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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3/04/12 13:06:50
Name par333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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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일반] [소개]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




[강렬한 질투심]


이 책을 읽고 나서 느낀 한 줄의 감상은, 저 여섯글자 이외의 것은 생각할 수 없었다. 단연컨대, 내가 최근 본 그 어떤 소설책 보다도 나를 빠르게 집중하게 만들었고, 페이지 한 장 한 장을 넘기가 아쉽게, 그러나 넘기고 싶게 만들었다. 뒷 내용이 너무나 읽고 싶어서 문단을 건너 뛸 듯이 속독을 하다가도, 앞에 흘려넘긴 이야기가 그리워 같은 책장을 다시 앞으로, 뒤로 넘기게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은 몇 권 읽었었다. <비밀> <용의자 X의 헌신> <백야행> <신참자> <가가형사시리즈> 같은. 내게 있어서 이 작가는 '미스테리/추리'작가이자 때때로 묘한 장르의 섞음을 시도하는 작가였다. 가끔 청춘소설 같은 느낌도, 비극 같은 느낌도 주는 그는 정말 놀랄만큼 빠르게 많은 글들을 써내었다. 지금에야 히가시노 게이고가 일본을 대표하는 대중소설 작가로 손 꼽히고 있지만, 귿쎄 사실 그의 모든 작품이 그의 이름값을 채워줄 만큼의 퀄리티는 갖지 못했다. 그의 유명세는 그의 '습작'수준도 되지 못할 것 같은 책들을 죄다 출판해 버린느낌이었고, 히가시노게이고의 팬들이라는 사람들도 가끔 '태작'을 내놓는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나 또한 히가시노 게이고에게 갖던 평가는 딱 그정도였다. 그는 대단한 작가였으나, 질투심이 생기는 작가는 아니었다. 물론, <용의자 X의 헌신>을 읽었을때는 질투를 느꼈지만 그 작품 하나 정도였으니까. 물론 그만한 연작속도로 그 정도의 퀼리티를 유지할 수 있는 작가라는것도 '천재'가 아니고서야 불가능한 일이기는 하다. 대체로 '오쿠다 히데오' '온다 리쿠'와 더불어 그는 '연작'하면 빠질 수 없는 작가이다.




그런 나의 평가는 이 책이 완전히 뒤집어 주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 이 소개글을 클릭한 당신은 행운아라고 지칭하고 싶다. 책 소개글이 별로 인기를 못 얻는 이 게시판에서 굳이 이 글을 클릭했다면 평소에 책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거나, 관심은 없지만 자게고 유게고 더 클릭할 글이 없어 질게까지 두리번대다 다시 자게를 검토하는 하드 피지알러일것이다. 어떤 부류의 피지알러이건 좋다! 나는 그 모두에게 이 책을 선물하고 싶다. 물론 돈이 없기 때문에 책은 직접 사 보시거나 근처 도서관을 방문해 보시기를 바라지만.



이 책은 매우 가독성이 뛰어나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특징이기도 한데, 이 친구는 쓸데없이 묘사를 길게 늘여뜨리지 않는다. 물론 묘사를 길게, 비유를 적절하게 할 경우 표현은 풍부해지고 읽는 사람은 더 풍요로운 느낌을 받는다. 만화도 그렇지만 섬세하고 촘촘히 그려진 그림은 더 많은 것을 느끼게 해준다. 그러나 히가시노 게이고는 굳이 그런것에 얽매이지 않는다. 그는 필요한 만큼 표현하고, 적절한 만큼 뽐낸다. 그런데 그 적절함이 이루 말할 수 없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읽으면서 시간이 가는 줄 몰랐다. 나는 '시간이 가는 줄 몰랐다'라는 표현이 이토록 잘 어울리는 책을 근 몇 년간 읽은 적이 없다. 그래. 이 책은 '쉽다'. 그리고 '정석적'이다. 예전에 내 글에 리플로 달아준 말이 여전히 깊게 자리잡고있는데, 이 말도 이 책에 잘 어울린다. '진부하지만 클래식은 언제나 옳죠.' 흔하고 자주 쓰이는 소재와 이야기는 그만큼 검증된 고전이라는 이야기이고, 이 작가는 그것을 너무나 부드럽게 '자신만의 것'으로 다시 표현해 냈다.




내용에 대해서 쓰고 싶어서 손이 근질거린다. 솔직히 말하면 이 책을 비판의 여지로 노려보자면 꼬집고 들어갈 공간이 없는 건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러고 싶지도 않고 아마 그럴 수도 없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흔하디 흔한 소재'를 '기가막힌 구성'과 '너무나 매력적인 제제'들을 이용해 아주 부드럽게 잘 풀어나간 이 작가의 능력에 있다. 나는 히가시노 게이고가 구사하는 문장력은 하나도 탐이 나지 않지만, 그의 구성능력과 발상, 재치, 그리고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따스함'은 샘이나고 질투한다. 그를 천재라고 부를 수 있다면, 나는 그가 문장을 잘 써서 글을 잘 써서 천재가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줄 알아서 천재라고 표현하고 싶다.



이 책은 굳이 따지자면 '힐링'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그리고 안에 쓰여진 이야기들은 참 흔하고, 우리가 삶에서 언제든지 마주할 수 있는 이야기이다. 소설 등에서 전통적으로 사랑받던 이야기와 흐름을 그대로 갖고 있는데, 그럼에도 전혀 진부하지 않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참신한 등장인물의 성격과 표현, 그리고 그들의 솔직하고 진솔함을 표현할 수 있는 인간에 대한 뛰어난 통찰일 것이다. 개연성은 나무랄 데 없이 뛰어나며, 소소한 반전과 구성은 책을 읽다가도 '이 자식봐라?'하는 마음이 들게 했다. 책 한 권이 꽉 짜여진, 그러나 너무나 부드럽고 여유있는 한 편의 극과 같았다. 독자로서 이토록 충만한 기분을 느껴본게 얼마만일까? 남겨진 여운은 너무나 괜찮은 맛이었고, 읽는 동안은 재미와 재치, 감동과 안타까움 그리고 그 모든것이 함축되어 마음을 움직였다.




5점만점을 따지자면 4.7점을 줄 것이다. 0.3점의 부족함 중 0.1점은 '질투심'에서 주기 싫은 것이고, 0.2점은 히가시노 게이고는 더 좋은 작품을 내놓을 것이란 기대에서 뺐다. 결국 소설 자체로 보자면 내게는 만점짜리 소설이다. 400페이지가 넘는 책을 이토록 쉽고 빠르게 읽게 하면서도 내용이 마치 영화처럼 머리속에서 부드럽게 이어졌고, 그 중간중간 생기는 장면의 전환과 이야기의 짜임새, 그리고 그 이야기 자체가 가져다 주는 감동은 책을 읽는 내내 심심하지 않게 만들어 주었다. 책 값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나는 글을 잘 쓰고 싶은 사람인데, 히가시노 게이고를 볼 때마다 문장이 좀 덜 세련되면 어떠냐. 싶은 마음이 들게 한다. 내 생각에는 저 표지의 홍보문구처럼, 히가시노 게이고의 '대표작'이라고 불릴만한 책이 또 한 권 나왔다고 생각한다. 다른 나라 소설보다도 일본의 대중소설에서 느낄 수 있는 매력을, 정말 부담스럽지 않고 자연스럽게 녹아낸 소설이 아닐까. '힐링'에 지친 사람들조차, 이 책에 '힐링'받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힐링열풍이 싫은 나 조차 이토록 책을 덮었을 때 아쉬움과 후련함, 따스함과 감동이 여운으로 남겨져 있었으니 말이다.




이렇게 길게 썼지만, 사실 하고 싶은 말은 한 마디었다. 독서를 싫어하는 사람도, 독서에 취미가 없는 사람도, 둘 다 아닌 사람도 이 책은 즐겁게 읽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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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4/12 13:09
수정 아이콘
첫 리플이 이래서 죄송스럽지만,
히가시노 게이고를 좋아해서, 국내에 번역 출판된 책은 거의 다 봤는데 이 책은 참 별로였습니다 ㅠ
'가슴을 울리는 따뜻한 이야기를 써야지' 라는 강박관념 같은 것이 너무 노골적으로 느껴져서...
13/04/12 13:16
수정 아이콘
히가시노 게이고의 '스릴러' 같은 느낌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별로 안 좋아하실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치만 '가슴을 울리는 따뜻한 이야기를 써야지'라는 강박을 느끼셨다는건 제게는 좀 놀라운 일이네요. '가슴을 울리는 따뜻한 이야기'를 쓰는 것 치고 이만큼 부담없이 서술해 나간 소설을 근래에 못 본 지라.. 제가 만약 그런 '강박'이나 '억지감동'같은걸 이 책에서 느꼈다면 비슷한 장르(선의에 의한 감동)의 책은 죄다 폐휴지처리 해야할 정도라는 생각이 문득드네요. 물론 주제 자체가 워낙 클래식 정통파다보니 이런 비판을 피해갈 수 없다는 생각은 듭니다만.. 새삼 독자의 시선은 정말 다양하다는 것을 또 한 번 느낍니다.
아랫길
13/04/12 13:12
수정 아이콘
좋아하는 작가입니다. 읽어보아야겠네요~
해먹이필요해
13/04/12 13:19
수정 아이콘
저도 정말 재밌게, 또 눈물이 찔끔 날만큼 감동적으로 읽은 책입니다.
별 기대안하고 읽은 책인데 너무 좋아서 주위에 빌려주며 권하고 있습니다. 흐흐
13/04/12 13:24
수정 아이콘
남녀노소 누구에게라도 선물해 줄 수 있는 책 이라는 말이 딱 맞는거 같아요.
13/04/12 13:21
수정 아이콘
선물해주세요?
에이멜
13/04/12 13:49
수정 아이콘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 이 소개글을 클릭한 당신은 행운아라고 지칭하고 싶다. 책 소개글이 별로 인기를 못 얻는 이 게시판에서 굳이 이 글을 클릭했다면 평소에 책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거나, 관심은 없지만 자게고 유게고 더 클릭할 글이 없어 질게까지 두리번대다 다시 자게를 검토하는 하드 피지알러일것이다. 어떤 부류의 피지알러이건 좋다! 나는 그 모두에게 이 책을 선물하고 싶다. 물론 돈이 없기 때문에 책은 직접 사 보시거나 근처 도서관을 방문해 보시기를 바라지만.]

이 문단 너무 재밌네요 크크크크
누렁이
13/04/12 13:52
수정 아이콘
"히가시노 게이고 스럽지 않은" 책 중에서는 단연코 <편지>가 좋더군요.
살인자의 가족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하는 만만치 않은 주제를 다룬 책인데-
스릴러 요소가 없지만, 가슴을 참 '아프게' 하더군요.
하긴 사회파 추리소설을 지향하는 작가들의 작품은 다 이모저모 아픈 세상 이야기들이 담겨져 있지만요.
특히 마지막에 너무나도 슬프고 가슴 아픈 장면인데도, 건조하게 툭, 끝내버리는게 정말 긴 여운이......
제이메르 울프
13/04/12 22:47
수정 아이콘
저도 편지 너무 좋아합니다.
히가시노 게이고 팬이라고 자처하는 입장에서 베스트3 꼽으라면 꼭 들어가는 책이네요.
마지막의 이매진은 참...... 정말 명장면인 것 같아요.
이쥴레이
13/04/12 14:20
수정 아이콘
동생이 히가시노 게이고 팬인데 이책 선물해줘야겠습니다.
오렌지샌드
13/04/12 14:22
수정 아이콘
요새 새삼 일본소설들을 다시 꺼내어 읽고있는데 가네시로 가즈키의 연애소설이 참 가슴에 와닿더라구요. 소개해주신 이 책은 어쩐지 제목만으로도 분위기가 읽혀지네요. 저도 힐링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
13/04/12 14:29
수정 아이콘
가네시로 가즈키 소설은 다 읽어봤는데, 요새 신작이 안나와서 아쉬워하고 있습니다. 특히 '더 좀비스'시리즈는 최고였는데..
13/04/12 14:54
수정 아이콘
꼭 사서 읽어보고 싶네요...
위원장
13/04/12 15:34
수정 아이콘
히가시노 게이고는 너무 책이 많아 ㅠㅠ 신작을 사도 사도 자꾸 나와...
제이메르 울프
13/04/12 22:48
수정 아이콘
이 책 저번에 사려다가 말았던 책인데 이번 기회에 한 번 읽어봐야겠네요.
히가시노 게이고의 팬인데 히가시노 게이고 관련 책 소개가 올라오니 반갑네요 크크
항돌이
13/04/12 23:13
수정 아이콘
이글 읽고 바로 주문했습니다 내일 도착한다는데 기대되네요...
13/06/03 19:24
수정 아이콘
히가시노 게이고 글을 왜 이제봤지..

다 좋은 소설 같어요 편지도 그렇고..

이 책은 못봤는데 당장 사러가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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