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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9/25 23:34
정독했습니다.
농대 마지막 몇년과 프로출범후 몇년간 허재를 보긴했지만 어렸을때라서 크게 기억에 남은건 없었는데 너무 정리를 잘해주셔서 머리에 쏙쏙 들어오네요. 허재에 대해서는 정말 대단한 선수라는 말밖에 안나오네요(여러의미로...) 용병이 주름잡는 현재의 프로농구에서는 두번 다시 허재같은 선수는 만날수 없겠죠?
11/09/25 23:37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농구대잔치 당시 이충희선수의 현대를 응원하던 입장에서 허재가 이끄는 기아가 그렇게 미울 수가 없었습니다. 허재가 좀 안좋을 때는 강동희가 긴 팔로 쓰윽 스틸하고 3점슛..-_- 한기범, 김유택은 그냥 꾸준했죠. 그렇지만 지금 생각해봐도 가장 도미넌트했던 선수는 역시 허재였습니다.
11/09/25 23:38
허재가 술먹고 경기해도 될 정도의 실력격차는 좀 문제였죠.
허재라면 젊은 시절에 NBA 진출했다면 어느 정도의 활약은 했을 거라고 봅니다. 적어도 일본의 모 선수보다야 훨씬 잘했겠죠.
11/09/25 23:41
허재 강동희 한기범 김유택 김영만 기아 5인방은 정말 진리였는데....그때가 그립네요.
전 개인적으로 그 중에서도 강동희를 제일 좋아했습니다. 절묘한 어시스트...항상 기대 이상을 해주던 강동희...
11/09/25 23:47
허재가 한참 에이스였던 시절..
전 다른팀 팬이기도 하고...워낙 사고를 많이 쳐서.. 허재라는 선수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는데... 저 위에 있는 영상 현대..대 기아 의 챔피언 결정전.. 저 경기 이후 허재라는 사람의 팬이 되었습니다.. 또 나올수 있을까요..저만큼이나 리그를 지배한...에이스.
11/09/25 23:49
농구대통령이란 별명이 참 잘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본문에 언급된 현대와 기아의 결승전은 KBL 초기흥행에 절대적 역할을 했다고 봅니다.
어릴 적엔 '선배'들에 의해 무지하게 맞으면서 경기를 했었죠. 이때는 '팀'보다는 '연배'가 우선인 시기라.... 거의 일방적으로 린치를 당했는데 같이 파울을 주니까 거의 울먹이면서 항의하던 모습도 있을 정도로 허재에 대한 견제가 심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NBA는 외국인 선수가 굉장히 적었는데(지금과 비교해보면 없다고 봐도 될만큼) 가끔 허재는 NBA에서 통할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농구를 너무 잘 알고, 기술이 너무 좋았으니까요.
11/09/25 23:51
잘 읽고 갑니다.
허동택 트리오중에 강동희 선수를 참 좋아했던 기억이 나네요. 키는 좀 작아도 탄력있는 모습과 긴팔에서 뻗어오는 스틸능력이 참 멋져보이더라구요.
11/09/26 00:00
농구는 용병때문에 망했죠. 혹자는 더좋은 용병을 데려와야한다고 하지만 용병과 국내선수들의 수준차이가 너무크고
그러면서 리그전체가 용병위주의 게임으로 바뀌었고 결국 용병에 의존한 리그에서 국내선수에이스의 등장은 불가능해져버렸습니다. 용병이 존재하는한 앞으로 허재와같은 국내선수 리그에이스는 나오지 않을겁니다. 그리고 용병이 주도하는 리그를 볼바에야 그냥 NBA를 보고 말죠.
11/09/26 00:01
아.... 94,95, 96 시즌의 농구를 참 재미있게 봤던 기억이 나네요.
중학생 때였는데.. 그때 연,고대를 상대로 고군분투하던 허동택 트리오가 생각나네요. 그때 정말 농구를 좋아했었는데.. 언제부터 농구에 대한 관심이 싹 사라졌는지 모르겠네요. 덕분에 좋은 글 읽고 추억에 젖어 있다 갑니다.
11/09/26 00:05
허재의 NBA 진출 가능성이라, 허재라면 모른다 싶기도 하지만, 본문에도 적었다시피 세계 선수권에서 미국 대학 선발팀에게 일방적으로 패배할 당시 단 9득점만 기록한 일이 있다 보니 뭐라 딱 말은 못 하겠습니다. 그 경기에서 한국이 67대 146으로 졌는데 그나마 활약해준 선수는 20점 넣은 강동희와 16점 넣은 김현준이더군요.
11/09/26 00:07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그 당시 기아자동차는 정말 무적이었는데 말이죠 허재,강동희,김유택,한기범..+_+ 농구대잔치때가 정말 재밌었던거 같아요 농구 대통령 허재!!
11/09/26 00:08
제가 당시 어릴때라서(90년생) 허재의 농구대잔치 시절을 제대로 보진 못했습니다만
그래도 6살때부터 자주 보면서 아무것도 모르던 그 때도 참 저 선수 잘한다 생각 많이 들었는데... 전 이 글 보니 그저께 봤던 충걱과 공포의 중국전이 떠오르네요 이런 선수가 있었으면... 귀화선수로 데려온 문난사는 말 그대로 충격과 공포의 3점슛 난사에 하승진 하는 거 보니 이 선수는 OS가 윈98인거 같고 그나마 그 부상에도 한국팀 득점의 반을 꽂아넣은 양동근이 그나마 보이던 최악의 경기였는데 (중국이 정말 못해줘서 이길수도 있었던 경기인데...) 경기력이 최악이었는데도 PGR에 그 흔한 질타글도 없는걸 보니 농구 관심이 정말 많이 줄었구나 싶어서 안타까웠네요
11/09/26 00:11
와~ 챔피언 결정전 저기에 제가 있습니다..하하
대전엔 야구팀인 한화이글스, 축구팀인 대전시티즌, 농구팀인 대전현대 90년대말, 2000년대초가 아마 대전에 있던 이 3개의 스포츠 구단의 전성기가 아니였나 싶습니다. 이상민,추승균,맥도웰,조성원,재키존슨 크크 너무 좋아했죠... 대전시티즌도 김은중, 이관우, 최은성 크크 정말 좋아했고 99년도에 한화우승할때 야구장 가서 열심히 응원했던 기억도 나네요 크크 근데..지금 생각하면 슬프네요.
11/09/26 00:15
당시에 고대,연대를 좋아하지 않고 기아를 좋아했던 이유는 불스의 피펜,조던,로드맨 이 강동희,허재,(김유택 or 한기범) 이 연상 되어서 더 좋아했던 기억이 나네요.(물론 굉장히 어린나이라 주먹구구식으로 매치 시켰지만요. 하하...)
저 같은 사람 많지 않았나요? 크크. 제 친구들은 거의 그렇더군요.
11/09/26 00:20
오리온스가 우승을 도둑맞았던 시즌, 아직도 기억나네요. 정말 KBL에 정이 뚝 떨어지는 시합이었는데
농구대잔치때는 중앙대를 제일 좋아했었네요. 허당센터(조동기...물론 허당 정도까진 아니었지만) 하나 세워놓고 김승기-홍사붕-김영만-양경민이 미친듯이 3점 날려대는...
11/09/26 00:21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근데 요즘 이런 글 저런 글들 보면 화룡점정을 화룡정점으로 자꾸 쓰던데... 이런 글에서는 정확하게 화룡점정으로 쓰는게 좋을 거 같아요. 그나저나 한기범, 김영만 선수가 같이 뛴 적이 있었나요? 흠... 기억은 없는데...
11/09/26 00:35
허동택 시절에는 제대로 못봤지만 허동만 시절에는 정말 농구 좋아했었죠.
스포츠에 그렇게 열광했던 마지막 시절이었던거 같습니다. 아 현대와의 그 결승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11/09/26 00:36
어디서 본 내용이다 했더니 엔하위키에 있는 글이네요.
직접 작성하신 항목인가봐요. 잘 읽었습니다. 어렸을 때 기아차 응원하면서 보던 기억이 나네요. 흐흐흐
11/09/26 00:56
우리나라 농구에 많은 스타가 있지만 허재와 같은 지배력을 보였던 선수는 단 한 명도 없었다고 단언합니다(아.. 물론 팬심 좀 섞어서). 이충희의 슛은 정말 엄청났지만, 슛을 제외하면 나머지 모든 부분에서 허재에 밀리고, 서장훈의 독보적인 키와 운동능력(물론 국내에서 -_-)도 농구대잔치 시절 삼성의 린치로 인해 목부상을 당한 이후로 사실상 사라졌죠. 저는 그런 면에서 서장훈이 참 아깝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더러운 환경이 아니었다면 서장훈은 좀 더 날아올랐을 선수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때문에 허재는 더 대단한게 90년대보다 더 더럽고 치사한 꼴이 많았던 80년대를 이겨내고 모든 면에서 압도적인 선수였기 때문입니다. 정말 지금 KBL에 허재 반만큼만 하는 스타가 있다면 농구 인기가 이 모양은 아니었을겁니다.
11/09/26 01:30
좋은 글 감사히 잘 보고 갑니다..
제가 유게에 올렸던 영상도 남기겠습니다.. https://pgr21.co.kr/zboard4/zboard.php?id=humor&page=2&sn1=&divpage=17&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106279
11/09/26 01:59
97-98시즌 현대 기아 결승전은 진짜 멋졌죠.. 이상민이 덩크한 경기는 꼭 졌던... 흐하하하....
총 두 차례 이상민이 노마크 투핸드 덩크슛을 해서 분위기 확 살렸는데 이상하게 그 경기는 졌죠... ㅠ.ㅠ;;;
11/09/26 02:02
제가 특이한 성격이라 최고, 최대, 최상 등 1인자들을 굉장히 싫어하는데 유일하게 응원했던 1인자가 허재입니다.
이유는 잘해도 너무 잘해서... 97-98 결정전때는 응원하는 입장에서 봐도 부상 투성이의 몸을 이끌고 질려버릴 정도로 잘했던 기억이 나네요.
11/09/26 06:45
허재 감독이 전태풍 선수에게 "내가 젊었을땐 넌 상대도 안돼." 라고 얘기했던게 생각나네요.
유연성 탄력 시야 슛감각 드리블 어느하나 빠질게 없고 다만 키가 좀더 컸으면 거짓말 조금 더 보태서 nba가서 족적은 남겼을거라 생각합니다.
11/09/26 09:20
허재 감독이 선수 시절에 요즘의 선수들처럼 체계적인 트레이닝과 자기 관기가 되었다면 얼마나 더 대단한 선수가 되었을지 궁금해 집니다.
11/09/26 09:29
85년 현대와의 농구대잔치 결승전은 당시 현대팬이었던
내가 이후 현대라면 아예 쳐다도 안보게된 경기였죠 팬이었던 내가 이건 경기가 아니다 이건 그냥 개판이다라고 분노할정도로 .. 특히 인상에 남는게 단독찬스에서 파울로 슛을 막으니 득달같이 달려와 파울을 한 중앙대선수를 사실상 집단린치를 가하던 현대선수들은 정말 그러면서 자기들은 김유택과 허재에게 아예 대놓고 발길질을 하고 다리가 부러지건 말건 걸어넘어뜨려 속공찬스를 무산시키게 하고 그런데도 파울을 불지않고 나몰라라 하던 심판까지 경기후반 중앙대선수들은 더이상 경기를 하는건 아무 의미가 없다 이건 경기가 아니다 하고 중앙에 일렬로 서 그냥 경기를 포기하고 그런 선수들을 비열하게 조롱하던 현대선수들과 당시 방열감독의 모습은 내가 왜이런팀을 좋아했나(뭐 솔직히 이충희선수 때문이었지만)하고 후회까지 들게 했던 지금도 기억이 생생한 아주 안좋은 시합이었습니다. 방열감독과 허재 선수와의 사이가 안좋을수 밖에 없는게 당시 저시합에서 허재 다리가 부러지게 해라 라고 했다죠 방열감독이 실재 허재는 저시합에서 발에걸려 넘어지고 고통에 몇번이고 고트를 굴렀습니다. 시합끝나고 다음날 모든 신문들이 현대의 우승도 우승이지만 그 더티한 플레이와 심판의 농간에 대해 자성과 징벌이 있어야 한다고 할정도로
11/09/26 11:21
무슨 위키에 있는 글 컨트롤 C+V 한 줄 알았네요. 덜덜.
제가 응원한 선수는 아니었지만 인정하는 선수이긴 합니다. 그 시절이 그립긴 하네요. 좋은 글 감사해요.
11/09/26 14:35
무릎팍 도사 뺨치는 글이네요. 한 개인의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이렇게 일목요연하게, 그것도 객관적으로 쓸 수가 있다니.
허재감독의 선수 시절에는 어머니의 광적인 응원 덕분에 멋도 모르면서 속공속공을 외쳐댔지요 하하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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