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오랜 만에 글쓰기 버튼을 눌렀었는데 무려 4년 만의 일이었더군요.
늘 진심으로 뭔가를 끄적거리고 싶은 일이 생겼을 때만 글을 올렸으니 지난 4년 간 딱히 마음을 동하게 한 일이 없었다는 거고, 돌아 보니 참으로 쉽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10년을 훌쩍 넘겨 살면서 이 고비 저 고비 겪어 내고 아 우리 부부는 이제 크게 더 힘들 일은 없겠다 했었는데 그것과는 상관없는 또 다른 큰 무게의 짐이 계속 짓누르고 있는 요즈음이니, 인생이란 게 그런 건가 봅니다.
누군가의 영장 심사가 있는 날이군요.
지난 번 심사 때 새벽 3시까지 버티다가 꼬꾸라지고는 아침에 눈뜨자마자 검색해 보고 ‘모닝식빵’을 나지막이 읊조렸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오늘도 긴 하루가 되겠네요.
한 달 정도 지난 싱거운 일상 하나 올리면서 일상스럽지 않은 하루의 긴장과 초조함 달래려 합니다.
회원 분들께도 그런 공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일요일 마다 어디로든 무엇이든 아점을 먹으러 다닌지 오래,
당연히 두 아이들도 함께 했었는데 언제부턴가 이런 저런 핑계 대며 떨어져(?) 나가고 부부 둘만 나서기 시작한 게 벌 써 꽤 된 듯 하다.
요즘은 한 참 어느 중국 집을 한 달 넘게 다니고 있는데, 딸 아이는 일어날 기미가 안 보이고, 아들 녀석에게 같이 갈래 하고 떠 봤더니 좋아하는 짬뽕이라는 미끼에 낚여 오랜 만에 셋이 함께 가게 되었다.
눈만 마주쳐도 싸울 거리를 만들어 내는 남매 지간인지라, 딸이든 아들이든 하나만 데리고 다니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둘을 같이 데리고 나가면 쌍심지 켜고 으르렁 거리는 꼴 밖에 볼 게 없고 어느 쪽에든 말 시킬 여지도 없는데, 하나만 있으면 그렇게 순하고 이뻐 보이고 이 말 저 말 걸 틈도 많다.
오랜만의 아들의 동행인지라 더욱 흥분한 아재는 싱거운 말들을 아들에게 건네고, 뭔가 반응이 썩 내 맘 같지 않은 살짝 거시기 한 상황이 이어진다. 더 짜증나는 건 눈치 백단인 아내가 지금 내 심리상태를 백프로 알고 있다는 거다.
급기야 찌질하게도 애꿎은 아내에게 불똥을 적당히 튀기고,
되도 않는 성질을 받은 아내는 먹다 말고 눈을 있는 대로 부라리며 나를 쳐다본다.
‘빨랑 어떻게든 백기 들라는 저 눈초리’
‘근데 내가 지금 아들 놈 때문에 기분이 좀 상해 있는 거 니도 알잖아’
‘그러니 좀 이해해 주고 얼른 먹기나 하렴’
타당한 이유없이 자기한테 성질 부리는 거 무지하게 싫어한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내가 잘 한게 없다는 제스쳐를 어떻게든 보였으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넘어갈 사람인 거 뻔히 알면서도, 내 성질을 못 이겨 백기 들 의사가 전혀 없다는 표시로 어금니를 있는 대로 물어 턱근육을 과시해 버렸다.
“아 진짜 밥 먹는데”
거두절미한 한 마디 뱉어 내며 숟가락을 거의 떨어뜨리듯 내려 놓음과 동시에 팔짱을 끼고 내 얼굴이 안 보이도록 고개를 있는 대로 돌려 버리는 아내.
아직 아들 놈이 덜 먹은 상태라 부부는 그렇게 서로 먼 산 보며 침묵의 시간을 보낸다.
아들이 다 먹은 것을 확인 하고, 옹졸한 아재는 젤 먼저 벌떡 일어나 음식점을 박차고 나온다.
차에 먼저 가서 보고 있자니 뒤따라 나온 아내가 아들 녀석에게 뭐라 한 마디 던지고는 어디론가 터벅 터벅 걸어 가고 시무룩해진 아들 녀석이 내 쪽으로 걸어온다.
“엄마가 아빠랑 가래요..”
나 같은 놈이 운전 하는 차 타느니 어딘지 몰라서 하루 종일 헤매는 한이 있어도 내 알아서 갈련다구나.
여태껏 무슨 일이 있어도 한 번도 저런 적이 없었는데, 쓸데없이 사람 피곤하게 하는 스타일이 아닌 사람이니 지금 저 행동은 그만큼 확고한 의지에서 나온 모습이겠고, 따라서 길거리에서 붙잡고 어쩌고 하는 볼썽 사나운 행동은 지금 이 순간 젤 해서는 안 될 행동이다 생각하고 나도 집으로 와 버렸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올 겨울 들어 젤 추운 날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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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과 함께 귀가하고 얼마가 지나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어잇 추워”
콩콩 들어오며 내뱉는 한 마디엔 노여움 따위라곤 전혀 없고 오히려 발랄함 마저 묻어 나온다.
“야 이거 먹어”
걱정하며 나와 보는 아들 녀석에게 중국 호빵 봉지를 하나 건네고 이내 아내는 컴퓨터가 있는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이 추운 날씨에 남편이랑 틀어지고 낯 선 동네에서 집에 오면서 어떻게 그런 모습으로 들어오는 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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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라도 타야 하는 건가 했었는데 큰 길로 나서자마자 전철 역이 눈에 띄어, 남편 때문에 재수 없었는데 이제 운수 터지네 하며 좋아했겠지.
나도 여긴 처음인데 하면서도 환승을 물어 보는 아주머니에게 최선을 다 해 가르쳐 주며, 누군가에게 도움이 됐다는 생각에 뿌듯 했을 거야.
하얀 눈 쌓인 창 밖 풍경에 적당히 얼굴을 건드려 주는 따땃한 햇살까지, 오랜 만의 느낌에 창에 얼굴 기댄 채로 살짝 미소도 머금었을 거고.
집 근처에 도착해서 좋아하는 중국 호빵 살 생각에 애처럼 설레여 했겠지.
집 바로 앞 골목, 아찔하게 만드는 칼 바람 맞으며 오랜만에 내가 살아있음을 새삼 느꼈을 거야.
더럽고 치사하게 남편이 운전하는 차 타고 오며 분한 상황 곱씹는 대신,
짧지만 혼자만의 자유 만끽하며 간만에 가져 본 일상 아닌 일상의 고마움이, 더 담아 둘 가치없는 상황과 감정을 모두 날려 버렸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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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있는 방으로 들어가 보니 중국 호빵을 아작 아작 먹으며 인터넷 탐방에 열중이다.
얼른 날 좀 봐 주렴.
내가 미안해 하고 있는 거 알고 있지.
너도 화 다 풀린 거 내가 알고 있어.
“뭐 이씨.”
말 없이 개폼 잡고 서 있는 나를 훌쩍 한 번 고개 돌려 보며 저렇게 저런다.
니는 그렇게 그래도 나는 품이 넓은 사람이니 한 마디 더 건낼게.
“쫌 있다 사우나 하러 같이 갈래?”
“내가 미쳤냐!!!”
진짜 화가 다 풀렸네 우리 강아지?
일요일 저녁 마다 본가에 가는 지라 시간이 되면 별 말 없이 다들 나갈 차비를 한다. 각자의 공간에서 볼 일 보다 각자 필요한 시간부터 부산스럽다.
화장대 앞에서 머리를 매만지는 아내를 쓱 한 번 쳐다 보고는
“오늘 뭐 먹고 싶은 거 없니?”
“응”
오오 대답하는 목소리가 썩 나쁘지 않다 빨랑 다른 말을 시켜야 한다 무슨 말을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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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20년을 향해 달려가는 부부는 그렇게 또 하루를 보냈도다.
어느 때 보다도 아내를 만족시켰을 그 얼마 되지 않은 시간에 내가 없었음이 어쩌면 가장 큰 이유였을 지도 모르지만 뭐면 어떠랴!
아내가 아무 것도 따지지 않고 저렇게 날 보며 웃음 짓고 있는데!
모든 것이 완벽하고 더 바랄게 없어!
(훌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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