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비가 오는 날이 좋다.
비가 오는 것을 가끔은 냄새로 먼저 느낄 때가 있다.
공부든, 게임이든, 책이든 간에 집중하고 있다보면 열려진창문 틈새로 젖은 내음이 올라온다.
콘크리트 젖는 냄새, 흙 젖는 냄새, 풀잎 젖는 냄새가 뒤섞인 비오는 냄새에 나는 창문을 쳐다보게 된다.
이어폰에는 이런 날 어울리는 처량한 노래를 걸어놓고, 자판기에서 뽑은 싸구려 커피를 홀짝이며 습도 높은 날엔 유난히 잘 빨린 담배연기를 빗 속으로 날려보내고 있자면 역시 나는 비에 어울리는 남자야, 라며 같지도 않은 허세를 떨 때가 있다.
나와는 달리 비를 싫어했던 너가 생각난다.
나처럼 비오는 풍경을 보고 있을지, 아니면 미처 준비하지 못한 우산에 짜증을 내고 있을지 궁금하다.
예고된 봄비에, 하지만 쌀쌀해진 날씨에 얇은 봄옷을 입고와 춥다며 내품에 안기어 같은 우산을 쓰고 총총거리던 너의 모습, 소나기에 새로 산 가방은 지켜야 한다며 품에 안고 고집스레 뛰어가던 너의 모습, 장마철 나의 자취방에 들어오며 양말이 젖었다고 투덜거리던 너의 모습, 스산해진 가을 저녁 내리는 가을비가 적신 낙엽을 밟던 너의 모습, 차디찬 겨울 내리는 비를 내 말은 들리지 않는다는 듯 멍하니 카페 창문 너머로 바라보던 너의 모습, 그리고 우산이 다 막지 못한 빗방울에 젖은 너의 머리칼, 머리칼.
이 빗속에서 아마도 너는 나의 생각을 하지 않을거라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비오는 날 너와 같은 구름 아래 서있다는 것이 다행이라 생각한다.
너와 같은 비를 맞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아직더 너를 생각하는 나를 다행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너와의 접점을 찾는 나를 다행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씁쓸해진 채 구겨버린 종이컵을 휴지통에 던져 넣고 다시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나는 비가 오는 날이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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