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밥에 핏물이 걸려 넘어간다. 처음에는 피부가, 나중에는 살점이 함께 뜯겨져 나가지만 개의치 않았다. 난 된다고 믿었다. 난 할 수 있다고, 난 해낼거라고 믿었다.
어릴적에 테레비에서 본 이상한 사람. 가운데에서 누군가가 공을 던지면 가만히 서 있던 사람은 방망이를 휘두른다. 아무 의미도 모르게 런닝구에 팬티차림을 한 아빠가 엉덩이를 긁적이며 보고 있는걸 뒤에서 가만히 봤다. 언제부턴가 나는 그 티비 속 사람이 되고싶었다. 옆을 슥 보고 앞을 향해 힘차게 채찍처럼 팔을 휘두르는 그런 사람. 그 때 부터였다. 집에 있는 공이란 공은 다 쥐고 던졌다. 처음 아빠가 잠실 야구장에 데려갔을때, 까만 옷을 입고 모자를 눌러쓴 아저씨 중 한 사람이 야구공을 주었다. 그 뒤로 나는 친구들이 축구하자, 농구하자, 게임하자고 할 때에도 학교 뒤 주차장을 갔다. 동그란 원을 그려놓고는 그저 하루 종일 공을 던졌다. 그게 좋았다. 어깨가 뻐근함을 넘어가서 얼얼해서 다시는 움직이지 않을 때 까지 던지는 것은 내 매일의 유일한 일과였다.
공을 잡는다. 실밥에 손가락을 걸고, 다리를 들었다가 앞으로 쭉 뻗어서 딛는다. 그때까지 상체는 뒤에 둔다는 느낌으로 온 몸을 튕기기 직전의 용수철마냥 쭈욱 늘인다. 몸이 튕겨나가려고 할 때쯤에 뒷 다리를 차올리며 온 몸을 내던진다. 타원을 그리며 채찍같은 오른팔이 튕겨나간다. 마지막으로 있는 힘을 다해 잡고있던 공의 실밥을 손가락과 팔목으로 긁어버린다.
"야 임마! 넌 죽었다 깨어나도 못해!!"
-헉 헉
다시 공을 잡았다. 또 다시 발을 내딛고 던진다. 그런데 이번엔 공이 앞으로 날아가지 않았다. 어느새 공은 뒤에 빠져있었다. 가만히 피투성이가 된 오른손을 바라보니 부들부들 떨고만 있다. 난 멍청하게 내 손을 몇 분이고 가만히 서서 바라보았다.
"저 미련한 새끼............."
그런적이 있었다. 남들 다 하는 공부 내팽겨치고 중학생, 고등학생이 되서도 변변찮은 야구부에 들어가지도 못한 게 종일 공만 던지고 있으니 적잖이 속이 상하신 부모님. 하루는 내게 넌 안된다고 말하며 소리를 버럭버럭 지르시던 부모님. 난 가만히 그 이야기를 듣고있었다. 뭐라고 할 말이 없었으니까. 나보다 잘난 투수는 많았다. 너무 많이 읽어서 이젠 종잇장이 너덜너덜해 보기 힘든 옛 야구교본을 눈 앞에서 찢을때, 미칠것같이 화가 났지만 가만히 있었다. 어렴풋이 알고있다. 난 재능이 없었고, 세상에는 나보다 훨씬 잘 하는 애들이 많았다. 내가 매일 같이 던졌어도 잘난 놈만큼 구속도, 구위도, 변화도 없는 내 공을 써 줄 곳 따위는 없었다. 고작 고교야구에서 이런데, 대학야구 그리고 프로에선 이게 통할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그래도. 꿈이란건 원래 멀고 먼 거니까. 하늘의 별 같은 거니까. 안 될 가능성이 더 높고, 아무리 힘겹게 노력해도 될지 안될지 모르는게 꿈이니까. 쉽게 이뤄질 거면 그건 꿈이 아니니까. 하며 비가오나 눈이오나 몸이 아프든 말든 던졌다. 매일같이 반성하고, 기록하고, 생각하고, 던지고. 내겐 그게 삶의 전부였다.
연습용 투수라면 써 주겠다며 들어간 이름없는 야구부. 3년 째 연습만 하던 나의 고교 3학년 봉황기를 대비한 친선경기에서 처음으로 마운드에 올라섰다. 당시 감독님은 3년간 포수에게 던진 공이라곤 연습때 밖에 없던 내게 기회를 준 것이다. 투수로는 절대 등판할 수 없을거라던 나였지만, 그 날 한 경기를 전부 등판할 수 있었다. 나중에 들어보니 우리의 에이스 어깨를 위해 날 버린 투수로 삼은 것이다. 당연히 실컷 얻어맞고 졌다. 그날만큼 많이 울고, 그날만큼 많이 던진적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그렇게 난 대학도 가지않고 전 구단 프로테스트를 보았다. 마지막에 2군 연습구 투수라도 할 생각이 있냐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두세번 던진 공에 됐다. 나가라던 다른 구단들의 결정때문에 이미 지칠대로 지쳐있었는데, 이건 한 줄기의 빛이었다. 죽었다 깨도 안되는게 어딨어! 라며 환호했다. 그 날 만큼 그렇게 웃은 적도 없었다. 그렇게 프로구단에 입단한지 8년째, 난 아직도 2군 연습구용 투수다. 그 동안 어깨 수술을 세번을 받고, 팔꿈치 수술은 두번이나 받았다. 감독님은 내게 포기하라고 했다. 난 그럴 수 없었다. 인간은 지지않는다. 죽을지언정 지지않는다.
더 이상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고 혼자 푸들거리는 팔을 왼팔로 쥐고 마운드를 내려왔다. 1군 감독님은 모자를 푹 눌러쓴 채 앉아있었고, 2군 감독님은 적잖이 화가 난 표정으로 씩씩대고있었다. 귓가에 커다란 소리가 계속 요란하게 울렸지만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프로에 입단했다고 했을때도 썩 기뻐하지 않으시던 부모님의 목소리가 떠오른다. 한쪽에서는, 넌 죽었다 깨도 안된다는 말이 계속해서 반복된다.
꿈은 이루라고 있는건 아니었다. 그건 그냥 도전하라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수많은 도전자중 스러져간 시체중 하나였다. 다음 날 메디컬 센터에서 더 이상 공을 던질 수 없다는 판정을 받았다. 그게 끝이었다. 인간은 죽을지언정 지지않는다고 계속 되뇌였다. 그럴리 없어. 몇 번의 수술도 잘 견뎠다. 더 할 수 있다. 락커룸에는 이미 정리된 내 짐이 있었다. 2군 감독님은 냉정하게, 지금 당장 이 곳을 나가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