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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1/03/26 07:57:01
Name Nybbas
Subject [일반] 나는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나는 지금의 상황에서 최선을 다 하고 있는 것인가...
요즘 좀 힘들고 생각이 많아서, 약간의 정리가 필요한 것 같아 PGR에 현재 상황을 좀 털어놓을까 합니다.

먼저 스스로를 간단히 소개하면, 공대를 졸업하고(학점은 매우 낮습니다.) 게임업체의 기획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지금 있는 회사에서는 약 1년 7개월정도를 일했고, 매출이 좀 나는 회사입니다.

문제는, 제가 해외쪽 기획을 맡고 있는데 사실상 흔히 생각하는 게임 업무보다는 마케팅쪽에 훨씬 가까운 일을 하고 있고,
(기획쪽 업무는 국내에 이미 들어간 패치를 일정한 시간간격을 두고 해외 테이블로 옮기는 작업 정도가 다입니다.)
근 1년 넘게 적응을 못하여 피곤한 얘기를 계속 듣고 있다는 겁니다.

간단하게 적기는 했지만, 국내에 3~4명이 달려들어 만들고 체크하고 한 일을 혼자 옮겨보고 테스트를 해봐야 하며,
국내의 코드와 해외의 코드가 미묘하게 다른 부분이 있기 때문에 세심하게 확인하지 않으면 의외의 곳에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문제는 저는 성향적으로 굳어진 '덜렁거림'과 '순간 집중력 방전'을 패시브로 달고 있고,
기본적인 테이블 수정 작업에서 몇 번의 실수를 하고 나니 완전히 자신감을 상실해서 2주에 한 번 꼴로 있는 해외서버 패치를
진행할 때마다 항상 엄청난 스트레스와 조마조마함을 견디면서 살기가 어렵다는 거죠..

가장 심하게 겪은 것이 3월 중순에 있었던 대형 패치입니다.
국내에 들어간 패치 중 시즌 업데이트급 패치를 통째로 옮겨야 하는 패치였으며, 국내도 3월말에 시즌 업데이트를 준비중이라
역시나 혼자서 진행해야 하는 상황...나름 준비하고 체크할 거 다 했다고 생각했지만, 너무나도 빈 부분이 많았고,
결국 메인 업데이트 후 임시점검을 이틀 연속 해야 했습니다.
임시점검이 끝나고 같은 팀에서 프로그래머로 일하고 있는 친구 녀석이 대놓고 저한테 얘기하더군요.
'너 다른 회사로 이직하고 싶냐? 내가 널 어떻게 해줘야 할 지 모르겠다...
평가도 바닥이고, 근무태도도 안좋고, 일은 전혀 적응 못하고 있고.'
(뭐, 이날 완전히 맛이 가서 정줄 놓고 퇴근하다가 영업택시랑 접촉사고가 난 건 일종의 보너스로 치겠습니다.
계속 전화하고 문자를 보내면서 대인접수해달라고 징징대길래 해줬더니 바로 뺑소니로 몰아가더군요. -_-;
블랙박스 자료가 택시쪽 자료만 있어서 이것도 어찌될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게임을 좋아했고, 그래서 게임을 만들고 싶었고,
프로그래밍에 소질이 없는 것을 깨닫고 난 후에도 어떻게든 '게임을 잡아보고 싶다'는 일념으로 기획쪽으로 넘어왔는데,
기획에서도 제가 정말 할만한 부분은 아주 일부분에 불과하고, 나머지 부분 - 특히 PM 및 마케팅 부분 - 은 정말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나니 10년 넘게 상상해온 것들이 깨져나가고 있는 느낌입니다.
만약 이 길을 완전히 포기한다면 어디로 가야 하나...하는 걱정도 앞서고요.
완전히 새로운 길에 대한 적응력이나 꼼꼼함이 떨어지는 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섣불리 다른 길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부모님이 노래처럼 얘기하시는 '넌 공무원을 해야 해'라는 말씀이 이젠 더이상 배경음악처럼만 들리지가 않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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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3/26 08:59
수정 아이콘
많은 사람들이 난 덜렁거려라고들 말하고 저도 농담삼아 그런 말을 달고 사는 사람이긴 하지만, 사실 진지모드로 이야기할 때에는 '덜렁거림' 이라는 것은 그냥 못났다는 말과 동급이지, 그게 어떤 성격같은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뭐랄까... '우리 아들은 머리는 좋은 데 덜렁거려요 (또는 산만해요, 또는 집중력이 떨어져요)' 와 비슷한 식으로, 자기가 뭔가를 열심히 하지 않고 있는 것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사용한달까.. 그런 느낌입니다.

저도 원래 11시 55분에 점심 약속하고 나서 12시에 이미 까먹는.. 그런 비화들이 있는 사람이지만, 이제는 캘린더 빽빽히 적고, 약속시간에 3분이상 늦는 경우가 일년에 한두번인 사람으로 변신했습니다. 화이팅이에요!
미드나잇
11/03/26 09:28
수정 아이콘
이번에 많은 생각하시고 나중에는 잡념을 떨쳐버리는게 포인트입니다. 저도 일을 하면서 항상 소질과 적성을 살려 직업을 갖는분들이 부러웠습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이 사회에서 소질이나 적성만으로 직업을 선택하는 사람은 드뭅니다. 잘 생각하시길...
루크레티아
11/03/26 10:22
수정 아이콘
저도 인생을 오래 살아 본 것은 아니지만, 주변의 많은 사람들을 보면 자신이 적성에 맞는 직업을 선택하는 것보다 본인 스스로의 적성을 현재 하고 있는 일에 맞추는 사람이 더 열정적이고 대성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본인 스스로 '난 이 일에 대해서 얼마나 열정적으로 임했는가.'를 생각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단순하게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니고 '열정'을 쏟아서 임한 후에도 아니다 싶으시면 그 때에 물러나셔도 늦지 않습니다.
서린언니
11/03/26 12:08
수정 아이콘
누구나 일이 제대로 안되면 적성과 열정을 생각하면서 합리화 하려고 하죠.
아직 1년 7개월밖에 되지 않으셨네요. 저도 일본에 와서 처음 2년간은 스트레스에 잠도 제대로 못잤습니다.
좀 더 일에 매진해보세요. 조금이라도 잘 풀리고 인정받기 시작하면 일이 재미있어 집니다.
그 고비를 못넘기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만두지요...
11/03/26 13:47
수정 아이콘
형, 형의 장점은 자신감과 열정이었잖아요.

지금 실수가 반복되서 좀 위축된 거 같은데, 마음 편하게 먹고 자신있게 일 해보시는게 어떨까요.

일이란게 생각보다 적성을 크게 안가리더라구요;;

오히려 자신감이나 열정 같은 부분이 실제 일의 효율에 큰 영향을 미치는 거 같아요.

형이라면 마음 먹으면 지금 위축된 상황을 반전시킬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고 전 믿어요.
11/03/26 14:51
수정 아이콘
기획도 엄연한 기획의 영역이 있는 건데 다른 일까지 같이 시키는 건 쫌 아닌 거 같네요 -_-;;
저도 제가 생각지도 못했던 잘하지 못하지만 해야 하는 일에 대한 고민이 많긴 하지만..
사실 다른 일을 하더라도 똑같은 어려움이 그만큼 있을 거 같네요.
내가 스스로 선택한 이상 내가 현재 하고 있는 일이 다른 것보다 가장 맞다고 생각하며 버텨내야겠죠.
11/03/26 21:36
수정 아이콘
여러 분들의 고언, 감사히 듣겠습니다.
사람이 후회없게 산다는 게 쉽지 않겠지만, 그래도 여기서 후회를 남기진 않았으면 좋겠다...라는 것이 솔직한 심정입니다.

P.S. 오늘 한의원에 갔는데, 스트레스가 극한에 다다라서 온몸을 압박하는 형국이라고 하더군요.
잘하면 잘하는대로 못하면 못하는대로 스트레스는 떨구지 못하나봅니다. 흐흐.
11/03/26 23:19
수정 아이콘
내가 정말 좋아하고 잘하고 싶은 일인데 잘되지 않는다는 것. 그래서 내가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감, 이게 제가 요새 느끼는 감정인데 왠지 비슷하다고 느껴지네요. 전 이제 갓 3개월 남짓인데 그런 기분으로 1년 7개월을 이란 상상을 하니 조금이나마 그 무게감을 느낍니다. 개인적으로 힘내셨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생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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