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고를 받는 입장에서 침 꿀꺽 삼키고 무시해 버릴 수 있는 한번의 여유가 있다. 권고를 받고 그대로 이행하더라도 역시나 스스로에게 할 말은 있다. 이 정도면 할 만큼 했으니 굴복한다는 면죄부를 스스로에게 발부할 수 있으니까. 권고를 하는 입장에서는 더욱 판타스틱한 아름다움이 있다. 권고를 함으로써 자신의 존재가치와 영향력을 확인할 수 있다. 더욱 강한 제제를 원하는 사람들을 적당히 달랠 수 있는 허울뿐인 평화의 지지대인 셈이다. 말 안듣는 아들을 줘패라는 아내의 강력한 요구와 남자는 저렇게 커야 한다는 내 생각을 모두 만족 시키는 묘책이랄까. 무언가 서로가 울컥하고 부딪힐 상황에서, 부딪혀야만 하는 상황에서 겉으로는 모두를 평화롭게 만드는 것이 바로 권고의 아름다움이다.
2. 권고는 아름답다.
세상의 위계질서를 깨닫게 한다. 이 지구상에서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해서 먹히는 권고는 없다. 먹힌다면 상하관계가 바뀐 거다. 걷는 놈 위에 뛰는 놈 있고,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듯이 평화로운 나날 속에 내 앞에 던져진 권고는 이 세상의 중심이 내가 아님을 깨닫게 하는 갈릴레오 갈릴레이와 같다. 내가 살아있음을 깨닫게 해 준 당사자가 더 윗 사람으로부터 권고를 받을 땐 오묘한 쾌감마저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나는 걷는 놈 아래의 기는 놈이었음을 알려주기까지 한다. 어느 책에도 나와있지 않는 세계의 약육강식을 몸소 알려주며 나의 넘치는 건방을 스스로 닦게 해주는 권고의 아름다움은 참으로 찬란하다.
3. 권고는 아름답다.
그 무게가 줄때와 받을때가 다르다. 권고를 하는 사람은 종이 한 장 줄 뿐인데, 받는 사람의 어깨에는 100톤의 부담감으로 다가오는, 아인슈타인이 울고 갈 상대성을 띈다. 게다가 권고의 횟수에 따라 그 무게가 제곱으로 곱해지는 ‘통첩’의 의미까지 숨어있다. 이번 권고가 최후 통첩인지, 서류상 한번 간을 보는 것인지 숨은 뜻을 찾는 재미도 있다. 그리고 보너스로 이번 권고를 깡그리 무시했을 때 그 이후를 상상하는 창의성마저 키워준다. 창의 인재가 필요하다며 온 나라가 창의성을 책으로 가르치는 요즘 세상에 이런 불편한 진실이 숨겨져 있을 줄이야. 권고를 하는 입장에선 통첩의 의미로 스스로에게 정당성을 부여할 수도 있다. 무더운 여름에 시민들을 시원하게 해 주겠다는 일념으로 무상물대포를 가동시키는 입장에서 권고의 누적만큼 아름다운 행동은 없다. 권고의 누적. 이후의 더 큰 한방을 불러오는 꼭 필요한 코스임에 틀림없다.
4. 그리고 권고는 아름답다.
권고의 다음 단계는 상호 관계의 기저에 무엇이 깔려 있는지 확인할 리트머스 시험지와 같다. 애정을 듬뿍 담은 권고의 다음 단계는 제제나 강요가 아니다. 진정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가 취하는 권고의 다음 단계는 바로 자식의 눈높이까지 낮아져서 하는 ‘부탁’이다.
무한도전이 방심위로 부터 받을 다음 처분은 부탁일까, 강요일까.
* 비가 오는군요. 단순한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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