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거인 이미르가 있었습니다. 그는 거대한 암소 아우둠라의 젖을 먹고 살았죠. 세상은 얼음밖에 없을 때였습니다. 아우둠라는 그 얼음과 그 속에 있는 소금(그러니까 암염 - -a)을 먹고 살았죠. 시작부터 말이 갈리는데, 이렇게 아우둠라가 얼음을 먹다가 보니 사람 얼굴이 나타나고 다음 날에는 가슴까지 드러나고 마지막 날에 전체가 다 드러났다고 합니다. 이게 이미르라는 말도 있고, 신들의 조상이라는 말도 있네요. -_-; 아무튼 이미르는 이렇게 태어났든 아우둠라랑 동시에 태어났든간에 최초의 거인입니다. 그의 겨드랑이에는 서리거인이 태어났고, 발가락에서는 트롤이 태어났습니다.
아우둠라는 열심히 땅에 묻혀 있는 신들을 발굴해냈고, 그들은 나름대로 또 번성합니다. 그러다가... 욕심을 품게 되죠. 신들을 이끌던 삼형제는 이미르를 죽입니다. 이 과정에서 그의 피가 홍수가 되어 흘렀고, 서리거인들은 전멸합니다. 그들 중 첫째가 바로 오딘. 신들의 왕입니다. 그는 이미르의 시체로 세상을 만듭니다. 뭐... 시작부터 엽기적입니다. 하긴 크로노스는 자기 아빠를 곶아로 만들었다죠?
"뭐냐, 뭘 하고 있는 거냐 이놈들아!"
"세계를 창조하는 중입니다. 아버지(?)"
이미르의 피는 바다가 되었고 뼈는 광물이, 이는 보석이 되었습니다. 살은 흙이 되고 눈은 태양과 달(나중에 다른 설정이 나오지만 이런 설정 오류는 너무 흔해요), 눈물은 비, 털은 나무와 풀, 뇌는 구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시체에서 나온 구더기가 인간이 되었다고 하죠.
신들은 세상을 여러 구역으로 나눕니다. 가장 위에 위치한 것은 아스가르드, 신들의 거주지였습니다. 그 가장 높은 곳에는 오딘의 궁전 발할라가 있었죠. 그 다음은 미드가르드, 인간들이 사는 곳이었습니다. 여기를 벗어난 곳이 우트가르드, 잉금님께서 좋아하시는 바깥 세상이었죠. 거인들이 사는 요툰하임과 인간들이 죽어서 가는, 얼음으로 덮혀 춥고 쓸쓸한 니블하임, 불로 가득 차 있는 무스펠하임이 있죠. 이외에도 드워프들이 사는 드베르그하임이나 엘프들이 사는 (흔히 아는 엘프 말고 팅커벨 생각하세요) 알펜하임도 있었습니다. 정확한 명칭이나 뭐 이런 거 따지면 지는 겁니다. 그냥 적당히 저 보기 좋은 명칭들 골랐어요 ( ..)
오딘은 제우스가 했던 것처럼 인간 세계로 가서 열심히 애를 만듭니다. -_-; 뭐 이 경우는 그나마 건전해서 미남미녀 부부가 사는 곳에서 마법으로 남편인 척 애를 만드니 이게 귀족 신분이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평범한 부부집으로 가서 평민 계층을 만들었고, 추남추녀 부부에게 가서 하층민들을 만들었죠. ... 신화에서도 외모 따지는 더러운 세상 orz
이렇게 열심히 세상을 만들어가면서도 걱정거리가 있었으니, 바로 살아 남은 거인들입니다. 울부짖는 자, 베르겔미르 같은 생존자들은 신들에게 복수하기 위해 이를 갈고 있었죠. 그리고 그들에게도 정말 어찌할 수 없는 존재가 있었으니... 무스펠하임의 수르트였습니다. 오직 불로만 이루어진 이들이었죠. 이미르의 시체에서 태어났다는 말도 있고 원래부터 따로 있었다는 말도 있군요. 지금까지 조용히 있었지만 그들이 움직일 경우, 신들이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있기나 할 지 모르겠습니다.
때문에 오딘은 미친 놈 수준으로 지혜를 구하러 다녔고, 토르는 열심히 거인들 죽이러 다녔습니다. 일단 세상은 평온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최악의 설정 붕괴가 일어나니... 알고보니 신은 그들만 있던 게 아니었습니다! 또 다른 신의 무리가 나타나니 이들을 바나 신족이라고 합니다. 반면 기존의 신들은 아사 신족이라 불렀죠. (명칭 역시 확실히 정해진 게 아니니 여러 가지 버전이 있습니다) 서로 전쟁을 하던 그들, 결국 인질을 주고받고 평화롭게 살기로 합니다. 이 때 바나 신들 중에 온 이들이 바다의 신 뇨르트, 미의 신 프레이와 여신 프레이야입니다. 이후 바나 신족은 아예 묻힙니다. 오죽하면 멸망 때도 언급이 없고, 그 쪽은 멸망하지 않았다는 말도 있을 정도죠. -_-;; 대충 스칸디나비아 반도 서쪽과 동쪽의 신화가 합쳐져서 나온 거라고 보더군요. 그리스 신화의 변화도 좀 비슷합니다. 아무튼, 바다와 미, 아사 신족들에게는 찾을래야 찾을 수 없는 요소가 있는 걸로 봐서는 다른 신화의 영향이 있었던 건 확실해 보이네요. 이 때 아사 신족 쪽에서 간 인질 중에는 미미르라는 거인이 있었는데... 이 후일담이 좀 재밌죠.
--------------------------------------
이상이 북유럽 신화의 창세 부분입니다. 이후에는 그리스 로마 신화처럼 모험담이 계속되죠. 오딘의 이야기라든가 토르의 이야기라든가 오딘과 로키의 이야기라든가 토르와 로키의 이야기라든가 로키가 사고친 이야기라든가... 이것들이 신화의 대부분을 이루고, 나머지는 에피소드 한 개라도 가지고 있으면 다행입니다.
북유럽 신화는 게르만족의 신화와 전설들을 수집한 운문으로 된 구 에다, 아이슬란드의 스노리 스툴루손이라는 수도사가 정리했다는, 산문으로 된 신 에다가 있습니다. 스칸디나비아반도는 물론 독일, 덴마크 등에 퍼져 있는 게르만 신화를 집대성한 것인데, 의외로 원본과 가까운 것은 독일 거라고 하더군요. 뭐 확인은 안 해 봤습니다. 문제는 독일에 있는 신화들은 기독교식으로 변형된 게 많고, 오딘이 악마로 몰리면서 없어진 것도 많습니다. 이 때 영웅담 보면 교회 가는 양반들이 오딘의 계시를 받습니다 (...)
그리스 로마 신화에 비해 수가 적은 건 이렇게 많이 없어진 탓이라고 봐야죠. 그래서인지 그리스 로마 신화에 비해 기승전결이 뚜렷합니다.
신들간의 관계도 꽤나 많이 바뀐 듯 합니다. 가령 전쟁의 신 티르의 경우 주신 대접을 받았다고 하는데 오딘과 토르에 밀렸다고 하더군요. 토르 역시 오딘보다 밑이 아니었는데 어느새 오딘의 아들이 됐다고 합니다. 이에 관해서 음유시인들이 이 얘기를 전하다보니 (구 에다는 시를 모은 거고 신 에다는 시를 쓰기 위해 만든 책입니다) 오딘이 주신이 됐다고 하죠.
------------------------------------
이 북유럽 신화는 그리스 신화와 함께 서양 신화의 양대 산맥입니다. 여기에 켈트 신화도 나름 한 발을 걸치고 있죠. 아무래도 라틴에 대비되는 게르만 족의 신화로 현대에도 수 없이 재창조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은 역시...
요거죠. 오크야 직접 만든 거지만 엘프, 드워프, 트롤 같은 많은 요소들이 북유럽 신화에서 나왔고, 힘의 반지 자체도 북유럽 신화에서부터 내려오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니벨룽겐의 반지가 괜히 나온 게 아니죠.
보진 않았네요. -_-; 왜 안 봤지.
현대에 나온 많은 서양 판타지는 북유럽 신화 - 톨킨 - D&D룰에 맞춰져 있습니다. 이렇게보면 그리스 신화의 요소가 더 적어 보여요 - -;;
그리스 신화와 북유럽 신화의 분위기는 정말 차이납니다. 몇 가지 대 보면...
- 가장 큰 차이점은 신들의 위치입니다. 세상 만들고 적과 싸우고 인간 만들고 이런 것까진 똑같은데...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신들은 불멸의 존재입니다. 하지만 북유럽 신화에서는 조금 센 거인들일 뿐입니다. 신들과 거인들은 서로 싸우면서도 계속 교류했고, 로키부터 스카디 같이 거인 출신들도 많이 들어왔습니다.
- 운명에 대한 관점도 다릅니다. 그리스 신화에서도 운명은 있지만 이건 신이 인간에게 내려주는 거죠. 신들조차 어찌할 수 없는 운명도 있지만, 신들의 생존과는 별 상관이 없는 비교적 사소한 것이든가 신들이 이겨낼 수 있는 것입니다. 반면 북유럽 신화의 운명은, 신조차도 거스를 수 없는 거죠.
- 이런 점에서 신이 인간을 대하는 것도 크게 달라집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인간은 그냥 신들의 장난감이죠. 이렇게 죽이고 저렇게 죽이고 이렇게 갖고 놀고 저렇게 변신시키고... 반면 북유럽 신화에서 신들이 하는 건 모두 인간을 위한 겁니다. 이들은 정말 관대하죠. 마지막 순간, 신들은 인간을 위해 싸우다 죽습니다.
이런 차이점에 대해서 요런 망상을 해 봤습니다. 그리스는 살기 좋았죠. 그들은 놀고, 여기저기 식민지를 만들면서 마음껏 누렸습니다. 왜 재벌들은 여자가 한 대 치면 "나를 이렇게 대한 건 니가 처음이야"라면서 반할까요?
가질 거 다 가지고 누릴 거 다 누렸던 그리스인들, 그들은 자기를 짓밟아 줄 대상을 원했던 겁니다. 자기들도 어쩔 수 없는 초월적인 존재, 자기들은 그 뜻을 따라야 한다는 것, 즉 그리스 로마 신화는 M의 신화인 겁니다. (...)
반면 북유럽의 환경은 정말 혹독했죠. 농사짓는 건 힘들었고, 사냥 제대로 못 하면 굶어 죽습니다. 남의 것을 뺏아야 살 수 있는 삶, 그들에게 초월적인 존재는 그들과 같이 고생하고 그들을 위해 싸우는 존재가 돼야 했습니다. 이런 혹독한 환경은 절대 신이 자기에게 내려준 게 아니라 그들도 어쩔 수 없는 거고, 신들은 그걸 개선해 주기 위해서, 자기들을 위해서 싸우는 존재라는 거죠.
한편으로 남을 죽이고 약탈하는 삶, 신화는 그에 대한 도덕적인 근거가 되었습니다. 지금 싸우는 건 나쁜 짓 같지만, 최후의 전쟁에 대비해서 힘을 기르는 것이고, 신들을 위한 것이다는 거죠.
이 두 신화의 차이는 곧 이 신화를 만들고 퍼뜨렸던 이들의 차이입니다.
- 그런 면에서 잘 봐야 될 것이 바로 미라는 관점에 대한 차이입니다. 아프로디테, 비너스가 바람 핀 건 놀림거리도 되지만 미에 대한 찬양이기도 했죠.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나오는 수많은 선남선녀들의 이야기, 그들은 미를 찬양했고 숭배했습니다.
- 반면 북유럽 신화는 미를 아주 나쁘게 봤죠. 미의 신 프레이는 여자 하나 꼬시려다가 자기 무기를 포기하고, 그 때문에 죽게 됩니다. 미의 여신 프레이야는 목걸이 하나 얻겠다고 드워프들에게 몸을 팝니다. -_-; 거기에 역시 미녀라는 거인 스카디의 유일한 에피소드는 "외모만 신경 쓰면 멍청하다"는 교훈을 주죠. 북유럽 신화는 이렇게 미라는 것을 아주 나쁘게 봤습니다.
- 그런 면에서 북유럽 신화에서는 여자가 거의 등장하지 않습니다. 위의 두 에피소드 외에 여자가 주인공인 건 단 하나, 매우 감동적인 에피소드긴 합니다. 여기서 주목하는 건 "어머니"죠. 그리스 신화의 경우 역시 여자를 천대하던 시대였지만 나오는 여신, 여자들은 참 많습니다. 아테나의 경우 남신 못지 않게 좋게 나오죠. 이것이 두 신화의 가장 결정적인 차이가 아닐까 합니다.
- 희극적이고, 낭만적인 그리스 신화. 거기서 비극은 철저히 인간에게만 국한됩니다. 반면 북유럽 신화는 모두에게 비극이죠. 이 비장미, 그리스 신화와 구분지을 수 있는 북유럽 신화의 코드입니다.
게르만족은 남자가 동정일수록 마법...이 아니라 훌륭한 전사로 봤다고 합니다. 이들이 만든 신화이기에 이런 모습을 띠게 된 것이죠.
--------------------
다음 편은 대략적인 등장신과 거인들을 소개하겠습니다. 그리고 바로 제가 제일 좋아하는 에피소드, 신화의 엔딩으로 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 후에는 그리스 신화와 북유럽 신화의 여러 에피소드들을 연재게시판으로 자리를 옮겨서 연재할게요 :D
에.. 고려 어쩌구요?( ..) 좀만 더 기다려 주세용
여담 하나만 더. 이것 때문에 갓 오브 워 처음 볼 때 당황했습니다. 북유럽 신화에서나 어울리지 그리스 신화에서 이런 암울한 분위기라니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