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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1/12/13 21:48:00
Name 눈시BBver.2
Subject [일반]  신라 vs 백제 (3) 큰 놈이 온다

원래 시험기간에는 하루에 글 세개쯤은 쓰는 겁니다! -_-!
어차피 내일은 시험이 없다는 여유! -_-; 다시 공부하러 갑니다.
pgr 로그인이 자꾸 풀리던 게 고쳐졌나 보네요 ' 'a 기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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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포상팔국의 난
가야에서 뻗어나가던 나라는 역시 금관국이었습니다. 그리고 금관국 옆에 있는 안야국이었죠. 지도는 그냥 요걸로 ( ..)
http://lighton.egloos.com/2650977

내해, 혹은 나해 이사금이 있던 212년, 가라(금관국)의 왕자가 직접 와서 구원을 청합니다. 포상 팔국, 무역을 주로 하던 여덟 개의 나라들이 힘을 합쳐 금관국을 공격한 거였죠. 이들의 목표는 주력이었던 사로국, 금관국, 안야국.

내해 이사금은 태자 우로와 이벌찬 이음에게 6부의 병력을 보냅니다. 여기서 대승을 거두고 포로가 되었던 6천명을 모조리 되찾아 금관국에 돌려주죠. 하지만 이걸로 끝이 아니었습니다. 3년 후에는 다시 가야, 금관국이 왕자를 볼모로 보내게 됩니다. 이렇게 금관국은 서서히 신라에 기대게 되죠.

한편 포상팔국은 다시 아라국을 공격하는데 역시 왕손인 날음을 보내 승리합니다. 여기서 아라가 가라국, 즉 금관국의 오기이냐 안야국이냐에 대해 설이 갈립니다. 전자의 경우 안야국은 같은 피해자인 것이고, 후자의 경우 오히려 안야국이 금관, 사로국을 꺾기 위해 이를 주도했겠죠.

이후 포상팔국은 사로국을 직접 공격하지만 다시 날음과 일벌을 보내 막았고, 팔국이 모두 항복했다 하고 있습니다. 이어 포기하지 않은 세 나라가 마지막으로 울산 지방을 공격하지만, 역시 막아냅니다. 이 전투에서 내해 이사금이 직접 나섰다고 하죠.

이렇게 경남지방을 둘러싼 몇 차례의 전투를 통해 사로국, 금관국, 안야국은 크게 성장합니다. 삼국사기 등에는 3세기로 돼 있지만 이 시기를 4세기 무렵으로 잡는데, 특히 안야국은 마창진 쪽으로 확실히 세력을 넓혔다고 하는군요.

이 시기 가야제국은 크게 흔들린 것으로 보입니다. 애초에 금관국부터 왜와 한군현에 쇠를 팔면서 부강해졌습니다. 하지만 고구려와 백제에 의해 한군현이 무너졌죠. 금관국의 쇠퇴에는 이것이 큰 영향을 미쳤을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가야와 왜는 백제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죠. 중국을 향한 주요 교역로는 딱 가야 제국이 있던 거제-남해 쪽과 나주, 당진, 황해도 쪽으로 갑니다. 당시 가장 잘 살던 평양 지방보다는 못 하겠지만, 한강 유역을 백제가 잡고 있을 때 백제가 클 수밖에 없던 이유가 있는 것이죠. 한편 일본은 야마토 정권이 4세기를 넘어가면서 북큐슈의 호족들을 확실히 제압한 것으로 보입니다. 꽤나 커진 왜, 그들 역시 무역을 위해서는 가야, 백제와 연결해야 했죠.

신라 역시 백제에 일단 복속하면서 외교 부분에서 많이 기댔고, 금관국과도 꾸준히 친교를 유지합니다. 왜에 대해서는 싸움과 화친을 반복한 것 같은데, 내해를 지나 첨해 이사금쯤 가면 분위기가 약간 달라집니다.

첨해 삼십년에 서불한 우로가 "내가 땡크를 몰고 가서 니놈들 왕 모가지를 다 날려버리진 않고 소금 굽는 노비로 삼고 왕비는 밥 짓는 노비로 삼겠다"고 술 김에 망발을 한 일이 있었습니다. 나중에 사과하러 가자 왜에서는 그를 붙잡아 불에 태웠다고 하죠. -_-; 헌데 첨해는 이에 대해 딱히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왕족이니만큼 죽어주길 원했다는 말도 있지만, 아무튼 느낌이 꽤 달라졌죠.

흘해 이사금 때는 왜인이 혼례를 요청하자 이찬 급리의 딸을 보냈다고 합니다. 삼십년 후에 다시 공주와 혼례를 요청했는데 출가했다고 하면서 거절했고, 열 받은 왜는 국교를 끊고 금성을 포위했습니다. 그냥 게릴라전이랑은 달라진 양상이죠. 뭐 사실 신라가 당하고만 살았다고 하기도 그런 게 -_-; 주체가 왜든 백제든 신라는 왜와 가야 간의 무역을 방해하고 삥을 뜯으면서 미움을 사고 있었거든요.

위축돼 가던 가야제국, 강성해져가는 왜, 마한의 자리를 대신해 가는 백제, 이런 가운데 신라에서는 석씨와 김씨의 교체가 이루어집니다.

그렇게 격변하는 동북아시아의 상황 가운데 내물 이사금이 즉위합니다.

2. power overwhelming
백제는 근초고왕에 이르면서 삼한의 맹주 자리를 확실히 차지하게 됐고, 고구려와의 전쟁을 시작했습니다.
가야에서는 기록이 안 돼 있다 뿐이지 수많은 싸움이 벌어지지 않았을까 합니다. 서로의 이익에 의해 싸우고 화해하고를 반복하던 그들, 결국 백제의 영향 아래 들어갔을 겁니다.
왜는 힘을 하나로 합치게 되면서 강해졌고, 이들과의 연계를 더 공고히 했겠죠.

신라가 고대 국가로 나아가게 된 시기를 이르면 이 4세기 후반으로 잡습니다. 내물, 혹은 나물(-_-) 이사금의 재위 때죠. 그래서인지 삼국유사에서는 칭호도 마립간으로 바꿉니다. 다만 삼국사기에서는 아들인 눌지 마립간 때부터로 나옵니다. 삼국사기 쪽을 신뢰하기로 하고 이사금이라 호칭하겠습니다. 어쨌든, 이 때부터 신라는 뭔가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큰 것은 백제가 주도하는 질서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움직임을 내려 한 것이겠죠. 대신 손을 내민 쪽이 고구려였습니다. 신라는 백제를 무시하고 중국의 전진과 외교를 시도합니다. 거기에 신라에 투항한 백제 독산성 성주를 백제의 요구에도 보내지 않습니다. 이에 백제에서 사비지궤를 보내자 미인계로 매수, 가야를 치게 합니다. (...) 가야와는 이 때 확실히 틀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아무튼 목라근자를 보내 금관국이 복구됩니다. 확실히 편이 갈라졌고, 가야도 뒤가 든든해졌죠. 왜가 수도 금성을 포위하기도 했고, 백제도 심심하면 쳐들어왔습니다. 용감하긴 했는데 어찌 보면 무모해 보일 수도 있는 백제로부터의 독립, 그 결과는 백제-가야-왜 연합군의 침공이었습니다.

이 전쟁의 주체가 백제가 아닌 가야-왜이고, 백제는 패배한 지 3년 후에도 침공해 오는 것으로 봐서 좁게 보면 낙동강 금관국을 잡아 먹고 서쪽까지 영향을 넓히려는 신라와 이를 지키기 위한 가야, 가야가 먹히면 무역로도 막히는 상황이라 생각하면 -_-; 왜가 적극 참전한 것도 이해가 가죠. 왜는 아예 (금관국이든 어디든) 가야 땅을 전진기지로 이용했고 이는 임나일본부의 모티프가 됩니다.

그리고 이에 대한 내물왕의 선택은... 치트를 치는 거였죠. 그 분은 1년 기다리라고 하셨죠.

5만의 어마어마한 병력이 가야를 휩쓸어 버립니다. 이후 금관국이 완전히 몰락하는 반면 안야국은 크지는 않아도 줄지도 않은 걸로 보아 가야에서 이를 주도한 것은 금관국이 맞는 모양입니다. 이렇게 가야 남부 지방은 초토화됐고, 대신 신라는 고구려에 완전히 복속됩니다. 이후 왜는 가야 대신 백제와 더 친해지게 됐고, 남부가 초토화된 틈을 타 고령 지방의 반파국이 성장하게 되니 후의 대가야입니다.

이렇게 사로국은 진한의 지배자 정도(?)의 세력에서 고구려에 복속되긴 했지만 하나의 축으로 확실히 떠오르게 됩니다.

3. 왜 백제를 만들고 또 고구려를...
뭐 사실 고구려가 먼저 생겼죠. (...)

광개토에서 할 얘기 다 했으니 간략히 줄여보죠. 근초고왕부터 근수구왕까지 심심하면 평양을 치던 백제였지만, 고구려도 슬슬 반격의 기미가 보였습니다. 이런 가운데 침류왕이 즉위했다가 단 1년만에 죽고 진사왕이 즉위하죠. 침류왕의 업적이라고는 불교를 받아들인 것 딱 하나 (...) 진사왕의 침류왕의 아우인데 태자 아신왕이 너무 어려서 즉위했다고 합니다. 그냥 힘으로 뺏았을 가능성도 있는 거죠.

언제인진 몰라도 아신왕이 왜에 가게 됐는데, 이를 보면 부담스러운 정적을 보내버린 게 아닌가 합니다. 하지만... 결과가 안 좋았죠. -_-;

진사왕은 일상처럼 고구려를 공격합니다만... 백제의 앞에는 큰 어둠이 닥칩니다. 고구려가 말갈과 연계해 반격을 시작하게 된 것이죠. 거기다 결정적으로 진사왕 8년, 그 분의 공격이 시작됐습니다. (...)

이 틈을 타 아신왕이 일본에서 돌아와 왕위를 되찾습니다. 일본서기를 좀 순화해서 보면 왜에서는 그를 확실히 지지해준 것으로 보입니다. 이 때문에 양국은 좋게 말하면 더욱 관계가 긴밀해졌고, 나쁘게 말하면 백제에 있어 왜의 영향력이 더 강해졌죠. 백제로서도 할 만한 게임이었던 게, 임나일본부가 진짜라 하더라도 왜가 영토를 "직접 점령"하려는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백제, 신라, 가야는 물론 고구려도 복속해서 이래저래 명령 내리고 심심하면 병력을 투입했다는데 당최 발견되는 게 없거든요. 발견되는 거라고는 이상한 시기에 이상한 장소일 뿐.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얘기하죠.

백제가 발릴수록 왜는 더 성장했습니다. 가야보다 더 조건도 국력도 좋았던 백제였기에 받은 것도 많을 것이고, 백제가 안습했던만큼 더 저자세였을 것이며, 백제와 가야의 유민들이 대거 일본으로 도망쳤기에 가능했겠죠. 그 때부터 태자가 왜에 볼모로 가게 됩니다. 왕인 등이 왜에 가게 된 것도 이 때입니다.

https://pgr21.co.kr/zboard4/zboard.php?id=freedom&page=1&sn1=on&divpage=6&sn=on&ss=off&sc=off&keyword=눈시BBver.2&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33433

그런 아신왕 등의 상황에 대해서는 요기를 참조하세요~

신라도 치고 고구려도 치고 참 악착같이 살던 아신왕, 하지만... 고구려는 너무 강했습니다. 애초에 진사왕이고 아신왕이고 별로 평이 나쁘지 않아요. -_-; 하지만 고구려에 계속 맞서면서 털릴대로 털리고 백성들도 달아나고 군대는 아예 소멸되는 수준까지 간 걸로 보입니다.

아신왕의 죽음으로 왜에 있던 태자가 와서 왕이 되니 전지왕입니다. 전지왕은 동진과 왜와의 관계를 더 돈독히 하면서 고구려에 맞서려 했죠. 이 때 전지왕은 진동장군, 아들 구이신왕은 송에게서 진동대장군의 칭호를 받습니다. 백제가 신나게 밀리던 시절, 왜가 백제를 복속했다면 이 시점일 것인데 정작 왜는 이보다 낮은 칭호를 받았습니다. 왜의 영향이 강해졌다 해도 복속 레벨은 아니었다는 거죠.

자... 연대 얘기는 이쯤 하고 칠지도 얘기로 넘어가보죠.

4. 하사나 바쳤냐


泰○四年○月十六日丙午正陽造百練鋼綱七支刀○○百兵宣供供候王○○○○作
先世以來夫有此刀百濟王世子奇生聖音故爲倭王旨造傳示後世.

앞면: 태□ 4년 □월 16일 병오일 정양(=한낮)에 100번이나 단련한 철로 된 칠지도를 만들었다. (이 칼은) 모든 (적)병을 물리칠 수 있고, 후왕에게 주기에 알맞다. □□□□(=제작지 or 제작자)가 만든 것이다.

뒷면: 선세 이래 아직까지 이런 칼이 없었는데, 백제왕세자가 뜻하지 않게 성음이 생긴 까닭에, 왜왕을 위하여 정교하게 만들었으니, 후세에 전하여 보이도록 할 것이다.

참 요상하게 생긴 칼입니다. 전투 능력이나 목적은 없었을 것이고, 제사용이나 지위 과시용으로 만들어졌겠죠.

한일 양국 학계가 가장 크게 부딪히는 부분입니다. 백제->왜 까지는 맞는데 이걸 [하사한 거냐] [바친 거냐]의 문제가 갈립니다.

일단 공손한 후왕, 저 후는 제후에 쓰이는 말입니다. 일본 학계가 무시하는 부분이며, 이것만 보면 명백히 백제에서 하사한 것입니다.

일본에서 헌상설의 근거는 신공황후 52년의 구저久? 등이 칠지도, 칠지경을 바쳤다는 기사죠. 애초에 그것과 별 상관 없이 육차모라 불렸다가 그 안의 내용을 확인하게 되면서 신공황후 때 백제가 바친 칠지도가 이것이다고 하게 된 것입니다. 현재 나라현 이소노카미 신궁에 있다는군요.

보시다시피 해석이 안 된 글자가 너무 많습니다. 당장 태0 이 부분이 뭔지도 문제고, 몇 월인지도 의문이며, 저게 준 거냐 헌상한 거냐의 문제도 걸립니다. 줬다고도 해석할 수 있지만 헌상하다는 뜻도 있어서요. 이런 경우에 후왕은 그냥 제후와 관계 없는 직위 정도입니다.

그 시기가 언제였는지도 걸립니다. 기본적으로 일본 학계에서는 전후 부분이 근초고왕인 것을 생각해 구저가 태자 근구수왕이고, 369년 정도로 보고 있습니다. 여기에 관해서는 한일 모두 다수를 점하고 있죠. 이는 태0를 태화로 해석한 것으로, 태화는 당시 동진의 연호입니다. 태화 4년, 즉 369년인 것이죠.

반면 이를 백제의 연호로 보는 반론도 많습니다. 일단 당시 동진의 연호는 정확히는 태화太和입니다. 태泰와 태가 통하긴 하지만, 태를 태로(...) 간략히 시킨다면 몰라도 더 어렵게 만든다는 게 걸리는 거죠. 이렇게 되면 시기가 이리저리 바뀝니다. 이병도의 경우 그렇다 해도 369년이 맞다고 했지만, 손영종, 홍성화 등은 408년 쪽을 주목합니다. 저도 이 쪽으로 기울었구요. 한편 이진희는 아예 한참 후인 북위, 동성왕 때의 태화 4년, 480년이 아니냐는 주장도 했죠.

몇 월인지에 대해서도 말이 상충됩니다. 5월 16일이 통설이지만 9월, 11월 16일 설도 나오고 있죠. 다만 이상한 것이 369년에는 5월 16일이 병오일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현재까지 발견된 백제의 금석문에는 이런 간지가 틀린 적이 없다고 합니다. -_-; 뭐죠 이 나라;;; 이에 대해서는 정확히 병오일을 맞추기보다는 그 날이 무기를 만드는데 주술적으로 길한 날이니 그냥 병오일이라 한 것이다는 반론이 있습니다.

여기서 제가 기운 쪽이 고려대 홍성화 박사의 주장입니다. 1981년 일본 NHK에서 촬영한 X-레이 사진을 보면 11월, 12월 16일일 가능성이 있으며, 병오일이 그냥 좋은 날이라서 집어넣은 (길상구) 게 아닌 정말 그 날을 말 한 것이라는 전제를 까는 것이죠. 이렇게 11월, 12월 16일이 병오일인 경우를 찾으면 408년, 전지왕 4년 11월 16일이 나옵니다.

이에 대하 추가 근거로 바로 다음해인 409년, 전지왕 5년에 왜국의 사신이 야명주(밤을 밝게 한다니 손전등인가?!?)를 보내니 왕이 특별히 예우했다고 적혀 있습니다. 408년에 만들어진 게 409년에 왜로 간 것으로 보는 거죠. 또한 일본서기에는 신공 52년에 있지만 고사기에는 다음대인 응신기에 들어 있습니다. 4세기 중후반이 아니라 5세기 초에 간 게 아니냐는 것이죠. 전지왕은 동진과 왜와의 관계에 최선을 다 하던 왕이었고, 이렇게 본다면 태0는 전지왕의 연호가 됩니다.

뭐 백제가 연호를 썼다는 게 발견되지 않는 이상 이게 정설이 되기엔 부족하죠.

한편으로는 주고 바치고 이게 아니라 그냥 동진에서 만든 게 아니냐는 것이 있습니다. 태0가 동진의 연호라는 것에서 나온 것이죠. 사실 별로 신경을 안 쓰는데 후왕은 둘째치고 백제의 태자를 왕세자라 하고 있습니다. 백제가 딱히 세자라 칭했다는 것도 없고, 삼국사기에도 태자로 나옵니다. 왜왕에게 후왕이라 할 수 있고 백제의 태자를 세자라 칭할 수 있는 존재, 동진에서 만들어 백제에 줬고, 백제에서 왜에 선물했다는 것이 되겠습니다. 이 점에서 성음의 해석을 성진이라고 합니다.

요렇게 쉽게 꺼지지 않는 떡밥으로 남아 있는 것이 칠지도입니다. 이런 형식의 도는 이게 유일합니다. 동진이든 백제든 이걸 더 만들었다는 게 나온다거나 하지 않는 이상은 정확히 밝히기 어려운 일이죠. 앞뒷면을 쓴 것이 동일 국가냐 다르냐 (즉 앞은 동진, 뒤는 백제) 도 문제구요. 글자들이 제대로 판독되지 않으니 풀릴 길은 참 멉니다.

뭐 일단 저로서는 408년 전지왕 때 보냈고, 실제 상하관계야 어쨌든 백제는 왜 왕에게 "하사"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왜에서는 자기들에게 바친 것이라 해석했구요. 그 왜가 야마토가 아닌 백제에 따르는 군소 호족이었을 수도 있죠. 왜는 이후에도 통일신라와 "우리가 더 위"라고 자존심 싸움을 했습니다. 이 해석 자체에 백제와 왜의 상하관계가 걸려 있다고까지 생각할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어쨌든 이 신비로운 검은 한국에서도 그렇고 일본 내에서도 문화 코드로 잘 이용해먹고 있는 모양입니다.


보시다시피 이 처자 아니


이 양반의 무기가 칠지도입니다. 전국무쌍 우에스기 겐신이죠 -_-a

5. 뭉쳐야 산다
백제에서는 구이신왕에 이어 20대 비유왕이 왕위에 오릅니다. 한편 신라에서는 볼모로 갔던 실성이 귀국해 이사금이 됐고, 복호와 눌지를 고구려에, 미사흔을 왜에 볼모로 보냅니다. 이렇게 내물 이사금의 자식들은 나눠졌지만 눌지는 오히려 고구려의 힘을 입어 돌아와 실성을 몰아냅니다. 그는 칭호를 마립간으로 바꿨고, 박제상을 굴려-_-; 복호와 미사흔을 돌아오게 합니다.

무력으로 복속된 백제, 먼저 고구려에 기댄 신라였지만 이 때 둘의 이해관계는 일치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장수왕이 평양으로 천도하자 그 위기감은 극에 달했죠. 이 두 왕 사이에서 친교가 급격히 늘어납니다. 이 이상 고구려의 뜻대로 간다면 영원히 복속될 것이라는 위기감, 한편 장수왕은 천천히 시간을 들여 완전히 복속시키려 했을 겁니다. 이런 가운데 대가야는 백제가 힘을 못 쓰는 사이 서서히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한반도의 국면은 이 둘이 손을 잡으면서 확연히 바뀌게 됩니다. 약 100여년간 지속된 나제동맹의 시작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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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던거친새퀴
11/12/13 21:57
수정 아이콘
가야하니 생각난건데
안그래도 관심못받던 가야사가 김수로라는 막장사극 하나로 완전히 잊혀진거 같아요.
11/12/13 22:25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순진해서 끝에 나오는 처자가 왜 우에스기 겐신인지 모르겠네요.
엘리스 소프트가 게임은 참 잘 만들던데 말이죠.
11/12/13 22:49
수정 아이콘
근데 동맹관계가 되려면 국력이 엇비슷해야할텐데,
여전히 신라의 국력이 그닥 높지 않은 것으로 봐서(주변 정리를 고구려가 해줬다는 점에서 고구려에 대항하는 동맹을 하기엔 더더욱)
백제의 국력이 현저하게 떨어졌다고 봐야겠네요...
우던거친새퀴
11/12/13 22:55
수정 아이콘
말은 많지만 삼국사기 초기기록들을 보면 신라는 초창기부터 백제랑 이기고지고 박터지게 싸운걸로 나오죠.
초창기 신라가 지나치게 과소평가되는 경향도 있는거 같습니다.
Je ne sais quoi
11/12/13 23:00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HealingRain
11/12/13 23:00
수정 아이콘
와오! 드디어 나제동맹이군요.
독일에 맞선 프.영 동맹이 생각나는건 왜일까요 ^^;

그나저나 눈시님 요새 완전히 물이 오르셨어요. 하루에 글 세개라니!!
chowizard
11/12/14 01:29
수정 아이콘
저는 칠지도 연호가 위나라(삼국지의 위나라 맞습니다.)의 태화 4년이라는 설을 지지하는 쪽입니다.(서기 230년) 아쉽게도 본문에는 이쪽 가설에 대한 설명은 전혀 없네요. 이 설명에 따르면 일본서기의 신공황후는 삼국사기에 한 번 등장하고(173년에 아달라이사금에게 사신 한 번 보낸) 삼국지에도 나오는 비미호와 동일 인물이 됩니다.
다만, 이 가설에 따르면 신공과 390년에 즉위한 것이 거의 확실한 응신 사이에는 140여 년의 간격이 생깁니다. 그래서 신공과 응신이 전혀 무관한 별개의 나라, 별개의 왕통이라고 보고 있지요. 정확히는, 실질적으로 일본사의 시조가 되는 응신을 위하여, 단지 200여년 전에 일본에 있었을 뿐이고 자신들과 무관한 신공과 그 이전 왕들의 기록이 희생해준 거라고 합니다.

칠지도가 4세기 이후 유물이라고 하기에는 정황적으로 안 맞는 면들도 존재한다고 봅니다. 일단, 그 시기 정도 되면 뿔 달렸다고 해도 글자 새긴 철제 칼이 나라간에 귀한 선물(그게 하사품이든 뭐든)이 될 정도는 아니라는 거죠. 칼에다 떡하니 옛날부터 지금까지 이런 칼이 없었다고 자랑하듯 써놓았으니까요.
병오일에 관한 것도 그냥 실제 날짜와 상관없이 길상구로 쓴 것이 맞다고 봅니다. 칼을 하루만에 뚝딱 만들어 낸 것도 아닐텐데, 제작일을 특정지어서, 그것도 지울 수도 없게 칼 몸에 새긴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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