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이건 제 부족한 글 <헤어지는 방법( https://pgr21.co.kr/?b=8&n=28525 )>의 다음 이야기에요.
<해를 보면 재채기가 난다>의 다음 이야기이기도 하고요.
부족한 글로 자유게시판을 차지하는 거 같지만 몇몇 분들의 고마운 부탁을 핑계삼아 2탄을 올려봐요.
이야기에서라도 이 둘을 행복하게 이어주고 싶은 마음이 실은 정말 정말 큰데.
이미 그럴 수 없게 되었지만.
- - -
The fog comes
on little cat feet.
It sits looking
over harbor and city
on silent haunches
and then moves on.
고양이 작은 발로
안개는 온다.
말없이 쪼그리고 앉아
항구와 도시를
바라보다간
이윽고 다른 곳으로 움직인다.
Fog - Carl Sandburg
승이에게서 전화가 왔을 때, 나는 동아리방에서 합주연주를 연습하고 있었다. 연주회를 앞두고 모두 의욕에 불타 있었다. 긴장된 분위기를 깨는 휴대폰 진동소리에 깜짝 놀라 고개를 꾸벅 숙이고 동아리방을 서둘러 나왔다.
왜 안와. 몇 번이나 전화했잖아. 오늘 합주 있는 거 잊었어?
아니 그것 때문에 전화한 거 아니야.
그럼 뭔데?
중간고사가 끝났잖아. 놀아도 되는 날이라고.
아 그것 때문이면 합주 끝나고 같이 놀아도 되잖아.
잔말 말고 이리 내려오지그래.라고 말하며 승이는 전화를 딱 끊었다.
승이의 말소리가 가까이 들린다.
계단 아래에서 승이가 보인다.
무엇 때문에 그래.
내가 다가가며 묻자 짐짓 웃으며 승이가 꽃다발을 내민다. 가만 꽃다발이라고? 이름 모를 샛노란 예쁜 꽃이 눈 앞에 보인다. 꽃향기에 놀라 눈이 동그래진다. 나는 꽃들을 바라보기 위해서 애를 쓴다. 아홉 개, 열 개.
그때, 꽃 예쁘지. 라고 승이가 물었다.
응......
어머니는 꽃을 좋아하셨어. 어렸을 때 학교를 마치고 어머니한테 와 보면 멀리서부터 포장지에 꽃을 잘라서 포장하는 모습이라든지, 화분에 물을 주는 모습이 선명한데. 그렇게 어머니 옆에 앉아 어머니가 주는 음식이라도 먹고 있다 보면 그렇게 아끼면서 기른 꽃들이 다른 사람에게 팔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어. 어린 마음에 나는 어머니가 이름까지 붙여가며 기른 꽃들이 남에 손에 들려서 팔려나가는 것이 싫어서 종종 울었어. 이유도 말하지 않고 우니까 못됐다고 더 혼났지만 나는 그저 속이 상했을 뿐이었고. 그렇게 울다보면 지쳐서 그렇게 꽃을 사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생각해보는 거야. 이렇게 예쁜 꽃을 받게 되는 사람은 누군지 몰라도 대단히 아름다운 사람이겠다. 그렇게 생각을 하면 속상하고 아까운 마음이 조금은 가라앉는 거야. 그런데......
그런데? 라고 되묻고 나는 침을 꼴깍 삼켰다.
정말 꽃다발이 아깝지 않아서 다행이야.
나는 꽃다발이나 승이의 어머니 이야기는 모르고, 그저 쿵쾅거리는 심장 소리가 가까이 다가온 그의 얼굴에 들리지 않을까 조마조마할 뿐이었다.
너를 좋아해. 라고 말하며 승이는 나를 안았다. 꽃 향기와는 다른 냄새가 났다. 승이의 냄새.
나는 합주에 돌아가봐야 했지만, 중간고사가 끝났으니까 조금은 이러고 있어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승이의 등을 가만히 안았다.
그날부터 우리는 연인이 되었다.
이건 굿나잇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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