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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1/12/13 07:13:34
Name 눈시BBver.2
Subject [일반]  백제 vs 신라 - (2) 백제의 비상, 근초고왕

어제 못 썼네요. 쯥... 어제가 12.12였죠. 영원기 기억해야 되는 날입니다.
순직하신 해경 분의 명복을 빕니다 (__) 열받네요.
================================
1. 목지국과의 대결
미추홀에 있던 비류가 망해서 온조에 흡수된 이후, 온조는 14년에 하남 위례성으로의 천도를 단행합니다. 이 하남 위례성이야 몽촌 토성이랑 풍납 토성이 남북성으로 돼 있고 그 중에 몽촌 토성이 더 주 수도가 아니었겠느냐고 "어느 정도" 정설이 된 상황이지만, 이 하북 위례성이 어디인지는 또 연구된 바가 없죠.

임진강 유역에서 2세기 후반인가 고구려계 유물이 발견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한 연천쯤이 여기가 아닌가 하는데, 대방군의 지원을 받아 자랐다는 걸 생각하면 그럴 듯 하긴 하죠. 하지만 뭔가 맞다 할 정설은 없습니다. 그냥 강 건너편 아차산성 뭐 이런 곳일 수도 있죠.

하남 위례성 천도 전부터 말갈의 공격을 심하게 받는데, 이 말갈은 한반도의 경기도 동부 - 강원도 등지에 흩어져 사는 것으로 보입니다. 원주 등 이 지역에서 낙랑계 유물이 발견되는데, 이들이 한군현에 의해 국가로 책봉된 게 아니냐 하는 것이죠. 이렇게 본다면 원삼국에서 뭔가 찾을 수 없던 지역에 나라가 하나 생깁니다. 뭐 -_-a 삼한의 나라들처럼 제대로 된 나라는 아니었던 것 같지만요. 그 후에도 말갈과의 전쟁은 계속되며, 어쩄든 우위를 잡긴 한 모양이네요.

이십년쯤 가면 마한을 다 쓸어버렸다고 합니다. (...) 이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죠. 정작 마한을 다 잡아먹었대놓고 다음 대 다루왕으로 가면 청주성까지 영토를 넓혔다 하거든요. -_-a 뭐 목지국만 먹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어쨌든 하남 위례성으로 천도한 백제에 있어서 당면과제는 천안에 있는, 10만호가 넘는 인구가 있었다는 삼한의 맹주 목지국과의 대결이었습니다.

2. 삼한의 정체
이쯤 해서 다시 생각해 봐야 될 것이 삼한이 무엇인가입니다. 삼한 이전에는 진국이 있었고, 마한이 그 자리를 이었습니다. 고조선이 멸망한 시점에서 삼국이 세워지기 전까지 진국은 어느 순간 멸망했죠. 여기에 이 마한은 위만에게 쫓겨난 고조선의 준왕이 세운 것이라는 전설이 있고, 실제 고조선계 유물이 나온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런 상상이 가능하죠. 딱히 국가라 할 체계가 없었던 남한 지역에 위만에게 쫓겨난 고조선 세력이 오고 그들이 진이라는, 영토국가라기엔 애매하지만 명목상 남한 전체를 통치하는 나라를 세운 거라구요. 그 이전에도 고조선의 유이민은 계속됐을 것이겠지만요. 그렇다면 위만조선이 진과 한 사이의 외교를 방해하는 것도 이해가 갑니다.

한편 진한의 경우 중국 기록에서는 "진나라(중국) 사람들이 전쟁을 피해 이 곳으로 왔고, 마한에서 동쪽 땅을 내 줬다"고 하고 있습니다. 한편 삼국사기에서는 사로국 6촌이 모두 고조선에서 내려온 사람들이라고 하고 있죠. 고조선계 유물도 발견되구요. 그렇다면 이들은 위만조선 멸망 후 내려온, 마한과 비슷하긴 한데 이해관계가 다른 사람들이고, 마한이 그들의 맹주로서의 역할은 하지만 직접 통치가 힘들었던 게 아닌가 합니다. 이렇게 새로이 내려온 이들이 진한을 이루었고, 기존의 진의 세력권에 있던 자들은 (그렇게 봐도 54개국이나 되죠) 마한으로 남았으며, 그 둘 어느 쪽도 아닌 자들은 변한이 된 게 아닐까 하는 가설입니다. 이렇게 보면 변한 국가들이 왜와 밀접한 관계를 이룬 것 역시 이해가 갑니다.

역개루 라이트온님의 가설이지만, 제일 그럴듯 하네요. -_-a

직접 통치는 불가능하지만 신라가 계속 "한(韓)"에 속했다고 하고, 외교 관계에서도 백제의 도움을 받아야 가능했던 점 등을 보면 마한, 목지국에서 백제로 이어지는 삼한의 맹주관계는 그대로 갔을 겁니다.

신라의 경우 그 이후에도 유이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입니다. 가령 수서에는 고구려 때, 그 관구검-_-;이 수도를 함락시키자 왕이 옥저 지방으로 도망갔는데, 이 때 왕이랑 같이 돌아가지 않고 내려온 이들이 신라를 만들었다고 돼 있습니다. 이 때가 244년, 그리고... 김씨 첫 왕인 김미추가 왕이 된 게 264년이죠. 흉노설까진 아니더라도 김씨는 역시 북쪽에서 온 게 아닌가 하는 부분입니다.

금관국 같은 경우야 독자적인 외교를 한 모양입니다만, 변한의 소국, 가야제국들은 그 정도까지 이르지 못한 것으로 보이며, 왜가 이들 "임나" 지역을 통치한다고 뻗댈 수 있던 것 역시 왜가 외교를 열심히 했다는 증거겠죠. 기원전 2세기 초에 이미 왜가 중국에 160명이나 되는 노비(...)들을 바쳤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 "왜"가 어느 나라든 외교 면에서, 국력 면에서 가야의 소국들을 능가했던 것으로 보이고, 마한과 대립했겠죠. 변한의 국가들 역시 마한과 싸우기 위해 왜와 최대한 힘을 합쳐야 했을 거구요. 신라 역시 마찬가지로, 한에 속하기도 했고 왜에 속하기도 했다는 것 역시 살아남기 위한, 혹은 자립하기 위해 여러 가지 일들을 벌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변한의 가야나 마한의 목지국이나 백제나 그 모습을 그냥 볼 수 없었고, 후에 신라가 고구려에게 기대게 되는 이유가 됐겠죠.

흠... 이 정도 정리하고 다시 백제로 넘어가겠습니다.

3. 마한의 맹주로
경초 연간, 237~239년, 삼국지에서 사마의가 공손씨 잡으러 온 바로 그 시점입니다. 이 때 위에서는 낙랑과 대방을 다시 평정하고 (그 이전에는 망할 지경이었다는 거겠죠) 한국의 신지, 각 나라의 왕들을 다시 책봉해 줍니다. 이와 함께 "진한이 원래 우리 땅이니 낙랑에 넣겠다"고 했죠. 남한 지방에 대한 지배권을 확고히 하려 했던 것이죠. 이에 "신지"와 "한인"들이 격분해 기리영을 공격했는데 막아냈고, 대방태수 궁준이 전사했지만 마침내 한을 "멸했다"고 하고 있습니다.

낙랑, 대방군과 목지국간에 남한을 둘러싼 전쟁을 예측할 수 있는 부분이죠. 이후 목지국은 급격히 쇠락합니다. 그리고 동시에 백제가 강성해지죠. 어부지리일까요 -_-a 이후 백제는 경기도 남부를 잠식하기 시작합니다. 화성에서 이를 의미하는 유물유적이 있다는군요.

어부지리인지, 한 군현이 대놓고 백제를 마한을 지배하는 용도로 만들어준 건지 몰라도 백제는 시작부터 반항을 시작합니다. 낙랑, 말갈과의 싸움은 그걸 의미하겠죠. 혹은 마한이 한군현에 맞서기 위해 백제에게 힘을 넣어준 것일지도 모릅니다. 이런 말이 있거든요.

"니가 처음 강 건너 왔을 때 발디딜 곳도 없어서 내가 동북쪽 땅 100리나 줬잖아 ㅡㅡ 근데 나라 좀 커지니까 우리 공격하냐?"

온조왕 24년에 마한왕이 보냈다는 말입니다.

4세기 초에 이르면 목지국은 급격히 축소된 것으로 보입니다.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백제는 목지국만큼은 확실하게 짓밟은 것 같네요. -_-; 다만 이 때 백제가 목지국부터 마한의 남은 영역들을 직접 다스리지는 않은 듯 하네요. 오히려 백제는 북진합니다. 경기도 동부, 강원도 서쪽의 말갈이 백제에게 완전히 복속돼서 아예 영토가 된 듯 하며, 경기도 남부에서 목지국과 연하고 충청도에 이르기까지의 영토, 이것이 근초고왕 이전의 영토인 것으로 보이구요. 아마 이 때쯤이면 충청도에서 경상도로 넘어가는 세 관문, 조령 죽령 추풍령이 모두 백제에게 넘어갔을 겁니다.


+) 늘 얘기하지만 제가 그린 거 믿지 맙시다. 대략 이런 느낌이다예요. 딱 봐도 대충한 티가 나죠? (...)

이 때 백제가 한 건 목지국의 자리를 대신하는 삼한의 맹주, 하지만 목지국에 비하면 거대한 영토 국가가 시작됐겠죠. 신라 역시 이 시기에는 이전 편에 썼던 경상북도로의 영토 팽창이 이루어진 듯 하구요.

문제는... 이걸 백제 왕사랑 도저히 연결시킬 수가 없다는 거겠죠. (...) 간략하게 백제 왕사를 짚어 보고 넘어가겠습니다.

4. 백제 초기 왕사
온조왕 - BC18~AD28 46년 재위 (...)
다루왕 27~77 -> 기루왕 77~128 -> 개루왕 128~166 -> 초고왕 166~214 -> 구수왕 214~234 -> 사반왕 234 -> 고이왕 234~286

헥헥 -_-;

온조왕 때부터 다루왕까지의 기록은 근초고왕 등 후대 왕의 기록이 위로 올려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마한 평정과 신라와의 전쟁 등의 부분을 그 대로 옮기면 말이 되거든요 (...) 그리고 개루왕부터는 기록이 급격히 줄어듭니다. 거기다 개루, 초고, 구수는 후에 근초고, 근구수, 근개루(21대), 개로로 비슷한 이름들이 계속 나타나죠. 초기 기록 부정론은 이 때문에 이 왕들은 아예 없었던 걸로 치기도 합니다. 문제는 참 많죠. 고이왕의 경우 초고왕의 동생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저 빤따스띡한 연대를 보면 말이 안 되죠. 초고왕은 50년이나 재위했고, 개루왕의 맏아들입니다. 그런데 이 개루왕도 38년이나 즉위했습니다. 흐음......

이후에도 이런 건 또 있습니다. -_-; 11대 비류왕은 사반왕의 아우라 하는데 이것도 말이 안 돼요. 초고왕의 아들이라고도 하는데 그럼 몇 살이나 산 걸까요? 물론 수정 기년 쪽을 택해 재위를 팍팍 줄이면 말이 되긴 합니다만...

아무튼 비류->근초고->근수구->침류왕계를 초고왕게라고 부릅니다. 5초고-6구수-7사반-11비류 이렇게죠. 한편 8고이-9책계-10분서-12계왕까지를 또 따로 나누구요. 그냥 여길 참고하시죠.
http://www.angelhalowiki.com/r1/wiki.php/%EB%B0%B1%EC%A0%9C/%EC%99%95%EC%82%AC

아예 신라처럼 돌아가면서 하는, 중앙집권이 덜 된 흔적일 수도 있고, 설화로 나눠진 온조-비류계의 갈등일 수도 있습니다. 당장 왕 이름부터가 비류잖아요. 문제는... 어느 쪽이 온조계고 어느 쪽이 비류계냐에 대해서도 말이 엇갈린다는 것. 아예 정반대의 결론까지 나오는 상황이죠. (...) 이런 거랑 각 왕들의 기록에 나오는 마한, 낙랑, 말갈, 신라와의 전쟁들이 다 엉켜 있어서 고고학적 추정이랑 삼국사기랑은 연결시키는 게 불가능하다시피 합니다.

일본서기라도 참고하면 좋을텐데 둘이 관계를 맺을 때가 근초고왕 때부터이고, 한 5세기쯤 가면 이 둘이 또 맞아 떨어집니다. (...) 아나...

아무튼 -_-; 신라와의 전쟁 기록은 사실상 무시하는 게 나을 듯 싶고, 다만 마한을 복속시킨 과정에서 신라가 말을 안 들으니까 정벌하거나 한 적은 몇 차례 있을 듯 합니다.

대략 한성백제 성립 -> 목지국 몰락 -> 한군현과 말갈과의 싸움 -> 목지국 무력화시키면서 말갈 복속 -> 한군현과 계속 싸움

이런 형태겠죠.

9대 책계왕은 한(漢)군과 맥인(동예? 말갈?)과 싸우다 전사합니다. 10대 분서왕은 낙랑에서 보낸 자객에 의해 살해당하죠. 이 즈음 백제의 주적은 한군현, 그리고 그 다음 대가 비류왕이니 그 혼란을 노려 기존에 밀려난 세력, 혹은 아예 새로운 세력이 정권을 잡은 게 아닐까 하기도 합니다. 12대 계왕은 재위기간이 단 2년. 고이왕계가 겨우 다시 잡았나 싶더니만 또 밀려난 거죠. 이렇게 고이왕계는 끊어졌고, 자칭이든 실제든 초고왕계가 확실히 왕권을 잡습니다. 그래서인지... 백제의 가장 위대한 왕으로 불리는 다음 왕의 이름은 근초고입니다.

신라까지 못 가겠네요. 근초고왕 얘기만 하고 끝내죠.

5. 근초고왕
근은 2세의 의미라는 게 정설이죠. 일본서기에는 초고로 돼 있으니 단순 동명이인으로 구분짓기 위해서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진서에 나오는 이름은 여구, 이 372년이 중국 사서에 최초로 등장하는 백제왕입니다. 한편 조고(고사기), 초고왕이 일본에서 처음 등장하는 백제왕이구요.

그의 시대에 이르러 마침내 백제는 거대한 영토국가이자 삼한의 제왕이 되었고, 당과 일본에 자신의 존재를 확실히 알렸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초기 20년의 기록이 모두 누락돼 있죠.

하지만 고고학적으로 마한의 복속이 이 때 이루어졌다는 점과 온조왕 때 마한 복속의 기록이 있다는 점을 들어 근초고왕 초기의 기록이 모두 온조왕에게로 간 게 아닌가 합니다. 온조왕 때 이미 마한을 깨고 신라랑 싸우기 시작했는데, 지금 와서 마한이랑 싸운다 하면 안 될 테니까요.

신라와의 전투 기록 역시 근초고왕 대나 그 이전, 혹은 신라가 그냥 숙이고 들어갔다면 그 이후로 봐야겠죠. 근초고왕 때의 신라는 사신을 보내고 말도 보내면서 철저히 백제에게 복속된 것으로 나옵니다. 대신 삼국사기에 그에 대한 기록은 모두 고구려와의 싸움으로 얼룩져 있죠.

한편, 일본서기에는 이런 기록이 나옵니다.

"신공황후께서 바다 건너 어떤 나라가 있다는 걸 초능력으로 알고 (...) 신라 공격, 신라왕은 놀라서 항복. 고려와 백제도 이걸 보고 항복."

"탁순국에 병사를 모아 신라 정벌. 목라근자와 사사노궤를 보내 비자화, 남가라, 녹국, 안라, 다라, 탁순, 가라 7국 평정. 고해진에 이르러 "남만"인 심미다례를 없애고 백제에게 줌. 백제왕 초고와 왕자 귀수가 군대 이끌고 옴. 비리, 벽중, 포미, 지반, 고사 등 읍락 항복"

"신라가 조공 안 함. 공격 ㅡㅡ"

"신라가 말을 안 듣자 사지비궤를 보내 토벌, 신라가 미인계 쓰자 넘어가 오히려 가라국 공격 (...);;;;; 가라국왕이 일본에 도움을 청하자 천황이 열받아서 목라근자를 보내 금관국 복구"

... 에 -_-; 예. 아름답고 놀라운 일본의 삼한 평정 기사입니다.

보면 참 어이 없지만... 여기서 놀라운 해석이 나오게 되죠.

이 모든 게 백제의 기록 아니냐는 겁니다.

가령 여기에 동원된 장수들은 대부분 백제에서 볼 수 있는 사씨, 목씨도 백제의 장수로 나오는 성씨입니다. 저기서 나오는 침미다례를 전남 지방으로 해석하는데, 이상하게 남만, 남쪽의 오랑캐라 하고 있죠. 거기다 처음 만났대놓고 겨우 점령한 여길 백제에게 줬다고 합니다.

뭔가 이상하죠? 이 때문에 백제의 기록을 모두 일본의 것으로 바꿨다는 주장이 나오게 되었고, 이후에도 백제와 관련된 기록을 모두 주어를 일본에서 백제로 바꾸니 맞아 떨어지더라 (...) 로 해서 계속 이런저런 해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근초고왕은 목지국을 완전히 멸망시키고 남쪽으로 크게 나아가 전남의 침미다례에까지 손을 대게 되었고, 마한은 이렇게 완전히 무너졌으며, 가야-왜와의 연결이 그의 대에 이르러 확실해졌고, 신라는 도무지 말을 안 들어서 계속 때려패야 되는 존재가 된 거죠. -_-;; 신라를 친 직접적인 이유는 가야와 왜 사이의 무역을 방해하고 사신들을 삥 뜯었다는 것, 이 부분의 주체를 왜로 하든 백제로 하든 별 상관은 없어 보이구요.


마한의 완전 복속, (다만 전라도 지방은 간접 통치인 듯) 신라의 복속, 가야와 왜와의 연결 등... 모든 준비를 갖춘 근초고왕은 북진합니다. 목표는 평양성!

369년 9월, 고국원왕은 2만의 병력으로 남쪽으로 진군해 옵니다. 낙랑과 대방이라는 두 나라 사이의 장애물이 사라진 이상 전쟁은 필연이었죠. 특히 근초고왕이 남쪽에 매진한 사이 노린 게 아닌가 싶네요. 2년 뒤에는 다시 고구려가 치고 내려왔고, 근초고왕은 칼을 빼듭니다. 이 때 평양성을 포위해 고국원왕을 죽였죠. 이 때 근초고왕은 황제의 색깔인 누런 색을 깃발로 썼다고 합니다. 그 위세를 알 만 하죠.

이대로 백제의 전성기가 이어졌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마는... 상황은 그리 좋지 못 했습니다. 특히 그가 죽고 난 후, 백제는 최악의 위기를 맞게 되죠. 고구려를 건드린 건 벌집을 건드린 것과 같았으며, 밟고 밟았던 신라는 끝내 살아났습니다. -_-; 잠깐의 전성기에 이어 백제의 안습기가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

아무튼 이런 점 때문에 일본서기를 마냥 무시할 수 없습니다. -_-; 아마 일본서기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삼국시대, 혹은 역사 자체에 대한 지식이 얼마나 되는지를 판별할 수 있겠죠. 고구려랑 백제 멸망 후에 그들이 쓴 기록이 일본으로 꽤나 넘어간 것으로 보입니다. 삼국사기나 중국 기록보다 더 자세한 기록이 있는가 하면 그 때 나눈 대화까지도 기록돼 있는 경우가 있거든요. 괜히 복어가 아닙니다. -_-; 진짜 맛있는데 건드리기가 매우 까다롭죠. 어쨌든 모든 게 일본을 중심으로 돌아가니까요. 하지만 그걸 또 아예 무시할 수도 없고...

근데 참 신라 치려다가 미인계에 넘어가 가야를 공격한 놈도 참 (...)

칠지도 얘기는 다음편에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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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2/13 07:25
수정 아이콘
눈시님 글 너무 잘보고 있습니다~

헠헠. 근데 로키 이야기는 언제...

는 농담이고 눈시님 때문에 언제나

자게와 연게가 즐겁습니다 [m]
Je ne sais quoi
11/12/13 07:35
수정 아이콘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백제는 전성기가 생각보다 더 짧나보군요. 그저 근초고왕 한 분 믿고 가나요 -_-;
11/12/13 07:45
수정 아이콘
문뜩 눈시님 아이디로 검색했는데 제목들이 쭉 보이니 무슨 보물처럼 보이더군요.
새삼스럽지만 언제나 좋은 연재(!) 감사드립니다.

아 그리고 혹시 역개루인가 네이버 카페에서도 활동하시나요?
고소금지법에 대한 pgr에서 본듯한 느낌이 드는 글을 우연히 봐서...
아이디 보면 맞는 거 같기도하고요. 내일이 시험인데 우연이 그 카페 알게 되서 조선 게시판 글 3페이지정도는 읽은 거 같네요-_-;;
11/12/13 07:52
수정 아이콘
눈시님이 글을 쓰는 가장 큰 이유는

피지알러들의 학업을 방해하기 위함에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예전 글부터 정주행해서 보다보면

하라는 공부는 안하게 되죠 _ㅠ [m]
11/12/13 08:33
수정 아이콘
재밌는글, 재밌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오늘 글을 읽고나니까, 백제가 뭔가 다른 선택을 했었으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하는 생각도 드네요. 만약에 백제가 북진 정책을 쓰지않고, 고구려와 상호불가침조약같은걸 맺은 후에 고구려는 북진, 백제는 한반도 남부 평정을 선택했다면 좀 더 빠른 시일에 남북국 체제가 완성되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 바꿔 생각해보면, 그걸 선택을 안한게 아니라 못한게 아닌가 싶기도하구요. 백제군이 산악지역에 약해서 남부 및 동부를 노리기보다 북진을 선택한 것은 아닐까 싶은 것도 있긴 하네요. 가장 중요한 것은 지난 글에서도 말씀하셨듯이 황해도 지역의 철이었겠지만요.
김연우
11/12/13 10:08
수정 아이콘
즐겁게 읽고 있습니다.

이 시대를 바탕으로 대하 소설 같은거 나오면 참 재밌을거 같아요. 확실한게 없는 만큼 역사 왜곡 문제가 있겠지만(...) 그만큼 작가의 상상력이 개입할 소지가 많겠지요. 그리고 한국인에게 있어 가장 흥미로울테니.
chowizard
11/12/13 11:08
수정 아이콘
이 시절의 이해 안가는 백제 기록에 대한 참신한(?) 해석을 찾고 싶으시다면 김상 교수의 '삼한사의 재조명1,2'를 한 번 읽어보기를 권합니다.
http://www.histopia.net/zbxe/neo에서도 관련 내용들을 찾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통설과는 상당히 다른 방향으로 초기 삼국 시대의 백제사를 설명합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역사를 해석하는 방식에 있어서, 어떤 새로운 패턴을 알려주었다고 생각합니다.

핵심적인 내용이라면, 상당히 합리적인 방식으로 일본서기 천황들의 실존 연대를 복원한 것이 있고, 신라본기의 왜와 백제본기의 왜는 별개의 나라이며, 백제란 본래 삼한 78국의 연합체를 가리키는 나라 이름이었다는 것, 4세기 말 이전까지는 일본서기가 주장하는 소위 '일본민족'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등이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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