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제 나 상심(傷心)으로 울 일 없겠다
겨울 들녘 매운 바람
첫 눈은 두 번 다시 아니 오고
이미 얼어버린 땅
훈풍 속에 핀 꽃이 수만리 길을 지고
이 땅에 살포시 내려앉아도
그때는 꽃잎이 아니어라
휘이 내저은 손짓 한번에,
한숨도 더하기 전에 날아갈 가벼움이
조금도 가엽지 아니하리
2
사랑 한 번 못해 본 가슴으로 사랑을 말하고
사랑 받지 못했던 눈으로 사랑을 전했더니
그 죄가 어이 작다고 말을 할까
애초에 그른 길을 눈감고 걸어와서
여기가 어디더냐 조심스레 되물어도
답은 벌써 정해진 터,
깊은 수렁이라 하는구나
3
처음부터 죄를 알고
그 대가를 안다 해도
걷지 않을 수 없었던 길
이제는 그 길을 멀리서 돌이킬 때
지나온 발자국 하나하나 눈[目]속에 새겨 둘 때
4
가끔은 나의 눈도 범람을 한다
인내와 세월의 둑이 아직 높지 않아
유난히 별이 맑은 밤이 오면
가슴에 괴어 있던 물이 둑을 허물고
고개 숙인 나의 눈은 그렇게 범람을 한다
아, 부끄러움이여
5
너는 나를 알고
나도 너를 알고 있으니
우리가 어찌 남이리오
너는 나를 모르고
나는 너를 알고 있으니
우리가 어찌 정인(情人)이라 할 수 있으리까
6
갑절로 돌아온 상처를
이제서야 모두 눌렀으니
염치없이
...잊었노라
하되, 돌아서면 분노이어라
사랑은 눈물을 낳고
눈물은 미움을 낳고
미움은 분노를 낳으니
이 모두를 다스릴 줄 아는 이
세월밖에 없다 하네
7
뜨는 해가 아름답고
지는 해가 눈물겨운 법이라고
오직 저물녘 지는 해만 바라보다
가까스로 세월을 짊어지고 돌아섰으나
이제껏 지킨 자리 떠날 수가 없구나
8
한때는 작은 파문에 몸을 떤 적도 있었으나
냉정히 추스릴 줄 아는
지혜 아닌 지혜
그대로 인해 배웠음을
그리하여 내 생애에 두 번 다시는
한 여자 앞에서 발가벗지 아니하리
9
사랑은 진정 아껴야 할 말
책임과 확신 그 안에서 찰랑일 때 비로소
그 사랑의 물로 스스로를 씻어 내고
다른 이에게 나누어 줄 일
잊지 말아야지
10
마지막으로 보낼 편지마저
곱게 가슴속에 접어두고
아무런 미련 없이
아무런 미움 없이
이른 저녁 샛별행 기차를 타야지
해를 좇아 어서 어서 서녘으로 가야지
문득 돌아보니
길게 드리워진 나의 그림자
사랑아, 너는 그 속에서 까맣게 울고 있구나
1999년 쯤이던가요.
IMF의 여파로 잠시 학교를 휴학하고 고속도로 건설현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였습니다.
얼마전부터 김남조 시인의 시를 너무 좋아해서 몇몇 시들은 노트에 베껴서 암송하던 시절이었습니다.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짝사랑했던 그녀,
군대에서 수백통의 편지를 그녀에게 쓰다보니 당시 학교에 있던 그녀는 유명인이 되었다는
나중에 알게 된 이야기...
지금쯤은 그녀는 이미 어느 초등학생의 학부형이 되었겠군요.
어쨌든 그 좋아했던 김남조 시인을 흉내내 봤습니다.
당시 제가 시랍시고 썼던 글들을 읽어주던 친구가 있었는데
(단 한명이라도 나의 글을 읽어주고 나름대로 평을 이야기 해 준다는 건 정말 큰 행복이었죠)
위의 글을 보자마자 대뜸 이런 걸 시라고 썼냐, 라고 절 면박주더군요.
임팩트!가 없다나 뭐라나...사실, 조금은 동의하기도 했지만 좀 서운하긴 하더라구요^^
오늘은 그 친구의 면박을 떠나서, 예전의 습작들을 읽다보니
그동안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내가 무엇을 잃고 무엇을 얻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01년 말쯤에 취업을 했는데, 회사의 지사장님은 늘 저만 보면 이야기 합니다.
그동안 네가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이 기특하다고...
그 말이 어떤 의미이지 알고, 저 또한 고개를 끄덕이지만,
한편,
....하아..........
변하는 것이 사람인지, 말 그대로 세상이 변하는 것인지.
적응해 가는 것인지 아니면 포기해 버린건지...
가끔은 예전 저의 잘못했던 기억이 나면 얼마나 부끄러운지, 혼자서 예전의 저한테 욕을 하기도 하고...
또 어떨때는 그런 예전의 제가 그립기도 하고,
지금의 장점과 예전의 장점을 퓨전해서 업그레이드 할 수는 없을까 하는 엉뚱한 상상을 하고,
그냥 혼자 낄낄대다가 스스로에게 욕하다가...후!
주위를 돌아보면 좋았던 사람이 나쁜 사람으로 되는 경우도 적잖이 있고,
그것을 스스로가 알지 못하는 경우도 많은데
만약 내가 점점 나쁜 사람이 되어간다면 누가 나에게 그 사실을 알려 줄 수 있을까.
그래서 그냥 나를 알아주는 어린시절부터 친했던 소위 불알친구 하나라도 주변에 있다는게 다행스런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주절주절 떠들었지만
결론은, 순수하고 능숙하게 연애를 하고 세상을 살고 돈을 많이 번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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