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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17/05/15 23:56:15 |
Name |
깐딩 |
Subject |
[일반] 동물의 고백(17) + 외전(1) |
여자가 연신 '어...' '음...' 을 연발하며 고민을 한다.
휴대폰의 달력을 꺼내본다.
몇 분을 고민하더니
"시간 좀 보고 고민해볼게요."
라고 대답한다.
그래 부정적인 대답이 아니다.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그날 헤어질 때 나는 여자를 향해 "들어가세요." 가 아니라
조용히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돌아오는 내내 머릿속이 멍해서 돌아가는 지하철 방향도 거꾸로 탔다.
이거 당분간 회사에서 일도 제대로 못할 것 같다.
이틀 후 오후 3~4시쯤 카톡이 날라왔다.
-XX 씨 회사죠?
아무 생각 없이 일에 열중하고 있었는데
모니터에 뜬금없이 나타난 여자의 프사사진을 보고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진짜로 몇 분 동안 심호흡을 하고 나서야 겨우 진정이 되었다.
-네.
-크크 닮은 사람을 봐서 순간 깜놀했어요.
-헠 크크 어디서 보셨어요?
-산책로에서요.
-지금 산책로세요?
-네, 걷는 걸음걸이도 똑같았는데 가까이에서 보니까 아니었네요. 크크
-이 시간에 어떻게 산책로에 계세요?
-오늘 일찍 퇴근했어요~
나가야 한다. 만나러 가야 한다.
이 생각뿐이었다.
조용히 외투를 챙겨 입는다.
말없이 회사 밖으로 빠져나온다.
일이고 뭐고 아무것도 모르겠다.
'X바 아무도 날 막을 수 없으셈'
-오늘 아침부터 바쁜 일이 있어서 점심도 못 먹고 계속 일했거든요ㅜ
그랬더니 오늘 일찍 퇴근시켜주시네요.
답답해서 좀 걷고 있었어요. 크크 부럽죠?
-잠깐 같이 산책하실래요?
대답을 듣기도 전에 나는 이미 산책로로 향하고 있었다.
-지금 나오실 수 있어요?
-네.
-오와! 그래요! 산책로 구름다리에 있어요. 좀 먼가ㅠ
-금방이죠.
걸으면 15분 걸리는 거리를 단숨에 달려갔다.
내가 이런 날을 위해 열심히 러닝을 했던 것일까?
저기 멀리서 날 알아보고 손을 흔드는 여자가 보인다.
숨이 가빠서 그런 건가 가슴이 요동친다.
같이 여유롭게 산책로를 걸으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눈다.
"목 마르시지 않으세요? 제가 커피 한 잔 살게요."
여자가 커피 한 잔 사겠다며 카페로 안내했다.
거기서 또 한참을 웃고 떠든다.
휴대폰이 울린다.
'아 진짜 한참 좋은데 누구야...'
후배한테서 전화가 왔다.
#선배님! 지금 어디세요!
#나 잠깐 볼일이 있어서 나왔어, 왜?
#너무 안 오신다고 부장님이 찾으세요.
아, 제발 날 가만히 내버려 둬!
"아, 들어가 보셔야 되죠?"
"죄송해요, 아무래도 그래야 할 것 같네요."
시간을 보니 내가 나온 지 한 시간 반이나 지났다. 찾을 만도 하네.
카페를 나오면서 슬쩍 점심 이야기를 꺼냈다.
"이 근처에 스파게티 집 새로 생겼는데 혹시 아세요?"
"네 진짜요? 어디에요?"
"저번에 순대 국밥집 갔던 거 기억나시죠? 거기서 골목으로 들어가서 조금만 더 가면 있어요.
가격도 싸고 맛도 괜찮다고 소문이 났더라고요. 언제 한번같이 먹으러 가시죠."
"그래요! 언제 시간 되는 날 다시 카톡 드릴게요!"
그렇게 여자를 보내고 다시 회사로 들어왔다.
후배가 날 보며 "선배님 어딜 그렇게 혼자 돌아다니시는 거예요?"라고 묻는다.
대충 얼버무렸다.
선배가 옆에서 날 쳐다본다. 조용히 나에게 말한다. "요즘 뭔 일 있어? 왜 이래?"
일부러 시선을 피했다.
부장님이 사고라도 난 줄 알았다며 앞으로는 일 있으면 말이라도 하고 나가라고 한다.
의자에 털썩 앉았다. 아무 생각이 없다.
그리고 다음날 여자에게서 카톡이 왔다.
-이번 주 금요일에 점심 가능할 것 같아요! 같이 먹어요!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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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의 일(1)]
팀 내부에 윗사람들은 외근으로 안계시고 후배와 나만 남아있는 날이었다.
점심을 먹고 춘곤증이 밀려와 졸릴 때쯤 후배가 내 어깨를 톡톡 치더니 잠깐 산책 나가잔다.
원래는 조잘 조잘 잡담을 하면서 산책을 하던 애가 오늘은 말없이 조용히 걷는다.
분위기가 이상해서 나도 아무 말 없이 걷고 있었다.
10분쯤 서로 말없이 걷고 있는데 후배가 입을 열었다.
"저 헤어졌어요."
"어?"
"며칠 전에 남자친구랑 헤어졌어요."
"아니 왜? 너 잘 사귀고 있었잖아."
구체적인 이유는 말하지 않는다.
누구의 잘못이라고도 말하지 않는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시작하지 말걸 그랬어요."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잘 모르겠다.
"선배님, 그 여자분이랑은 잘 돼가세요?"
"어, 잘 돼가는 중이야."
"그거 아세요? 선배님 그 여자분 이야기할 때마다
진짜 행복한 표정 지으시는 거?"
민망함에 그냥 웃기만 했다.
"그때 저 떠보신거에요?"
"뭘?"
"저 좋아한다고 하셨을때요."
"아니, 진심이었는데."
그렇게 또 몇 분을 말없이 걷다 후배가 또 먼저 입을 열었다.
"선배님."
"왜?"
"다시 사랑을 할 수 있을까요?"
"그럼. 원래 인생이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 아니겠니?"
"더 좋은 사람이 나타날까요?"
"당연하지. 더 좋은 사람을 만나기 위한 과정일 뿐이야."
후배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그 여자분이 좋으세요?"
후배의 질문에 당당하게 말했다.
"한 사람밖에 안 보인다."
내 대답에 후배가 웃으며 말했다.
"그분이랑 잘 되셨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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