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마 부끄러워서 남들에게는 이야기도 하지 못했던 스승의 날인데 올해 처음으로 아들의 스승의 날을 챙기고 보니 갑자기 생각이 나서 이렇게 글로 남겨봅니다. 이제 29개월에 접어드는 아들에게는 예쁜 어린이집 선생님이 계십니다. 그 선생님을 보니 제 중학교때 교생으로 오셨던 어여쁘던 선생님이 생각이 나서 말이지요. 올해로 40이 되었으니 20년도 전의 일이군요. 제가 중학교 2학년이었습니다.
저는 시골에서 자라서 스승의 날이란 개념을 잘 모르고 살았습니다. 시골 초등학교(당시에는 국민학교)에서는 스승의 날이니 어린이날이니 어버이날이지 그다지 큰 행사가 아니었지요. 그래서 중학교에 들어가서도 스승의 날에 크게 관심을 두지는 않았습니다. 지금이야 부모님들이 아이들 선생님 선물을 챙기기도 하고 하지만 당시에는 부모님들이 스승의 날에 선물을 드리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을 겁니다. 제 부모님들이 학교에 오는 경우는 거의 없었고 스승의 날에 한번도 선생님께 전화라든가 선물이라든가 드리는 것을 본 적이 없어서 말이지요.
읍내 중학교에 다니긴 했지만 노는데 바빠서 다른 친구들의 부모님이 선생님께 선물을 드렸는지 안 드렸는지는 관심이 없어서 전혀 몰랐습니다. 하지만 중학생이 되니 이것 저것 듣는 것이 생기고 스승의 날에는 친구들이 선생님께 꽃도 달아드리고 선물도 드리고 하는 것을 보고 하니 아~ 스승의 날에는 선물을 드려야 되는구나! 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하지만 시골 소녀가 뭘 알겠습니까. 선물이란 것을 받은 적도, 준 적도 없었는데 말이지요.
1학년에는 스승의 날에 돈을 조금 모아서 반에서 공동으로 선생님께 선물을 드렸던 것 같습니다. 이십년도 훨씬 전의 일이니 기억이 제대로 날리가 없지요.
그랬는데 2학년때는 정말 잊을래야 잊을 수가 없습니다. 너무도 부끄러웠던 선물을 제가 그 어여쁘시던 교생 선생님께 드렸거든요. 1학년때 스승의 날이란 것을 제대로 겪고 나니까 2학년이 되니 반에서 돈을 모아서 선물을 드리는 것 말고도 다른 친구들이 따로 선생님께 선물을 드리는 것을 목격하게 된겁니다.
세상살이 참 피곤해졌습니다. 가난한 시골소녀는 회비도 제때 못 내서 교무실에 불려다니던 처지였기에 선물을 산다는 것은 엄두도 낼 수 없었지요. 하지만 그 때 제게 참 잘해주시던 교생선생님께 그래도 뭔가는 해드리고 싶었습니다. 그 때 제 눈에 들어온 것은 제가 제일 아끼던 커다란 구슬이었습니다. 어릴 때 구슬치기 해 보신 분들은 아실겁니다. 왕구슬이라고 정말 조그만 구슬 세 개는 합친 듯한 커다란 구슬이었지요. 예쁘기도 정말 예뻤습니다. 오묘한 색을 내기도 했고 구슬 안에 들어 있던 초승달 모양도 색깔이 특이해서 정말 아끼고 소중히 다루던 것이었지요. 흠집도 별로 없었어요. 그렇다고 제가 산 것이냐면 그건 아니고 어쩌다가 주웠던 것인데 잘 닦아서 소중하게 들고 다니던 것이지요. 그 때는 왜 그 유리조각이 그리 소중했던지.
그래서 그걸 종이 상자에 담아서 색종이를 가늘게 오리고 솜도 조금 깔고 해서 선물포장을 했습니다.
언뜻 보면 흡사 종이보석상자같아 보였을 겁니다. 무슨 반지나 귀걸이같은 것을 넣은 것 말이지요. 그걸 들고 저는 쭈뼛거리며 교생선생님께 선물이라고 드렸던 겁니다. 선생님은 아마도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듯 반지나 귀걸이 같은 것을 생각하셨을 겁니다. 하다못해 머리핀이나 그런 것으로 생각하셨겠지요. 선물을 드리고 제대로 말도 못하고 얼굴이 벌게져서 후다닥 도망을 쳤습니다.
선물을 드리고 냅다 튀면서 그 때서야 아~ 내가 무슨 짓을 한거지??? 했습니다.
다른 친구들이 제대로 된 선물을 드리고 있을 때 나는 교생 선생님께 유리 구슬... 그것도 새 것이 아닌 흠집이 난 구슬치기 구슬을 선물로 드린 겁니다. 조그마한 선물상자를 열어 봤을 때의 황당할 교생 선생님의 얼굴이 떠오르며 정말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어졌습니다. 부끄러워서 다음날은 학교에 가기도 싫었습니다. 다행인 것은 그 교생선생님께서 금방 교생실습이 끝나서 다시 얼굴을 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지요. 그 사건이 있은 후, 저는 스승의 날만 되면 소심해 져서는 선물이고 뭐고 모두 친구들에게 떠맡기고 뒷방노인처럼 물러나 앉아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후로도 스승의 날에 여러 가지 선물을 했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 기억나는 스승의 날 선물은 그 구슬이 유일합니다.
그랬는데 오늘 아들의 어린이집 선생님께 선물을 바리바리 싸서 준비했습니다.
인터넷으로 막 검색을 하면서 뭘 드려야 하나 고민도 했지요. 어린이집 담임에 원장선생님에, 주임선생님에 운전하시는 기사님까지 비싸지는 않지만 작은 선물들을 싸고 포장하고 카드를 쓰고 나니 갑자기 그 구슬이 다시 생각이 나지 뭡니까. 앞으로 아들이 자라면서 몇 번을 더 선생님들께 선물을 사드려야 할까요. 해마다 고민을 하게 될 걸 생각하니 급 우울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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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충격적인(?) 선물이 되어서 오래토록 기억에 남으시지 않았을까요?
지금도 아마 중2때 유리구슬을 스승의 날 선물로 받은 스승? 하면 전국에 몇분 없을것 같네요 흐흐
소장하고 계실듯 합니다.
전 풍선을 받은게 제일 기억이 납니다. 풍선에 매직으로 커다랗게..."변태샘 사랑해요"...
한 벌써 6년전이군요.
제가 군시절 첫 휴가를 나와 대학교수님께 찾아갔었는데.. 참 반겨주시며 보쌈을 사주셨던 기억이 나네요.
그리고 같이 차를 타고 돌아오는데 교수님께서 "군인이 돈도 없을텐데..." 하시며 10만원짜리 수표한장 주시며...
"후배들이랑 같이 술 한잔하고 재밌게 놀아.." 어찌나 감사하던지..
그 때 마음속으로 꼭 취직해서 열배로 갚아드리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아직 실천하지 못했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