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적으로는 이전 페이지의 '스마트한 세상, 스마트한 사람들(?)'이라는 글에 대해 반론을 담은 글이긴 하지만 평소에 그와 비슷한 생각을 하던 사람들을 향한 글이기도 합니다. 예전에도 비슷한 내용으로 다른 분의 글에 반론글을 올린 적이 있는데 기술을 부정적으로 보는 글에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저는 어쩔 수 없는 공돌이인가 봅니다.

외람된 말씀이지만 저에게는 현대의 기술문명을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과거 회고적이고 낭만주의적 사고가 순진하게 보입니다(비난은 아닙니다). 문명의 이기 없이 하루도 살기 힘든 현대인들을 비판하는 글들은 여기저기서 보기 쉬우나, 진지한 고민과 분석을 통해 나온 글들은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대부분 감성적으로만 접근한 '아, 옛날이여~'의 다양한 변주들이죠. 어떤 분 말마따나 '요즘 애들은~'식의 글과 별로 다를 바 없죠. 감성적으로 이런 주제의 글을 쓰는게 잘못된 건 아니지만 내용들이 사실과 다르다는게 문제입니다.

옛날에는 사람들이 똑똑했고 지금은 멍청해졌다고 하는데 그 예시와 근거들은 빈약해 보입니다. 아무리 봐도 똑똑하다는 옛날 사람들의 묘사에 똑똑함은 없고, 멍청하다는 요즘 사람들의 묘사에 멍청함은 안보입니다. 이런 글의 내용을 요약하면 옛날 사람들은 불편함을 감수하며 살아왔고 현대인들은 편리함만 추구한다는 것과 그로 인해 옛날 사람들은 똑똑했고 현대인들은 멍청해 진다는 게 주된 내용입니다. 거칠게 말하면 '비효율 = 스마트', '효율 = 스투피드'라고 주장하는 것 처럼 보입니다. 어째 이상하죠. 일반적으로 생각해보면 그 반대가 맞을 것 같은데 말이죠.

몇 가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지도를 직접 보거나 물어물어 목적지로 가는게 왜 더 똑똑한게 될까요? 네비게이션 같이 더 편한 방법을 놔두고 이런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 더 비효율적이고 스투피드한게 아닐까요. 물론 이렇게 가면 길을 더 잘 기억할 수는 있겠죠. 그런데 그래서 뭐가 달라질까요. 어차피 자주 가는 길은 (횟수의 차이는 있겠지만)어떤 방법을 이용하든 기억하게 되어 있고, 초행길이나 다시 가볼 일이 별로 없는 길은 네비게이션을 이용하는게 훨씬 더 효율적입니다. 인간의 기억은 어차피 정확하지 않고(왜곡되기까지 하죠) 길을 기억한다고 해서 특별히 머리가 더 똑똑해지지 않습니다. 여성에 한해서 공간지각에 대한 훈련이 수학능력을 일시적으로 향상시킨다는 연구 결과가 있긴 합니다만 길을 기억하는 것과는 별로 상관이 없죠.

모르는게 있을 때 스마트폰을 이용해서 검색해보는게 바보같은 일일까요. 스마트폰이 없을 때는 백과사전을 찾아보거나 해야 되는데 백과사전을 휴대하고 다닐 수도 있는 것도 아니고 백과사전에서 찾을 수 없는 정보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스마트폰이 있기 전에는 모르고 넘어가는 경우가 더 많았을 겁니다. 이것 보다는 금방 잊을 정보라고 해도 그냥 넘어가는 것 보다 스마트폰으로 검색해보는게 더 낫죠. 나중에 잊는다고 해도 10개 중 하나 정도는 기억하지 않겠습니까.

지하철에 다들 스마트폰에 얼굴을 박고 있는 모습이 보기 좋지 않고 스마트폰의 노예가 된거 같다고 하는데 그러면 스마트폰이 있기 전에는 다들 무엇을 했을까요. 대부분 멍하니 있거나, 피쳐폰으로 뭔가를 하고 있거나, 졸거나, 방송/연예 이야기가 지면을 차지한 도움될 만한 내용도 없는 무가지 신문이나 보고 있었습니다. 이건 과연 스마트한 모습일까요? 네, 책을 읽는 사람도 있었죠. 하지만 그 때나 요즘이나 책을 보는 사람은 스마트폰 사용 여부와 관계없이 책을 펼쳐듭니다.

문명의 이기가 생활 곳곳에 파고들게 되면서 기억력과 논리력 사고가 약화된다고 하는데 그에 대한 과학적 근거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여기서 지적하는 기억이라는 건 대부분 단순 암기와 관련된 기억이 대부분입니다. 가령 핸드폰 때문에 전화번호를 기억 못한다고 하는데 그거 기억해서 얼마나 많은 도움이 되고 똑똑해지겠습니까. 핸드폰을 잃어버리면 문제가 될 수도 있겠지만 그런거 무서워서 일일이 기억하느니 기계에 저장시켜두고 필요할 때 편리하게 쓰는데 더 효율적입니다. 단순한 정보는 기계에게 저장시키고 인간은 창의적인 일에 더 신경을 쓸 수 있게 되는거죠.

스마트폰뿐만 아니라 인간에게 편리한 발명품이 나올 때마다 이런 우려는 언제나 나왔죠. 축음기, 무선 전신기, 전화기, 라디오, 영화 같은 발명품에도 비슷한 비판이 뒤따랐죠. 하지만 어떻습니까. 정말 저러한 발명품들이 인간의 사고를 저해하고 바보처럼 만들었나요? 당시에는 비판 받았던 발명품들이 이제와서 낭만적이고 인간적인 발명품 취급 받는 건 아이러니죠. SF 작가 윌리엄 깁슨의 소설처럼 미래에 사이버스페이스에 접속할 수 있는 수트와 고글 같은 것이 나오면 그 때에도 또 비슷한 비판이 나올겁니다. 옛날에 스마트폰을 사용할 때는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며 직접 자판을 쳐서 검색하고 사람들과 카카오톡으로 정겹게 대화를 나누고, 트위터를 이용해 사용자끼리 인맥을 쌓고 정보도 공유하곤(덤으로 뒷담화도 하고) 했는데 지금은 수트와 고글을 착용하고 손가락 하나 까딱 안한 채 가만히 앉아서 가상공간에서 바보가 되어 간다면서 말이죠.

물론 스마트폰을 사용한다고 예전에 비해 꼭 더 스마트한 생활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대부분 스마트폰은 시간 때우기나 소일거리 용도에서 별로 벗어나질 않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예전 사람들이 더 스마트하고 생산적으로 시간을 보냈다는 근거는 없습니다. 그리고 스마트폰이 아무리 스마트하지 않게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고 해도 스마트폰이 다른 어떤 기기에 비해 상상력을 이끌어 낼 수 있는 많은 잠재력을 지닌 기기임에 틀림없습니다. 현재에도 그 잠재력을 잘 활용하고 있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있고요. 활용하기에 따라서 얼마든지 스마트하게 사용할 수 있는 기기입니다.

영화 월-E를 보면 지구 주위를 떠도는 우주선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무위도식 하며 사는 우주인들이 나옵니다. 모든 것을 인공지능과 기계에 맡겨둔 채 하루하루 X만 만드는 기계처럼 그야말로 '스투피드'하게 사는 사람들이죠. 현실이 이런 수준이 되면 글쓴이가 말씀하는 내용에 충분히 공감이 될겁니다. 그렇지만 현실은 그런 상황과는 거리가 있고 근 미래에 그런 일이 벌어질거 같지도 않습니다. 게다가 인간의 타고난 모험심과 지적 호기심으로 인해 그런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은 아주 낮다고 봅니다.

지나간 과거를 장미빛으로 덧칠하고 현재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관점은 어느 시대에나 존재했습니다. 미래에 대해 부정적 예측을 하는 지식인은 대체로 현자 취급을 받고 낙관적인 예측을 하는 지식인은 순진한 바보 취급을 받았죠. 하지만 역사를 돌이켜보면 언제나 과거보다 현재가 더 진보를 해왔습니다. 중간중간 굴국은 있어도 인간은 어제보다 나은 내일을 이룩해내었습니다. 단순히 통계적으로만 예측해도 미래가 현재에 비해 더 나을 가능성이 높죠. 물론 낙관적 전망만 가지고 손놓고 있다가 블랙 스완과 같은 파국적인 상황을 맞을 수도 있지만 그런 것을 감안해도 부정적 전망은 명확한 근거가 없는 경우가 많고 그 정도가 과장되어 왔습니다. '아, 옛날이여~'라고 하기 전에 정말로 과거가 지금보다 좋은 시절이었는지 회의적으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참고서적: 매트 리들리 - 이성적 낙관주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