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관병 부조리 이야기를 보면서 제 군시절이 떠올라 글을 써봅니다.

99년 5월 군번이었고 일병달고 시작했으니 00년 이야기입니다.

저는 94학번으로 대학 놀며 다니다가 뒤늦게 대학원 진학 계획을 세우고
99년에 입대하여 신교대 의무병으로 군생활을 했습니다.

의무병은 일선부대에서 지원부대 형식으로 파견 나와 비교적 편한 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았으나 저의 경우에는 제 입대 직전에 의무대가 신교대 본부중대 소속으로 편제가 바뀌어 신교대 행정병들과 함께 내무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달리 남들보다 힘든 군생활이랄 건 없었습니다만
본부중대 소속이기에 2시간의 불침번과 2시간의 초소 근무를 교대로 서야하고
의무실을 지켜야 하기에 2시간의 의무 상황 근무가 있어서
거의 비번 없이 매일 야간 근무가 있고 때로는 의무 상황 근무와 중대 근무가 겹쳐
잠이 부족할 때가 많다는 것이 어려운 점이었습니다.

힘든 건 일병이 되면서 대대장이 자기 자식 과외를 시키면서 시작 되었습니다.

처음엔 8시에서 10시 사이 2시간 동안 고1인 아들 공부를 봐주라는 것이었습니다.
갓 일병이 된 저에게 일석점호를 빠질 수 있다는 건 오히려 특혜였습니다.

그러나 채 두달이 지나지 않아 아들이 야자를 해야해서 9시는 되어야 귀가하니
공부는 10시에 시작해서 12시까지 하라는 겁니다.

취침 시간 2시간이 날아갔습니다. 그런데 근무는 그대로 서야합니다.
매일 자는 시간이 4시간이 되었습니다.

2번초나 말번초면 다행입니다.
2시간 쪽잠자고 근무서고 2시간 쪽잠자는 날이 많습니다.
때로는 2시간 밖에 못잡니다.

그나마 짬도 안되는게 점호 맨날 빠져서 군기 빠졌다는 소리 듣습니다.
그나마 군의관님이 배려해 주셔서 가끔 환자실에서 쪽잠을 잘 수 없었다면
못 버텼을 겁니다.

그래도 공부는 열심히 가르쳐서 꽤나 성적이 올랐습니다.

그런데 기분이 안 좋습니다.
내게 가르침을 받는 학생이 날 부르는 호칭이 '아저씨'입니다.
멋대로 늦게 와도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고 조그만 존중의 표현도 없습니다.

이른바 '사모'는 과일을 들여 주는데 포크를 하나만 챙겨 넣어 줍니다.
먹지 말라는 뜻이겠죠.

딱 한번 밥을 준 적이 있습니다.
전기 밥솥에 오래 담긴 밥인지 위 쪽이 말라있는데
마른 밥만 살살 퍼서 모아 제 밥 그릇에 담아 줍니다.
차라리 짬밥이 낫습니다.

병장 3호봉이 되었습니다. 일년 정도를 잠 못자고 대접도 못 받으며 지냈습니다.
이제 대대장도 그다지 무섭지 않은 짬밥이 되었습니다.

눈 똑바로 쳐다보며 단호하게
'휴가 한 번 보내 주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 이유로 휴가를 나간다면 또 다른 부조리겠습니다만
제가 생각할 수 있는 그에게서 받을 수 있는 보상은 그 것 밖에 없었습니다.

대대장은 규정에 없는 휴가를 보내 줄 순 없고
육군 도전골든벨에 참여시켜 줄테니 입상해서 포상을 따라 했습니다.

당시 정훈교재 중심으로 퀴즈를 내서 도전골든벨을 육군 단위로 하는 행사가 기획 되어 있었고
대대 대회로 예선을 하고 사단 대회로 또 예선을 해서 인원을 선발하고 군단 대회를 여는 형식으로 기억합니다.

이게 최종 대회에 나갈 인원을 선발하는 것이 목표이기에 전역이 6개월 넘게 남아야 참가 자격이 있었습니다. 거기에 본인 재량으로 참가 시켜 줄테니 알아서 경쟁해 입상해서 휴가를 타내라는 거였습니다.

네, 휴가 걸린 군인의 힘은 위대합니다. 그 잠이 부족한 상황에서도 4박5일 하나 9박10일 하나 두번 입상하고 말년휴가까지 합쳐서 근 한 달 먼저 전역하는 기분을 낼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입상하여 휴가 나가는 저에게 대대장이 한 말이 있습니다.
'괜히 대회 보내줘서 과외 일찍 끝났네'

저보다 힘든 군생활 하신 분들 많았겠지만
최근의 군부조리에 17년 전의 마른 밥이 생각나서 적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