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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1/12/16 19:32:38
Name 눈시BBver.2
Subject [일반]  신라 vs 백제 (6) 누구의 잘못인가?

황산벌에서 백제 쪽 욕에서 도저히 뭔지 모르겠던 욕을 해석해 냈습니다. 근데 욕이니... 제 블로그를 참고해 주시구요.
http://blindbard.egloos.com/329961
확실한 건 개그를 다큐로 바꿀 정도로 심한 욕이었던 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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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편은 참 혼돈의 카오스일 것 같습니다. -_-; 진짜 확실한 게 아무것도 없어요. ... 매편마다 이런 말을 하는 것 같지만요.

확실한 건 딱 하나, 이 혼란의 승자는 신라였다는 것이죠.

1. 가야 분할
530년, 가야의 정세는 혼란에 빠집니다. 무령왕이 대가야에 빼앗긴 전라도 지역을 되찾으며 강력히 압박했고, 대가야는 친신라 쪽으로 갔죠. 하지만 이에 아라국을 중심으로 한 남부 가야가 반기를 들고 일어납니다. 이런 분위기에 신라는 탁순국을 병합하고, 그렇게 염원하던 금관국을 병합시킵니다. 오죽 기뻤는지 금관국의 왕 김구해 등 왕족들이 진골이 됐죠. 그리고... 이 때 항복한 그의 아들 김무력의 손자가 바로 김유신입니다.

일본서기에 보면 이 시기 백제는 아라국 등 대가야의 남부를 공격, 병합시킨 것으로 나옵니다. 어마어마한 성과고, 백제는 낙동강을 통해 신라와 직접 국경을 점하게 된 것이죠. 이 때 성을 쌓았는데 마산 지방의 구례산성으로 비정하더군요.

이 이들이 모두 530년 즈음에 일어난 것으로 보입니다. 백제의 공격이 금관국의 항복과 관련 없지 않겠죠.

이러고도 성왕이 "안라가 신라와 내통한다"는 식의 편지를 일본에 보낸 걸 보면 -_-; 대체 국제 관계라는 것은 복잡합니다.

2. 한성으로!

아들 위덕왕이 성왕의 모습을 본 따 제작했다는 구세관음상

성왕의 초기는 고구려와의 전쟁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좌장 지충이 고구려를 격파하고 연모는 패하고... 계속 치고 박고한 것으로 보이죠.

그는 중국의 양과 일본과 계속 교류하면서 백제의 성장을 모색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나온 것이 사비 천도죠. 538년의 일이었습니다. 그 때 그는 국호를 남부여로 바꾸고 미륵 신앙을 퍼뜨립니다. 국가 체제도 정비하면서 수도를 5부 5항으로, 지방의 담로제를 개편해 전국을 5방으로 나누고 밑에 군을 두는 방, 군, 성제로 바꿉니다.

무령왕 대부터 이어져 온 왕권 강화 및 체제 정비를 완료한 것이죠.

신라의 국가 체제 업그레이드가 지증-법흥-진흥왕으로 이어졌듯이 백제 역시 동성-무령-성왕으로 이어진 것이죠. 이대로 간다면... 예, 정말 이대로 간다면의 문제였는데...

548년, 백제와 고구려는 본격적으로 붙습니다. 이 해 봄 고구려가 독산성을 공격했고, 신라가 구원 옵니다. 2년 후인 550년에는 고구려의 도살성을 공격하죠. 2개월 후에는 고구려의 금강현을 포위, 결과는 적혀 있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거대한 작전이 개시됩니다.

"이 해 백제 성왕이 몸소 군사 및 두 나라의 병사를 거느리고(두 나라는 신라·임나를 말한다) 고려를 정벌하여 한성의 땅을 차지하였다. 또 진군하여 평양을 토벌하였는데, 무릇 옛 땅 6군을 회복하였다"

551년, 일본서기의 기록입니다.

삼국사기에는 이 때 진흥왕이 거칠부를 보내 죽령 이북 고현 이남 고구려의 성 10개를 빼앗았다고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신라의 단독 공격이죠.

일단 통설은 일본서기 쪽을 받아들여 백제, 신라에 대가야까지 동원된 거대한 공격이고, 이를 통해 백제는 한성을 회복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어쨌든 이 때 백제와 신라의 공격은 성공적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3년 후인 554년, 관산성에서 백제와 신라는 맞붙습니다. 나제 동맹의 파탄이었죠.

3. 누구의 잘못인가?

뭐 국제 관계에서 배신 때렸다고 잘못이라는 도덕적인 단어를 써야 될 지는 모르겠습니다만 -_-a

통설은 [나제 동맹의 한강 수복(백제는 한강 하류, 신라는 한강 상류)] -> [신라의 배신으로 한강 단독 점령] -> [성왕의 복수] -> [관산성 전투] => [신라 대승] 입니다.

하지만 이는 삼국사기와 일본서기를 적당히 섞은 것에 불과합니다. 그 두 사료들은 물론 삼국유사에도 전혀 다른 말들이 더 있죠.

삼국사기로 본다면 한강 점령은 신라의 단독 공격이었고, 이어 신라가 백제의 동북 변경을 공격하면서 관산성 전투가 생긴 것으로 나옵니다. 이 점에서 보면 그냥 신라가 강해진 것일 뿐이예요. 불과 3년 전 고구려가 백제를 공격할 때 진흥왕은 원군을 보내 줬거든요. 거기다 553년, 관산성 전투 전에 딸을 신라에 시집보내기까지 하죠 -_-;

반면 일본서기에서는 성왕이 가야를 두고 한 일들이 더 자세히 기록돼 있고, 551년에 신라, 가야와 함께 한강을 수복한 것도 기록돼 있습니다. 그 1년 후 신라가 고려와 화친했다고 백제에서 알리고, 무엇보다 이 때 백제가 한강을 "포기"했다고 나오죠. 정작 그 다음해인 553년에는 고려와 싸워 대승했다고 합니다.

그 다음에 관산성 전투가 나오는데... 정말 이상한 기록이 있죠. 이 때 사로잡힌 성왕에게 도도라는 신라 장수가 나타납니다. 일단 일본서기에는 노비로 나옵니다만... 노비가 아니라 장수라고 추측되죠. 도도는 성왕에 절을 두 번 하고 목을 달라 하였고, 성왕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왕의 머리를 노비의 손에 줄 수 없다”

이에 도도는 이렇게 말 합니다.

"우리나라의 법에는 맹세한 것을 어기면 비록 국왕이라 하더라도 노비의 손에 죽습니다"

그렇게 성왕은 죽고 신라는 그 시체를 북청이라는 관청의 계단에 묻어버렸다고 합니다.

백제의 사신이 한 말, 혹은 백제의 기록에서 따 온 게 분명할 텐데도 이런 말을 남겼다는 것, 그리고 그 시체에 대한 신라의 대우, 이것이 대체 무엇을 뜻 하는 걸까요?

무엇보다 중요한 두 가지 물음, 먼저 배신한 것은 누구일까요? 그리고, 성왕은 왜 기껏 점령한 한강을 포기했을까요?

워낙에 많은 말들이 오가는 상황이니 적당히 제 생각만 말 하고 끝내죠.

540년대가 되면 백제에서 일본에 보내는 구원 요청이 폭증합니다. 허구헌날 성왕은 원군을 요구하고, 일본에서는 학자를 요구하죠. 일본이 마침내 병력을 보내자 성왕은 기존에 있던 학자들을 교대해 줍니다. (여기서 그 외교가 최소한 대등했다는 것을 알 수 있죠. 백제가 그렇게 어려운 상황이었는데도 give and take)

남부 가야의 정세가 바뀌면서 신라와 백제의 제 2전선이 생겼습니다. 뭐 충청북도 일대야 전선이라기보다는 (예전에는 많이 싸웠겠지만) 두 나라의 교통로라고 봐도 되겠지만, 이건 좀 얘기가 다르죠. 제 4의 세력 가야, 여길 누가 얼마나 먹느냐의 싸움이었을 겁니다.

애초에 두 나라간에 가야에 대한 불가침 조약이나 어떻게 분할하자는 얘기가 있었다면 확실해졌겠지만, 그런 건 없죠. -_-a 하지만 성왕이 허구헌날 말 했던 가야가 신라와 내통한다느니 하는 얘기, 이건 반대의 뜻을 내포할지도 모릅니다.

애초에 신라의 것으로 예정돼 있던, 혹은 진짜 신라 땅이었거나 신라의 영향력이었던 곳을 백제가 먹은 것이라구요. 그렇게 본다면 맨 위에서 말한 아예 정 반대의 상황이 벌어집니다. 이후 대가야가 백제와 함께 행동하는 것을 보면 더더욱이요.
원래 북부의 대가야는 백제가 먹고 남부 가야는 신라가 먹기로 한 게 아니었을까 하는 거죠. 만약 이런 거라면 "성왕의 배신에 극도로 분노한 신라"가 성립되는 것이죠.

뭐 이런 식이 아니더라도 가야를 두고 두 나라간에 큰 대립이 있었던 건 맞아 보입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백제는 고구려와 치고 받고 있었고, 신라는 그런 백제를 도와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이루어진 게 한강 수복이죠. 여기에 끝도 없이 계속된 왜에 대한 백제의 원군 요청, 그렇다면...

백제는 그 동안과의 고구려와의 전쟁과 가야 문제 때문에 한강을 계속 점령할 여력이 없었던 것 아닐까요?

나제 동맹의 한강 수복이 이루어진 것은 안원왕 말기, 고구려가 내부의 혼란을 겪던 시기였습니다. 때문에 한강 수복은 비교적 쉽게 이루어졌죠. 하지만, 백제의 힘이 딱 거기까지였다면?

성왕은 강력한 중앙집권을 꾀했고, 그 때문에 지방의 호족들의 반박은 컸을 겁니다. 그가 한강을 포기한 데 대해 이들의 지원 및 한강 수복에 대한 (자기 땅이 아니었으니) 의지가 없었기 때문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신라가 원했던 것은 어디까지나 한강, 이 상황에서 고구려와 신라는 화친합니다. 반면 삼국유사에서는 성왕인지 위덕왕인지 모를 백제 왕이 고구려에 대한 공격을 계속하기를 주장했지만, 진흥왕은 "하늘이 고구려를 미워하지 않는데 내가 어떻게"라면서 거부하자 백제가 신라를 공격한 것으로 돼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저는

백제의 가야 지역과 한강 수복 및 고구려 공격에 대한 지나치게 강경한 자세 (이를 통한 신라와의 갈등)
그런 상황에서 내부 혼란과 계속된 전쟁으로 동귀어진한 고구려와 백제
그 틈을 타 한강 유역을 모조리 차지한 신라

이런 상황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아마 고구려와 백제는 이를 묵인한 게 아닌가 싶어요. 신라가 한강을 점유했음에도 고구려와 백제는 계속 싸우고 있었거든요. 힘드니까 니들이 싸워라, 즉 백제와 고구려는 서로가 신라를 공격해주길 원했지만, 신라는 이 틈을 타 땅도 땅대로 점령하고 싸움은 둘끼리 시킨 것이죠.

이후 고구려는 한강을 비교적 친한 -_-; 신라에게 주면서 백제와의 완충지대를 형성, 북쪽의 돌궐과의 전쟁에 힘 쓸 수 있게 됐고, 신라는 여기에 새로운 주를 설치하면서 확실히 자기 땅으로 삼았습니다. 이렇게 신라는 중국과 직접 외교할 수 있는 요충지를 얻은 것이죠. 신라는 통일까지 이 지역을 절대 뺏기지 않습니다.

.............. 뭐 복잡한데 이 정도가 제가 내린 결론입니다.

4. 피의 관산성
삼국유사에서는 백제가 신라에게 고구려를 치자고 주문하니 진흥왕이 이렇게 말 했다고 하고 있습니다.

"나라가 흥하고 망함은 하늘에 달려 있는데 만약 하늘이 고구려 를 미워하지 않는다면 내 어찌 바라겠느냐"

이 때문에 백제가 신라의 진성을 공격해 남녀 3만 9천명이랑 말 8000필을 약탈해 갔다고 하죠. -_-; 이게 관산성 전투와 전후관계를 알 수 없습니다. 관산성 전투 전이라면 이것이 백제가 확실히 나제 동맹을 깨뜨린 것이고, 후라면 위덕왕의 복수전이라 봐야겠죠.

뭐 이렇게까지 놓고 보면 진흥왕은 양 쪽이 지친 틈을 타 고구려와는 화친하고 백제와도 딱히 화친을 깨뜨리지 않으려 하면서 백제가 대 놓고 공격해 주기를 바랐을지도 모르겠네요. (...)

어느 쪽이든 성왕은 이를 갈고 있었습니다. 신라에 딸까지 주면서 화친을 잇는 척 했지만, 마침내 일본에서 원군이 오면서 상황이 바뀌죠. 에... 1000명이나요 -_-; 일본도 사정이 딱히 좋진 않았던 듯 해요. 신라 공격을 주장한 건 성왕의 아들 위덕왕, 늙은 신하들이 말리자 이렇게 면박을 줬다고 하네요.

"늙었구려. 어찌 겁내시오"

물론 이 뒤에는 "우리는 대국(일본)을 섬기고 있는데 뭐가 겁나냐"고 했는데 이런 건 사뿐히 무시해 줍시다. 이쯤 되면 지겹네요.

이 때 동원된 병력은 백제 1만에 일본 원군 1천, 여기에 정확한 수를 알 수 없는 대가야 병력이었습니다. 나름대로 그들에게는 준비할대로 준비한 한 방 병력이겠습니다만... 여기에 어이 없는 일이 발생하죠.

이에 맞선 자는 군(軍)주 각간 우덕과 이찬 탐지, 그들이 밀리자 신(新)주의 김무력이 합세하죠. 그의 비장 도도가 성왕을 죽였다고 합니다. 헌데... 백제본기에 있는, 성왕이 거느린 병력은 겨우 보기 50이죠. -_-;

백제본기에서는 신라군을 기습하기 위해 밤에 몰래 가다가 발각돼서 죽었다고 하고 있습니다.
반면 일본서기에서는 자식이 걱정돼 위로차 방문하다가 운 나쁘게 걸려서 죽었다고 하죠.

아무래도 일본서기 쪽이 맞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결전이래도 한 나라의 왕이 겨우 50명 끌고 가다니요.

신라로서는 계획적이든 우연이든 어마어마한 영웅킬을 올린 거예요. -_-; 백제로서는 진짜 망했어요 소리 나오는 거구요.

이 때 기세를 탄 신라군은 백제군을 전멸시키는데, 백제는 좌평 넷과 믿을 수 없는 가격 아니 병력 2만 9천 6백을 사살했고, 한 마리의 말도 돌아간 것이 없었다고 하고 있습니다.

과장이 얼마나 됐든, 어마어마한 타격을 받은 것이죠.

겨우 살아나고 제대로 발전하려고 했던 백제는 이렇게 주저앉습니다.
저 때 전사한 수가 동원된 백제-가야-왜 연합군의 최소치라 생각한다면, 가야군 역시 어마어마하게 참전한 것이 되겠죠. 오히려 백제군보다 많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이 정도 타격을 받았다면 대가야 역시 재기 불능의 타격을 입었을 것입니다.
이 때 단 1000명의 병력을 보낸 것에서 알 수 있듯, 왜도 더 이상 신라에 깝죽대지 못 했습니다.
고구려는 내부 혼란과 돌궐과의 전쟁으로 남쪽에 신경 쓰지 못 하고 있었죠.

이렇게, 신라는 6세기의 주인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그 신라를 이끌던 왕은 진흥왕이었죠.



----------------------------

다 쓰고 나니 생각나는 건데, 한강 수복 때문에 성왕의 사비 천도가 뭔가 북진을 향한 의지처럼 여겨지는데, 위치도 그렇고 상황도 그렇고 오히려 후퇴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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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2/16 20:14
수정 아이콘
사비가 지금으로 따지면 위치가 어디죠..?
11/12/16 20:15
수정 아이콘
솔직히 배신이라는 말 자체가 지극히 현대적인 관점으로만 바라본 말이죠.(현대적인 관점이라고 해도 이상하지만요.) 저 시대에 저렇게 하지 않았다면 오히려 그게 바보 같은 행동이죠. 지금도 영원한 우방 따위는 없는 법인데요.
11/12/16 21:30
수정 아이콘
배신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어쨌든 예정된 수순이었다고 봐야겠죠.

고구려를 밀어내고 북진하기위해 연합했다지만... 그렇게 연합한 채로 계속해서 고구려를 밀고 올라가기에는 지형적인 문제가 발생합니다.

한반도의 남부지방도 사실 서쪽이 평야지대고 동쪽이 산악지방이긴하지만, 중부지방으로가면 이것이 극단적이 되니까요. 백제와 신라가 사이좋게 계속해서 고구려를 밀고 올라가면, 백제는 경기도와 황해도, 평양지방까지를 먹게되고, 신라는 강원도와 함경남도 일대를 먹게됩니다. 그게 성립될 리가 없는거죠.

백제입장에서, 신라의 땅덩이는 크게 먹음직스럽지 않죠. 백제입장에서 먹음직스러운 땅은 경기도와 전남이죠. 그런면에서 생각해보면, 시기야 달라질 수 있으나 결국은 신라가 백제를 공격하는 것이 수순이라 생각이 들어요.
우던거친새퀴
11/12/16 22:10
수정 아이콘
이제까지 성왕이 한강뺏기고도 신라에 딸보내고, 계속 고구려치자고 주장한걸 보고, 배알도 없구나 하고 생각했었는데
왜 이걸 한번도 의심을 안해봤었나 싶네요. ;;
우던거친새퀴
11/12/16 22:11
수정 아이콘
근데 고대사기록을 보면 볼때마다 궁금한게
왕을 사로잡는건 없고 왜 맨날 죽이는걸까요? 전장에서 경황이 없어서 일단죽이고보니 그중에 한명이 적국의 왕... 이런게 아니라면 사로잡는게 훨씬 낫지 않나요?
Je ne sais quoi
11/12/16 23:18
수정 아이콘
아~ 그럴 수도 있군요. 저런 식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는 걸 처음 알았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카서스
11/12/16 23:32
수정 아이콘
사비로 천도한것은 공주의 도성이 너무 협소해서 그렇습니다. 공산성이던가? 가보면 산과 호수? 강? 으로 둘러싸여있는데 산성과 같은 느낌이 들죠. 아마 한성이 함락된 다음 취약해진 왕권 + 고구려의 후속 공격으로 인해 그곳으로 정한듯 합니다.
그에반해 사비는 평야지대에 위치하고 큰 강을 끼고있어 수비도 어느정도 수월하면서 해상교통로를 활용하기에도 쉽죠. 그외에는 글썌요. 전라도 지역밖에 없는데 그당시 이곳은 통치력이 제대로 미치지 않았을거라 추정되죠. 그러므로 충청도내 왕성으로 쓸만한 곳은 부여가 최고가 아니였나 합니다. 그쪽 세력가와의 연계도 있었을테구요.

우던거친새퀴//고대에서 왕은 총사령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총사령관을 죽여버리면 군체계가 와해되고 그가 영향력을 끼치고 있던 귀족층, 즉 당시 실제로 병력을 보유하고 있던 권력층이 분열될 소지가 있죠. 장기적으로 봤을때 왕을 죽여버리는게 훨씬 이득이죠.
chowizard
11/12/17 10:09
수정 아이콘
성왕의 보기 50명 끌고 갔다는 기록은 원래는 5천 명이었던 기록이, 천(千)의 상단 획이 누락되면서 생긴 오기라고 합니다.
50명으로 공성전을 할 수야 없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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