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전후 바로 직후
역사에 나오는 민족자결주의나 베르사유 조약 같은 건 다 생략하고
연합군은 라인란트에서 주둔하게 됩니다. 1929년까지 영미프과 벨기에 3국은 이곳에 군대를 주둔했습니다. (미군은 23년까지)
나머지 패전국과 혁명이 일어났던 러시아는 혁명과 폭동 사이의 헬게이트가 열렸습니다.
독일만 해도 독일 혁명이 일어나면서 1918년 겨울부터 23년까지 거의 준내전급의 전쟁이 발생했습니다.
- 전쟁 중 노획된 영국 전차, 독일 혁명 기간 동안 보수주의자들이 베를린에서 사용-
사회주의자들은 1919년 시기 로자 룩셈부르크 등 주축 인물들이 암살 당하면서 잠잠해졌지만
그 후 극우들이 난동을 피우며 계속해서 바이마르 공화국을 혼란시키고 있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뮌헨에서 폭동을 일으킨 아돌프 히틀러였죠.
-맥주홀 폭동 당시 사진(1923)-
이는 다른 패전국에서도 마찬가지였고 새로 독립한 다른 신생국(폴란드, 체코 등)에서도 혼란은 계속되었습니다. 이시기
이 혼란의 끝에 들어온 건 대다수 국가에서는 극우 정부였습니다.
특히 독일 같은 곳에서는 워낙 드라마틱 하게 패하다 보니 6월까지 이기고 있었는데 11월에 항복했다는 진실이 거짓처럼
느껴졌고 내부의 적 때문에 졌다는 생각이 팽배졌습니다. 심지어 자국내에서는 전쟁도 안했으니 말이죠.
패배에 큰 책임이 있었던 루덴도르프는 스스로의 보신을 위해 이걸 주장하는 극우 지도자 히틀러와 연결되었고
이게 나치 정권이 들어서는데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2) 전쟁 피해
독일은 1차 대전 당시 총 180만이 죽고 424만이 다쳤습니다. 프랑스는 138만이 죽고 360만이 다쳤죠.
영국은 94만이 죽고 230만이 다쳤습니다. 미국의 경우 11만이 죽고 21만이 다쳤습니다.
미국은 비교적 피해가 적었고 영국과 독일은 인구의 5%의 사상자를 프랑스는 무려 10%가량이 죽거나 다쳤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4년간의 전쟁보다도 1918년 가을 부터 유행한 스페인 독감으로 2천만이 죽으면서 더 많은 사람이
죽었다는 겁니다.
병력의 1/8이 죽었으며 사상자중 1/5이 전사자 였습니다. 이는 오히려 나폴레옹 전쟁에 비하면 낮았고 미국독립전쟁
에 비하면 정말 낮은 수치였습니다.
어떻게 보면 1차 대전의 전설은 그 많은 사상자보다는 이 사상자에 비해 정말 형편 없었던 3년간의 성과가
그전설을 만들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진실이 어찌되었든 영프독 모두 사회 시스템에 심각한 피해를 잆었으며 한세대가 사라진 것은 분명한 사실이
었고 이는 후의 30년을 결정지었습니다.
(3) 신시대
전쟁 후 이상적인 민족주의는 줄어 들었지만 정말 그게 극복되었는지는 후에 사건을 보면 불확실합니다.
하지만 전쟁에 대한 생각은 적어도 민주주의 국가 3국 사이에서 많이 변화했습니다. 전쟁은 피해야 할 것이라는
것 말이죠. 그전까지는 영광스러운 전쟁에서 전쟁은 저주로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나온게 국제 연맹이었으나
신시대의 주인공 미국이 빠진 걸 생각하면 의미가 없는 것이었죠.
한편 새로운 시대를 지배한 건 바로 총력전 사상이었습니다. 루덴도르프의 아이디어- 승리를 위해서는 국가의 사생활
및 모든 국가 역량을 강력한 누군가가 통제하고 지휘해야 한다는 게 모든 세계를 지배하기 시작합니다.
1차 대전 말에서 이게 얼마나 틀렸는지 루덴도르프 스스로가 증명했지만 독일이나 독재 국가에서는
더 통제가 안되어서라고 실패의 원인을 돌렸고 좀더 잔인한 통제 체계와 보다 강력한 관료주의를 발전시켰습니다.
그 대표적인 나라가 바로 독일과 소련이었는데 극우 극좌와 상관 없이 둘은 이런 면에서 상당히 유사한 모습을
보입니다.
결론적으로 두 국가 모두 루덴도르프의 사상적 아이였던 것입니다. 물론 한국 역시 이 루덴도르프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4) 새로운 전쟁
독일의 경우에 후티어 전술이나 새로운 조직 체계를 더욱 발전시켰지만 마지막 백일 대공세에서 영국에서 패한
것을 좀더 연구하고 받아 들였습니다. 영국이 사용했던 전차에 관심을 가진 그들은 돌격대 대신 이 전차를 공세의
선두로 두면 어떨까 생각했으며 그렇게 나온게 바로 전격전이었습니다. 물론 그 강점이나 단점 모두 그런 점에서
1차 대전 후티어 전술의 한계에 맞닿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영국의 경우에는 마지막이 너무 좋았기 때문에 그렇게 개선점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국가역량이 줄어드는
과정에서 국방에 대해 새로운 걸 투자하기 어려웠고 실패보다는 성공이 너무 강렬했기 때문에 2차 대전에서는
1차 대전 이상의 무언가를 창출하기 힘들었습니다.
프랑스의 경우 전쟁 초의 공격일변도에서 너무 큰 피해 덕에 후반 부터는 소심함과 방어 중심으로 변화했습니다.
이게 그대로 발전하여 만들어진 마지노 요새였습니다. 또한 사회적으로 너무 손실이 컸기에 마찬가지로 국방에
투자하거나 새로운 무언가 생각하기에 모든게 부족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미국의 경우 전투 경험은 많지 못했지만 많은 유능한 장교들에게 영감을 줄수 있었습니다. 당장 1차 대전에 비해
2차 대전에서 장비나 조직, 훈련 모두가 일신해서 전쟁에 참여할 수 있었던 건 1차 대전에서 경험 때문이었습니다.
마지막은 참 두서 없게 쓴 거 같습니다. 이만 연재를 마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