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아. 우뚝 솟은 푸른 산아. 철철철 흐르듯 짙푸른 산아. 숱한 나무들, 무성히 무성히 우거진 산마루에, 금빛 기름진 햇살은 내려오고, 둥둥 산을 넘어, 흰 구름 건넌 자리 씻기는 하늘. 사슴도 안 오고 바람도 안 불고, 너멋 골 골짜기서 울어오는 뻐꾸기…….
중학교 시절, 도스가 깔린 학교 컴퓨터실에서 박두진의 "청산도"라는 시를 한메타자교사로 처음 접하였다. 그때는 여자아이들에게 먹히던, 류시화의 시편들을 탐닉하던, 말 그대로 중2병이 아니라 중2 시절이다. 그런 내게 저런 아저씨스러운 시가 매력적일 리 없었다. 하지만 이 글은 그 나름의 장점이 있었다. 긴글 중에서 비교적 짧은 축이라 친구들 사이의 타자수 올리기 경쟁에 수월했다. 긴글 500타라는 넘사벽을 향하여, 나는 청산도를 치고 또 쳤다.
산아. 푸른 산아. 네 가슴 향기로운 풀밭에 엎드리면, 나는 가슴이 울어라. 흐르는 골짜기 스며드는 물소리에, 내사 줄줄줄 가슴이 울어라. 아득히 가 버린 것 잊어버린 하늘과, 아른아른 오지 않는 보고 싶은 하늘에, 어찌면 만나도질 볼이 고운 사람이 난 혼자 그리워라. 가슴으로 그리워라.
이상한 일이었다. 계속 치고 치면 칠수록 그 낡은 싯구들은 자꾸만 내 눈과 귀에 맴돌았다. 한번씩 읊어 보기도 했다. 내사 줄줄줄 가슴이 울어라. 어쩌면 만나도질 볼이 고운 사람이 난 혼자 그리워라. 가슴으로 그리워라. 반세기 전에 쓰인 옛날 싯구들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이 있었다.
아름다웠다. 그래, 어쩌면 그런 사람이 만나도 지겠지. 운명같이.
티끌 부는 세상에도 벌레 같은 세상에도 눈 맑은 가슴 맑은 보고지운 나의 사람. 달밤이나 새벽녘 홀로 서서 눈물 어릴 볼이 고운 나의 사람. 달 가고, 밤 가고, 눈물도 가고, 틔어 올 밝은 하늘 빛난 아침 이르면, 향기로운 이슬밭 푸른 언덕을, 총총총 달려도 와 줄 볼이 고운 나의 사람.
나에게도 볼이 고운 사람이 있었다. 보고 지운 사람이 있었다. 눈이 맑고 가슴이 맑았다. 나의 사람...일 것이다. 아마도. 소유격은 꼭 소유해야만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그녀가 달밤이나 새벽녘에 홀로 서서 눈물이 어릴 일은 없었을 것이다. 아니, 최소한 날 위해 눈물 어리진 않았을 것이다. 나만을 위해 총총총 달려도 와 주진 않았을 것이다. 그런 볼이 고운 사람은 1949년에나 있었다구, 박두진 씨. 요즘 볼이 고운 사람들은 다 밤에 학원 마치고 유투브 뷰티 컨텐츠 보고 화장한다니까.
하지만 나는 청산도를 칠 때면, 그런 볼이 고운 사람이 나를 위해 눈물 어리는 것을 상상하곤 했다. 나를 위해 이슬밭 푸른 언덕을 달리는 나의 사람을 상상하곤 했다. 내 상상 속의 그 사람은 화사하고, 청초하고, 아름다웠다. 아, 고이 접어 나빌레라.
푸른 산 한나절 구름은 가고, 골 너머, 골 너머, 뻐꾸기는 우는데, 눈에 어려 흘러가는 물결 같은 사람 속, 아우성쳐 흘러가는 물결 같은 사람 속에, 난 그리노라. 너만 그리노라. 혼자서 철도 없이 난 너만 그리노라.
물결 같은 사람들이다. 그 중학생 시절에서 벌써 20년 가까이 흘렀다. 물결 같은 사람들은 물결 처럼 흘러갔고 아우성쳐 흘러가는 물결 사이를 난 헤엄쳤다. 사람들은 물결 같고 세월은 폭포가 된다. 시간이 많이 흘렀다. 그리고 난 그린다. 너만 그린다. 어떻게 그리냐면, 혼자서 철도 없이 그린다. 이 층층이 더해가는 점층 묘사는 내 짧은 생 속에서 댓구를 찾기 어려울 만큼 애틋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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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성쳐 흘러가는 물결 같은 세월입니다. 총총총 달려도 와 줄 볼이 고운 나의 사람은 어디 있을까요. 오랜만에 청산도를 읽으며 생각해 봅니다. 눈 맑은 가슴 맑은, 보고 지운 나의 사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