18톤 정도의 중량과, 시속 35km 이상의 최대속력, 그리고 75mm 구경의 주포를 회전 포탑에 갖추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당시로서는 매우 획기적인 발상으로,
이 시대에 포탑에 75mm 구경 이상의 화기를 장착한 전차라고는 이 4호전차와 소련군의 KV-1뿐이었습니다.
이러한 요구 조건 아래 각 회사들이 전부 프로토타입을 발표했고 어느 정도 비슷한 특성을 공유하고는 있었지만, 결국은 크루프 사의 VK 2001(K)가 최종 채택되었습니다.
라인메탈 사의 대대 지휘 차량 프로토타입.
1935년, 크루프 사는 프로토타입에 대한 일부 개량과 잡다한 테스트를 마친 후 대대 지휘 차량의 첫 번째 버전을 출시합니다.
이 4호전차 A형은 빈약한(특히 후방) 장갑에도 불구하고 기존에 히틀러가 크루프 사에 제시한 조건을 모두 충족시켰으며, 양쪽에 8개의 로드휠을 갖추고 있었고(이는 J형에서 3개로 줄일 때까지 그대로입니다.), 전차장, 포수, 장전수, 운전수, 라디오 오퍼레이터의 5명의 승무원을 탑승시킬 수 있었습니다.
1937년 10월과 1938년 10월에 각각 B형과 C형이 출시되며 테스트용과 훈련용으로 사용되었고, 개중 일부는 실전에 투입되기도 하였습니다.
4호전차 A형. 독일 기갑사단의 진정한 주역은 아직 이때만 해도 그 잠재력이 드러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1939년 10월에 4호전차의 실질적인 첫 양산형인 D형이 등장합니다. 이것은 새로운 포방패와 전면 장갑판을 장착했으며, 개중에는 지속적인 개량을 겪으며 1944년까지 그 목숨을 이어나간 차량도 존재합니다.
1940년 프랑스전에서 3호전차와 함께 4호전차도 그 모습을 드러내지만, 사실 보내진 수량이 3호전차보다도 적었고, 얇은 장갑 덕분에 종종 프랑스 전차에 격파당해 버리는 수모를 겪기도 했습니다.
4호전차 D형. 하지만 당시 스펙은 오히려 조금 늦게 개발이 시작된 3호전차보다 떨어지는 부분도 일부 존재했습니다.
1940년 9월부터는 포탑 뒤에 보조 탄약통을 부착하고 새로운 운전자 시야장치와 전차장 큐폴라를 장착한 E형이 등장했으며, 1941년 4월부터는 단신포 버전 차량의 마지막 개량형인 F형이 생산되기 시작했지만, 아직까진 4호전차는 엄연히 보병 지원 전차일 뿐이었습니다.
주력전차의 자리를 넘겨받다.
바르바로사 작전 후 3호전차 J형의 신형 50mm KwK 39 L/60 전차포조차도 소련의 신형전차들을 격파하지 못하자, 독일국방군은 4호전차 F형에서 해답을 찾습니다.
새로운 75mm KwK 40 L/43 전차포가 F형에 장착되었고, 이는 4호전차 F2형이라 불리며 기존의 F1형과 구분되었습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습니다. 4호전차 F2형은 T-34를 상대하기에 충분했고, 북아프리카에서는 4호전차 F2형이 처음 투입되었을 당시 이를 당해낼 영국 전차가 없었기 때문에 영국군은 이를 MK.4 Special이라고 부르며 상대하기를 껄끄러워하기도 했습니다.
75mm KwK 40 L/43 전차포를 4호전차에 부착하면서 4호전차의 전체적인 중량이 늘어났고, 기동성 또한 다소 줄어들었지만, 증가한 화력을 생각하면 그런 것은 문제가 되질 않았습니다. 4호전차에 장착된 75mm KwK 40 L/43 전차포에는 발사시 생성되는 압력을 방출해 포신의 피로누적을 줄이기 위한 머즐브레이크가 장착되었습니다.
또한 5월에 장갑의 강화와 포탑의 단순화, 포탑에 장착된 연막탄 발사기가 특징인 4호전차 G형이 개발되면서 4호전차 장포신형이 본격적으로 양산되기 시작하였고, 1943년 8월 3호전차의 생산라인이 공식적으로 폐쇄되면서 4호전차는 명실상부한 독일국방군의 주력전차로 자리잡습니다.
4호전차 F2형. 단 200량 생산되었지만, 이어서 생산되는 G형과 함께 4호전차는 본격적으로 주력전차의 반열에 오르기 시작합니다.
4호전차의 최종진화, KwK 40 L/48과 쉬르첸.
1943년 3월부터 새롭게 생산된 G형 412량은 보다 강력하고 머즐브레이크도 2개로 늘어난 75mm KwK 40 L/48 전차포를 탑재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울러 이때부터 4호전차에는 차체와 포탑 양면에 성형작약탄을 막아내고 방어력을 증강시키기 위한 증가장갑의 일종인 쉬르첸이 부착되기 시작합니다. 실제로 이는 매우 효과적인 방법임이 입증되었기 때문에 3호 돌격포 G형과 4호 돌격포에도 이와 같은 쉬르첸이 부착되게 됩니다.
1943년 4월에 등장한 4호전차의 아홉번째 모델 4호전차 H형은 4호전차 중 가장 많이 생산된 형태며, 4호전차 개량의 극치였습니다. 히틀러는 이를 새로운 5호전차 판터와 6호전차 티거와 함께 치타델레 작전의 비장의 카드로 준비하고 있었지만, 사전에 정보를 확보하고 준비중이던 소련군에 의해 참혹한 결과를 맞고 맙니다.
4호전차의 사실상 최종진화형인 H형. 강화된 전차포와 쉬르첸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쿠르스크 전투에서 믿었던 기갑부대가 소련군 방어망을 돌파하는 데 실패하면서 독일 국방군은 더 이상의 전격전을 치를 여력을 잃어버렸고, 급기야 1944년 벨로루시 전역에 걸친 소련군의 바그라치온 작전이 가동되면서 국방군은 완전히 몰락하고 맙니다.
아울러 5호전차 판터의 생산이 본격화되면서 4호전차의 생산 자체가 위협받게 되지만, 구데리안 장군의 반대로 4호전차는 주력의 자리를 판터에게 내주기는 하지만, 여전히 독일 기갑사단에 남게 됩니다.
1944년 6월, 4호전차 H형의 생산성을 늘리기 위해 성능을 일부 다운그레이드하고(ex. 보조 발전기 제거, 기존의 철판형 쉬르첸을 대신한 철망형 쉬르첸의 부착 등), 보조 연료 탱크를 장착해 항속거리를 증강시킨 H형의 양산형인 J형이 등장합니다. 하지만 이미 4호전차는 전성기가 지난 후였습니다.
주 라이벌이었던 T-34는 85mm 전차포를 장착하면서 4호전차가 아닌 판터의 상대가 되어버렸고, 그래도 만만한 축에 속하던 미군의 M4 셔먼은 M4A3에 오면서 76mm 전차포를 장착해 4호전차에 밀리지 않는 수준으로 강화되었으니까요. 어쨌든 4호전차는 그들 모두와 맞서 싸워야 했고, 전쟁은 1945년 5월 히틀러가 자살하고 2대 대통령 되니츠가 연합국에 항복하면서 그 결말을 맞게 되었습니다.
4호전차의 파생형
4호전차의 파생형은 실로 다양했습니다. 대공전차 시리즈로는 37mm Flak 43 L/89 대공포 1정/20mm Flak 38 L/112.5 고사기관포 4정을 장착한 뫼겔바겐과 동일한 무장에 방호력을 위해 상부개방형 포탑을 갖춘 비르벨빈트, 역시 상부개방형 포탑에 37mm Flak 43 L/89 대공포 1정을 장착한 오스트빈트 대공전차가 존재합니다.
이외에 30mm MK 303 고사기관포 2정을 장착하고 폐쇄식 포탑을 갖춘 진정한 대공전차인 쿠겔블리츠가 계획되어 5량 생산되었지만 끝내 실전 투입되지는 않았습니다.
개방형 전투실에 37mm Flak 43 L/89 대공포 1정을 장착한 뫼벨바겐. 이동시 칸막이를 올리고 다녔다가 전투시 내리는 방식으로, 대공능력은 좋았지만 사수의 목숨은 장담못하는 치명적인 단점이 존재했습니다.
다른 형태의 뫼벨바겐. 무장을 4정의 20mm Flak 38 L/112.5 고사기관포로 교체해 탄막 형성능력은 늘어났지만 사수의 목숨은 여전히...
대공전차인 비르벨빈트. 생산되어 투입된 수는 105량으로 적은 편이었지만 지옥의 다연장포라는 별명이 붙은 20mm Flak 38 L/112.5 고사기관포를 4정 장착하고 다니며 서부전선 각지에서 연합군의 전폭기들과 피튀기는 싸움을 벌였습니다.
또한 상부를 제외하면 소화기 정도는 막아낼 수 있던 덕에 추축군의 미트쵸퍼 역할도 잘해냈습니다(뫼벨바겐의 복수다!!)
또다른 대공전차 오스트빈트. 상부개방 전투실에 37mm Flak 43 L/89 대공포를 장착했으며 수는 43량으로 비르벨빈트보다 더 적었지만 대공전차로의 역할은 충실히 수행했습니다.
진정한 대공전차인 쿠겔블리츠. 무지막지한 위력의 30mm MK 303 고사기관포 2정으로 화력의 강화를, 폐쇄식 포탑으로 방어력의 강화를 추구했습니다. 전쟁 막바지인 1945년에 5량이 생산되지만 실전기록은 없습니다.
자주포로는 무시무시한 150mm sFH 18 L/30 유탄포를 장착한 훔멜 자주포가 유명합니다. 이것은 자주포만 모아서 따로 설명드리겠습니다
국방군의 든든한 자주포 훔멜. 무려 380mm 로켓포를 장착해 버리자(!)는 주장도 있었지만, 농사를 책임지는 폭풍고양이 슈투름티거의 등장으로 유야무야 됩니다.
그리고 4호전차를 개조한 교량전차 또한 개발되서 서부전선에서 쓰였습니다.
작업중인 4호 교량전차.
이외에 4호전차 차체를 베이스로 한 돌격포와 잡다한 대전차 자주포, 구축전차가 존재하지만, 그건 나중에 다뤄보겠습니다.
4호전차의 뒷이야기.
4호전차는 나치 독일의 차량 중에서도 가장 많이 수출된 전차였습니다. 상당수가 루마니아, 헝가리, 핀란드, 스페인 등 동맹 혹은 우호 국가로 수출되어 활약했고, 그들 중 마지막 4호전차의 후예가 체코슬로바키아와 스페인에서 중동의 시리아로 판매됩니다.
제3차 중동 전쟁에서 4호전차들은 이스라엘이 출동시킨 그들의 숙적 셔먼 파이어플라이와 마주하게 되고, 결국 시리아가 패배하면서 4호전차는 그 마지막을 맞이합니다.
골란 고원에서의 마지막 4호전차. 체코슬로바키아의 4호전차 중에서는 차체와 동축기관총을 소련의 DShK 12.7mm 중기관총으로 바꾼 모델도 존재했습니다.
마지막 4호전차를 잠재운 장본인 셔먼 파이어플라이. 영국의 강력한 17파운드 전차포를 장착해 4호전차는 물론이고 5호전차 판터나 6호전차 티거에도 위협적인 상대였습니다.
4호전차는 처음에는 보병 지원용 포나 갖추고 장갑도 얇실한 뭔가 모자란 출발을 했지만 개량에 개량을 거듭해 우수한 주력전차로 탈바꿈했고, 전쟁 초기의 빛나는 전격전 부터 더 이상 독일에 희망이 보이지 않는 베를린 전투까지 몰락해가는 독일과 운명을 같이한 진정한 독일의 주력전차였습니다.
비록 4호전차 자체는 나치 독일과 그 운명을 같이했지만, 그 설계사상은 현대의 전차에도 반영되어 지금까지도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
4호전차 스펙(Ausf.D,G)
모델: Ausf D 추가장갑 부착형(Ausf G)
중량: 20000kg(23500kg)
승무원: 5명(동일하다)
엔진: Maybach HL 120 TRM / 12실린더 / 300마력(동일합니다.)
속도: 도로: 40km/h / 비포장 노면: 20km/h(동일합니다)
항속 거리: 도로: 200km / 비포장 노면: 130km(도로: 210km / 비포장 노면: 130km)
연료 용량: 470 litres(동일합니다)
전장: 5.92m (6.63m)
전폭: 2.84m =>2.88m 슈르첸 장착시 (3.33m 슈르첸 장착시)
전고: 2.68m(동일하다)
무장: 75mm KwK 37 L/24 2 x 7.92mm MG34 (1 x MG - 차체) (1 x MG - 동축) , (75mm KwK 40 L/43 2 x 7.92mm MG34 (1 x MG - 차체) (1 x MG - 동축))
탄약: 75mm - 80발 7.92mm - 2700발(75mm - 87발 7.92mm - 2250발)
>2회만 더 가면 모두가(?) 기다리는 티거 겠군요, 아무튼 참 힛짱님의 동물원은 보면 볼수록 우주로 가는것 같기는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