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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1/09/19 08:22:49
Name SperoSpera
Subject [일반] 전차열전 (8) 6호전차 티거
독일 국방군 동물원의 얼굴마담 호랑이.


개발과정


1941년까지 계속 실패해오던 독일국방군의 중전차 계획이 구체적인 구조를 갖추게 된 것은 1941년 5월 신무기 개발을 논의하는 만남에서 히틀러가 포르쉐 박사와 헨셀 사에 중전차의 디자인을 제공할 것을 요구한 후였습니다.

크루프 사는 이 중전차 계획의 주무장과 포탑을 담당했습니다. 포르쉐 박사는 기존에 자신이 개발중이던 VK 3001(P) 레오파트 전차를 발전시킨 터라 좀 진척이 빨랐지만, 헨셀의 경우는 다소 진척이 느렸습니다.

1942년 4월에 완성된 양측의 차량은 하루 내내 달려 아돌프 히틀러의 생일에 맞춰 동프러시아의 늑대 소굴 기지에 도착합니다. 1942년 6월, 양측의 차량은 다양한 테스트를 거쳤고, 거기에 짭짤한 로비까지 거치는 과정에서 무리하게 하이브리드 구동을 고집하던 포르쉐 티거가 떨어져 나가면서 헨셀사의 모델이 6호전차 티거의 양산형으로 선택받습니다.


페르디난트 포르쉐 박사. 쾨니히스티거의 개발 때도 그렇듯이 이 영감님께서는 실용성보다는 전차개발을 통해 자신만의 판타지를 이루고 싶어하셨던 듯 합니다.


6호전차 티거 개발 초기 형태. 연합군을 공포에 떨게 만들었던 괴물호랑이의 시작이었습니다


포르쉐 티거. 탈락한 이유가 로비의 탓이라는 말도 많지만, 하이브리드 기술을 무리하게 끼워넣기엔 이 시대 전차 기술(.....)로는 무리였습니다.

6호전차 티거의 주무장은 그 당시 이미 이름을 떨치던 강력한 무기인 88mm 대공포를 개량한 88mm KwK 36 L/56 전차포였습니다.

이는 판터의 75mm KwK 42 L/70 전차포 그 당시 모든 전차를 격파 가능한 위력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단단한 장갑은 전면은 판터에 조금 뒤졌지만 측면은 더욱 두터웠습니다. 비록 직선장갑이라는 한계를 가졌지만 이만 해도 티거가 당시 전차의 왕으로 군림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소련 측에서는 개발 중인 IS-2 등 티거에 대한 대응책이 충분했고(물론 판터와 티거의 성능 테스트 후 당황해 개발을 서두르긴 했습니다...), 티거가 제대로 힘을 발휘한 쪽은 연합군의 전차였습니다. 티거 중전차에는 약점 또한 많았는데, 56톤의 무게로 38km의 속력을 내자니 기계적인 문제가 속출했고, 이것은 후방 장갑의 빈약, 높은 연료 소모, 낮은 생산성과 함께 티거 전차의 고질적인 문제로 자리잡았습니다.

1942년 6월부터 티거 중전차의 본격적인 생산이 시작되어 12월 무렵에 레닌그라드 전선에서 첫 실전을 치르지만 기계적 문제와 소련의 재빠른 대응으로 별 활약도 못하고 주저앉아 버리고, 비슷한 시기에 북아프리카 전선의 튀니지에 도착한 501 중전차 대대 소속의 티거들을 시작으로 티거 중전차는 그 위력을 과시하게 됩니다.


아프리카형 티거. 티거에는 사실 별다른 개량형은 없지만, 약간씩의 변형을 기준으로 아프리카형(극초기형), 초기형, 중기형, 후기형 등으로 구분합니다.


오오오 그것은 우월한 티거!!!


"두꺼운 장갑, 다목적 무장과 전투 능력을 가진 6호전차는 기본적으로 아주 뛰어난 전차였고, 아군 전차에 비해서 상당히 발전되어 있었다."

- 튀니지에서 탈취한 티거 전차에 대한 연구에 기초한 영국군 보고서.

독일 아프리카 군단에 에르빈 롬멜 원수의 후임자로 도착한 한스 위르겐 폰 아르님 대장이 지원 부대로 티거 중전차 17량을 가져오면서 티거는 처음으로 제대로 된 위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영국의 크루세이더의 6파운드 전차포나 미국의 리, 셔먼 등의 75mm M6 L/40(39)포는 티거의 육중한 장갑에 씨알도 먹히지 않았고, 반면에 티거의 88mm KwK 36 L/56 전차포는 이들을 너무나도 쉽게 관통해 개중에는 포탑 전면을 뚫고 들어가 후면까지 관통한 예도 있다고 합니다.

결국 기계적 고장이나 연료 부족 등을 이유로 14대가 자폭하거나 연합군에게 파괴되었고,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독일군은 패배하지만, 이걸로도 영국군을 겁주기엔 충분했습니다. 이후 영국군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90mm 급(즉 M26 퍼싱 중전차와 M36 잭슨 구축전차 말입니다.) 전차의 개발을 등한시한 채 노르망디 상륙을 강행한 미군은 이후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맙니다.

티거 1량에 최소 4~5량의 셔먼이 달라붙어 후방 장갑을 노려야 하는 처지로 전락했고, 티거 공포증이라 불리우는 티거 전차 회피 분위기와 함께 사기에도 악영항을 미치기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아래는 티거 중전차에 대해 여기저기서 퍼온 간단한 일화 몇 가지입니다.

1944년, 노르망디에서 독일군의 티거 중전차 3량이 미군의 셔먼전차 1개 대대와 맞붙어 적전차 62량 중 43량을 격추하고 퇴각, 이들 티거의 피해는 헤드라이트 두 개가 깨짐.

1944년, 역시 노르망디에서 단 1대의 티거가 한 번의 전투에서 14량의 셔먼을 격파.

역시 노르망디에서 1개 대대의 티거 전차가(가동 차량은 늘 10대에 불과) 1달 간 연합군 전차 약 230량 격파.

1943년 7월, 쿠르스크 남쪽 지역에서 무장 SS 아돌프 히틀러 사단 소속의 티거 전차 1량이 50량의 T-34/76과 마주쳤는데 혼자서 22대를 격추. 살아남은 나머지 33량의 T-34는 후퇴하고, 살아남은 티거는 귀환.


티거에 대한 연합군의 대응책


T-34를 만난 독일국방군도 그랬듯이 연합군도 충격에만 빠져있지는 않고 곧 다양한 대응책을 마련했습니다. 먼저 미국의 경우에는 허겁지겁 개발을 개시한 M26 퍼싱을 기다리기엔 여유가 충분치 않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주력전차 M4A3 셔먼에 76mm M1 L/55 전차포를 장착해 대응했습니다.

하지만 이로는 근접전 아니면 티거를 전면에서 잡기에는 택도 없었기 때문에 1944년 9월부터 등장한 M36 잭슨을 유용하게 사용했고, 전폭기나 폭격기에 의지해 공군 없는 독일 전차들을 잡아내기도 했으며, 역시 M4A3를 개량해 떡장갑을 두른 M4A3E2 점보 셔먼을 250량 정도 생산해 몸빵(?)으로 쓰기도 했습니다.

영국군의 대응은 좀더 적극적이었습니다. 미국에게 랜드리스 법을 통해 공여받은 셔먼에 자국의 대전차포 17파운드 전차포를 장착한 파이어 플라이나, 발렌타인 전차의 차체에 17파운드 대전차포 전투실을 올린 아처, M10 울버린 구축전차의 주포를 17파운드 전차포로 바꾼 M10 아킬레스, 아예 77mm 전차포로 주포를 바꾼 A34 코메트까지 영국군의 기갑전력은 17파운드 포 없이는 시체였습니다.

소련군의 경우는 큰 문제를 겪지는 않았습니다. 미리 개발중이던 IS-2 중전차가 티거 중전차를 어렵잖게 상대할 수 있었고 전체적인 전력이 워낙 독일국방군을 압도했기에 기갑전력을 대거 투입하거나 포격과 로켓포로 쓸어버리면 끝이였고, 이는 쿠르스크 대전차전에서도 증명됩니다.


6호전차 티거 후기형. 현실이야 어땠을란지라도, 이 호랑이는 연합군의 공포의 대상이었습니다


영국의 국민 아이돌(....)17파운드 대전차포, 이게 없었으면 영국은 몇 배는 고생을 했을 겁니다.


미국의 M36 잭슨 구축전차. 티거나 판터를 충분히 상대하고도 남는 강철 싸닥션을 보유했지만, 방어력은 '생략한다' 로 귀결됩니다.


영국의 전차 종결자(...)셔먼 파이어플라이. 독일의 최고 티거 에이스 미하일 비트만을 쓰러뜨린 것도 이 파이어플라이였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티거 에이스


티거 전차는 주력전차였던 판터와는 달리 주로 독립적인 중전차 대대에 배속되었는데, 이러한 엘리트들이 티거를 타면서 곧 수많은 티거 에이스가 되었고, 이는 생산량도 적고 판터보다 약간 나은 정도의 수준에 불과했는데도 티거 전차가 독일 전차의 대명사로 자리잡는 큰 이유가 되었습니다.

유명한 티거 에이스로는 SS 제101 중전차 대대 소속인 미하일 비트만과 502 중전차 대대 소속이었던 오토 카리우스가 가장 유명합니다.


독일 전차 에이스 2위 오토 카리우스. 전후 티거 약국을 운영하셨다는 일화는 다들 아실 겁니다. 참고로 이분이 티거 전차를 처음 보셨을 때 인상이... '못생겼군' 이었답니다.


미하일 비트만 입니다 SS 101 중전차 대대 소속이었고, 독일 전차 에이스 순위 4위였습니다. 빌레르 보카쥬 전투에서 최고의 전공을 펼쳤고, 1944년 8월 8일 셔먼 파이어플라이 혹은 타이푼 전폭기에 탑승중이던 티거 중전차가 피격되어 전사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6호전차 티거의 파생형


티거의 파생형도 그다지 수는 많지 않습니다. 일단 티거 중전차의 회수에는 그와 같은 급의 회수차량 베르게티거가 아니면 엔진에 무리가 가서 어려웠다고 합니다.(워낙 무거운 놈이라 같은 티거 중전차라도 감당이 힘들었습니다.)

그리고 지난번에 올려드렸었죠, 스탈린그라드 시가전에서 영향을 받아 일격에 저격수 내지는 보병들을 건물들과 함께 갈아버려 비료가 필요없는 친환경 농지를 만들기 위해(....) 대잠용 380mm Raketenwerfer 61 L/5.4 로켓포를 장착한 슈투룸티거 중돌격포가 18량 생산되어 활약했습니다.


베르게티거, 일부 티거 중전차 차체와 5대의 포르쉐 티거 차체로 만들어진 티거용 전차회수차량입니다.


슈투룸티거 중돌격포, 말씀 드렸다시피 신뢰성과 포탄의 적재량을 제외하면 상당히 훌륭한 병기였다고 합니다.

이외에 경쟁에서 탈락한 포르쉐 티거의 차체는 쾨니히스티거의 주포로도 쓰인 88mm KwK 43 L/71 전차포를 고정포탑형으로  장비한 페르디난트 구축전차로 개수되어 쿠르스크 전투에서 활약하고, 쿠르스크에서 살아남은 페르디난트는 향상된 전차장 큐폴라와 차체 기관총을 장비해 엘레판트로 개명하고 독일 패망까지 각지에서 그 명맥을 이어나갑니다.


호랑이의 현시창


티거 중전차의 스펙은 비슷한 시기의 전차와 비교하면 당시 관통력이나 전면장갑 일부를 제외하고는 확실히 최상위급이었고, 엘리트 부대에 배당된 덕에 혁혁한 활약을 보였습니다. 수많은 에이스들을 배출했고, 덕택에 밀려가는 전황에서도 군인들의 사기진작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거기뿐이었습니다. 초기설계 중량을 11~12톤이나 초과하고 거기에 무리하게 엔진을 맞추는 덕에 고질적인 기계적 고장이 뒤따랐고, 부족한 생산라인에 판터나 4호전차로 채워야 할 자리를 차지하면서 안 그래도 안 좋았던 독일 생산체계에 더 큰 문제를 일으킨데다, 비싼 단가와 높은 연료소비로 독일국방군의 등골을 휘게 만들었습니다. 생산량도 1942년 6월에서 1944년 8월까지 1355대, 많은 양이라고 하기엔 모자랍니다.

티거는 이를 생산해 투입해서 얻은 이익보다는 손해가 더 많은 전차였습니다. 차라리 생산라인과 자원을 판터나 4호전차에 배당하는 게 독일로써는 나았을 겁니다.

결국 티거 중전차는 그 뛰어난 성능에도 불구하고 당시 독일국방군의 여러 악조건 때문에 '우리는 이만큼 강력하고 잘 하고 있다.'라는 위안 정도 밖에는 심어주지 못한, 독일 기갑사단의 얼굴마담 이상을 이뤄내지는 못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전세가 나빠지면서 독일국방군의 강력한 중전차에 대한 열망은 멈추지 않았고, 이 열망의 결정체는 1943년 11월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됩니다.



6호전차 티거 소속 대대

                         중전차 대대
부대명 /                    구성                 / 해체
(중전차 대대) 501 (424) / May 1942 / February 1945
sPzAbt 502 (511) / May 1942 / May 1945
sPzAbt 503 (FHH) / May 1942 / January 1945
sPzAbt 504 / January 1943 / May 1945
sPzAbt 505 / February 1943 /  April_May 1945
sPzAbt 506 / May 1943 / April 1945
sPzAbt 507 / September 1943 / May 1945
sPzAbt 508 / Septmber 1943 / February 1945
sPzAbt 509 / September 1943 / May 1945
sPzAbt 510 / June 1944 / May 1945
(SS 중전차 대대) 101 (501) / July 1943 / May 1945
sSSPzAbt 102 (502) / April 1943 / May 1945
sSSPzAbt 103 (503) / July 1943 / May 1945

6호전차 티거 스펙(Ausf.E,H)

중량t: 56000kg (초기형) 57000kg (후기형)
승무원: 5명
엔진: Maybach HL 210 P 45 - 12실린더 / 650hp (early)
Maybach HL 230 P 45 - 12실린더 / 700hp (late)
연료 용량: 534 liters (연료탱크 4개)
속도: 도로: 38km/h
비포장 노면: 10-20km/h
항속 거리: Road: 140km
전장: 8.45m
전폭: 3.4-3.7m
전고: 2.93m
무장: 88mm KwK 36 L/56 전차포
2 x 7.92mm MG34 (초기형) 3 x 7.92mm MG34/42 ((후기형) 6 x NbK 39 90mm 연막탄 발사기(초기형)
탄약: 88mm - 92발
7.92mm - 4500-5700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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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아스
11/09/19 08:45
수정 아이콘
테크가 깡패라는 걸 보여주는 티거의 위엄 그리고 물량이 깡패라는 셔먼의 위용?
11/09/19 10:05
수정 아이콘
정성스런 글 잘 봤습니다.
드라고나
11/09/19 11:09
수정 아이콘
잘못 아시는 게 많군요.

‘소련 측에서는 개발 중인 IS-2 등 티거에 대한 대응책이 충분했고’ 라고 하셨는데, IS시리즈가 개발된 이유가 노획된 티거 보고 충격 받아서였습니다.
당연히 ‘소련군의 경우는 큰 문제를 겪지는 않았습니다.’ 란 말 역시 사실과 전혀 다르죠. 42년 말에서 43년까지 펼쳐진 소련군의 레닌그라드 포위망 돌파 시도 당시 이 전선에 있던 티거 부대인 502중전차대대는 본문에도 있는 티거 노획 건의 굴욕도 처음에는 겪었지만, 결국엔 대대 하나, 그것도 완전 티거로 편성된 부대도 아닌 대대 하나가 소련군 전차사단 몇 개를 갈아버릴 정도로 소련 전차들을 날려버렸습니다. 결국 저때 레닌그라드를 구출하려던 소련의 시도는 좌절되었죠.
레닌그라드 뿐일까요, 당연히 아닙니다. 3차 하르코프 공방전에 투입된 티거 부대들은 소련군보다 열세한 병력으로 독일군이 반격을 성공시키는데 톡톡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 때 LAH 예하 티거 중대는 중대 하나 가지고 연대 규모 이상의 소련군 전차가 들이치는 걸 갈아버리기까지 했죠. 거기다 쿠르스크 전투 당시에도 가장 많은 활약을 한 건 티거였고, 쿠르스크 전투에서 패배한 이후로도 소련군은 티거 때문에 골치를 썩여야 했습니다. 티거 부대들 중 특히 전과 높은 부대들은 대부분 동부전선이 주 무대였습니다. 외려 티거를 장비한 중전차대대 중에서도 특히 활약 적은 504중전차대대 같은 부대는 서부전선에서 뛰었지요.

후방 장갑의 빈약이 문제란 말도 이상한 게, 티거가 나왔던 바로 당시에 차체 후방 장갑이 가장 두터운 전차는 티거였습니다. 티거 후방 장갑이 빈약하다는 건 이영호가 허영무한테 지는 거 보고 이영호 토스전 못한다고 말하는 거나 같죠.

티거의 기계적 신뢰성 부분은 가타부타 말이 많으니 넘어간다 쳐도, ‘티거는 이를 생산해 투입해서 얻은 이익보다는 손해가 더 많은 전차였습니다. 차라리 생산라인과 자원을 판터나 4호전차에 배당하는 게 독일로써는 나았을 겁니다.’ 란 부분은 여러 모로 오해를 꽤나 많이 하신 내용이군요.
판터 생산이 제 궤도에 들어간 건 1944년 들어가서였습니다. 티거가 가장 열심히 생산된 시기는 1943년이죠. 그리고 1944년 들어서면 독일 역시 티거를 티거2로 교체에 들어갑니다. 문제는 두들겨 맞다 보니 티거를 빨리 티거2로 체제 전환할 힘조차 짜내기 힘든 게 당시 독일이었다는 점이지만.
4호 전차 생산이 더 나았을 거라 하시는데, 4호 전차 다섯 대 만들 돈이면 티거 한 대 정도가 만들어집니다. 그런데 4호 전차 다섯 대로 t34 다섯 대와 붙으면 승패를 장담하기 힘들지만, 티거 한 대로 t34 다섯 대와 붙으면 전차병의 능력에 따라 t34 다섯 대를 쓸어버릴 수 있습니다. 이게 당시 독일한테 티거가 필요했던 이유입니다.
초신성
11/09/19 11:09
수정 아이콘
어렸을때 프라모델 조립할때 가장 좋아하던 독일군 탱크네요.
제품명에는 타이거로 나와서 그렇게 불렀었는데 실제 독일어로는 티거인가요.
11/09/19 11:59
수정 아이콘
Is가 스펙 상으로 티거를 상대가능 하긴 했지만 형편없는 명중률 때문에 문제가 있었죠 대구경 곡사포를 떼다얹은꼴이라.. 맞으면 좋고 안맞으면 한발 더쏘고 쏘다죽으면 다른놈이 한발 더쏜다 수준이었습니다
눈시BB
11/09/19 12:29
수정 아이콘
드디어 티거군요. 쯧...
삼국지에서 유비 쪽에 맹장이 많은 게 애초에 유비가 운도 좋고 사람도 잘 사겼다고도 해석할 수 있지만, 유비 같은 환경에서 살아남으려면 맹장만 남을 수밖에 없었다고도 해석할 수 있죠.
에이스가 많이 나오는 건 결국 혼자서 그렇게 일을 벌여야 될 정도로 몰렸다는 얘기겠죠. =_=; 티거의 성능을 생각하더라두요.

아무튼 잘 읽었습니다.
스팀팩질럿
11/09/19 12:30
수정 아이콘
영국 런던에 파견 갔을 때 주말에 본머스로 여행가서 영국 보빙턴 전차 박물관에 있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작동가능한 타이거 탱크 131호를 본 기억이 나네요.
쭈구리어
11/09/19 14:36
수정 아이콘
뭔가 이상하네요 티거의 생산성이 부족하다고 하는것도 어폐가 있는게 훨씬 앞서나온 중(中전차)전차인 4호전차가 전쟁기간동안 총 1만량 가량이 생산되었는데 전선돌파용 특수목적전차인 중전차로 개발된 티거의 생산량이 1350량에 달합니다. 또한 흔히 티거가 무거운 무게에 비해 엔진과 트랜스미션의 빈약으로 고장이 많은 전차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동시기 타국의 중전차들과 비교해보면 티거의 압승입니다. 말씀하신 IS-2도 연비와 신뢰성에서는 티거에 따라오지 못합니다. 600마력 엔진으로 고작 46톤짜리를 굴리는데 말이죠. 게다가 신뢰성 측면에서도 티거의 가동율은 44년 기준 판터와 4호전차를 앞지르는 수준입니다. 그리고 IS-2 역시 전선돌파용 중전차로 개발된 것이지 티거의 맞상대로 개발된 전차는 아닙니다. 애초에 상대가 안되죠. 포병용이었던 122mm 주포는 명중률과 관통력 모두에서 88밀리 철갑탄에 못 미쳤습니다. 전면장갑 또한 티거의 포탑 전면부는 실제로 90퍼센트 가량이 110mm에 달하는 포방패로 덮여있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210mm의 중장갑입니다. 판터가 아무리 날고 긴다 한들 中전차의 한계로 티거의 펀치력과 이같은 전측후면 모두의 중장갑에는 따라오지 못하죠. 말하자면 티거는 2차대전간의 중전차로서 개발된 전차 중 가장 성공한 전차입니다. 그 오토 카리우스조차도 '전차의 화력과 방호력, 기동성의 이상적인 조합은 티거에서 현실화되었다'고 말할만큼 말이죠.
다만 그를 받쳐줄 나치 독일의 국력이 연합군에 미치지 못했을 뿐이지요.
11/09/19 15:15
수정 아이콘
IS-2 전차가 여러모로 강력한 전차이긴 했지만, 티거를 어렵잖게 상대할 수 있었던 게 아니라, 티거에게 전차 대 전차로 맞대응하기엔 아쉬움이 있는 전차였습니다. 실전에서의 사례들도 마찬가지지요. 다만 1944년을 기점으로 독일군과 소련군의 전차 손실비의 격차는 극적으로 좁혀지기 시작하는데, 이는 IS-2의 등장으로 인한 결과라기보다는 쿠르스크 전투 이후 양 군의 종합적 역량이 현저한 차이를 드러내기 시작했고, 그 결과라고 보는 게 옳습니다.

이후 독일 남부집단군을 향한 대대적인 소련군의 공세에서 중부집단군의 괴멸을 가져온 바그라티온 작전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과정들을 보자면 이는 일목요연하지요. 게다가 퇴각하는 쪽은 대부분의 중장비를 상실할 수밖에 없습니다. 체르카시 포위전이나, 성공적인 포위망 탈출이였던 후베 포켓에서도 이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다만 티거가 전체적으로 독일 국방군에 이익이었는가 손해였는가를 논하는 건 힘든 문제 같습니다.
손실비나 이것저것 따져봤을 때 티거가 맹활약을 했던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고, 독일의 전체적 역량이 너무 부족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이 티거가 4호전차나 5호 전차로 바꼈다고 가정하는 건 무의미하지요. 또한 독일의 전체적인 전차 생산의 난제는 티거 같은 중전차의 높은 생산비나 공정보다는 나치 특유의 정경유착과 부정부패, 비효율이 더 큰 영향을 줬습니다.
빼꼼후다닥
11/09/19 15:32
수정 아이콘
결국 전차의 성능이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공업력이 문제였겠죠. 사실 티거가 아니더라도 독일군이 내놓은 각종 첨단 무기가 실용화됐더라도 전 2차대전에서 독일이 이겼을 가능성은 없다고 보거든요. 애시당초 티거가 아무리 잘난 전차였어도 전쟁의 판도를 바꾸는 것은 불가능이었다고 봅니다.
I.O.S_Daydream
11/09/19 21:03
수정 아이콘
드디어 티거군요. 티거 관련해서 엄청난 일화가 너무 많습니다만, 그 중에서도 압권은...
- 포위된 두 대의 탱크를 수십 대의 T-34가 포위했는데 그 많은 전차를 다 잡아먹은 일화
- 76.2mm 포탄 11발, 45~57mm 포탄 14발, 14.5mm 대전차총탄 227발, 대전차지뢰 3발을 다 맞고도 적을 유린하고 살아남은 일화
- 전차포와 대전차포를 250발 이상 맞고도 버틴 일화(그것도 한 대도 아니고 두 대나)
이런 일화들이죠.

교환비의 경우, 항공기의 폭격, 연료의 부족 등으로 자폭 등의 데이터를 빼면 교환비가 1 : 10이 넘는다는군요. 그게 평균이니 잘 나가는 대대는 한 20대 정도 박살냈을 겁니다. 티거 1500대였으면 연합군 전차가 최소 1만 5천 대, 많게는 2만 대까지 박살났을 거라는 소리죠(...)
그 때문에 4~5대의 셔먼이 있으면 4대는 달려들고 1대가 극근접전(교전거리 90m 이내)을 펼쳐야 겨우 티거를 잡았다는데, 나중에는 그걸 노리고 옆에서 다른 티거가 씩 웃는다던지(...), 판저파우스트를 매복시킨다던지 해서 여러 모로 공포의 대상이었다네요. 76mm 셔먼이 왔을 때는 이미 독일군은 쓸려나가고 있었고, 파이어플라이야 뭐 별명이 론슨 라이터였으니...

U-보트가 1천 척이 건조되었었는데 그 중 70%에 해당하는 Type-VII Class의 가격이 티거 5대 가격이었습니다. 물론 해군에 돈을 안 쓸 수는 없습니다만, 티거의 생산성 문제는 그냥 돈이 없어서 그랬다는 게 옳을 듯하네요.

그리고 정비반이 티거 한번 정비하려면 거의 미쳐버려야 했다고 하니, 운용하기에는 여러 모로 까다롭기는 했었을 겁니다. 일단 무게가 너무 무거워서 자주 퍼졌고, 티거로 티거를 견인하다가 견인하는 티거까지 퍼지는(...) 일도 있었다고 하니 말입니다. 게다가 티거가 나왔을 때는 무리해서라도 굴려야 할 필요가 있던 전황이었고... 그럼에도 전체 가동률은 판터와 비슷한 수준이었다는군요.

여하간 중전차의 로망입니다.

여담으로 저를 티거 팬으로 만든 사진 두 장의 링크를 첨부합니다.

http://operatorchan.org/v/arch/src/v26805_Tiger-II_Koenigstiger_3.jpg
http://homepage.mac.com/madmacs_69/tigerII/tiger2.jpg
킥해드림
11/09/19 23:44
수정 아이콘
개인취향이지만 저는 티거이전의 차량들이 너무 좋더군요.^^
11/09/20 01:04
수정 아이콘
소련침공을 하면서 개발한 전차치고는 지나치게 호화롭죠.
생산성이나 정비성도 그렇고, 열차수송을 하려면 무한괘도를 바꿔끼워야 한다는 점도 참...
개발자들이 욕심을 너무 냈어요.
그래도 그렇기때문에 성능이 최고고 참 아름다운 외관을 하고 있죠
훨씬 물자가 넘치는 미국의 셔먼전차도 티이거만큼 고급스럽진 않음
루스터스
11/09/20 01:43
수정 아이콘
잘 보고 있습니다.
근데 어디까지 갈 계획이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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