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 왜, 대구 사람들끼리는 통하는 말이 있습니다.(라고는 하지만 저도 최근에 들어서야 알았으니 아는 사람만 아는 말이라 하는게 맞겠네요)
대구에는 네가지의 계절이 있는데 그건 여름, 한여름, 겨울, 한겨울의 넷이라고. 해에 따라 가끔은 여름이 환절기로 변하기도 하고, 때때로는 겨울이
오지 않고 한여름에서 바로 한겨울로 넘어가버리곤 한다지만, 보통은 그렇다고 하더라구요. 요즈음의 대구는 그렇다면 여름과 한여름의 사이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낮엔 잠깐도 걷기가 싫을만큼 태양이 쨍쨍해서 별 수 없이 반팔티를 입고 나서지만, 밤이 되면 방심한 옷 덕에 또 으슬해지거든요.
추울 때는 차라리 더웠으면 좋겠다 싶었는데 더워지기 시작하니 또 추울 때가 그리워집니다. 사람이란 그렇지요. 아무래도 간사한 편이지요.
#2
다들 불알친구와의 관계는 안녕하신가요? 저로 말하자면 그러한 명칭으로 부를 수 있는 놈이 딱 둘이 있는데 그 중 하나와 사이가 영 별로입니다.
원래는 참 친했고 생각이 많이 통했습니다. 서로 배려하는 부분도 많았고, 하는 짓도 생각도 비슷비슷해서 앗하면 응할 수 있는 사이였어요.
근데 이 어린 나이도 세월은 세월인지 한살 두살씩 먹어가고 머리가 굵어지기 시작하면서 점점 서로가 잘 맞지 않는 부분이 생기기 시작하네요.
도대체 내 생각으로는 그래서는 안되는 일인데, 사실 살다보면 이럴 순 없다, 고 단정 지을 수 있는 일이 그렇게 많지 않다는걸 차츰 깨닫게 됩니다.
정말 얄밉고 화가 날 때가 많고, 이해가 되지 않을 때는 더 많습니다. 서운하기도 해요. 그냥, 10몇년을 보아온 정으로 계속 알고는 지내는데
음, 글쎄요.
#3
또 하나의 계절이 그렇게 가고 이렇게 오듯, 또 하나의 사랑 아닌 사랑이 지나갔습니다. 그간 아팠지만 슬펐지만 싫지는 않았어요.
어제 오랜만에 모교 대학로에 바람을 쐬러 나갔었는데 우연찮게 그 아이를 만났습니다. 실습을 다녀와서 그런지 이쁘장하게 차려입었더라구요.
저는 다른 친구를 기다리고 있었고, 그 아이는 모임 중에 잠깐 나온거라 시간이 여유롭지는 않았지만 사실 그런건 아무래도 상관이 없었어요.
예전처럼 요모조모한 이야기를 들으며 잠깐, 대학로를 거닐었습니다. 예전처럼 참 이뻤고, 살이 쪘다며 푸념하는 모습에 살짝 설레기도 했습니다.
요즈음의 낙이 무어냐고 물어보는데 마땅히 대답할 거리가 없더라구요. 헤어진 날 무엇을 해야할지 헤메었던 마음만큼이나 눈길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전화가 왔고, 그렇게 헤어졌어요.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만 기억할 수 있는 오래 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 아이의 손을 잡았던
그 짧디 짧은 10초의 귀로가 어쩌면 그 아이와 제가 비로소 우리였던 찰나가 아니였을까 하구요. 그때만큼은 행복이라고, 사랑이라고 나 혼자서
결정해버려도 되는 일 아닌거냐구요. 그래도 되는거냐구. 그런 생각이 잠깐 들었습니다. 다음에 보잔 말에 마땅히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습니다.
대답을 흐리는 저를 보던 그 아이의 눈빛이 문득 기억이 나고, 전해진 슬픔이 고스란히 제게 자리 잡습니다. 10초짜리의 연인.
#4
그럴 수 없지, 는 않습니다. 저의 절친한 친구는 저와 사이가 몹시도 나쁜 아이와 동거를 하려고 했었고, 저의 불편함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군생활 내내 50통도 넘게 편지를 부쳐주고 힘든 일 좋은 일 있을때면 서로 얼싸안고 아끼었던 다른 친구와 우연히 동석을 시켜주었는데,
술을 마시고 기분이 많이 났었는지 제가 자리를 비운동안 저의 나쁜 점에 대해서 이야기를 합니다. 여성편력, 가치관, 가정사, 신체질환.
아주 예전, 그러니까 그게 스무살적이였는데 그때의 여자친구와 이 친구는 제가 연애하던 당시에 잠깐 얼굴을 보여주었던 사이입니다.
작년이 되어서야 알았는데 저의 오래된 전 여자친구와 아직 연락을 하고 있다고 하더라구요. 이해해줄 수 있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따지고보면
결코 이해해줘선 안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저로 말하자면 사실 좀 불편했습니다. 그러지 말란 말도 많이 했습니다. 음.
사람이 항상 올바를 수는 없습니다. 나 또한 틀릴 때가 있고 그것을 누군가의 용서로 인해 구원받기도 합니다. 사람은 감성의 동물이니까,
혹시나 그 아이의 합리화가 역겨울 것 같아 스스로 그 아이를 용서코자 하고 있는데, 사람이 산다는게 그럴 수 없지, 는 않습니다.
제가 10년이 넘은 우정을 뿌리치고 이 아이를 썩어지게 패던가, 이제껏 당한 일을 공론화시켜 매장을 시켜도 그럴 수 없는 일은 아니게 될겁니다.
왜 그, 대접받고 싶은만큼 대접해주라는 황금률의 법칙도 있지 않던가요. 그것이 그럴 수 없는 일은 아니게 될겁니다.
#5
이런 글이라 할 수도 없는 푸념글을 끝으로 PGR 자유게시판에 글을 쓰는 것을 당분간 그만두고자 합니다.
다음번에는 조금 덜 횡설수설할 수 있도록 노력해볼게요. 뭐 그렇다고 PGR을 끊겠단건 아닙니다. 그냥 이런 뻘글들만 좀 참아볼까 해서요.
다음에 뵐때까지 안녕들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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