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때 가족들과 외식을 했는데, 옆에 다른 가족이 처음에는 조용히 밥을 먹다가 막판에 고래고래 소리지르면서 싸우는 것을 봤다. 그 때 어머니께서 "저 봐라, 다들 저렇게 싸우고 그러는거야. 우리만 그런게 아니고." 라는 말씀을 하셨던게 기억에 강하게 남았다. 어머니는 기억도 못 하실 정도로 그냥 하신 말씀이지만, 나는 나만 그런게 아니라고 깨달았던 계기로 기억한다.
인터넷을 돌아다니다보면 가끔씩 가정불화 관련된 글이 올라온다. 읽어보면 저런게 가능한가 싶고, 어떻게 같이 살았나 싶기도 하다. 주작이 판치는 세상이라서 일부 혹은 대부분 거짓일 수도 있지만, 가끔 뉴스에 나오는 사건들을 보면 가능하고도 남아보인다. 그런 이야기와 나의 경험을 비교해보면 나의 것은 흔해 빠지다 못해 어디가서 말도 꺼내기 민망한 수준이다.
어느 정신의학 전문의가 TV에 나와서 했던 말이 생각난다. 우울증, 결벽증, PTSD는 누구나 조금씩은 있는 것인데, 그것이 만약 일상생활에 영향을 줄 정도의 수준이라면 상담이나 치료가 필요하다 라고. 나는 일상생활에 전혀 문제될 것이 없었으니 치료나 상담이 필요한 수준이 아니고, 다시말해 내 고통은 객관적으로나 주관적으로나 별 것 아니었다는 이야기다.
부모님과 떨어져 지낸지 7년이 되었고, 완전히 독립한 것은 3년차다. 참고로 일부러 관계를 끊은게 아니라 자취, 취업 등으로 그렇게 된 것이다. 당연히 1년에 3~4번 만나게 되었고, 가끔 만나는데 굳이 서로 얼굴 붉힐 말이나 행동은 하지 않았다. 즉, 7년의 세월동안 내가 적어도 가족관계에 있어 고통을 받은 적은 없다.
지난 달에 윗층에 누군가 이사를 왔다. 누군지도 정확히 몇 호인지도 모르겠지만 쉬는 날 공사하는 소리가 들리길래 이사왔나보다 했다. 그리고 어제 새벽, 아니 12시가 지났으니 오늘 새벽이 맞겠다. 복도를 통해 싸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내 숨소리가 들릴 정도로 사방이 조용한데 닫힌 문을 뚫고 들려오는 소리, 귀를 꽉 막으면 뭐라고 하는 지는 알 수 없지만 그래도 들려오는... 어렸을 때의 그 소리였다.
잠을 자려고 릴렉스했던 몸에서 갑자기 심장이 두근거리고, 정신이 말똥말똥해지면서 온 몸에 식은땀이 확 나는게 느껴졌다. 잠깐 조용해져서 끝났나 싶었는데 다시 들려오는 소리에 심장은 더 빨리 뛰었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 하고, 일어나서 물을 두 모금 마시고 속으로 '새벽에 싸우고 X랄이야' 라고 스스로에게 허세를 부리면서 다시 누웠다. 하지만 그 소리는 계속 되었고, 결국 숨 쉬는게 힘들다는걸 깨달은 후에야 집 밖으로 나와 편의점 벤치에 앉았다. 다행히 증상들은 십여분 정도? 만에 사라졌고, 그 소리도 다시 집에 들어갔을 때는 잠잠해졌다.
남들은 총에 맞고, 칼에 맞고도 의연해서 고작 돌멩이에 얻어 맞았던 나는 당연히 괜찮을거라 생각했지만, 실제로 나는 그 돌멩이에 맞아 죽을 수 있는 개구리였나보다. 중요한건 때리는 도구가 총이냐, 칼이냐, 돌멩이냐가 아니라 맞는 대상이 토르인지, 캡아인지, 지나가던 시민1인지, 나인지 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