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날처럼 휘어진 머리카락 아래 눈썹을 방패삼은 두 눈빛이 형형하다. 광대뼈가 드러날 정도로 야윈 얼굴과 우직스러워 보이는 콧대가 사진속의 인물의 삶이 녹록치 않음을 드러낸다. 렌즈를 잡아먹을 듯 쏘아보는 눈빛이 속삭인다. '내 이름은 백정기, 조선의 아나키스트다."
사실 이 사진은 일본 경찰에 의해 체포된 이후 촬영된 것이다. 일본 경찰들은 독립운동가를 체포하면 마치 사냥감을 놓고 기념 사진을 찍듯 꽁꽁 묶어놓은 독립운동가를 가운데 세워두고 단체로 기념 사진을 찍었다. 하지만 그는 초라한 사냥감이 되기를 거부했다. 그래서 어깨를 활짝 펴고 비스듬하게 고개를 떨군 채 렌즈를 응시했다. 눈 두덩이에 감춰져버린 심연보다 더 깊어보이는 눈빛에는 체념 같은 것들은 한 방울도 찾아볼 수 없다. 무엇이 이 남자를 이 순간에서조차 당당하게 만들었을까?
3.1운동 이후 상해로 망명한 그는 뜻을 같이 하는 동료들과 함께 조선을 지배하고 있는 일본 제국주의와 외롭고 기나긴 싸움을 펼쳤다. 그리고 거사 직전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고 말았다. 그는 이 사진을 찍은 이후 감옥에 갇혔고, 그곳에서 숨을 거뒀다. 그의 유해는 조국이 광복된 이후 같은 독립 운동가인 이봉창, 윤봉길 의사와 함께 돌아올 수 있었다. 세상에는 흉내낼 수 없는 삶들이 있다. 백정기의 삶도 그러할 것이다. 엄혹했던 시대, 희망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던 세상에서 그는 자신을 내던져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자 했다.
<백정기, 조선의 아나키스트, 1896년 ~ 193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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