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20/01/30 20:38:14
Name 두부두부
Subject [일반] 교모세포종 2번째 글
2019년 5월 말에 저희 아버지는 교모세포종이라는 병명으로
수술을 하셨습니다.

수술 직후는 정말 너무 좋으셨는데.
퇴원하시고 표준치료(방사선+저용량 항암 6주, 고용량항암 6개월) 들어가시기 직전부터
그리고 표준치료를 하시기 시작하면서 현재까지 안 좋아지시기만 한 것 같아요.
중간중간 뇌압의 문제도 있어 2번이나 더 입원하셨고.. 그랬네요.

요즘들어 가장 슬픈건
아빠의 기억이 어디까지인지 짐작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본인의 이름도 모르고, 가끔은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는데
우리 아빠는 이 순간을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가 참 서럽습니다.
이 순간을 기억을 못했으면 하면서도. 그래도 이 기억이라도 있는게 좋은걸까 하는.. 고민도 함께 하면서요.

가장 최근의 주치의선생님 면담에서..
엄마가 어려운 수술을 해주신 의사선생님께 다시한번 감사의 인사를 하면서 재발만 안하면 되는거죠? 라고 물었는데
그날따라 어울리지 않게 친절하시던 선생님께서 단박에 인상이 변하시면서
'이 병은 재발되는 병입니다. 저에게 이런 말 하게 하지 마세요' 라고 하시는 순간..마음이 무너져 내리더라고요..

꼬박꼬박 놓치지 않고 표준치료를 받고 필요할때마다 추가로 병원으로 달려 가는데도
계속해서 나빠지기만 하는 아빠의 모습을 보면서
처음 의사가 얘기했던 잔여 기대수명 중 8개월을 이미 보냈다는게 실감나고 있습니다.
이번달 말에 또 병원 정기 진료를 가는데 무섭네요.

가족의 건강 그것 말고 정말 중요한게 없는거 같아요......
모두들 건강하세요.


*. 덧불임
의사선생님과의 면담이 한참 지난 뒤 그 말을 꼽씹어 보게되었는데
의사선생님도 참 딱하더라고요.
교모세포종의 경우 생존률이 무척 낮은데 그 병에도 최선을 다해 치료에 전념하고
그럼에도 환자를 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그것을 반복해서 목격하는 신경외과 의사라는 직업이 참...참.. 그랬습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VictoryFood
20/01/30 21:02
수정 아이콘
표현은 못하셔도 아버님도 기억하시지 않을까요?
설사 중간중간 기억하시지 못한다고 해도 주변에서 인식하는 것보다는 더 많이 아실 거 같아요.
아버님께 언제나 힘이 되는 말씀 해주세요.
병구완은 정말 힘들지만 두부두부님도 아버님과의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보내시길 기원하겠습니다.
두부두부
20/01/31 08:55
수정 아이콘
조금이라도 기억해주십사 해서.. 사랑한다는 표현을 계속 하는데....
반대로 아빠 자신은 이런 모습으로 가족에게 기억되는게 고통이 아닐까 싶기도 하는 그런 생각도 들어서 참 어렵습니다....
위로의 말씀 감사합니다.
20/01/30 21:13
수정 아이콘
어렵습니다. 제가 사랑하는 사람이 저를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저는 그래도 철이 들기에는 애매했던 나이라 그래도 잘몰랐지만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참 철이 없어서 그랬지 싶어요.
너무 혼자 많은 생각을 하지마시고 가족과 많은 시간을 보내세요.
두부두부
20/01/31 09:11
수정 아이콘
주변에서.. 비슷한 경험을 하셨던 분들께서.. 난 철이 없어 그랬는데.. 넌 후회없이 해라.. 라고 말씀을 주시는데
그런 조언을 실천하고 있는건지.. 그냥 부족하기만 한거 같아요..
아빠의 병 때문에 엄마와 많은 대화를 하게 되었는데.. 엄마랑 그런 얘길 하죠.. 뭘 해도 후회할꺼 같다고...
위로의 말씀 감사합니다.
20/01/30 22:34
수정 아이콘
가족들 마음 누구보다 이해가네요 ㆍ 저도 같은 병으로 어머니 보내드렸습니다ㆍ 어렵게 어렵게 수술해주는 병원 찾아서 수술하셨으나 수술 이후 중환자실에서 회복하시지 못하셨어요ㆍ 대부분의 병원에서 예후가 좋은병이 아니라며 그냥 수술없이 편안하게 남은 시간 가족들과 인간답게 삶을 영위하면서 보내라고 했는데ᆢ 그 말대로 했어야 했나 싶고ᆢ 끝내 마지막 희망으로 혹여 기적이 생길까 조금이라도 좋아지겠지 하는 마음에 수술을 선택했으나ᆢ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결정하기 어려운 문제인것 같아요ㆍ

그냥 지금은 두부두부님 아버님의 모습을 조각 조각 기억 속에 담아 둘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라 여기시고 마음 굳건히 가지시길 바랍니다ㆍ
두부두부
20/01/31 09:21
수정 아이콘
아이고.. 흔치 않은 병이라고 하는데.. 꼭 이렇게 같은 경험을 하셨던 분이 계시더라고요 ㅠㅠ. ㅠㅠ.
저희 같은 경우에는 아빠가 전립선 암 초기도 있으세요. 그래서 비뇨기과 협진도 받았는데
거기 의사선생님이.. 말씀하시길.... 아빠의 주 질환의 예후가 매우 안 좋으니 전립선의 경우에는 수술하지 마시라고.. 돈 쓰지 말라고... ㅜㅜ
그렇게 말씀 주시더라고요.. 참.. 그때 현실을 느끼긴 했어요..

사드님처럼.. 지금 아빠의 병 투병 순간순간을 되짚어 보게 되더라고요. 수술을 했어야 했나. 수술 안 하면 3개월이라고 했지만 그땐 대화도 되고. 움직임도 멀쩡하셨고.. 그때 짧지만 알찬 시간을 보냈어야 했나.
어차피 재발이 예정되어 있다면 그 괴로운 방사선과 항암은 안 했어야 했나..
션트 수술은 의미없다고 하지 말자고 하셨는데 우겨서 했어야 했나. 등등. 여러가지를 되짚어 보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앞으로의 일도 그 만큼 고민하고요. 요양병원으로 모시면 포기한다는 의미가 될까. 비급여 주사를 해보자고 하면 해야 할까. 등등..

위로의 말씀 감사합니다....
20/01/30 23:47
수정 아이콘
뭐라 위로를 드려야 할지도 모르겠네요.. 그저 먹먹합니다. 남으신 시간이 두부두부님 가족분들께 소중한 시간이 되길 부디 기원합니다.
두부두부
20/01/31 09:23
수정 아이콘
위로의 말씀 감사합니다... 그저 감사합니다.
20/01/31 00:12
수정 아이콘
매일같이 그런 장면 목도하는 게 힘든 건 그 정도는 파악할 수 없어도 어느 정도 심정적으로 이해는 하겠는데, 그래도 담당하시는 의사분은 한번만 더 그 말 삼키고 환자 가족들에겐 좀 더 조심스럽게 이야기하셨으면 하는 아쉬움이 드네요.
그런 이야기 하는 의사는 어쨌든 남이고, 그 이야기 듣는 환자의 가족들은 남이 아니잖아요...

글 다 읽고 나니 사실 뭐라 위로를 드릴 방법도 없을 것 같고, 어설프게 짜낸 한마디가 위로가 되실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아버님 살아계시는 동안에, 기억 못 하시더라도 하고 싶었던 이야기 다 하시고 하시고 싶었던 것 최대한 다 하실 수 있게 해주세요.
저는 교모세포종은 경험도 못해봤지만 어머니 대신 저 길러주신 외조모님 치매로 환각 보고, 환청 듣고 눈 앞에 있는 외손주도 못 알아보실 때 진짜 미칠 것 같았는데 지나보니 그때 드시고 싶었던 것, 하시고 싶었던 것, 가시고 싶었던 곳, 기억도 못하시겠지만 그거 하나하나 왜 못해드렸나 하는 사소한 것부터 후회밖에 안 남더라고요.
그때로 돌아갈 수 있으면 빚을 내서라도, 장기를 팔아서라도 뭐든 다 해드릴 것 같아요.
두부두부
20/01/31 09:36
수정 아이콘
어설픈 병간호에서 제가 느낀건.. 여명에 대해서는 의료진이 매우 정확하구나...통계라는건 무섭네..예요..

그리고 의사도 사람이라는거... 그때에는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거 같았지만. 시간이 지난 뒤.. 그 신경외과라는 의사가 참 애잔하더라고요..
저는 소위 말하는 메이저 병원에서 수술을 해서. 그 의사선생님은 흔치도 않다는 뇌종양 환자가 끊이질 않습니다.
옆에서 보았을 땐 그냥 병원에서 사시는거 같아요.. 저희 아빠같은 위급한 환자도 많아 수술장도 우겨서 만들고. 입원도 턱턱 시켜주시고
많은 의료진을 활용해 10시간 넘는 수술도 하루에 3번씩 하시고. (그 분이 10시간 동안 수술하는게 아니지만서도요)..

근데 제가 어설피 듣기로는 뇌종양이라고 하면 교모의 비중이 적지 않고.. 그 교모는 생존률은 매우 낮은.. 그런 병으로 알고 있어요..
왜 신경외과라는 전공을 택하셔서.. 뇌가 망가지는 환자를 계속 만나고 그 끝은 암흑인걸 아는 심정이 어떨지..


마음이 아픈건. 아빠가 뭘 하고 싶어하지 않으시다는거예요.. 먹고 싶으신 것도 없고.. 그리고 정말 없으셔서 그런건지 알 방법이 없는 저도 한심하고요.. ㅠㅠ.. 저 땜에 많은 분들이 아픈 기억을 끄집어 내게 된것 같아 송구스럽습니다.
위로의 말씀 감사합니다.
유목민
20/01/31 00:22
수정 아이콘
뒤를 돌아봐 그때 다른 선택을 했으면 어떨까!!

그 NS선생님 입장이기도 또 두부두부님 입장이기도 했던, 사람으로서도

어느쪽이 더 좋은 선택일지 알 수 없습니다.

한가지 중요한 것은
이전은 다 잊어버리고 현재 시점에서
아버님과 가족들이 남은 짧은 시간 동안 행복한 시간을 갖는 것이에요.
얼마를 더 사시느냐보다 어떻게 살고 마무리하시게하느냐를 생각하시는게 나을 듯 합니다.
아버님 더 나빠지시기 전에, 아버님 아들딸로 그동안 너무 행복했다 조금더 표현하시고 좋은 마무리 되시길 바랍니다.
두부두부
20/01/31 09:41
수정 아이콘
의사선생님이시군요. 감사합니다. 그저 감사합니다.
병 간호를 하면서.. 병원에서 그저 사시는 선생님들이 인터넷 글에서만 보는 환상이 아니었구나. 정말 현실이구나를 많이 느낍니다.
아침 일찍부터 본 선생님이 밤에도 그저 계시는 모습을 보고 참..그랬습니다. 감사합니다.

네. 현재의 충실해야지라고 맘을 다 잡고 있습니다. 시간이 정말 금이거든요...

위로의 말씀 감사드리고. 앞으로 좋은 의술 부탁드립니다.
20/01/31 08:02
수정 아이콘
뭐라 댓글을 달기도 어렵고 무겁네요.
조언은 다른 댓글들에 있으니 힘내시길 빕니다.

저희 가족들도 다 아픈 부분이 생기다보니 지인들에게 하는 인사가 건강하라는 인사로 바뀌더군요.
두부두부님도 건강하세요. 건강이 최고입니다.
두부두부
20/01/31 09:44
수정 아이콘
위로의 말씀 감사합니다.
글을 남기게 된 건.. 그저.. 하나라도 아빠를 더 생생하게 기억하게 할 수 있는 수단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요. 정말 건강이 최고입니다.
Love&Hate
20/01/31 11:04
수정 아이콘
위로의 말씀을 건네보려고 쓰다가 지웠습니다.
그저 힘내세요.
두부두부
20/01/31 15:20
수정 아이콘
제가 요즘들어 느끼는건데요.. "힘내"라는 말은 힘이 있는거 같아요.
위로의 말씀 감사합니다.
RapidSilver
20/01/31 13:59
수정 아이콘
학위연구주제로 교모세포종 (GBM)을 연구했고, 또 지금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입장에서 참 먹먹합니다
수술현장도 참관하고, 의사선생님들의 경험담과 환자 가족분들의 경험담도 들어본 입장에선... 당사자가 아닌 이상 차마 그 아픔을 다 헤아릴수 없겠지만 간접적으로나마 들은 이야기가 많다보니 제가 다 먹먹하고 가슴이 아프네요. 제 말이 오히려 상처가 될 수도 있을것같아 조심스럽지만, 저도 힘내시란 말씀밖에 드릴수없는게 안타깝습니다.

매년 열리는 국제 신경종양학회에서 항상 가장 뜨거운 이슈가 교모세포종이고 수많은 전세계의 의사들과 연구자들이 교모세포종 정복을 위해 지금도 밤낮으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루빨리 정복되어서 더이상의 아픈 가족들이 생기지 않길 바랄 따름입니다.
두부두부
20/01/31 15:29
수정 아이콘
왜 이런것을 연구하셨는지.. 애잔하신분 여기 계시네요.ㅜㅜ
저희야 환자 가족이라 선택의 여지가 없었는데.. 참.. ㅠㅠ.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교모세포종이라는 질병의 생존률은 참 더디게 올라가는 것 같습니다.
뇌 질병이라 그 과정도 가혹하고요.. 치매는 아니라는데.. 본인을 잃어가는 질병이라는게 참 가슴 아픕니다.
그래도 신체적으로 극심한 고통이 없다는 것에 그 점에 감사하고 있어요..
명확한 원인도 모르고 완치란 없는 이 질병 참.. 어렵습니다. 감사합니다.
20/02/02 13:24
수정 아이콘
힘내세요.
가족의 뇌종양... 관련해서 저도 심란한 면이 있는데,
그래서인지 더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 같습니다.

가족의 건강 그것 말고 정말 중요한게 없는거 같아요 라는 말이 정말 와닿네요.
힘내시고 행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84225 [일반] 2019년 드라마 리뷰 [24] 소시8642 20/02/02 8642 2
84224 [일반] 밤에 들으면 /드라이브할때 /그냥 분위기낼때 좋은 인디음악들 [8] azrock8374 20/02/01 8374 3
84222 [일반] 음주운전이 위험하지만 갱단만큼은 아니다 [28] 라방백9203 20/02/01 9203 2
84221 [정치] 외국인 코로나 바이러스 지역 체류자, 중국 여행자의 입국금지는 가능한가? [257] 마술사얀0318557 20/02/01 18557 0
84220 [일반] 삶의 질을 높여주는 건조기 [53] 청자켓10564 20/02/01 10564 0
84219 [일반] 잊혀지지 않는 사람, 다들 하나쯤 있나요 [18] 삭제됨7544 20/02/01 7544 17
84218 [일반] 참을 수 없는 자격지심에 대하여 [6] 삭제됨6411 20/02/01 6411 16
84217 [일반] 업비트 판결이 나왔습니다. [37] 절름발이이리14975 20/02/01 14975 3
84216 [일반] 브렉시트 작업이 완료됐습니다 [33] 강가딘10988 20/02/01 10988 0
84214 [정치] 윤석열, 차기 대선 주자 여론조사에서 2위 [104] 롯데올해는다르다18347 20/02/01 18347 0
84213 [일반] 레알 남매의 전쟁이 벌어지게된 대한항공 (조현태 vs 조현아) [38] VictoryFood11161 20/02/01 11161 0
84212 [일반] (일상글)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는 가게 [5] aurelius5866 20/01/31 5866 6
84211 [정치] 김문수, 전광훈과 극우 성향 자유통일당 창당 [57] 及時雨10641 20/01/31 10641 0
84209 [일반] 타미플루 처방은 인플루엔자 환자의 자살을 비롯한 신경정신과적 부작용을 늘리지 않는다. [24] 여왕의심복11048 20/01/31 11048 27
84208 [일반] 최신 논문을 통해 찾아본 신종 코로나 감염증 [24] 턱걸이최대몇개9983 20/01/31 9983 9
84207 [일반] 무기의 시대(Age Of Weapon) (4) [4] 성상우5959 20/01/31 5959 1
84205 [일반] '저희 나라'는 사용가능하다. [78] 실제상황입니다17864 20/01/31 17864 16
84204 [일반] [현대사] 미국이 바라본 문선명과 통일교의 정체 [10] aurelius11432 20/01/31 11432 8
84202 [일반]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유행 관련 FAQ 및 최신 정보 (2020.01.31. 1530) [376] 여왕의심복70754 20/01/27 70754 222
84201 [정치] 우한폐렴이냐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냐 [192] slo starer15702 20/01/31 15702 0
84200 [정치] 의료기관들이 N95 마스크를 구할 길이 없네요 [146] metaljet18853 20/01/31 18853 0
84197 [일반] 교모세포종 2번째 글 [19] 두부두부7584 20/01/30 7584 14
84196 [정치] 한국당 예비후보 호남서 단 1명뿐…'전국정당화' 전략 고심 [83] 강가딘11089 20/01/30 11089 0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