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여러분은 잠시 닫아두셔도 좋지만 사실 12세 영화에서도 빈번히 나올법한, 그러나 리얼스토리라 소름돋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니, 읽으셔도 안읽으셔도 별 문제는 없을 것이야!
그러니까, 이 이야기는 지금 한창 잘 나가는 해피선데이의 '남자의 자격-죽기전에 꼭 해야할 블라블라'가 시작하기 전에 있었던 일이다. 때는 바야흐로 풋풋한 대학교 신입생 시절. 난 개인적으로 대학교 신입생때의 학과란, 혹은 그 동기들이란 아침드라마를 방불케하는 치정관계와 순정만화를 넘어서는 판타지, 그리고 순애보가 따로없는 애달픈 사랑들이 꼬이고 꼬여 아주 드럽지만, 이 질척질척한 진흙탕이야 말로 청춘이로다! 하고 외치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정의는 내가 대학교 신입생을 지나며 거쳤던 한 가지 사건에 기반한다. 그래, 서두로 쓰려고 했던 풋풋한 대학교 신입생 시절 블라블라, 풋풋하긴 개 뿔. 그건 정말이지 '청춘'이었다. 빌어먹을 청춘.
본디 신입생 시절에는 같은 과 남 여 여럿이 어울려 자주 술자리를 만든다. 이들이 어떤 건실한 토론이라거나, 사회문제에 대한 열띤 논의가 있어서 술판을 벌이는 것도 아니요, 딱히 축하할일이나 슬픈일이 있다고 만드는 것도 아니다. 국영수 공부하다가 적당히 시험쳤더니 서울의 적당한 대학에 왔고, 적당히 왔더니 이거 뭐 적당히 어떻게 하나. 적당적당한 애들에게 동아리를 열정적으로 든다거나 하는건 별로 매력적이지 않다. 일단 들어왔고, 같은 반 으로 여겨지는 이성들이 있다. 친해지자! 어색해지면 안되! 내가 저 그룹에서 벗어날 수는 없어! 따위의 의지들로 우리는 술판을 벌인다. 이런 술자리는 정말 별 것 없는, 시시콜콜하다고도 못 할 말들로 분위기가 붕붕 뜬다. 뭐가 그렇게 재미나는지. 그 날도 여전히 그랬다. 별 반 새로울 게 없는 이야기들의 재미남에 다들 신나했다.
대한민국에서 갓 스물이 된 아이들 대부분은, 성에 대해 매우 무지하다. 이 무지하다는게 뭐냐면, 성교의 방식이나 쾌락의 정도 이런걸 모른다는게 아니라, 호기심은 넘치는데 차마 서로 대화를 나눠보지 못해서 쌓인 호기심이 있다. 그래서 대부분 20여명으로 시작된 술자리가 10명쯤 남으면, 남자가 7에 여자가 3쯤 된다. 시간은 약 오후 7시에서부터 시작해서 밤 12시가 지나가면 남여 할 것없이 매우 흥미로운, 그리고 아슬아슬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 묘미는 포르노처럼 대놓고 드러내는 것도 아니고, 공중파 로맨스처럼 감질나기만 하는것도 아닌, 그 사이의 명작 에로영화같은 수준이기에 더욱 불타오른다. 아주 아슬아슬한 접점, 공중곡예를 하는 사람의 줄타기와도 같은 서로의 호기심과 호감을 살짝살짝 건드리는 대화. 그래, 우리는 궁극적으로 이 순간을 위해 의미없는 술자리를 여는 것이다.
우리 친구중에는 아주 허풍이 센 녀석이 있었다. 그러니까, 자기는 키스를 너무 잘해서 기습키스에 여자애가 반해 넘어간다거나 하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진심으로 하는 친구였다. 뭐 얼굴이 강동원, 원빈, 장동건, 조인성 이런 급이면 모를까 그 애의 얼굴은 솔직히 신동 그 이하였다. 키도 크지 않았고, 몸이 좋은것도 아니다. 그래서인지 되려 그런 허세가 너무 귀여웠던 친구였어서 여자애들도 그런 허세를 썩 싫어하지만은 않았다. 그날도 그 애의 허세는 정점을 찍어가고 있었다.
"야! 너네들.. 남자의 자격증이 뭔지 아냐!"
"또 허세부린다 허세 어휴"
"야 냅둬 쟤 허세없으면 무슨 재미로 술마셔"
"너 또 야한소리 할려고하지! 히히히히"
"꺅 야한얘기? 야한얘기? 가나? 가나?"
"야 너 왜그래 크크크크크 미쳤어 술좀 그만먹어 이년아"
"뭐 어때 우리 성인이야~"
그 애의 입이 열리는 순간 수많은 아이들이 한마디씩 던지며 그 애의 입에 집중한다. 이야, 저것도 진짜 능력은 능력이다. 난 웃으며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지갑옆 핸드폰을 들었다. 그 때였다.
"철수형 지갑좀 볼께!"
"어?"
그 허풍쟁이는 갑자기 휙 내 지갑을 가져갔다. 그리고는 그 안을 뒤적거린다. 지갑을 뒤져봐야 뭐가 있다고, 그래봐야 만원짜리 조금에 체크카드, 신분증, 티머니 정도 있었던 싸구려 지갑이었다. 난 재수를 해서 아이들에게 형소리를 들었었는데, 아마 삭아빠진 신분증 사진이나 펼치며 낄낄대거니 싶었다. 남자의 자격이야기는 어디를 가고 왠 내 지갑이래..?
앞에 있는 다 식어빠진 전 조각을 입에 넣으며 유린당하는 내 지갑을 보았다. 사실 그 자리에는 내가 아주 괜찮게 여기는, 그리고 내 옆자리에만 앉으려 하는 여자애가 있었다. 오늘 술자리가 끝나고 갈때 나와 집이 같은 방향이니 같이가자고 슬그머니 속삭이자 수줍게 고개를 끄덕였던 친구였다. 막차가 끊길 한시에서 두시쯤이 되면 슬쩍 데리고 빠져나가리라- 하고 생각했다. 그 때였다.
"있다! 남자의 자격증!!"
"뭔데 뭔데 봐봐!"
"오빠 자격증있어?"
내 옆의 귀여운 여자아이를 포함하여 애들은 내 지갑에서 나온 물건에 시선을 집중했다. 그리고 나는 그 순간 하늘에서 벼락이 빡! 엄마한테 귀쌰대기를 짝! 길가다 버스정류장 안내판에 빡! 부딫힌 듯 스턴 및 공황상태에 이르렀다. 내 지갑에서는 절대 있을리 없는, 그래. 남자로서의 자격증이라고 불릴만한 것이 들어있었다. 그것은 바로 건강한 성생활과 사랑을 나누기 위해 만들어진 인류 최고의 발명품. 콘돔이었다.
"이게 남자의 자격증 아니냐! 야 너네도 이렇게 항시 가지고 다녀야 해~"
"뭐야 뭐야 꺅 !! 오빠 변태아냐?!"
"야 아냐 여자들 잘 생각해봐 이거 가지고 다니는게 매너지~ 형 근데 누구야 상대는 빨리 불어 우리학교? 우리 과? 설마 우리 반??!"
"어우~야 뭘 불어~ 미쳤어 진짜!! 그런걸 왜말하냐!"
"헐 대박.........나 콘돔 처음봐.."
아이들의 왁자지껄함 속에서 나는 아찔해져가는 정신을 되새겼다. 아니 대체 왜? 나는 여자친구도 없고, 저걸 사용 할 일도 없었다. 즉, 무슨일이 있어도 어딘가의 마트에서 콘돔을 산 뒤에 개별포장된 것을 지갑에 상시 넣어둘 리가 없다는 뜻이다. 저게 왜 내 지갑에.. 저게 왜..이게 대체 무슨일이야!
난 황급히 지갑을 빼내려 손을 뻗었다. 그 때, 그 친구는 나에게 강력한 한 방을 또 날렸다.
"야 크크크크크크크크 돌기형이래 크크크킄크크크크크크크크크크크"
"?!?!?!?!?!?!?!!!!!"
아.............................................................................
이윽고 기괴한 하이톤이 귓가에 뒤섞여 들어가며, 나는 앞뒤좌우에서 아이들의 강렬한 공세와 스킨십을 받았다. 오빠 돌기형이 뭐야 꺄하하하하 형 형 처음은 언제였어요 아 솔직히요 아 오빠 대박이다 진짜 완전 이미지 확깨 크크크크 이제까지 점잔떨었던거네?? 형형형 근데 무슨 한개도 아니고 이렇게 종류별로... 따위의 이야기들에 도저히 뭐라고 대답할지 몰라서 그냥 아니라고 아니라고 했지만, 아 망했으요. 대체 저게 뭐야 대체 내 지갑맞아? 하고 난 그 혼란스러움 속에서 계속 생각을 더듬었다. 그리고 애들이 그 남자의 자격증의 유통기한과, 돌기형과, 딸기향에 그리고 롱 러브 문구까지 확인하며 찢어져라 웃을 때 쯤에 난 고등학교 3학년 같은반의 영수가 떠올랐다.
당시 영수는 3년간 만나던 여자친구가 있었다. 당연히, 어린나이에도 불구하고 주 몇회를 정해놓을 만큼 문란?하다고 할지 건강? 하다고 할지 모를 성 생활을 즐기는 친구였다. 결혼을 전제로 둘 정도로 깊은 관계였는데, 남고라는게 원래 어른의 이야기가 돌다보면 당연히 허세가 쌓이고 쌓인다. 동정인 놈들끼리 있는척 없는 척 다 하는것이다. 나도 그 중 하나였는데, 그때 영수가 그 자리에서 몇 개의 콘돔을 지갑에서 꺼내더니 나에게 주었던 기억이 불현듯 떠오른 것이다. 그때 허세를 부리겠다고 "오~ 잘 쓸께 야 종류별로 줘 종류별로." 따위의 대사를 쳤던 기억이 난다. 지갑이 좀 낡아서 바꿀까 했지만 아직 쓸만한데 쓸만한데 하며 지금까지 버텨왔는데, 그때 그렇게 허세처럼 지갑에 쑤셔넣어논 친구의 선물이 이런 화를 부를줄이야..
그 날, 나는 내 생전 처음으로 수많은 남 여에게 나의 성생활에 대해 성토당해야만 했다. 물론, 그 '남자의 자격증'은 아직 개봉도 못해본 것이었고, 총각인 나는 아무리 변명을 해도 통하지 않았다. 결국 끊임 없는 어택을 이기지 못한 채, 나는 삐리리킹- 혹은 음란왕, 노바킴 따위의 타이틀을 획득하고 그 술자리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함께 가자던 그 여자아이는 문자로 나즈막히, 자기는 동기 여자애 집에서 잘 거라는 통보를 했다. 그리고 그게 그 친구와의 사적인 메세지는 마지막이었다. 나중에 듣고 보니, 그 술자리에서 내 옆자리의 아이는 자기랑 원래 집에 같이 가기로 했었는데 저게 나왔다며 아이들에게 나의 짐승같은 면을 굉장한 실망감과 혐오로 바꾸어 털어놓았고, 졸지에 나는 들어오자마자 동기 여자애의 몸부터 노리는 놈이 되어버렸다는 여론을 등에 얻었다.
남자아이들에겐 사나이의 칭호를
여자아이들에게는 변태의 칭호를
그렇게 난 변태사나이가 되었다.
이후 난 학업에 정진할 수 있었다..........................................당연히, 생기지 않았다. 나의 대학교 첫 봄의 청춘은 그렇게 끝장나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