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고, 묘한 기분에, 예전에 썼던 단편 하나 올려보고 싶어서 올려봅니다.
---
21세기 신촌의 술집들에게, Since 199X는 일종의 훈장이었다. 대학가 풍경만큼 빠르게 변화하는 곳이 있을까? 70년대의 마리화나, 80년대의 학생운동, 90년대의 재즈까페 그리고 IMF. 그리고 21세기. 큼직한 10년의 세월 사이사이를 빠르게 흘렀던 수 많은 작은 시대와 세대들. 그런 급류 속에서, 조그만 암초 따위는 휙 날아가버리기 일수. 술집은 눈물처럼, 눈물은 사랑처럼. 사랑은 잡지처럼. 잡지는 세월처럼 그렇게. 그런 사이에서 최소한 2년-혹은 거창하게 10년-을 버텼다는 건, 일종의 훈장이다. 별 의미 없는 희소한 딱지.
굴다리집은 그런 훈장을 가진 몇 안되는 술집이었다, 고 K는 회상한다. 신촌 기차역 민자역사가 들어선 덕에 사라진 비운의 술집, 굴다리집. 무진기행은 어딘가로 이사갔다. 하지만 굴다리집은 사라졌다. 이승환의 애주가에 나오는 '신촌 구석진 선술집엔 계란말이를 잘하시는 맘씨 좋으신 아주머니' 가 계시던 나루터마냥. 수 많은 점집들도 사라졌다. 점집, 점집이라. 한때 문청입네 돌아다니던 K군은 점집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후배들과 술을 마시다가, '근데 니들 거기 빡촌인 건 아냐?' 라고 했다가 반성문을 썼던 기억이 그를 자극한다. 젠장, 빡촌을 빡촌이라고 한 게 죄인가. 나는 '그건 죄야'라고 대답한 것 같다. 물론 나나 그나, 지은 죄는 많았다. 제주도에서 귤 농사를 짓던 부모님을 두고 서울로 유학, 축생처럼 술이나 까다 내리 학사경고를 받고 부모님 손에 이끌려-정확히는 아버지 멱살에 잡혀-군데에 끌려갔던 나라던가, 그런 놈과 오륙 년째 어울려다니는 K나.
"훈장이라"
나즈막하게 훈장이라, 읊조려본다. 그러던 말던 K는 술을 마신다. 한 잔을 쭈욱 들이키고 한 잔 채우고 다시 쭈욱 들이키고야 말문을 연다. 응. 훈장이지. 빛바래고 무의미한, 엿으로도 바꿔먹지 못하는 훈장. 네놈의 청춘이나 내 청춘같은 그런 훈장. 빗방울이 무의미하게 창문을 스친다.
"그러고보면 굴다리, 비 올때 특히 좋았는데"
"아아, 좋았지. 운치있고."
굴다리집의 마당엔 몇 개의 둥근 탁자들이 있었다. 균형이 맞지 않는 기우뚱한 탁자들 위로 역시 균형이 맞지 않는 파라솔이 있었고, 중력의 균형에 완벽하게 몸을 맞긴 비닐들이 우비처럼 탁자와 사람을 덮어주었다. 그렇다고 비가 안으로 새지 않는 건 아니었지만. 비가 오는 날에는 언제나 신발이 온통 젖었으니까. 젖은 신발을 신고 있는 건 고역이지만, 젖은 신발을 벗어두었다가 다시 신는 건 더 고역이라는 것이 우리의 결론이었고, 우리는 그래서 언제나 바깥에서 마셔댔었다. 물론 가끔씩 비가 떨어지면 K는 불평했다. 아아, 썅. 내가 들어가서 먹자 그랬잖아.
"파전도 맛있었어"
"죽였지. 근데 난 고등어가 더 좋소."
안주는 오천원 균일. 파전 역시 오천원 주제에 조개살 오징어 등등의 해산물이 많이 나왔다. '해산물볶음밥'이라고 써붙이고 오징어밥을 내던 학교 식당의 기만에는 댈 게 아니었다. 물론 항상 싱싱하지 않았고(부분부정이 아닌 완전부정이다), 대체로 먹고 나면 배탈이 나곤 했지만. 파전 때문인지. 마셨다 하면 둘이 열 병씩 까던 술버릇 때문인지.
"고등어도 나쁘지 않았지."
"응. 하하. 고등어 좋지. 아하하. 맞다 고등어 사태!"
고등어 사태, 란 단어를 뱉어나며 그는 술을 또 들이킨다. 추억의 단어 덕분에 과거가 떠오른다. 고등어 사태. 어느 운동권 녀석이 고등어, 를 중심 소재로 상당히 문학적인 대자보를 쓴 적이 있었다.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호화로운 자본가들의 삶을 비판한 뒤, 일상이고 소박한 삶'을 <고등어>라는 단어로 제유했다는 정도가 기억난다. 나와 K는 둘 다 얼어붙었었다. 제주도 출신의 나와 안동 출신의 K가 함께 열광하던 고등어. 그리고 문학. 우리 삶의 두 키워드를 듣도보도 못한 운동권 녀석이 마음대로 가져다가 작품을 만들어버렸다. 제길.
그날 우리는 술을 마셨다. 새벽까지. 고등어를 세 마리쯤 먹고, 소주를 스무 병쯤 먹었다. 그리고 길에서 잤다. 다음 날, K군은 대자보에 쓰인 연락처에 전화를 걸었다. '당신은 글을 너무 잘 씁니다. 나도 학생운동을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을까요?' 그렇게 K군은 운동판에 발을 걸치게 되었다. 고등어 덕택에. 그렇게 한 1,2년 운동권입네 깔짝이다가, K군은 어느날 그만두었다.
"그놈하고도 굴다리집에서 술을 마셨었는데. 고등어 한마리 놓고. 멋진 놈이더라. 잘생기고. 글도 잘 쓰고. 치열하게 고민하고. 나같은 놈에 댈 게 아니었어. 문제라면 좀 시대착오적인 거였는데, 그놈의 문제일까 이놈의 시대가 문제였을까. 아무튼. 그렇게 같이 일하다가 언젠가 집회가 끝나고 또 굴다리집에서 술을 먹었는데. 갑자기 그놈이 목소리를 착 깔고 이야기하는거야. 동지, 나와 함께 혁명적 사회주의의 길을 걷지 않겠소? 하고. 미친놈. 갑자기 오만 정이 떨어져서 운동 때려쳤다. 그나저나 그놈은 뭐하고 사는지 모르겠네."
"시대착오라. 문학한다고 깝치는 니 입에서 나올 단어는 아닌거같다."
",.."
"미친놈도 그렇고."
"..."
"물론 내가 그런 말을 할 계제도 아니겠지만"
"..."
"그리고 내 기억에, 니가 운동 때려친건 고등어나 혁명적 사회주의 나부랭이 때문이 아니라, 그때 니가 들이대던 여자애한테 차여서 그런거 아니었나? 그리고 너 바로 군대갔잖아"
"...거기까지. 술이나 먹지?"
그렇게 우리는 새벽까지 술을 마셨다. 구천 원 짜리, 살이 통통하게 오른 싱싱한 고등어를 안주삼아. (운영진 수정) 굴다리집 있었으면 두마리 먹었을텐데. 너 왜 신촌에서 문학이나 학생운동이나 인디음악이나 독립영화가 망하게 되었는 지 알아? 그거 다 굴다리집이 망해서 그래. 돈은 없지만 술은 먹어야 되잖아. 하지만 굴다리집이 망했어. 자, 이제 어디서 먹어? 그래서 망한 거야.
"그건 너한테나 해당되는 이야기고."
나는 짧게 반론한다. 아, 물론 나한테도 해당되겠지만. 그나저나 우리 이제 내년에는 졸업반이구나. 아 뭐 성공적으로 졸업을 한다면 말이지. Since 1999인 우리의 대학 생활도 이제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질 때가 된 거지. 그나저나 기억이나 될까, 우리가 살던 시대가?
"뭐, 우리가 굴다리집 기억하듯, 누군가는 기억해주겠지. 우리만큼 할일 없는 누군가가."