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아라타입니다..
이 글은 예전 제가 올린 글에서, 링크가 깨진 사진들을 삭제하고,
새로운 사진과 텍스트를 보충하여 더욱 길게 쓴 게시물입니다.
두고두고 저도 다시 보기 때문에, 글을 보정하고 보충해서 여러분들께도 다시 보여드립니다.
그래서 이번 글은 좀 깁니다....
아폴로 프로젝트 시작합니다.
[아폴로 (Apollo)]
1. 제우스의 아들로 고대 그리스 태양의 신이자 예언, 의료, 음악, 시의 신
2. 미 항공우주국 NASA의 달 탐사 미션 공식 프로젝트 명칭
3. 옛날 빨대형 불량식품(이라고 알고있지만 실은 불량식품이 아닌) 과자 이름...;;
[아폴로 프로젝트 [Project Apollo]] (1961~1972)
- 세 명의 미국 우주비행사를 달에 보내 착륙시킨 뒤 무사히 지구로 귀환시키는 것
1. 1961년 5월 25일, 존 F케네디 미합중국 대통령은 10년 내에 달에 우주비행사를 보내겠다는 목표를 발표합니다.
그리고 다시한 번 1962년 9월 12일 휴스턴 연설에서 달에 사람을 보낼것이라고 확신하는 연설을 합니다.
어찌보면 대통령의 한 마디에 너무 무리한 추진이 될 수도 있는 이 아폴로 프로젝트의 배경으로는,
일제 식민지시대도 아닌 지금도 한일전 국가대표 축구하면 목숨걸고 하는데,
당시 냉전시대 소련이 미국보다 먼저 유인우주선을 발사하여 지구를 한바퀴 돌고오는 지구역사상 최초의 업적을 남김으로써,
이래선 안된다 따라잡자하는 시대적 배경이 자리잡고 있었고,
무엇보다 케네디 대통령의 미사일 방어에 우주개발기술을 접목시키려 했기 때문에 궁극적인 목적은
소련으로부터의 미사일 방어 기술 확보에 이 아폴로 계획이 필요했기에 추진하려 했던 것입니다.
당시 소련의 로켓기술력이 우주기술로 나타날 때, 미국은 정말 핵미사일에 대한 두려움이 굉장했었습니다.
소련이 우주에 사람을 보낼 정도면 이미 미국영토에 핵탄두를 떨어뜨릴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는 반증인 셈이죠.
하여 케네디 대통령은 우주기술력의 우위를 점하면 소련보다 로켓기술에 대한 우위를 점할 수 있다고 판단하게 된 것입니다.
2. 그 후 NASA에서 조차 10년 이내에는 불가능 할 것 같다는 의심이 들기도 했지만 대통령의 목표를 거스를 수는 없기에
그간 그들이 보유한 모든 로켓 기술과 우주 개발 기술을 총 집대성하여 프로젝트를 이끌게 됩니다.
탐사 방안으로는,
- 직접 도달 : 하나의 강력한 로켓으로 달에 착륙한 뒤 귀환한다.
- 달 궤도 랑데뷰 : 그 하나의 로켓에 궤도선과 탐사선을 실어 지구 궤도에서 분리한 후 달 궤도에서 다시 만나 도킹
이 두가지가 결정되고 이에 따른 로켓으로 강력한 노바로켓인
[새턴 V 3단계 로켓]이 결정됩니다.
- 엄청난 위용의 새턴 v 로켓
[본격 아폴로 계획 시작]
3. 그 후 1967년, 휴스턴에서는 달탐사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본격적인 아폴로 계획에 돌입하게 되면서
사상 첫 유인우주선인 아폴로 1호 계획이 실현되게 됩니다.
하지만 이 1호는 1967년 2월 21일의 목표 출시 날짜와 함께 열심히 훈련훈련 하던 중,
그만 1월 27일 발사테스트 중 사령선내 화재가 발생하여 아래 세 승무원이 불에 타 죽게됩니다.
그 화재는, 사령선내 산소 농도를 높이다가 높은 산소농도내에서 엄청난 길이의 전선에서 그만 스파크로 인한 불이 발생한 것입니다.
즉, 발사도 못해보고 이 승무원 3명은 목숨을 잃게 되고, 나사 역시 엄청난 손실로 아폴로 계획을 시작하게 된 셈이죠..
아폴로 1호의 세 승무원
- 거스 그리섬
- 애드워드 화이트
- 로저 채피
당시 사령선 화재사고 후 내부... 처참합니다..
4. 그 후 아폴로 2, 3, 4, 5, 6호까지 모두 무인 로켓 테스트만 있었습니다.
이 5번의 로켓 테스트에서 미국은 엄청난 예산을 쏟아부으며,
그 돈에 걸맞게 상상 이상의 로켓 기술을 가지게 됩니다.
이 테스트가 모두 1966년 ~ 1968년까지 2년안에 있던 일이었고,
그 때 우리나라가 뭘 하고 있었는지(새마을운동?) 생각한다면 미국의 위엄을 간접적으로 다시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진정 후덜덜한 나라이며, 현재 세계의 패권을 쥘 수밖에 없습니다.
과학기술이 곧 국력이죠.
아폴로 2호 발사
아폴로 3호 발사
아폴로 4호 발사 대기
아폴로 5호 발사 대기
아폴로 6호 발사 장면..
5. 1968년 1호의 화재로 인해 대폭 개선된 사령실을 테스트하기 위한 아폴로 7호에서 드디어 3명의 비행사가 탑승을 하게 되고,
지구를 160바퀴 돌고 귀환하는 임무를 완수하게 됩니다.
이 때 역사상 처음으로 인간의 우주비행이 TV에서 생중계 되기도 했습니다.
발사중인 아폴로 7호
아폴로 7호로부터 분리중인 2단 로켓
6. 그리고 2개월 뒤 아폴로 8호에서 새턴 V 로켓에 사람을 실어 우주로 향하는 실험이 이루어졌었고,
이 윌리엄 앤더스라는 우주비행사는 완전한 달 궤도를 20시간 돌면서 인류 사상 처음으로 달의 뒷면을 목격한 인물이 됩니다.
7호는 단순히 지구를 돌며 3인승 우주선의 기능을 최종적으로 확인하는 실험테스트였고,
이 8호가 본격적으로 우주공간(달)으로 사람을 날려 보낸 비행이었습니다.
발사 준비중인 아폴로 8호
하지만 이 아폴로 8호는 아주 짧은 기간의 미션 수정 및 준비기간을 가졌기 때문에 당시 아주 불안한 비행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습니다.
이유인 즉, 미 CIA에서 소련이 극비적으로 달 탐사를 위한 신형 로켓을 개발하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하였고,
나사는 즉시 소련보다 뒤쳐져 있다고 생각하여 계획에도 없던 달 궤도 비행으로 미션을 수정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윌리엄 앤더스가 촬영한 지구 사진
대기권으로 귀환 중인 아폴로 8호
8호는 준비가 부족한 만큼 달 궤도를 조금이라도 빗나갈 경우 우주미아가 될 가능성은 100%였었습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주어진 임무를 완수하고 지구로 무사히 귀환하게 됩니다..
바다에서 구조된 아폴로 8호의 사령실
7. 그리고 3개월 뒤, 사령선만을 가지고 달 궤도를 돈 8호 성공에 힘입어 우주에 착륙선까지 갖고가서
지구 궤도에서 달 궤도와 마찬가지로 아폴로 계획 전체에 필요한 우주선 테스트를 아폴로 9호에서 하게 됩니다.
아폴로 9호 발사!
임무 수행중인 데이빗 스콧 사령선 선장
아폴로 9호의 달 탐사선
이 9호의 실험으로 인해 아폴로 우주선으로 인한 궤도상에서의 도킹과 랑데뷰가 가능하다는 것이 증명된 것입니다.
이들은 열흘간 우주에 머무르면서 전체적인 실험을 완수하고 귀환하게 됩니다.
8. 그리고 약 2개월 뒤, 네번째 유인 우주선이 아폴로 10호의 이름을 걸고 발사되게 됩니다.
이 10호는 달 탐사 착륙을 위한 최종 리허설을 목적으로 발사되었고, 그 임무에 맞게 달 궤도를 선회하면서
착륙선을 달의 15km까지 접근시키며 지구와의 통신상태등 모든 문제들을 점검하게 됩니다.
하지만 실제 착륙은 미션에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 사령선은 귀환하고, 탐사선은 아폴로 계획 중 유일하게 온전체로 남아 달 주변을 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10호는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컬러 TV로 생중계 되었습니다.
아폴로 10호의 새턴 v 로켓
구조되는 아폴로 10호 사령선
실제 아폴로 계획 중 10호까지의 발사는 모두 11호를 위한 실험단계일 뿐이었습니다.
이 단계까지 엄청난 돈을 쏟아부으며 소련에 비해 월등히 앞서간 미국의 과학기술은 드디어 11호부터 17호까지
무려 7번의 달 탐사를 이루어 냅니다. (13호의 실패로 실제 달 탐사는 6번이 전부임)
일반 사람들은 닐 암스트롱과 버즈 올드린 만 달에 다녀온 줄 알고 있는데,
17호까지 무려 18명이 달을 다녀왔습니다. (13호가 성공했다면 21명입니다.)
더이상의 음모론은 무의미한 얘기일 수 밖에 없죠.
[인간이 달에 다녀왔다는 증명, 아폴로 11호 - 17호]
9. 대망의 아폴로 11호.
인류 최초의 달 탐사목적 착륙선.
아폴로 11호는 7월 16일에 쏘아올려져서 7월 20일에 달에 탐사선을 착륙시킵니다.
발사중인 아폴로 11호
당시 관제센터 상황
왼쪽부터,
- 11호선장 닐 암스트롱
- 11호 사령선조종사 마이클 콜린스
- 11호 달 착륙선 조종사 버즈 울드린
암스트롱과 울드린은 달에 착륙하여 탐사를 한 최초의 우주인이 되었고 당시 콜린스는 귀도선에 남아 궤도를 돌고 있었습니다.
이 11호의 성공으로 케네디의 목표 달성은 이루어졌으며, 소련을 앞지르는 우주기술 확보를 공식화 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이 발사과정을 지켜보기 위해 근처 바닷가와 고속도로 등에는 백만명이 넘는 인파가 몰려들었으며,
전 세계에서 약 7억명이 지켜보았다고 합니다.
이 11호는 무사히 지구 궤도를 통과해 달 궤도로 사령선과 탐사선이 진입하게 됩니다.
이 때가 7월 19일.
이들은 달 궤도를 13바퀴정도 돌면서 미리 무인 탐사선을 통해 구상해놓았던 착륙지점을 찾습니다.
고요의 바다라 불리는 지점의 20km 상공에서 그들은 착륙지점을 확인하고,
7월 20일 사령선과 착륙선은 분리 작업에 들어갑니다.
분리 직후 사령선에서 찍은 착륙탐사선, 이름은 '이글'
저 안에 암스트롱과 올드린이 타고 있습니다.
분리되고 나서 착륙선은 엔진을 점화해 궤도를 벗어나 달 표면으로 하강합니다.
얼마 후 암스트롱과 올드린은 무엇인가 잘못되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정확한 착륙지점에서 수 마일 벗어나 울퉁불퉁한 지점으로 착륙할 것 같았기 때문에
암스트롱은 수동으로 조종을 해가며 올드린이 불러주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직접 조종하게 됩니다.
그 때 착륙선에서는 경보가 울리며 휴스턴에서는 경보에 상관없이 착륙하라는 지시를 받게 되어,
그들은 창 밖의 표면을 직접 보아가며 가까스로 달 표면에 무사히 착륙하게 됩니다.
닐 암스트롱의 First Step.
착륙선에 탑재된, 슬로우 스캔 TV가 촬영한 모습입니다.
이 장면은 동영상 속의 한 장면입니다.
동영상 속의 닐 암스트롱은 이렇게 말을 하며 계단을 하나씩 내려옵니다.
I'm, ah... at the foot of the ladder. The LM footpads are only, ah... ah... depressed in the surface about, ah.... 1 or 2 inches,
although the surface appears to be, ah... very, very fine grained, as you get close to it.
It's almost like a powder. (The) ground mass, ah... is very fine.
(지금 착륙선의 다리 위에 서 있다.
다리는 달 표면에 1 인치나 2 인치 정도 가라앉고 있지만, 달의 표면은 가까이서 보면 꽤…, 꽤 매끈하다.
거의 가루와 같이 보인다.
달표면은 분명히 보이고 있다.)
I'm going to step off the LM now.
(지금부터 착륙선으로부터 다리를 밟고 내려간다.)
그리고는 땅에 발을 딛으면서 인류사상 가장 위대한 한 마디를 합니다.
That's one small step for (a) man, one giant leap for mankind.
(이것은 한 명의 인간에게 있어서는 작은 한 걸음이지만, 인류에게 있어서는 위대한 도약이다)
암스트롱이 촬영한 올드린의 모습.
올드린 머리 부분으로 암스트롱이 보입니다.
언듯 무슨 스튜디오에 조명 켜놓고 잇는 듯 보이기도 하지만, 확실한 달 표면이지요.
그리고 그들은 본격적인 탐사에 들어가게 됩니다.
예전된 미션을 모두 수행한 다음 올드린이 먼저 수십kg에 달하는 수집품을 가지고 낑낑대며 탐사선에 오릅니다.
그 뒤 암스트롱은 단 번에 사다리 3단까지 점프해가며 올라 탑니다.
그리곤 이제 더 이상 필요없는 물품들을 달로 내팽겨치고 탐사선의 무게를 가볍게 만든 뒤 달에서의 첫 잠자리에 들게 됩니다.
그 후 올드린은 무언가 작업을 하던 도중 실수로 그만 엔진가동 스위치를 부수어 버리게 됩니다.
그들은 볼펜대로 그 스위치를 대신해 엔진을 점화하는데 성공하였지만,
만약 엔진을 점화할 수 없었다면 아마 이들은 영영 달에 머물러야 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리고 귀환 전, 마지막 날 밤에 세명의 우주인들은 우주에서 텔레비젼 인터뷰에 이와같이 대답했습니다.
닐 암스트롱 -
이 비행이 실현된 것은,
가장 먼저 역사에 있어 무수한 실적을 남긴 과학사의 위대한 선인들,
다음에 이것을 완수하고 싶다는 의지를 나타낸 미국 국민,
그리고 그것을 이행한 정부와 의회, 한층 더 우주선이나 새턴 로켓, 사령선 콜럼비아, 착륙선 이글,
선외 활동 장치, 달표면에 있어서의 작은 우주선이라고도 말해야 할 우주복 등을 만들어낸 정부 기관이나 기업 등 많은 사람들 덕분이다.
우리는, 이 우주선을 설계하고, 시험하고, 완성시키기 위해서 심혈을 기울인 모든 미국인에 진심으로 감사의 뜻을 바치고 싶다.
그리고 또 이 방송문을 듣는 모든 사람들에게, 신의 축복을.
이상, 아폴로 11호로부터
버즈 올드린 -
인간 세 명을 달에 보낸다는 위업은, 정부나 기업뿐만 아니라, 국가나 혹은 그 이상의 것에 의해서 완수할 수 있었다.
이것은, 인간의 미지에 대한 호기심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며칠 전의 그 달표면에서의 사건을 생각해 낼 때, 찬송가의 일절이 생각난다.
마이클 콜린스 -
우리를 쏘아 올린 새턴 V 로켓은 극히 복잡한 기계이지만, 모든 부품은 완벽하게 작동해 주었다.
우리는 이 기계가 아무 문제도 없게 일해 준다는 신뢰를 항상 가지고 있었다.
이 비행은, 다 셀 수 없는 사람들의 피와 땀과 눈물에 의해서 가능하게 되었다.
지금 당신이 보고 있는 우리 세 명은, 몇천, 몇만의 인간에 의해서 유지되고 있다.
그리고 나는, 그 모든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고마워요!
7시간의 수면 뒤에 이들은 지구로의 복귀를 위해 사령선과의 도킹을 위해 달 궤도로 진입하고 도킹에 성공하게 된 후,
사령선을 타고 7월 24일 태평양에 무사히 귀환하게 됩니다.
달에 착륙한 다음 날, 미국 전역은 인류의 작지만 거대한 첫 걸음에 흥분을 감추지 못합니다..
아마 미국인들의 마음 속에는,
냉전시대 소련의 핵미사일 위협을 오늘 달 착륙을 기점으로 미국이 확실히 방어할 수 있다는 확신도 같이 들었을겁니다.
이들 세명을 환영하는 닉슨 대통령
그들은 복귀 후 혹시나 모를 달의 세균이나 바이러스를 가지고 오진 않았는지 의심되어
특별한 격리 병동에 잠시동안 머물게 됩니다.
그 후 이들은 온 국민의 영웅이 되어 지금도 미국을 대표했던 우주 비행사로 남아있게 됩니다..
얼마전 40주년 기념식에서는 오바마 대통령과의 면담도 방송된 것 같았습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만큼 암스트롱은 사회와 분리된 생활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온갖 음모론과 달에서 못볼걸 보고 와 정부로부터 사회와의 격리조치가 내려지고 당시 모든 통신은 암호회 처리되어 보관중이다고
하는데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어디서부터 거짓인지는 정말 암스트롱 본인과 올드린만이 알고 있겠지요.
하지만 그들이 달에 가지 않았다는 음모론은 완벽한 거짓이라는 말씀입니다.
그것은 음모론이 아니라 거짓말입니다.
10. 그리고 4개월 후, 아폴로 12호는 다시 한 번 인간을 태우고 달에 착륙합니다.
왼쪽부터,
- 12호선장 찰스 콘라드
- 12호 사령선조종사 리처드 고든
- 12호 달 착륙선 조종사 앨런 빈
탐사선에서 내려오고 있는 앨런 빈 착륙선 조종사
이 12호는 착륙을 아주 성공적으로 하여 1967년 달 탐사를 목적으로 보내진 무인 탐사선 서베이어 3호를 발견하고
비행사들이 직접 걸어서 갈 수 있었습니다.
서베이어 3호와 저 멀리 보이는 12호 착륙선
이 12호는 31시간동안 달에서 활동하다 지구로 무사히 귀환하게 됩니다.
이 때 30kg가량 되는 월석을 가지고 귀환합니다.
구조되고 있는 아폴로 12호
11. 그리고는 불운의 아폴로 13호.
다행히도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막대한 비용으로 달까지 갔는데, 아무런 소득없이 돌아오니 불운한 13호...
발사 직후부터 예정보다 빨리 정지해 버린 로켓을 비롯해 산소탱크가 폭발해 버리는 등 악순환이 연속되게 됩니다.
비행사들은 이 모든 실패과정을 시뮬레이션 해 보았지만 실제로 할 지는 꿈에도 몰랐던 것이지요.
아무튼 달 궤도만 선회하고는 바로 지구로 귀환하게 됩니다.
이 13호에 대한 자세한 사고 내용은 지난 번 올렸으니 대체하세요..
[스압, 우주이야기] 아폴로 13호의 Successful Failure
https://pgr21.co.kr/?b=8&n=40657
귀환을 위해 분리된 13호의 기계선.
옆 덮개가 폭발로 인해 유실되었습니다.
비행사들은 처음 폭발을 운석에 의한 충돌로 착각하였습니다.
13호의 착륙선.
13호의 모든 실패과정이 착륙선이 착륙하기 전에 벌어진 일이라 천만 다행이었습니다.
만약 착륙선이 착륙한 뒤에 산소탱크 등이 폭발하였다면, 부족한 물자로 인해 비행사들은 모두 사망하게 됩니다.
귀환하여 구조된 13호와 승무원 3명
12. 그 후 1971년 1월 31일.
아폴로 14호가 발사되어 5일 뒤 달 착륙에 성공합니다.
왼쪽부터,
- 14호 사령선조종사 스튜어트 루사
- 14호 선장 앨런 셰퍼드
- 14호 달 착륙선 조종사 애드거 미췔
달 위의 14호 선장 앨런 셰퍼드
머큐리 프로젝트의 비행사로는 처음으로 달에 발을 디딥니다.
또한 처음으로 선장을 위한 표시인 붉은색 띄를 우주복에 새깁니다.
화면으로 선장을 구별하기가 워낙 어려웠다고 하네요.
원래는 13호 선장에도 적용되었으나 실제 달에 가지 못하였기에 14호부터 적용된 걸로 했고,
이 후 타국 비행사들도 선장 구별을 위해 이 띄를 우주복에 그리게 됩니다.
그리고 이 셰퍼드는 달에서 골프를 치기도 했고, 삽을 이용해 운동을 하기도 했습니다.
달에서 지도를 읽는 착륙선 조종사 애드거 미쉘
13. 그 후 6개월 뒤, 7월에 아폴로 15호가 달에 도착하게 됩니다.
데이빗 스콧 선장은 달에 3일간 체류하면서 가지고간 월면주행차로 10km내외의 거리를 활보하고 다니면서, 70kg의 샘플을 채취하게 됩니다.
왼쪽부터,
- 15호 선장 데이빗 스콧
- 15호 사령선조종사 알프레드 워든
- 15호 달 착륙선 조종사 제임스 어윈
박물관에 보관중인 스콧 선장의 우주복
제임스 어윈 착륙선 조종사와 월면주행차 모습
이들은 각종 카메라와 질량 분석기등의 기구를 이용해 다양한 탐사미션을 수행했습니다.
그리고 이 때 스콧 선장은 깃털과 망치를 동시에 떨어뜨리면서
중력 아래에서의 물체 낙하 비율은 질량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것을 직접 보여주게 됩니다.
그 밖에 스콧은 저중력에서의 시계를 실험해주고 하는 등의 개인적인 부탁등을 들어주는 이유로 귀환 후 불명예를 안기도 합니다.
14. 그 후 1972년 4월 16일 아폴로 16호가 사람을 태우고 달에 도착하게 됩니다.
존 영 선장 및 찰스 듀크 탐사선조종사는 20시간동안을 달에 머무르며 100kg가량의 샘플을 채취하게 되고,
역시 월면차를 이용해 이리저리 활동을 하다가 달에서 그 성능을 확인하면서 18km/h의 속도를 기록해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합니다.
- 16호 선장 존 영
- 16호 사령선조종사 켄 매팅리
- 16호 달 착륙선 조종사 찰스 듀크
작업중인 존 영 선장
월면차와 찰스 듀크
이들은 돌아오면서 착륙선을 떼어냈고 그 착륙선은 1년 뒤 달 표면으로 추락하였지만 그 지점은 아직 확인이 안되고 있습니다.
15. 그리고 약 7개월 뒤, 12월 아폴로 프로젝트의 마지막 달 탐사계획인 17호가 발사됩니다.
이 아폴로 17호는 2013년 현재까지 마지막으로 달에 착륙한 유인 탐사선입니다.
- 17호 선장 유진 셔넌
- 17호 사령선조종사 로널드 애번스
- 17호 달 착륙선 조종사 해리슨 슈미트
아폴로 17호의 발사 장면
세 명의 승무원들은 월면차를 타고 무려 30km나 이동을 하면서 110kg정도의 샘플을 채취하게 됩니다.
이 세 명의 우주비행사 중 슈미트 탐사선 조종사는 최초로 과학자 출신입니다.
이는 지질학자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우주 비행사가 되어 달을 밟은 사람입니다.
성조기를 들고있는 해리슨 슈미트.
슈미트는 선조가 체코인이라하여 체코깃발도 함께 달에 두고 돌아왔습니다.
저 멀리 지구가 달처럼 보입니다.
확실히 성조기 윗부분은 막대로 고정되어 있어 성조기가 인위적으로 펴지게끔 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7호의 월면차.
우주복에 빨간띠가 보이는 것으로 보아 존 영 선장.
이들이 찍은 완벽한 구도의 지구.
이들은 이 사진을 위해 1.3초간격의 시간동안 카메라를 조정하여 멋진 샷을 성공시켰습니다.
이것은 신의 조합이라고 불릴만큼 너무나 완벽한 카메라 앵글과 지상 관제소와의 교신의 결과입니다.
이전 15, 16호에서는 실패한 작품이 17호에서 성공된 것입니다.
이들의 무사 귀환으로 아폴로 프로젝트는 성대한 막을 내립니다.
18호도 계획되었지만 베트남전 등등의 이유로 무산되게 되고 그 후 인류는 아직 그 다음 달로의 행보를 이어가지 않고 있습니다.
이로써 케네디 대통령의 목표, 아폴로 프로젝트는 미국의 막대한 자금으로
전 세계 사람들에게 우주의 위대함과 미국의 개척정신 및 우주항공 기술력을 동시에 확인시켜 주게 되었습니다.
아폴로 프로젝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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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만든 가장 진보된 기술력이라는 국제우주정거장이 아직도 우리 머리 위를 돌고 있고,
수시로 러시아나 미국에서 사람을 보내 확인하고 점검하는 등의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에 반해 우리나라는 나로호 하나조차 우리나라 기술력으로 완성에 이르지 못한 실정,
즉 미국과 러시아에 비하면 이 기술력의 차이는 가늠할 수 조차 없다고 보여집니다.
물론 우리나라만의 실정이 아닌 전 세계적으로 3, 4국가를 제외하고는 모두 걸음마 단계라지만,
마치 인간의 한계를 도전해보는 듯한 우주를 향한 미국의 프론티어 개척정신은 너무나 대단하게 보이기도 합니다.
나중에 화성, 달, 수성, 금성 등등을 자기들 것이라고 주장한다해도 아무런 변명도 못할 것 같습니다.
학계에서는 기초과학 기초과학 하는데 4대강 살리기라는 유명무실한 토목작업에 20조 이상의 돈을 들이고,
또 그 4대강을 유지보수 하는대 20조 이상의 자금이 필요하다는 오늘날의 기사를 접할 때,
....조금은 아쉽게만 느껴지기도 합니다.
인문계열인 제가 공학도의 길은 걷지않아 모르지만 수많은 공학도의 꿈들이 자본과 기술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너무나도 자명한 사실이라는 것 정도는 압니다.
우리에게 닥친 과제에 비하면 아직은 우주로 시선을 돌릴때가 아닐지도 모르지만,
언젠가는 우주 개척이 필요하게 될 시점에 그 선두그룹에 우리나라도 발언권을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미국인들에 의해 달에도 사람이 거닐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게 된 아폴로 프로젝트.
마냥 미국을 찬양하는 듯한 시선으로 보일지는 모르지만,
이 아폴로 프로젝트 하나만은 미국에게 제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리고 싶군요.
또한 이러한 무인 유인 탐사선의 활동으로 우주영역에 대해 조금씩 과학적 사실들이 공개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증거들의 등장으로 외계 생명체의 존재에 대한 의문이 조금씩 과학적인 접근을 허용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우주에 대한 과학적 사실들이 외계 생명체의 존재를 강하게 암시하고 있으며,
그 확률을 점점 키워나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언젠간, 정말 언젠가는 그 쪽에 의해서든 우리쪽에 의해서든 우리는 또 다른 행성에 살아가는 생명체와 교감을 하게 될 날이 올 것 같습니다.
외계인에게 보내기 위해 우리 인류의 메세지를 담은 비행선들이 1970년대에 우주로 보내지기도 했습니다.
파이오니아호 보이저호 등등에 인류의 메세지를 레코딩하여 같이 실어 보낸것이죠.
항상 누군가를 그리워할 수 밖에 없는 필연적 존재인 인간 본연의 그리움에 대한 표현도 미국은 이미 시작했습니다.
아폴로 프로젝트 글은 여기서 마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