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국딩 1,2학년 시절.
한 때, 세상에서 가장 부러운 사람 1,2,3위가 바로,
1. 오락실 주인
2. 집에 게임기를 소지하고 있는 친구
3. 심형래
였다..ㅡㅡ;;
특히, 2위에 대하여 조금은 격양된 느낌으로 할 말이 많다.
사실 어릴적 누구나 저런 심정은 한번쯤은 가지고 있어봤을 거다.
하지만 난, 좀 간절했다.
지금 이 현실에 와서 컴퓨터에 대하여 상상 이상으로 깔끔을 떠는 내가
왜
[추억의 애뮬레이터]라는 폴더 만큼은 끝까지 지우지 않고 있는 줄 아나...
사실 지우지 못하는 거다.
나도 컴퓨터 디스크를 정리할 때 마다 은근히 용량을 잡아먹는 '계륵'과도 같은
존재의 저 폴더를 몇 번이고 지우려 했다.
그러나...
시원하게 남자다움으로 쓰레기통에 집어 넣기에는 내 어린시절의 적지 않은 향수가 담겨있기에
감히 손을 쓰지 못하고 있다.
본론으로 돌아와,
내가 국딩2학년 시절 우리 동네에서 '게임기를 가지고 있는 친구'들은
정말이지 가뭄에 콩나듯 희귀한 존재들이었다.
희귀한 만큼 몇 안되는 그들은 동네 아이들에게 극도의 추앙과 특권을 누리고 있었는데
그 조촐한 예는 다음과 같다.
a) 아무리 친구끼리 싸워도 최후의 승자는 오락기를 소지하고 있는 녀석.
b) 제법 큰 잘못을 해서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는 지경까지 와도 다음날 모이는 집은 결국 그 녀석의 집.
c) 맛있는 아이스크림이나, 과자 등을 동네를 누비면서 친구들에게 '한입만'하면 모두 먹을 수 있는 특권.
나에게는 다른 세상의 사람 같았다. 난 평생 게임기를 가질 수 없다고 생각했다.
오락기가 있었던 친구네 집에 뻘쭘거리며 몇 분동안 현관앞에 서있어 봤고...
친구 하나에 의지해가며 나를 향해 쏴대는 엄청난 그 가족들의 눈치를 애써 무시하고 들어가...
(난 어릴때 눈치가 엄청 빨랐다.)
그 오락기 앞에 앉아... 잘 하지도 못하는 여러 게임들을 보며 그저 해벌쭉 좋아했었다.
(게임 시간을 1시간이라고 치면 그 주인이 50분, 난 10분...)
난 별로 조이스틱을 만지지도 못했으면서,
또 그런 것들을 인식하기 이전에 친구의 화려한 플레이를 감상하며 멍하게
게임화면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저 좋았다.
돌아보면 왠지 가슴 한켠이 시큰해지던 그런 날들은 그 후로도 3년간 지속되었다.
내가 어릴적, 우리집은 그 어떤 집보다 완강했다.
엄마는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이라는 타이틀로 어린 내 목을 졸랐다.
못 믿겠지만 난 4년 내내 반장과 부반장을 했다.
아버지라는 사람은 더욱더 차원이 다른 압박감으로 나를 쥐어짰다.
난, 아버지께서 가지고 오시는 책을 일주일에 1권씩 읽고 그 주 이내로 독후감을 쓰지 않으면
다음주 내내 방과후 친구들 접촉 금지였다.
우리집에는 절대로 있어서도, 존재해서도 안 될 물건도 있었다.
* 만화책 (난 중학생이 되도록 만화책을 본적이 없었다.)
* 추리소설 (아버지께서 '문학에 전혀 도움이 되지않는 쓰레기'라 칭하셨다.)
* 오락기 (이것은 비슷한 물건이라도 보이는 순간 파괴)
때문에 앞서 말했듯,
나에겐 오락기를 가지고 있는 놈들이 나와는 다른 세상에 사는 외계인 같은 존재였다.
그러던 어느날, 일생일대의 기회가 찾아왔다.
'동암'역에 살았던 내 친척동생 녀석 집에 엄마와 함께 간적이 있었다.
엄마 동생의 아들이었다.
그런데!!
그녀석의 방 한 가운데에 떡하니 게임기가 놓여져 있는 것이었다.
난 개 흥분을 하고 덤벼들었다. 왜냐하면 그곳에는 친구집과는 달리 눈치 볼 사람이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젠장 복병이 따로 있었다. 갑가지 이 동생놈이 지 오락기 건들지 말라며 악을쓰며 울어버리는 것이었다.
너무도 어린나이였지만 난 극도의 창피함과 무력감과 서러움에 오락기에서 슬쩍 물러나 방안에 흩어져 있던...
마음에도 없었던 '레고'만 주물럭 거렸다. (아...지금 쓰면서도 눈물이 난다.)
평소에 그저 좋다고 따라댕기던 녀석이 이런 배신(?)을 때릴지는 정말 몰랐기에 레고를 쥔 손에서 오오라까지 뿜어나왔다.
그런데 여기서 예상치 못한 반전이 일어나고 말았다.
그 장면을 우연치 않게 보고 말았던 엄마가 극도의 충격을 받았던 것이었다.
첫번째가 자존심, 두번째가 자존심, 세번째가 아들.
평소에 정말 어지간했던 우리 엄마가 지 동생에게 괄시를 받는 내 모습을 보고 거품을 물었다.
나에겐 뜻밖의 행운이었다.
엄마는 그날 저녁 전자용품으로 당장 달려가 아예 컴퓨터를 뽑아들었다.
그러나 난 당시 '컴퓨터'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
난 게임기를 원했다.
결국 직접 고르라는 엄마의 말 한마디에......
지난 몇 년간의 설움과 아픔과 부러움, 이게 현실인가...하는 아찔함. 아 말로 표현이 안된다...
그리고...동시에 우리집 3대 목록이었던 '게임기 비슷한 것 무조건 파괴' 사항에 대한 걱정...
결국 내가 고른 게임기는 바로 이거였다.
[삼성 겜보이]
참고 : 당시 '페밀리'라는 게임기가 대세를 이루고 있을 당시 (SEGA)에서 발매 된 게임기.
기존의 게임기와는 차원이 다른 연산속도와 획기적인 그래픽 도약기술로 야심차게 만들었지만
'닌텐도'사의 꾸준한 게임성에 밀려 몇 년후 쪽박을 차게 된다.
정말... 그때, 이걸 집으로 가져오면서
[이게 정말 우리집에서 될까?] 하는 의심을 몇번을 가졌던가.
집으로 가는 길에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이 모두 내 게임기를 노리는 사람들로 보이고...
난 그것을 지키기 위해 마음과 상상 속에서 칼을 빼들었다.
몇 번을 빈 상자가 아닌지 확인하고...
혹기 충격이라도 받을까 노심초사 전전긍긍...
아무리 태연한 척 연기를 해봐도 히죽히죽...
집에 도착해서....
난 눈물을 흘렸다.
내가 초등학교 행정실에서 근무를 할 때,
내 하루 시각의 1/3 이 그 초등학생들이었다.
그들은...
'아이템이 어쩌고, 인터넷이 어쩌고, 케릭터가 뭐가좋네, 마법은 이게 최강 저게 최강.'
............
그들은 절대 모른다.
내가 지금의 그들과 같이 즐겁게 오락게임에 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까지 얼마나 많은 드라마를 찍었는지...
집에 도착한 나는 미친듯이 팩을 게임기에 쑤셔넣고 화면을 바라보았다.
내가...
우리집에서...
내 손으로...
내 게임기로...
내 권한으로...
했던 일생일대 최초의 게임이다.
[스페이스 해리어]
친구의 집에서 했던 그런 오락의 부류와는 확연이 획기적으로 틀린 3-D 구현 그래픽에,
난 다음날 학교에서 벌어질 내 자랑거리 정리에 온 힘을 쏟았다.
그리고 여지껏 있어왔던 '동네 게임기 소지 친구들'의 독단적 만행을 더 이상 두고보지 않아도 되었다.
난...그들을 철저하게 응징하기 시작했다. 그 동안의 설움을 모두 담아서.
그렇게 꿈만 같았던, 1년이 지나고...
서서히 봄이 깨지기 시작했다.
첫번째 복선은 '아빠'였다.
앞에도 말했지만 고지식함의 대명사였던 아버지는 게임기를 두고보고 있을리가 만무했다.
수 십만원 짜리던 수 백만원 짜리던 상관이 없었다.
눈에 띄는 순간 아작이라는 것은 불보듯 뻔했다.
난 게임기를 살 당시, 엄마와 협상하에 아버지에게는 절대 비밀로 하기로 사전 계약을 했었다.
두 번째 복선은 게임 팩이었다.
난 당시 나이에 용돈을 동네 또래들 중에서는 비교적 적지 않게 받았다.
오로지 엄마의 '자존심'덕 이었다.
난 모든 용돈을 1년 동안 '오락기 팩'을 모으는 데 올인을 해버렸다.
결국 우리 집에는 어느덧 게임팩만 40개가 넘어가고 내 방 곳곳에는 발에 걸렸다하면 게임 팩 이었다.
내 당시 계산은 이랬다.
[게임기는 이미 '집안에 있어도 되기로' 합의가 된 사항. 때문에 내 수중에 있는 돈으로는 그에 관한 그 무엇을 해도 상관없다.]
정말...엄청나게 사들였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내가 직접 만든 각 게임 공략집 모음도 있었다. (아직도 아쉽다...꽤 잘 만들었었다고 자부한다.)
난 그 때 이미 동네가 아닌 국민학교 전체를 통털어 최고의 게임팩 왕이었다.
어느날 이 두가지 복선이 혼합 되면서 나에게 엄청난 충격과 공포로 종말이 오고 말았다.
일단 정해진 게임시간을 어긴 난,
아버지가 들어오시는 시간을 체크하지 못하고 걸려버렸다.
아버지는 처음에 '이 자식이 도대체 TV에다 뭘 하는 건가...'라는 뉘앙스로 무시해 버렸지만
5분 뒤 눈치를 까시고 '폭풍'을 일으켰다.
다행히 그 때, 타이밍 좋게 엄마가 집으로 들어오고...1시간을 설득하는가 싶더니 겨우 아버지를 진정시켰다.
그런데 다음날 내가 학교를 간 사이에 내방을 정리하던 엄마는 곳곳에서 튀어나오는 수많은 게임팩과......
여지껏 '공책'인 줄 알았던 '지홍표 게임 공략집'에 기겁을 한고 만다.
보너스로, 내 성적표에는 게임기를 사고 난 1년 동안 '올 수' 일관에서 '미'가 보이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그날 저녁......
엄마는 아파트 창문으로 게임기를 던지고 말았다.
난 당시 같이 뛰어내릴까 하고 정말, 진심으로, 아주 잠깐 생각했었다.
다음날 아침.
난 밖에나가 이미 산산 조각이 나버린 게임기를 책가방에 쑤셔넣고 등교를 했다.
- 사람은 신념이 강할 때, 가끔 초인적인 힘을 발휘한다. -
어느날 하교를 하고 친구들과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왠 TV하나가 길바닥에 버려져있는 것을 목격했다.
난 게임기에 대한 충격에서 아직 정신을 못차리고 있을 때라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아이들과 그 TV를 이유없이
부수기 시작했다.
결국 케이스가 부숴지고 그 TV안에 있던 부품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는데,
지금도 생각해보면 알 수 없는 미스테리이지만 무슨 마음에서였는지 난 아이들의 행동을 멈추게하고
그 쏟아진 부품들을 전부 가방속에 쑤셔넣고 집으로 왔다.
그리고 구석에 꼭꼭 숨겨져 있던 차마 버리지 못해 박살이 난 게임기를 꺼내들었다.
깨진 퓨즈를 TV의 퓨즈와 갈아끼고...(퓨즈에 관한 개념이 없었는데...나도 신기하다.)
산산이 흩어진 케이스를 테이프로 덕지덕지 붙이고,
미세하게 조각이 난 보드의 납선을 알 수도 없는 TV부품의 철실로 이어붙였다.
팩을 끼워넣는 부분은 이미 너덜너덜 했지만 형태는 남아있어 나중 희망으로 남겨두었다.
몇 십 시간이 걸렸다.
때문에 일주일이라는 시간을 조금씩 쪼개서 하나하나 이어나갔다.
굉장히 위험한 짓거리였지만 철사까지 구해와서 사용했다.
스위치를 켜보고 다시 고치고, 다시 스위치를 켜보고 나름대로 생각한 부분을 고치고...
무한반복 개 노가다를 한지 일주일 뒤,
난 기적을 맛봤다.
게임 화면이 켜지는 그 순간.
난 게임기를 처음 샀을 때 보다 몇 십배의 감동을 만끽했다.
물론 소리는 지직거렸지만...
그 후로는 정말 집에 아무도 없을 때만 게임기를 만졌다.
어느날 아주 태연하게 방에서 게임기를 즐기고 있는 나를 발견한 엄마는 처음에 게임기를 새로 산 줄 알았다고 했다.
당시 난 절망과 공포에 떨며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한동안 멍해있던 엄마는...
정말로 한마디 말없이 거실로 나갔다.
지금에 와서 가끔 그 때 얘기를 꺼내면...
엄마는 "솔직히 그 때 깜짝 놀랐다." 라고 말한다.
'이걸 혼내야 할지 칭찬을 해야할지 알 수가 없었다'고 말한다.
당시 오락기에 대한 내 신념이다.
한번은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왔는데 열쇠가 없었다.
난 마침 아무도 없을 때 게임기를 못한다는 것이 너무도 억울했다.
그래서 같이 왔던 친구보고 망을 보라고 시킨 뒤 아파트 뒤쪽에 설치되있었던
가스관 파이프를 잡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창문으로 집에 들어갈 생각이었다.
3층 정도에 거의 다 왔을 무렵 밑에있던 정천이가 울면서 경비실에 신고를 해버렸다.
난 그날 저녁 엄마에게 죽도록 리코더에 온 몸을 맞고 쓰러져 잠이 들었다.
지금 아이들은 모른다.
컴퓨터로 요즘 아이들에게 '슈퍼마리오'를 틀어줘봐라.
그들은 지가 가진 핸드폰 게임만도 못하다고 비웃을 것이다.
그러나 그 아이들은 모른다.
피시방이 있기전 한판에 50원하는 오락실에 우리는 흥분했고...
CD가 있기전, 우리는 게임팩 하나에 목숨을 걸었다.
그들이 온라인으로 게임정보를 공유할 때,
난 공책을 '게임 공략집'으로 만들어 반 아이들에게 돌렸다.
아... 눈물난다.
출처 :
디시인사이드 고전게임 갤러리 Arare 님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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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부모님께서 삼성 겜보이를 사주셨었습니다. 그래서 부모님과 같이 더블 드래곤을 즐겼었지요. 더블 드래곤을 해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두목을 처치하면 1p와 2p가 서로 싸우게 되는데 코흘리개 꼬맹이가 어른을 이길 리가 없지요. 이겨 보려고 기를 썼지만 번번히 지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처음 접한 게임이라는 취미생활은 저를 지독하게 따라다녔습니다. 당시엔 게임기가 굉장히 귀했기에 친구들이 자주 놀러오곤 했으나 워낙 외진 동네에 살았기에 많은 친구가 오진 못 했고 자연스레 독종(?) 녀석들이 몇 명 놀러왔습니다. 더군다나 부모님께서 늘 농사일로 밖에 계셨기 때문에 친구들이 놀러 오기엔 정말 좋았지요.
하도 TV 뒷 단자에 게임기를 연결했다 뺐다 했기 때문인지 몰라도 TV의 화질이 좋지 못했고 결국 보다 못한 부모님께서는 자그만 싸구려 TV(제대로 채널도 나오지 않던)를 하나 사서 제 방에 따로 놓아주셨습니다. 전 그야 말로 집에서는 오락만 하는 프로게이머 못지 않은 생활을 했습니다. 아침에 게임을 합니다. 그러다 친구가 오고 저는 밥을 먹습니다. 물론 그 사이엔 친구가 게임을 하죠. 성인이 되었을 때 한 친구가 저에게 '너 때문에 우리가 이 지경이 됐다. 너 때문에 아침에 학교 가기 전에 게임을 할 수 있다는 걸 알았다.'며 농담조로 공격하기도 했었지요.
이후 다른 친구들도 게임기를 사는 친구가 생겨서 슈퍼 알라딘 보이의 알렉스 키드나 세가 새턴의 게임도 즐겼지만 역시 가장 많이 즐겼던 게임은 패미컴이었습니다. 열혈 시리즈로 대표되는 우정파괴 게임은 친구들과의 경쟁을 부추겼고 그럴 수록 점점 게임에 빠져 살았습니다. 이 미친 게임 중독은 중학교 입학과 함께 알게 된 컴퓨터로 옮겨졌고 영웅전설, 창세기전, 스타크래프트, 그리고 대망의 리니지까지.... 정말 제 어린 시절은 학교에서 생활한 기억보다 게임과 함께 한 기억이 더 많았던 거 같습니다.
지금도 제 취미 중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것 중 하나가 게임이고, 최근에 쏟아지는 게임들도 정말 많지만, 그럼에도 저는 고전게임 갤러리를 자주 찾고 각종 에뮬레이터를 통해 제목도 가물가물했던 게임을 찾아서 즐기고는 합니다. 심금을 울리는 스토리도, 실사를 방불케하는 화려한 그래픽도 없었지만 부모님과 함께 했던 더블 드래곤만큼 재밌던 게임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가끔 그때 생각에 세가 마스터 시스템 에뮬레이터로 더블 드래곤을 실행해보지만 정말 이 게임이 그렇게 재밌었나 하는 생각만 들더군요. 흐흐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