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황금빛 내인생이라는 드라마가 요즘 유행이에요. 다른 건 모르겠고 천호진 아저씨가 나올 때는 아버지 생각이 날 수밖에 없네요. 천호진 아저씨가 가족들에게 실망하고, 아프게 되면서 그 동안 하고 싶은 걸 하다가 기타를 치고, 배우는 장면이 나와요. 그 장면을 보다 보니 아버지께서 뭘 좋아하셨는지 생각하게 되네요.
어린 시절 저는 아버지께서 좋아하시는 거라고는 오직 소주밖에 없는 줄 알았어요. 주말에 가끔 오징어와 함께 드시던 맥주도 생각나네요. 정말 오징어는 기가 맥히게 구우셨는데. 누군가가 아버지를 술꾼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니 이 이야기도 같이 해야겠네요. 아버지께서는 정말로 우리 가족을 위해 힘쓰셨어요.
아버지께서 자동차 카달로그를 보시던 것이 생각이 나요. 2018년 마이크로소프트 워드는 카달로그가 틀렸다고 빨간 줄을 긋네요. 하지만 카탈로그라는 말은 입에 영 붙지가 않아요. 아버지께서 항상 말씀하시던 카달로그, 이게 저에게는 더 좋아요.
어쩌면 자동차는 아버지께 허락된 유일한 사치였을지도 모르겠어요. 자동차를 타고 출퇴근을 하시고, 일을 하시고, 가족들을 태우고 놀러 갈 수 있는 것은 자동차였으니까요. 아버지께서는 가정을 챙기시면서 아들 3명을 키우셔야 했고, 당신의 병원비를 내면서 일을 했어야 했으니까요. 지금 돈을 벌어보니까 알겠어요. 그것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일이었는지를요.
아버지께서 주말에 오징어를 구우시고, 맥주를 드시면서 카달로그의 자동차를 보셨을 때 저도 그때 같이 뭐라도 한마디 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뭐 이런 대화를 하는 거죠. 아버지 요새 코나가 그렇게 예쁘답니다, 전기차를 생산하는 테슬라에서 트럭이 새로 나온다는데요? 이제 집에 있는 포터는 그만 팔아버리죠? 같은 대화요. 저는 그때는 오징어를 먹는 게 좋았어요. 맥주는 너무 맛이 없었고요. 뭐 그러네요 지금 생각해보니.
아버지
아버지께서 그렇게 염려하셨는데, 저는 어느새 취업을 했고, 이제 출근한 지 육 개월이 넘어가고 있어요. 아버지께서 건설 일을 하셔서 제 평생 건설 사 쪽으로는 오줌도 안 눌 줄 알았는데, 이게 웬걸, 건설회사에 취직했네요. 취업준비를 하는 동안 한번도 건설 사를 써본 적이 없었는데 마지막에 결국. 얄궂네요 정말로요.
면접을 본 후 아버지와 저녁을 먹었던 것이 기억나요. 그러고 보니 그것이 아버지와 저의 마지막 저녁식사였네요. 거 참 무심도 하시지, 말씀이라도 하셨으면 좀 더 맛있는 걸 먹을 걸 그랬어요. 갈비탕이 뭡니까 갈비탕이, 소고기도 아니고. 아버지께서는 그마저도 입에 안 받는다며 많이 드시지 않으셨죠. 이제는 갈비탕이 아니라 소고기를 넘치도록 사드릴 수 있는데 말이에요.
그 때 그런 이야기를 했었어요. 서류를 통과한 인원이 700명이었고 면접에 온 사람이 12명이었죠. 그리고 최종 합격 인원은 아마 2명 정도로 예상되는 상황이었어요. 아버지께서는 그러셨죠. 너무 조금 뽑는다. 그래도 할 수 있었다고 말씀 드렸던 것이 지금 생각해보니 다행이에요.
그러고 보니 두 번째 수능을 보고 와서 당신과 순댓국을 먹을 때 TV에서 물리 2 복수정답 문제로 난리였었죠. 그때 아버지께서 제게 너는 괜찮니? 하셨던 게 기억이 나요. 아버지 아들은 이과였지만 문과로 재수를 한걸요? 관심도 없으시지 헤헤… 그래도 아버지와 저는 중요한 시간에서는 항상 함께 있었네요.
아버지
뭐가 그렇게 급하셨을까요? 그날 아침에는 참 기분이 그랬어요. 그날은 정기적으로 치료를 위해 입원을 하는 날이었고, 아버지께서는 전날부터 참 몸이 안 좋으셨죠. 전날 갈비탕을 한 숟가락 드시고는 운전하시는 내내 그렇게 추워하셔서 제가 입고 온 옷을 벗어드렸던 것이 기억나네요. 4월 5월이었는데요. 아침에 병원을 가시는데 가냘퍼진 몸으로 패딩을 입으시고 걸어가시던 것이 기억이 나요. 그때 마지막으로라도 얼굴을 봤어야 했는데 잠에 취해 누워있던 것이 참으로 한이네요. 아마도 앞으로도 계속 그럴 거에요.
그날은 참 정신이 없었어요. 어머니께서 얼른 병원에 가자고 하셨던 것이 기억나요.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가는 내내 어머니께서는 우셨고, 저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기도했어요. 하나님도, 부처님도 안 믿지만, 그래도 한번만 봐달라고, 나는 우리나라의 의학기술을 정말로 믿고 있으니, 이건 아니지 않냐고 그런 생각을 했었어요.
택시틀 타고 병원에 도착했는데, 앰뷸런스가 보이더라고요. 그때 또 그 생각이 나더라고요. 아버지께서 출근하시다가 아프셔서 병원에 가셨는데, 췌장암 통증을 참으시고 운전해서 오신 거요. 참 미련하기도 하시지. 정말로요.
중환자실은 참으로 막막했어요. 그곳은 너무 정신이 없었고, 너무 약 냄새가 많이 났어요. 뛰어갔는데 심장마사지를 하고 있었어요 아버지. 그것 참 드라마에서 봤을 때는 그럴 줄 몰랐는데 아득하더라고요. 하늘이 노래지는 게 이런 느낌인줄 처음 알았어요. 얼마나 무서우셨을까, 얼마나 겁나셨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오만 곳에 오만 관이 연결되어 있는데, 참으로 무섭더라고요. 차가워지는 게, 힘이 없는 게, 호흡기를 떼는 게,
얼마나 울었는지 모르겠어요. 일하고 있는 동생에게 전화를 하는데 동생 목소리를 듣자마자 목이 콱 막혔어요. 동생도 아마 이 시간에 직장으로 연락이 온 걸 보고 예감을 했을 테죠. 동생이 왔고 정리한 후 끊었던 담배를 동생과 함께 피웠어요. 얄밉게 날씨가 그렇게 좋더라고요. 주차장에서 담배를 피는 데 참 기분이 묘했어요. 이렇게 날씨가 좋은데, 이렇게 햇살이 밝은데 말이에요.
아버지
그 다음 이야기는 언젠가 시간이 되면 다시 돌아보기로 하고, 오늘 것 참 드라마를 보며 아버지처럼 소주 한 병 하다가 아버지 생각이 나서 이렇게 글을 쓰네요. 보고 싶어요.
아버지
항상 걱정시키는 아들이었고, 독하지 못하고, 유약한 아들이었어요. 추울 때 따뜻하게, 더울 때 시원하게 일하려면 공부해야 한다고 하셨는데, 큰아들이라고 엄청 밀어주시고 믿어주셨는데 공부도 엄청 잘 하지는 못했네요. 그래도 이제 취업했는데, 아버지께서는 아직도 취업도 못한 아들로 기억하실까 봐, 그게 좀 마음에 걸리네요. 아버지 잘 보내드리고 다음날 아버지 납골당에 넣을 사진을 찾으러 갈 때 합격 발표가 났었어요. 며칠만 일찍 알려드렸다면 참 좋았을 텐데요.
아버지
요즘 무서운 건 그거에요. 벌써 조금씩 조금씩 내가 인지하지 못하는 부분에서부터 아버지를 잊어가고 있어요. 언젠가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그렇게 되겠죠. 모습, 얼굴, 목소리 모든 것이 점점 흐려져갈 거에요.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우리가 아무리 아버지를 생각해도 말이에요. 요즘은 그게 제일 무서워요. 그렇게 가족 사진도 찍고 가족 여행도 가려고 했었는데, 조금만 더 시간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급하기도 하시지.
아버지
그래도 지금은 아프시지 않고 잘 계실 거라 믿어요. 취업도 아버지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동생도 여자친구가 생겼네요. 하늘에서 힘써주시느라고 고생이십니다. 곧 기일이네요 아버지. 다시 한번 찾아 뵐게요.
소주한잔 하고 싶어요. 날이 춥네요. 따뜻하게 그리고 이제 안 아프게, 편하게 지내셔요. 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