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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9/09/02 00:56:30
Name Farce
Subject [일반] 아시아는, 우리는, '존더베크'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수정됨)
안녕하세요. 이야기를 좋아하는 Farce입니다.

요즘 들어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정말로 많아지더군요.
그래서 제가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여러분에게 양해를 구할겸,
그리고 또 저 스스로 산만해진 정신을 한 곳에 모을겸,
잠시 저에게 있었던 일을 털어놓는 시간을 가져보고자 합니다.

제 몰골이 요즘 말이 아닙니다.
저에게 있어서 마지막 학기가 개강을 앞두고 있고,
여태까지 힘들게 모은 학비를 이번을 마지막으로 돈벌이로 바꾸고 싶은 여유없는 삶이라서 그런가 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피지알까지와서 움직이는 바위 위에 두발로 서서 춤을 추고 싶지는 않습니다. 제가 몸치이거든요.
혓바닥이 근질거려서 몇마디를 보탤려고 했건만, 새로운 폭로, 반박되는 선후관계...

상당히 불쾌한 경험이었습니다. 아뇨, 누군가가 어떤 편을 들어서 또는 들지 못해서 불쾌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제가 원래 오버워치나 배틀그라운드 같이 일명 '피지컬'을 사용하는 게임을 도저히 못하겠거든요.

움직이는 게임판 위에 서있다는 것을 깨닫자, 배멀미 같은 어지러움증이 올라오덥니다. 그 누구의 탓도 아니고 저만의 탓이었지요.
저는 다시 게임판이 움직이지 않는 게임으로 와야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문명', '엑스컴'... 뭐 그런 종류의 게임이요.

안녕하세요. Farce의 게임판에 관객으로 와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린다는 말씀을 올리겠습니다.



[오늘 역시 저는 지나간 이야기, 지나가고 있는 것도 아니고, 지나갈 것도 아닌, 오직 과거의 잊혀진 이야기를 가져왔습니다.]

저는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저는 좋은 이야기가 있다고 한다면, 어디에서 누가한 이야기인지도 가리지 않고 모으는 것을 좋아합니다.

저는 다양한 종류의 재미있는 이야기를 좋아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저만의 취향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제 취향은 상당히 확고합니다. 많고 많은 이야기 중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는 바로 '[환멸]로 가득찬 이야기'입니다.

01

2004년에 개봉한 스페인 영화 "라 니냐 산타 (La niña santa, 성스러운 소녀)" 같은 작품을 저는 좋아합니다.
중년 배불뚝이 이비인후과 의사 '하노'와 만 16번째 생일을 맞은 '아말리아' 사이의 교제를 다룬 작품이었지요.

의사라는 전문직이 다 그렇지만, 열심히 살수록 가족과의 관계는 소원해지고 타지로의 출장은 길어지는 인생에서,
대서양 건너편에 있는 호텔이 마침 옛 친구의 것이었고, 그 친구의 딸은 순수하며 호기심이 넘친다니요.

영화는 '하노'를 변호하는 것처럼 천천히 이야기를 끌고 갑니다. 적극적으로 정당화시키지는 않지만,
가끔씩 카메라로 그를 어루만져주지요. 괜찮아. 유혹이라는 것은 살면서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것이야. 그럴 수도 있어.
이 무슨 남성편의주의적인 선전물이란 말인가요.

하지만, 두 사람의 맞닿아있는 목덜미를 마치 바람잡이처럼 선정적으로 희롱하던 감독은
갑자기 영화 중간에 손톱으로 목가죽을 긁어버립니다. 보이지 않는 핏방울이 흐르겠군요.

02

[정신차려, 원조교제 사범. 이제 당신의 이야기에서 깨어날 시간이야]

그리고는 어리둥절해하는 관객과 의사양반의 목덜미를 잡고 '아말리아'의 이야기를 이어나가기 시작합니다.
당신이 얼마나 위안이 필요한 삶을 거창하게 살아오셨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잘못된 욕정이었다고.
그녀의 어린 호기심이 성적으로 보이는 것은 당신이 고작 그 정도로 단순하기 때문이라고.

이야기는 함정에 자발적으로 빠지는 과정, 그 자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야기에서 가장 강한 존재는, 등장인물도, 듣는 사람도 아닙니다. 바로 '서술자'이지요.
'서술자'는 모든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에서 '감독'은 의사의 편을 들을 수도, 소녀의 편을 들을 수도 있었겠지요.
아니면 이렇게 중간에 대놓고 편을 바꾸면서 관객의 몰입을 비웃으면서 혼자 깨어있는 척을 할수도 있고요.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팩트'는 폭력적이지 않습니다.
한 명의 사람에게 일 억 개의 '팩트'를 던져보십시오. 그 사람에게 어떤 상처를 주는 것에도 실패할 것입니다.

사람을 죽이거나 살리고 싶다면, 이야기를 써야합니다.
사건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이야기의 결말이 중요한 것이지요.

11
[그 누구도 기분 나쁘기만 위해서 페이지를 넘기지 않습니다.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지도 않고요.]

오늘 제가 여러분께 들려드리고자 하는 이야기는, 독일에서 시작되어 아시아에 꽃핀 '존더베크(Sonderweg)'의 이야기입니다.
열심히 피땀을 흘려서 일한 근면성실한 사람의 '환멸'이 담겨있는 단어이지요.

존더베크는 두 개의 독일어 낱말로 만들어진 합성어입니다.
존더(Sonder)와 베크(Weg)로 나누어서 뜻을 찾아볼 수가 있지요.

존더는 특별하다는 뜻의 형용사입니다. 영어로는 '스페셜'에 해당하겠네요.
베크는 길, 또는 경로입니다. 영어로는 '웨이'이지요.

'존더베크'란, 다시 말해서, 독일 역사의 특수성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우리의 역사는 궤도가 다른 나라와는 다르다!'
확실히 독일의 역사가 좀 특이하기는 합니다. 영국 (당시 잉글랜드)도 왕국이 있었고, 프랑스도 왕국이 있었거늘,
독일은 항상 주변 국가에게 당하는 소국들의 모임에 불과했으니까요. 하지만 후발주자는 정말로 무서운 존재들이죠.

1871년 독일제국이 지도에 최초로 등장했습니다. 출생연도로만 보자면, 그 어리다는 미국보다도 백살이나 더 어리군요!
태어나는 과정에서 기존 강국 오스트리아와 프랑스를 한 대씩 맛깔나게 뺨을 때려보았으며,

03
[끝끝내 (비록 실패했지만) 세계대전을 통해 대영제국의 패권에 도전할 정도로 초강대국이 되었습니다.]

역사가 짧은 어느 나라나 그렇듯이, 독일인들은 자신의 역사를 이해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요?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지요? 앞으로 무슨 이야기가 펼쳐질까요?

이 당시 독일에서 만들어진 표현 중에는 한국을 묘사할 때 자주 쓰이는 표현도 있습니다.
"비동시성의 동시성"이었지요. 폰 (Von)자 돌림 성씨가 들어가는 소수의 귀족-공무원들이 국가주도적으로 산업과 문화를 통제하면서,
부국강병과 산업화를 이끌고, 중세부터 내려온 소수시민의 전통을 월급쟁이가 되는 것으로 누리려는 다수의 중산층을 창조해냈습니다.

'존더베크'라는 표현의 시작은 엄밀하지도 않고 학술적이지도 않습니다.
1840년대에 자기만족용으로 쓰이기 위해서 만들어진 표현이었지요.
"우리의 위대한 역사! 영국, 프랑스, 러시아, 미국 그 누구와도 다른 우리만의 특수성!"

시작이 창대하였으니, 자연스럽게 독일의 몰락과 함께, '존더베크'는 비관적이고 냉소적인 단어로 추락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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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역사! 참으로 대단하지! 다른 유럽국가와는 다르게 근본적으로 잘못된 실패한 실험이었어!]

독일 역사의 특수성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히틀러의 나치당으로 수렴해버렸습니다. 참으로 다른 나라는 이루지 못한 위업이었지요.
초강대국이 되는 것에 실패한 강대국의 국민은 광인을 지도자 자리에 앉혔습니다. 그리고 그 지독한 대가를 치루어야만 했지요.
냉전이 끝나고, 통일이 되었건만, 아직도 독일은 이 역사적인 상처를 품고 있습니다.

04
[독일인들이 다같이 힘을 모아서 으쌰으쌰하면 치욕말고 남는게 무엇이지? "우리 어머니, 우리 아버지(Unsere Mütter, unsere Väter )"]

이번에는 실수를 하지 않겠다고 열심히 노력하면 또 다른 실수로 빠지지 않을거라는 보장이 없잖아요?
잘 못 될 것이라는 생각이 아니지요. 잘 될 것이라는 생각이 안 든다는게 문제인 것입니다.

어느 나라나 그 나라의 황금기가 있기 마련입니다.

"This was Their Finest Hour" "지금 이 때가 (우리 역사에 있어) 최고의 순간이었다고 (후대인들은 말할 것입니다.)"
처칠은 동맹국 프랑스가 항복을 선언하고, 한 달 후 런던 대공습이 시작될 순간에 이런 이상한 표현을 담은 연설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 멋진 연설은 5년 뒤 전쟁에서 승리한 다음에야 후대 역사가들에 의해서 처칠만이 할수 있는 말이었다고 인정받게 되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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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복이 역사에 바탕을 두지 않는 컴퓨터 게임에서조차 멋진 이유는, 이런 멋진 역사적인 순간들이 옷에 살아 숨쉬기 때문입니다.]
매너는 사람을 만들고, 역사는 제복을 만듭니다. 제복을 입은 역사가 멋질 수 있었던 것도 하나의 능력이 아닐까요?

저와 같이, 일본에서 만들어진 게임에서 캐릭터에게 옷을 사주는 취미가 있으신 분이라면,
잊을만하면 튀어나오는 과거의 망령과 기분 나쁘게 마주하신적이 있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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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제복은 여러가지 이름으로 불리며, 여러가지 규격이 있습니다. 한국인 유저들은 다만 '순사복'이란 말을 선호하지요.]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요? 게임 개발인력들이 전부 극우 선전물에 절여져서,
과거 식민지 국가 소속인 게이머들의 역사의식을 무디게 만들기 위한 선전선동 산업에 전심전력으로 성의를 다하기 때문일까요?

어쩌면 그게 사실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단순한 이유에 시작된 옷 입히기일 수도 있겠지요.
아니면, 어떠한 경우에는 그들조차도 자신의 '존더베크'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일본의 니가타현 앞바다에는 '사도(さど Sado)'섬이 존재합니다.] 번개 모양이라고도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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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자는 '상상도 못한 모양'이라고 부르는 형태를 가진 섬입니다.

도쿠가와 성씨가 에도 막부를 성립한 이래, 사도섬은 막부의 통치를 직접 받았습니다. 다른 다이묘를 끼지 않고요.
왜냐면, 섬에 꽤나 큰 금광이 있었거든요. [당연히 사도섬의 금광은 사도섬의 사람들로만 채굴하기에는 너무나도 중요한 곳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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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육지에서 사람을 납치해왔습니다. 에도 시대에는 원시적인 형태의 도시화가 진행되었고, 도시빈민이라는 것이 생기고 있었습니다.
어느 농경사회에서나 그렇지만, 전통적인 사회에서는 무호적자는 탄생하기가 힘들었습니다.
같은 마을에서 산다면 당연히, 오오... 너는 옆집 나까무라네 삼남 야스오구나 하고 단번에 알테니까 말이지요.

하지만 도시가 발달하자 일자리를 찾아서 도시로 도망치는 사람이 당시 일본에서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속칭 '절연금'을 부모, 농촌의 우두머리, 영주에게 바치고 묵인을 받는 경우도 있었지요.

이런 '호적 외' 사람들은 당연히 인신매매에 있어서는 아주 그냥 두발로 걸어다니는 돈덩어리였습니다.
서양에서 양복입은 관리들이 그랬듯이, 도시빈민가에서 노동자를 알선/납치 (둘의 구분은 매우 모호했겠지요) 하는 일이 빈번했습니다.

니가타현은 계속해서 사도섬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하려고 시도하는 중입니다.
사도섬의 금광박물관이 알려주듯이, 막부를 패배시키고 일본 최초의 근대화 정부가 된 메이지 정부 또한 사도섬의 채굴을 계속했습니다.
육지에서 사람은 계속해서 '공급'되었고, 당연히 조선인 또한 있었습니다.

그리고 눈치채기 힘들지만, 여기서 이야기가 이상해지기 시작합니다. '외교 갈등'과 '전시의 특수한 상황'이라는 상징성이 강조되더니,
갑자기 그 동안의 일본인 자국민 착취는 역사 속의 '정상영업'으로 위장되어 스리슬적 사라지는 것을요.
한국인이기에 우리는 이 점을 더 주목해야합니다.

무슨 이야기냐고요? 다시 시계바늘을 조정해서 메이지 유신 다음 시대인 다이쇼 시대로 가보겠습니다.
연도가 상당히 중요한데요. 1912년에서 1926년입니다. 한국 역사로 보자면, 일제강점기 초기에 해당하는 시대이군요.

19

메이지 시대가 막을 내렸습니다. 무조건적인 서양 따라하기는 끝났고, 이제 (일본기준) '우리의 것'의 유행이 다시 불기 시작했습니다.
조선과 대만이라는 '완충지대'덕분에, 서구 열강이 혹시나 침략할지도 모른다는 흑선내항의 두려움은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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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등, 철도, 공장, 전화가 새롭게 만들어졌고. 제복은 교복, 군복, 경찰복, 정장 등등을 타고 사회 곳곳에 퍼졌습니다.
곧 유럽에서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태동하기 시작한 시장경제는 호황을 거듭할 것이었고, 카레라이스, 돈까스도 이때 생겼습니다.
못 배운 촌골 출신이어도 팽창기에는 모두가 행복할 것이었습니다. 공무원/교원 시험을 봐도 좋고,
군조(부사관)이 되어 귀족 장교 밑에서 식민지에서 한 몫을 잡아봐도 좋지요.

23

[제국주의라는 것이 왜 사람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들겠습니까?]

물론 어느 시대나 그렇듯이, 이 시대는 영원하지 않을 것이었습니다.

유럽에서의 전쟁이 끝나면서, 호황 역시 끝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여태까지 쌓여있던 모순과 약점은 사회를 압박하기 시작했지요.
단적으로, 1918년에는 속칭 '쌀소동'이 일어났습니다. 일본은 그제서야 자기 스스로가 산업화된 국가라는 것을 깨달았지요.
더 이상 농촌을 쥐어짜서는 식량수급이 정상적으로 되지 않는다는 뜻이었습니다. 조선총독부의 산미증식계획이 시작된 이유였죠.

'다이쇼 데모크라시'라고 불리던, 의회민주주의의 정착시도는 결국 실험으로 끝났습니다.
군부는 비대했고, 너무나도 중국과 러시아를 상대로 성공만을 맛보았기에,
결국 합법적으로 선출된 총리 이누카이 츠요시를 암살해버렸거든요.

24

[1930년대는 대공황과 파시즘, 그리고 2차 세계대전의 시대였고, 애석하게도 일본은 꽤나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될 것이었습니다.]

일본의 특수적인 역사, '존더베크'는 일본을 아시아에서 유일한 근대화 국가로 만들면서 동시에,
일본을 아시아에서 유일한 군국주의 국가로 만들었습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근대화와 군국주의는 한 몸이 아니겠습니까?
다른 국가는 누리지 못하고 있었고, 오직 일본만이 경험한 그 지독한 냄새는 '근대'성의 악취였습니다.

'쌀소동'에 대한 일본 근대정부의 대답은 '치안유지법'이었습니다. 아주 합법적이고, 아주 근대적인 해결책이었지요.
식민지인들을 통제하기 위한 특별법이냐고요? 아니요. 일본 국내법이었습니다. (물론 일본 국내에 식민지가 포함되긴 하지요.)
일본인들이 헌병대를 만들고 자기네 땅에 설치했고, 일본인들이 경찰을 만들면 그게 순사였습니다.

제가 지금 여기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일까요? 일본인들도 자기 체제의 피해자이다, 따위의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것입니다. 정부가 유일하게 서술자인 이야기에서, 국민에게 남겨지는 배역은 몇개나 있을까요?



["유신 체제는 공산 침략자들로부터 우리의 자유를 지키자는 체제입니다".]
'개발독재'라는 것은 참으로 매력적인 이야기이지요.

'계급배반'이라는 아주 정치적인 단어가 있습니다. 제가 아주 좋아하고, 동시에 매우 싫어하는 단어입니다.
저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사람은 '계급배반'인지 '수저배반'인지는 해도, '자기 이야기를 배반'하지는 않습니다.

애석하게도, 그 자기 이야기가 오직 '박통의 경제발전 때 내가 살아있었다' 밖에 없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개발독재'는 이름에서도 볼 수 있다시피 '독재'입니다. 그리고 '독재'는 나라의 모든 것을 한 사람의 인생으로 치환하려고 하지요.
위대하신 영도자께서 태어나신게 경사요. 밥을 먹은게 경사고, 죽은게 비극이며 뭐 그렇습니다.

그곳에 다른 사람의 이야기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철학적인 질문 하나 하겠습니다.

26
[그러면 도대체 그 나라에서 그 유일하신 독재자가 아닌 불행한 사람들은 어떻게 자신을 인식할 수 있단 말입니까?]

도미니카 공화국의 독재자 '라파엘 트루히요'의 시대에 수 많은 도미니카 공화국 사람들이 미국으로 도주를 했습니다.
처음에는 미국인들도 그들에게 관심을 보였지요.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잖아요. 트루히요가 문란한 파티를 벌이더라,
시종이 몇명이더라, 국경 근처에 사는 아이티인들을 정글도로 난도질해서 죽이고 시체를 태우더라,
트루히요가 먹는 고급 캐비어와 와인을 내가 관리했는데... 아버지는 고문당해서 빠진 발톱이 곪아서 죽었고, 여동생은...

트루히요는 국경을 맞대고 있는 아이티의 독재자, '뒤발리에'처럼 부두술사였습니다. 카리브해의 독재자들이 다 그랬듯이 말이지요.
틈만나면 공식석상에서 자신의 국민들을 저주했습니다. "나를 거르스면, 평생 내 손바닥에서 놀아나다 비참하게 죽게 만들어주마!"

트루히요는 정말로 부두술사였나봅니다. 그의 말은 심지어 미국으로 도망친 도미니카 공화국 사람들에게까지 '현실'이 되었거든요.

독재자는 모든 국민을 정치병 환자로 만듭니다.
삶을 하이재킹해버리죠. 어떤 존재가 살만하다고 느낀다면 그건 독재자가 그 살만한 느낌을 허락해줬기 때문인 것입니다.
거꾸로 말하자면, 독재자는 국가적으로 살맛이 떨어지는 밥맛 그 자체라는 말도 되지요.
암요. 어떻게 살맛이 나요? 남산에서 코로 설렁탕을 마시고, 군대는 쿠데타라는 생업에 종사하고, 뉴스는 땡과 전으로 시작하는데.

이상하게 박통 이야기만 하면 이유 모를 감동에 눈물이 나오려고 하는데, 전태일 이야기를 하려고하면 아는 것도 없고,
본인하고 별로 상관 없는 극단분자인 것 같아서 공감도 안가고, 광주대단지는 하나의 폭동입니다..?



["옛날 옛적에..." 하면서 이야기를 꺼내려고 했는데, 남의 영혼이 아무튼 생성되어서 남의 몸뚱아리에 들어가 있네요?]

그런데 이들에게서 독재자의 이야기를 부정하고 빼버린다면, 그것이야말로 '영혼 착취'일 것입니다.
"내가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데! 요즘 젊은 것들은, 내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뒷구석 노인네라고....!"

필요한 것은 일단 그 빈자리를 채우고, 악령을 빼내는 것이겠지요. 다른 이야기, 다른 만들어진 서사가 필요합니다.
'계급', '당위', '정의'같은 장삼이사 아무에게나 애정없이 가져다 붙여도 그럴싸한 '명분'말고요.
이 사람에게 딱 맞추어서 떨어지는 아주 주관적인 이야기말입니다. 이야기.

31
[근대 일본에게서 제복을 벗기면 그 안에 남는 이야기는 무엇이죠?]

다이쇼 시대는 연호에서 따온 이름이지요. 연호는 당연히 덴노의 즉위만큼 긴 달력이고요.
다이쇼 덴노는 조선의 문종과 비슷한 삶을 살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의 치세가 길었고,
나이든 선왕의 국사를 보필했으나, 그 대가는 자신이 즉위하고 얼마 안되서 건강이 망가져 사망하는 것이었죠.

그래서 다이쇼 시대는 후대에 있어, 매우 편의적인 구분이 되었습니다. 추한 30년대를 보지 못하고 20년대에 덴노가 죽었으니까요.

06
['다이쇼 로망'이 아직도 캐릭터 상품으로, 유행상품으로, 역사극으로 남아있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독일 베를린의 1920년대와 비슷한 느낌이지요.
사람들은 극단적으로 가기 전에, 가장 큰 갈림길 앞에 서있었습니다.
경성 모던보이와 모던걸이 언제적 개념인데요.

하지만 일본인 캐릭터들이 다시 군복을 주워입기 시작한다면 갈림길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결론이 이미 정해져있는 걸요. '이미 일어났던 일이니 거역할 수 없다'라고요.
'존더베크'의 함정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30
["나는 필연적인 존재이다".]
'존더베크'는 히틀러를 타노스로 만듭니다. 독일인이 노력해봤자, 결말이 히틀러라니, 너무 잔인하지 않나요?

결국 '존더베크' 이론은 냉전 이후 히틀러가 되지 않을 자신감이 있는 독일인들에 의해서 '특수성적인 필연'을 포기했습니다.
히틀러를 독일인들이 총리로 만든 것은 사실입니다. 일어난 일이지요.
하지만 앞으로 일어나지 않길 원한다면 막을 수 있는 일이면 더 좋지 않겠습니까?

일본은 '존더베크'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일어나지 않았던 일을 소설로 만들어내라는 말이 아닙니다.
1920년대에 군복에 의존하지 않고도 만들어낼 수 있는 서사가 있었다고 언젠가 말할 수 있는 날이 올까요?

서양철학자 토니 스타크 선생님께서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29
[제복 없이 아무것도 아니라면, 제복을 가져선 안 돼.]

왜 국가주의자들의 논리를 민초들의 희생으로 만들어놓고, 민초가 직접 변호를 해줘야합니까?
상명하복의 복장과 근대화의 복장을 가지고서도 왜 결론이 정해진 이야기에 당해주냐는 것입니다.

[한국에서도 이야기들의 싸움은 끝나지 않고있습니다.]

10

가지도 않아도 되는 길을, 가지 않았으면 더 좋았던 길을, 유일한 생명줄인줄 알고 붙잡고 있습니다.
징병제를 했기 때문에 여기까지 온 것이겠습니까? 징병제를 했음에도 어떻게든 여기까지 온 것이겠습니까?

우리는 계속해서 과거로 메세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당신의 유산을 잘 받았다. 그런데 이건 좀 아닌 것 같아'.

28
[다행히도. 제가 보기에 한국은 절반의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시작이 반이니까요.]

대한민국의 수십년 역사를 집어삼켰던 부두술사 대통령들은 다시 역사 앞에선 개개인의 인간으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이제, 그들이 잡아먹은 사람들의 전해지지 못한 이야기를 우리가 더 늦기전에 회복시켜줄 차례입니다.

대통령을 끌어내린 경험이 있다는 것은 이야기꾼으로서는 엄청나게 큰 경험이자 자산이지요.
필연적으로 등장해야하는 전능하지 못한 필멸자만큼이나, 이야기를 망가트리는 주범이 없습니다.

"아시아인은 개발독재와 사회적인 통제 끝에 서구보다 더 빠르게 성공에 도달했다"라는 케케묵은 논리가 있습니다.

05

[영화에 자주 나오죠? 동양철학을 운운하면서, 철학 따위는 사실 관심 없고 사람 쥐어짜는데 특화된 음침한 아시아인 노인네]
K-POP과 스마트폰의 시대에 과연 이런 이야기가 설 자리가 남아있을까요?

아직도 존재하던가요? 일만하고 상명하복하는 아시아인 무더기라는 것이 말이지요.
21세기에는 설 자리가 없는 인종차별주의적 발상이라고 저는 생각했었습니다. 황인의 특성이 '독재'라고요? 정말로요?

아시아는, 그리고 우리는, 과연 '존더베크'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우리의 역사가 특수적으로 글려먹었다는 파국적인 예언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까요?
아니면 결국 그게 옳았다고 이마를 손바닥으로 칠 것인가요? 정말로?

25
[중공은 중국의 필연이 되려고 시도하고 있습니다.]

"천하대세 분구필합 합구필분"이라는 삼국지연의의 첫소절이 공교롭게도 '필연'을 다루고 있는데요.
어느 이야기가 이길지 참으로 흥미로운 대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일어난 일인지, 단지 합의된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한중일의 부국강병은 한번도 아름다운 이야기인적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걸 아름답게 포장하려는 시도는 처참하고도 기괴하게 실패하고는 하고요. 이게 우리의 '필연'입니까?

저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제 자신을 그런 끔찍한 이야기 속으로 집어넣고 싶지 않습니다.
빨리 자칭 우주 필연을 무찌를 어벤져스를 모아봐야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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及時雨
19/09/02 01:35
수정 아이콘
으윽 밀리언 라이브...
선생님 책 내실 때 알려주세요 재빠르게 사게
19/09/03 20:38
수정 아이콘
으윽 밀리언 라이브에 제복이!
선생님께서도 책 내시면 알려주세요. 부귀롭고 영화롭게 만들어드릴게요!
及時雨
19/09/03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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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책은 이미 2권이 나왔서요 크크크크
안 팔려요 크크크크크크
19/09/03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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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아아악 방금 부귀롭고 영화로운 책도 펀딩에 계좌를 올려두고 왔는데요!? 선생님 것은요? 어디죠? 어딘가요!?
及時雨
19/09/03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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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세가 오프로기 때문에 굳이 도와주시려면 저에게 치킨이나 하나 사주시는 것이 더...
아 아닙니다 어허헣
19/09/03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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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악 인세가 단 오프로! 나중에 작가와의 만남이라도 한번 해야겠네요 :) 책을 일단 봐야겠지만요...
19/09/02 0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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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었습니다.

초인공지능이 강림해서 인류의 역사가 이대로 끝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좀 진지하게 하던 시절에 어찌어찌 뮤지컬을 보러갔습니다. 고양이 옷을 입고 땀 뻘뻘 흘리면서 공연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다보니 '지금 이 시점에 초인공지능이 강림해서 인류의 역사가 끝난다고 한들 저 사람들이 저렇게 열심히 공연하고 있는 것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잖아. 그러니까 하쿠나마타타!' 하면서 고민 턴을 종료했어요. Farce 님은 그 반대쪽으로 생각하시는 셈인데, 물론 충분히 이해할만한 방향이고 우려하시는 그런 결론이 나오지 않게 모두들 노력을 해야겠지만, 설령 결과가 안 좋다고 해서 모든 것을 소급 적용해서 '그러니까 1392년의 조선 건국은 실수였다구!' 라고 말할 수는 없지 싶습니다.
19/09/02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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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인류 원리'를 아주 숭상하는 사람입니다. 사람들이 "아니 세상에! 어떻게 이렇게 복잡한 고도 생물체인 인간이 존재하고, 막 원소가 수백개가 되는 우주가 존재하지? 인간하고 말이 통하는 고등한 신이 설계한 것인가?"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선후관계는 그 반대인 것이지요. 우주가 그리 복잡하니 그걸 보고 감탄하는 메타적인 인간 같은게 튀어나온 것입니다. 아마 우주가 더 간단했다면, 그걸보고 감탄하는 더 간단한 인류-비스무리한-것이 나왔겠지요. "우리가 뇌를 이해할만큼 뇌가 단순해진다면, 우리는 결코 뇌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같은 역설이랄까요.

저는 상당히 염세적이고 비관적인 성정을 가진 사람이고, 덕분에 이런 제 스스로의 특질에 대해서 양가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번 글이 상당히 지리멸렬한데요. 제 내면 속의 결론이 끝나지 않은 상태로 글을 옮겨서 그런 것 같습니다. (정말 안 좋은 습관이지요. 다음에는 다시 한 점에 모이는 글로 찾아뵈겠습니다.)

저는 일직선 진행 (Railroaded) 게임을 하는 것을 정말 싫어합니다. 그런 게임은 플레이어를 존중해주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때문이지요. 대한민국에 살아있는 사람이 왜 필요합니까? 어차피 출신성분 보고서 졸업장을 줄거면 신생아는 왜 대한민국에 존재해야합니까? 노인들끼리 잘해보라지요. 스포일러를 당했으면 책을 왜 읽습니까? 달콤씁쓸한 인생은 숙련된 명품 브랜디의 맛이지만, 단 것을 멀리하고 쓴 것만 입에 넣고 싶은 사람은 자기 자신에 대한 배려심도 없는거에요! 단맛을 좋아하는 진화론이 준 뇌과학적인 뇌를 이념에 세뇌당해서 극복하는 중2병 환자라고요!

저는 세상을 저주하는 것 같아보이지만, 저주하지 않습니다. 제 인생을 저주하기 싫기 때문입니다. 제 삶을 저주하기 싫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가능성 탐구자'의 삶을 살고 싶은 것이고요. 하지만 동시에 저를 포함한 사람의 가능성을 높게 평가하지 않습니다. 막 사람이 보이면 숨이 막히는 결말로 달려가고 있구나 막 그런 생각을 해요... 제가 그래서 결혼을 못 하겠어요. 저 같은 아들을 낳는다면 저는 지구 최악의 아버지가 될 것입니다. 어쩔줄 몰라하겠지요... 아니 어쩌면 더 나은 사람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경험하지 못한 것을 아들에게 주고, 일어났던 모든 일을 일어나지 않게 해주면... 아니 아들은 태어나지도 않았는데 저는 벌써 한 30대까지 강요하고 싶은 줄거리를 서사시로 적어놨네요? 정말 가증스러운 인간이 아닐수가 없습니다.

아무튼... 저는 우물안 개구리입니다. 저는 제 내면의 우주속에 있지 않은 이야기를 상상하고 공감해서 말하는 재주가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역사적 실수도 중요하지만, 제가 실수가 아니기를 바랄 뿐입니다.
바밥밥바
19/09/02 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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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버테크 인줄....
아린어린이
19/09/02 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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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하시는 걸 좋아하는건 확실히 느꼈습니다..^^
블랙번 록
19/09/02 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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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독제자들은 다 우리는 [특별해]를 외치긴 하는데 대다수가 그냥 [보통]스럽게 끝나긴 하더군요.
그중 가장 크게 외치는 애들이 중국이구요.
정말 특별한지는 당해봐야 알겟죠?
19/09/03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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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노스는 모든 독재자... 아니 빌런... 그러니까 이야기를 망치는 자들의 이상향이 아닐까요?

마블이 정말 캐릭터를 잘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누가 살아남는지는 이야기를 끝까지 봐야겠지요.
인간흑인대머리남캐
19/09/02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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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버테크 인줄....(2)
aDayInTheLife
19/09/02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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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알못에 전공도 다른 학부생따리일 뿐이지만 잘읽었습니다. 글솜씨가.. 아우..
개인적인 의문은 이거네요. 존더베크든 대동아공영권이든 혹은 명백한 운명이든. 어쩌면 우리 나라는 우리 민족은 특별하다는 주장이 먼저인가 혹은 제국주의와 확장이 우선인가. 결국 이 나라들이 폭주하고 정복하는 역사에서 이 사상이 도화선이 된건지 혹은 그 역사에 딸려오는 부산물인건지 궁금해집니다.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도 어쩌면 사상적 근원보다는 현상에 따라, 역사에 따라 사상이 정립된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어요.
19/09/03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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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제가 저번 기생충 리뷰에서도 적었지만.

저는 극단적인 입장주의자입니다. 한국이 먼저 근대화를 했다면 파시스트 제국주의자들이 안 되었을까요? 모든 것은 입장의 문제이고, 모든 것은 위치의 문제이고, 모든 것은 최선의 문제이고, 모든 것은 맥락의 문제라면... 도대체... 도대체... 사람의 삶은 어떤 가치를 가지는 것일까요?

저는 사상과 서사를 통해서 통제를 통제한다는 착각이라도 하고 싶은 필멸자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iywaBOMvYLI
제가 좋아하는 락커가 쓴 가사가 생각나네요. "How do you own disorder, disorder"
통제할 수 없는것을 소유했다고 우기는 것은 역사라는 것을 인식하는 메타적인 현대인만이 할 수 있는 괴상한 행위겠지요.
aDayInTheLife
19/09/03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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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정치적인 사상에 따른 그런 건 잘 모르지만.. 제가 듣는 가수들 생각해보면 입장에 따라 사람이 바뀌는건 어쩔 수 없는거 같아요. 더콰이엇의 2-3집을 참 좋아하는데 지금의 더콰이엇은 그때처럼 젊고 재능있는 언더그라운드 래퍼가 아니라 성공한 오버그라운드 래퍼면서 사장님이니까요. 종신옹은 예전에 감성 충만한 찌질곡을 부르던 발라더지만 이젠 예능인이면서 아빠고, 가정이 있는 사람이니까요.

저는, 따지자면 몇몇 점들을 가지고 궤적을 그려낼 수 있는게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다만, 우리가 미래를 알수 없고, 나중에 돌아보면서 [아 그게 우리를 바꾸었구나]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건 제가 모든게 짜여져 있으면서 우리는 알 수 없다는 물리학적 생각에 꽤 경도되었던 공대생이라 그런거 일 수도 있을거 같아요. 뭐... 아직 고작 학부생이고 딴거 해볼까 고민하지만요 크크
조과장
19/09/02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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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건강유의하시고 스트레스 없는 오후 되세요~

다음글 기다리겠습니다.
므라노
19/09/02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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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시타 아십니까? 정말 갓겜입니다!

뭐 농담은 제쳐두고,
Farce님 글은 항상 재밌게 잘 읽고 있습니다. 근본적인 세계관이 극단적인 유물론으로 같기 때문이죠.
그런데도 꽤나 다른 결론이 나온다는게 흥미롭구요.

Farce님은, 이 세상은 결국 원자로 이루어진 것이니, 의미란 것은 결국 인간이 만들어낸 것일진데 그렇다면 내 삶에 확고한 의미란 없는 것 아닌가?
그런 우울에 빠져들지 않기 위해서 꾸준히 무언가를 갈구하지만, 정작 그런 관점 안에서도 나라는 미약한 인간은 설 자리는 없구나 하는게 아닌가 해요
어디까지나 제 의문스러운 독해능력과 자의적인 해석의 결과입니다만..

전 뭐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어차피 그런 거시적인 흐름이 있다면 그 안에 적응해 나가는 개인이 있을 뿐이고, 이러한 것들이 스러지고 남는 것은 전체적인 역사 뿐이라 한들 지금 현재 사는 우리 입장에서 무슨 상관입니까? 지금 무언가 생기는 것도 아니고 그 때 되면 이미 나란 존재는 사라져 있는데. 중요한건 그런 것보다 내 관심사를 어떻게 풀어나가느냐이죠.

예를들어 저는 지방민으로써 지방의 쇠락과 사투리의 소멸을 탄식하는 사람이지만, 정작 그 당사자인 제 뒷세대들은 그런걸 신경이나 쓰겠습니까?
그들이야 말이 변하든 말든 친구들이랑 노는게 중요하고, TV에서 나오는 표준어에 기반한 유행을 선도하고, 자기 앞가림 하는게 훨씬 중요하겠죠.
그들이 틀린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관심사가 다른 것 뿐입니다. 제 관심사를 그들에게 강요하는 건 폭력인 것이며 제가 상처 받는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지만 그건 자해입니다.

Farce님은 후대를 위해서의 역사란 관점을 싫어하시고 개개인에 삶에 촛점을 맞추시는데 저도 동의하지만 또 그것만이 정답은 아니라고 봐요.
중요한 것이 중요한 것인 것은 그것이 중요한 것이어서라기 보단 사람들이 그걸 중요하다고 생각해서잖아요?
독일의 존더베크든 일본제국의 군국주의든 실제의 다름보다는 다르다는 인식에서 전개가 된 것이지요.

뭐 이렇게 장황하게 중언부언 해봤자 나오는 거라고는 '그래! 그냥 내가 하고 싶은걸 하자!'같은 진부한 결론밖에 안되는게 코미디입니다만은.
단지 이 내가 하고싶은 것이 이런 개인차원을 넘어 거시적인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라면 그건 그거대로 좋습니다. 단, 상처받지 않기를.

그래서 제가 하고싶은 말이 무엇이냐구요?
저도 잘 모릅니다!
전 어디까지나 어디에나 널린 애송이에 불과하기 때문에 유익한걸 기대하시면 안됩니다!

그래도 글 읽고 이렇게 머릿속에 든 생각을 나열하는 행위 자체가 꽤나 오랜만에 재밌었습니다. 잘 즐기다 갑니다!
19/09/03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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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정치적인 사람입니다. 저는 제 목소리가 타인에게 들릴 수 있게 된다는 것에서 통제감을 얻는 Control Freak 통제광입니다. 저는 역사에 무관심한 사람에게 '깨어나라!' 외치고 싶진 않습니다. 저는 제 취향이 아닌 이야기를 듣는 것을 정말 싫어합니다. 어떤 사람이 저에게 그렇게 한다고 생각하면 짜증이 올라옵니다, 그게 저 자신이 될 수 있다면 더욱 더요. 다만 이런 의도와 달리, 글이 훈계조로 읽히셨다거나 하면 말씀해주세요. 저도 피드백이 있어야지 글이 다음에는 더 나은 MK2로 찾아뵈지 않겠습니까~

제 유물론은 반푼짜리 유물론입니다. 유아적이지요. 왜냐면, 아무리 봐도 사람은 물질의 총합이다라고 주장하는 사람이면서, 갑자기 결말부에서 커브볼을 던지거든요. 근데 이걸 낮게 보지는 말자, 왜냐면 내가 여기 포함되있어서 기분이 나빠~ 라고 결말 짓거든요. 아니 그러면, 좀 좋게 말해주던가 맨날 물질 물질 우주 우주 거리면서... 계속 글을 쓰다보면 언젠가 더 그럴싸한 개똥철학을 만들 수 있겠지요? 감사합니다.
므라노
19/09/03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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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 다시 댓글을 곱씹어보니 오히려 저야말로 괜한 오지랖으로 뻔히 훈계하는 것 같아 죄송스럽습니다.
사실 제가 하고싶었던 말은 고뇌는 좋으나 그로인해 너무 상처, 고통받지는 말았으면 이었습니다.

역시나 저 또한 Control Freak적인 면모를 긍정합니다.
어차피 저를 포함한 사람들이 이 글을 읽는건 남이 시켜서가 아니라 Farce님의 글에 매료돼서잖아요?
누이도 좋고 매부도 좋은 일입니다.

그리고 Farce님의 유물론이 반푼짜리라고 전 생각 안합니다. 전 인간이 쌓아올린 것들(철학, 문명 등)을 긍정하는 사람이거든요.
단지 그러한 것들이 정신적인 세계를 뚫고 현실로 침투할거란 생각을 철저히 부정할 뿐입니다.
아무리 눈 감고 케찰코아틀에게 기도한들 두개골이 총탄을 반사해 낼 수는 없는거잖습니까!

뭔가 다시 중구난방으로 길어진 것 같은데, 결론은 자신을 긍정하고 행복하게 살자! 정도네요. 저도 감사드립니다.
19/09/03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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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찰코아틀 이야기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크크크크....

제가 진짜 PGR에서 아즈텍 신화 관련해서는 글을 제 스스로도 정말 재미있게 잘 쓴 것 같아요. 신들의 변덕에 의해서 어쩔수 없이 파멸할 것이라는 상당히 '괴상한' 신화를 가졌던 그들은, 정말로 통제할 수 없는 서구의 발전에 운명을 선택하지 못하고 서구문명이 의도하지도 않은 천연두로 쓸려나갔지요... 사서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긍정이 여기서 필요한걸까요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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