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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8/05/17 15:58:58
Name 글곰
Subject [일반] 아픈 아이 하루 돌보기
  아이가 탈이 났다. 며칠 전부터 피곤하다고 칭얼대던 것부터가 좋지 않은 조짐이었다. 그런데도 차를 타고 나가 기온이 멋대로 오르내리는 환절기에 일산 호수공원에서 한동안 씽씽카를 탄 것이 결국 문제가 되었다. 일요일 저녁부터 열이 오르기 시작한 아이는 이틀 동안 유치원을 걸렀고, 수요일 오전에는 결국 열이 40.6도를 찍었다. 출근복장을 하고 아이에게 인사하던 나는 체온계를 확인한 후 다시 안방으로 돌아와 하루 연가를 내고 반바지에 티셔츠로 갈아입었다. 용량을 가득 채워 네 시간 간격으로 투여한 해열제가 힘을 쓰는 동안 장모님께서 아이의 옷을 갈아입히셨다. 나는 시간에 맞춰 아이를 차에 태운 후 병원으로 향했다.

  평일 아홉 시 오 분의 소아과는 한산했다. 평일 아홉 시 오 분의 소아과 의사는 주말보다 활기차 보였고 주말보다 훨씬 더 상세히 설명을 해 주었다. 구내염 또는 수족구 소견이 내려졌고 지난번에 받았던 감기약은 쓰레기통에 처박은 후 새로운 항바이러스제를 받았다. 나는 폐렴이 아닌 데 안도하며 아이를 데리고 약국으로 내려왔다. 평소보다 힘이 없어 축 처진 아이는 놀랍게도 주스를 거부했다. 그러나 디즈니 프린세스 스티커 세트까지 거절할 정도로 상태가 나쁘지는 않아 다행이었다.

  예전, 사십 도가 넘는 고열을 아이가 처음 겪었을 때는 정말이지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세상에 그보다 더 충격적이고도 힘든 일은 없었다. 그러나 의술의 힘은 단지 며칠 만에 아이를 원래대로 되돌려 놓았고, 본래 반(反)의학적 기질이 있었던 나는 그 때부터 현대의학의 신봉자가 되었다. 의사님 만세. 간호사님 만세. 약사님 만세.

  두 번째로 사십 도가 넘는 고열이 습격해 왔을 때는 제주도에 여행가기로 한 연휴 이틀 전이었다. 나는 걱정하는 아내를 설득하여 가방에 해열제와 냉찜질 시트를 챙겨 넣은 후 제주도로 갔다. 아이는 놀라운 존재였다. 그 고열에도 불구하고 목적지에 도착할 때마다 마치 어딘가 감추어 두었던 체력을 꺼내 쓰는 것처럼 부활했다. 그리고 저녁에 숙소로 돌아가면 다시 열과 함께 축 처졌다. 그렇게 이틀 동안 원래 계획보다 훨씬 여유로운 일정을 소화한 후 집으로 복귀하는 사흘째 아침에 아이는 멀쩡해져서 공항 안을 천방지축 뛰어다녔다.

  그런 두 번의 경험이 있었기에 이번 고열이 크게 무섭거나 두렵지는 않았다. 하지만 안쓰러움은 별개의 문제였다. 콩알만 한 아이가 피로에 지치고 약기운에 젖은 채 칭얼대는 모습은 부모의 마음이 찢어지게 하기 마련이었다. 약을 제대로 넘기지 못해 인상을 찌푸릴 때는 이 약을 먹어야 한다고 윽박지르면서도 동시에 그런 내 행동이 미안해졌다. 그러다가도 갑자기 약발을 받아, 내복을 목에다 걸고 양팔을 날개처럼 휘저으며 오징어 흉내를 내면서 거실을 빙글빙글 도는 모습은 우습다 못해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내가 그 정도 몸 상태라면 지쳐 쓰러져서 아무 일도 못할 텐데, 아이란 대체 그 조그만 몸 어디에다 그런 체력을 숨겨 놓는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마치 코스닥 개잡주처럼 몸 상태가 롤러코스터를 타는 아이를 온종일 돌보자 나는 녹초가 되고 말았다. 그럼에도 퇴근한 아내가 돌아오자 나는 ‘바깥에서 열심히 일하고 온 사람에게 밥을 차려줘야지!’ 하고 기세 좋게 외쳤다. 그러나 실상은 오전에 해 놓은 밥을 펀 후 스팸 하나를 썰어 구워주는 것이 고작이었다. 다행히도 그때쯤 아이의 열은 떨어져서 기껏해야 평소보다 1도 정도 높은 정도였다. 나는 다시 한 번 현대의학에 무한한 감사를 표했다.

  샤워 대신 간단한 세수와 양치질만을 마친 아이와 함께 잠자리에 눕자마자 나는 그대로 잠들었다. 밤새 천둥번개가 몰아쳤다지만 나는 전혀 알지 못했다. 다행히 아이 역시 한 번도 깨지 않고 쌔근쌔근 잘도 잤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만져본 아이의 배와 등은 미지근했다. 휴우. 나는 한숨을 내쉬며 이렇게 또 한 번의 고비가 넘어갔음을 알았다. 그렇게 나는 조금의 경험치를 더 쌓았다. 그러면서도 불현 듯 내년으로 예정된 육아휴직이 두려워지는 것이었다. 아무리 아팠다지만 하루만 애를 봐도 이렇게 힘든데 과연 내가 일 년 동안 아이를 잘 볼 수 있을까.

  뭐, 어떻게든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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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5/17 16:03
수정 아이콘
본격 육아싸이트 피지알에 어울리는 글이네요. 광통령은 무슨!

15개월 아빠인데 아직 크게 아픈적은 없어서 다행이지만 아플 일이 아예 없지는 않을테고 걱정 되네요. 저 어렸을 때 아팠던거 생각하면 미리 안쓰럽기도 하고 부모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들기도 하고 그럽디다.
18/05/18 11:04
수정 아이콘
광통령이 뭡니까? 저는 어려서 그게 뭔지 잘 모르겠네요...
srwmania
18/05/17 16:04
수정 아이콘
(수정됨) 어차피 따님이 하루 종일 집에 있을 건 아니지 않나요?
육아의 지옥은 하루 종일 애랑 같이 있을 때지, 어디라도 다녀오면 훨씬 낫죠.
부럽습니다. 육아휴직. 역시 맞벌이가 채고시다 (...)
치키타
18/05/17 16:06
수정 아이콘
지난 주 토요일이부 21개월 딸내미가 고열이였는데 결국 A형 독감이라고 하더라구요...온가족이 지옥을 맛보는 중입니다..
18/05/18 11:04
수정 아이콘
으악 21개월에게 독감..... 경험상 대체로 어른에게 옮기면서 낫더군요.
사악군
18/05/17 16:11
수정 아이콘
애들은 열이 너무 많이 올라가서 무섭죠..ㅜㅜ
고분자
18/05/17 16:12
수정 아이콘
고열 무섭지요 잘 나아서 다행입니다.
글 잘 읽고 갑니다.
이쥴레이
18/05/17 16:21
수정 아이콘
아이들은 열이 정말 많죠. 수족구/구내염/중이염/로타바이러스 등 온갖 증상으로 병원에 몇번 입원하고 열 내리느라 정말 하루하루 힘든 시기를
보내고 했었죠.

그러다가 자주 발생하는 중이염을 근절하기 위해 수술을 하였는데 일주일동안 40도 고열로 그 수술한 지방 대학병원 입원했는데..
애 열이 안내려가더군요. 원인도 알수 없고 열만 계속 고열상태라...

제가 사는 지방에서 제일큰 대학병원에서 별방법이 없어서 시간아 하면서.. 지내는데 친누나가 뭘 뻘짓이냐고
서울 대학병원 응급실로 가라고 닥달해서 그날밤 바로 몇시간 걸려서 서울대학교 어린이병원 응급실로 갔습니다.

응급실에 정말 대기하고 있는 아이들이 많더군요. 응급실도 병실 한계가 있어서 밖에서 아픈데도 불구하고 그 좁은 의자에 누워서
기다리는 아이들이 인산인해입니다. 거기서 빠르면 하루, 늦으면 진짜 2~3일 기다리면서 응급실 병실 자리 나오기 기다리고..
응급실 병실 배정 받으면 거기서 다시 2~3일 정도 기다리다가 어린이병원 병실 빈자리 나오기를 기다리게 됩니다.

수요가 몰려서 어쩔수 없는것은 알지만 지방병원은 하루면 입원할거를 서울 대학병원들은 진짜 몇일을 기다려야 됩니다.
그렇게 고열로 지방 대학병원 일주일, 그리고 서울대 병원 응급실에서 3~4일 있다가 일반 병실로 왔지만..
열은 계속 떨어지지 않고, 원인도 알수 없어서..

나중에 골수 검사를 하자고 하더군요. 그때당시 30개월 좀 넘은 아이가 그걸 못 버틸거 같은 생각도 들고..
원인 파악이 여기서도 안되니.. 중이염 수술이 문제였나.. 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대학병원에서는 수술이 완벽히 잘된 수술이고
귀도 째거나 뭐 처리한게 아니라고는 하지만..

2주동안 40도 고열이면 이제는 뇌관련에서 지대한 영향을 줄수 있다고 해서 결국 골수검사를 할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저녁 기적처럼 열이 내려가더군요. 그렇게 천천히 열이 내려가고 나서 3일뒤 정상 체온이 되었을때 얼마나 기뻤는지..
병원에서는 아마도 바이러스성이었다는거 같다고는 이야기하고 정확한 원인은 이야기 안해주더군요.

아이는 정말 자주 아프고 열이 많이 납니다. 이게 이제 일상이 되어서 처음과는 달리 응급실을 가더라도 할수 있는게 뻔하기에
짐에서 약먹이면서 온수찜질도 해주고 먹는것도 가려서 주면서 하게 되죠.

아이키우는 분들 정말 고생 많으신거에요. ㅠ_ㅠ
18/05/18 11:06
수정 아이콘
어우 듣기만 해도 무섭고 겁이 납니다. 정체모를 바이러스와 싸우느라 아이가 정말 힘들었겠어요.고생 많으셨습니다.
한글여섯글자
18/05/17 16:31
수정 아이콘
두돌 갖지나서 아이가 경련을 했습니다. 입술이 파래지고 몇초 동안 숨을 못쉬는데 눈앞에서 보는데 정말 무섭더라고요. 응급실가서도 한번더 경련을해서 입원하고 검사해보니 다행이 구내염때문에 열나서 경련온거고 큰이상은 없는거라 금방 퇴원은 했는데 그이후로는 열나면 새벽4시 쯤에 마지막 해열제 먹이고 잠드네요.
누렁쓰
18/05/17 16:53
수정 아이콘
생후 4주 아이가 어제 밤 천둥번개에 놀라서 칭얼거려 밤새 토닥여주었는데, 앞으로 열이 나고 배가 아프고 탈이 나는 그런 상황을 어찌 감당할지 막막하네요.
Je ne sais quoi
18/05/17 17:16
수정 아이콘
40도 넘어가면 머리로는 경험적으로 괜찮아지겠지 하지만, 일단은 겁부터 나더군요.
박보검Love
18/05/17 17:50
수정 아이콘
아이들은 뜻밖에 고열에 잘 견딘다고 하더라고요. 물론 알고는 있어도 무섭죠. 우리아들도 유치원 땐 매년 열감기를 앓더니 초등학교 들어가곤 열감기는 안 앓더라고요. 금세 큽니다.^^
18/05/18 11:07
수정 아이콘
저는 '요즘 애가 안 아프다'라는 말을 할 때마다 아내가 기겁하며 화냅니다. 부정탄다고요.ㅠㅠ
18/05/17 18:31
수정 아이콘
오징어 흉내라니요, 나비에요, 나비.

아이들은 자주 고열이 나나봐요? 무언가 면역체를 막 생성하고 백혈구가 자라면서 더 열심히 제 할 일을 하는거겠죠? 내복 나비 너무 이쁘겠어요
18/05/18 11:03
수정 아이콘
저도 나비인 줄 알았는데 아이가 자기 입으로 '오징어~'라고 외쳤습니다.
무선꿍꺼떠
18/05/17 20:50
수정 아이콘
진짜 힘든 건 아이가 고열인 상태에서 잠 들었을 때예요. 당연히 잠 못자고 보초 서면서 열체크 해야 하고, 아이가 잘 잔다고 해도 그게 몸이 괜찮아 잘 자는건지 열 때문에 늘어진 것인지 판단이 어려우니 더 긴장하고 봐야 하죠. 그러다가 열이 오르면 잠 자는 아이를 깨워서 약 먹여야 하는데 당연히 아이는 자다 깼으니 짜증과 떼가 작렬 ㅠㅠ
그나마 이 정도면 다행인데 열경기 하는 아이라면 숨을 제대로 못 쉬면서 눈 뒤집고 까부라지는 아이를 업고 응급실로 뛰어야 합니다 ㅠㅠ 제발 아프지만 말아줘
Thursday
18/05/17 21:49
수정 아이콘
보고 왈칵 눈물이 났어요.
밥잘먹는남자
18/05/17 23:40
수정 아이콘
저도 애기 열때문에 요며칠 병원과 응급실을 다녔습니다. 애기낳기 전에는 감기가 이렇게 무서운건지 몰랐어요...
사다하루
18/05/17 23:42
수정 아이콘
아이구...
아프면서 크는게 아이라지만..
애들은 정말 건강하고 밝게만 커줬음 좋겠어요..ㅠㅠ
종이사진
18/05/18 05:39
수정 아이콘
내 아이가 아플 때는..
내가 아픈 것보다 더 아프죠.
18/05/18 11:00
수정 아이콘
애가 셋인데 둘째가 아프고 나을때쯤 막내가 아프고 나을때쯤
첫째가 아프고 나을때쯤 마누라가 아팠던 ...
나까지 아프면 안된다 하면서 이를 악물고 식구들을 다 재워놓고 새벽까지 오버워치를 했던 기억이 크크
18/05/18 11:02
수정 아이콘
그리고 경쟁전에서 패배한 아빠의 마음이 아파요...... ㅠㅠ
애 셋 키우시는 분은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이걸 어떻게 하십니까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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